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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4 12:33













  매그너스는 고삐를 당겨 말의 방향을 틀면서, 주변을 둘러 보았다. 커다란 마차와 수레들이 열을 지어 그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파엘이 말을 움직여 그에게 다가왔다. 털을 덧댄 외투 자락이 서늘한 가을 바람에 펄럭였다. 매그너스는 턱을 당겼다.


  "준비됐습니다."
  "물과 식량은?"
  "확인했습니다."
  "말굽도?"
  "예. 전부."


  매그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곧 출발할 거라고 모두에게 전해. 그리고 그는 행렬의 한가운데 쯤에 있는 화려한 마차로 향했다. 말에서 뛰어내려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에 마차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마차 문이 안에서 열렸다. 단정한 옷을 입은 중년의 베타 여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공주님께 아뢸 것이 있네만."


  매그너스는 능숙한 제국어로 말했다. 유모가 몸을 뒤로 물리고, 대신 풍성한 모피로 몸을 감싼 이가 나왔다. 그 이는 얼굴이 아주 희고 선이 가늘었다. 공주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황제의 친딸은 아니다. 황제가 딸을 이민족에게 시집 보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목 민족의 위협에서 제국을 지키기는 해야겠으므로, 황제가 대신해서 생각해낸 것은 종친이나 귀족의 자식을 양녀로 들여 공주 칭호를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들 유목 민족에게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어쨌든 이들 민족이 원한 것은 제국과의 연결, 그리고 제국이 제공하는 물자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신지요."


  양손을 얌전히 무릎 위에 모은 소년이 대답했다. 매그너스는 쓴웃음을 삼켰다. 소년의 나이는 너무 어렸다. 이제 겨우 열 다섯? 열 여섯? 아니면 열 넷일지도 모르겠다. 제국이나 매그너스의 민족이나 대부분 조혼을 하기 때문에 이 오메가 신부가 어린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신랑이 될 알파와의 나이 차이가 서른이 넘는다면 그것은 확실히 문제였다.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이제 곧 출발할 겁니다."


  오메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그너스는 괜히 모자를 고쳐 썼다.


  "마음을 단단히 드셔야 할 겁니다."
  "많이 힘들까요?"
  "네. 게다가 마차가 이렇게까지 많으니 더더욱."


  소년은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매그너스는 우수가 드리워진 그 흰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뺨이 붉고 속눈썹이 길다. 제국의 오메가들은 다 이런가. 그는 문득 생각했다.


  "위험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반드시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도적이 나올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켜드릴 겁니다."


  소년이 눈을 들었다. 매그너스와 눈이 마주쳤다. 녹갈색의 투명한 눈동자가 매그너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소년과 이렇게 제대로 눈이 마주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매그너스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그 말에 소년이 웃었다. 시름으로 그늘졌던 얼굴이 아주 잠깐 밝아지고 해사한 미소를 띠었다. 내내 지나치게 무거운 현실의 무게로 어두웠던 표정이 걷히고 비로소 제 나이다운 표정을 짓는다. 그 앳된 얼굴이 괜히 수줍고 예뻤다. 매그너스는 입안이 마르는 것을 느끼며 다시 모자를 고쳐 썼다. 고쳐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특별히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것도 아닌데, 손을 가만 둘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 출발하라고 이르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아드님."


  잠시 망설이다 소년이 덧붙였다. 매그너스는 입술을 꾹 물었다. 그는 곧 미소 지으며 소년을 마주 보았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님."


  그는 제국의 예법대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그 자리에서 물러 나왔다. 마차 문이 닫히고, 시끌벅적한 소음이 그 자리를 메운다. 매그너스는 뒷목을 벅벅 긁으며 말 위에 올라탔다. 그는 라파엘을 찾아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멀찍이서 라파엘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턱짓하자 라파엘이 얼른 말을 몰아 달려왔다.


  "출발하자."
  "네."


  라파엘이 안장 옆에 걸어 놓았던 뿔피리를 들었다. 뿌우, 출발을 알리는 뿔피리가 길게 운다. 매그너스는 이제 자신이 행렬의 제일 앞으로 가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말의 배를 걷어차기 직전, 그는 예비 계모가 타고 있을 마차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창문에는 휘장이 길게 드리워져 있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괜스레 타는 목을 침으로 축이며, 매그너스는 행렬 맨 앞을 향해 라파엘과 함께 달려나갔다.





  "드디어 출발하네요, 도련님."


  휘장 틈으로 살그머니 밖을 내다보던 유모가 소근거렸다. 알렉은 의자 안에 몸을 깊숙히 묻고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유모는 알렉을 안쓰럽다는 듯 한 번 돌아보고는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세력이 한미한 종친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란 지 십여 년. 먼 북방에서 유목민이 제국의 국경을 위협하고 식량을 도적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것이 모두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알렉의 부친은 군무와는 거리가 한참 먼 자였고, 알렉의 가족은 도성에서 떠날 일이 없었기 떄문이다. 그러나 유목민족 중 뛰어난 자가 나타나 그의 민족들을 통일하고, 선우(單于)를 자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렉의 막연한 두려움은 이 선우가 황제에게 공주를 그의 왕비로 달라고 했을 때 현실화 되었다. 황제는 종친 중 적당한 이를 아무나 골라 공주로 삼으려 했고, 알렉이 선택되었던 것이다.

  사내 아이기는 하지만 오메가이니 저 야만족들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테지.

  황제가 그리 말했던가. 알렉에게 누이동생이 있기는 했지만 이지는 나이가 너무 어려 이민족의 신부로 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설령 황제가 이지를 보내겠다 했어도, 알렉이 나서서 이지를 보내느니 자신이 가겠다고 청했을 테지만. 그래, 이지가 선택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알렉은 되새기며 이를 꾹 악물었다. 어린 누이를 이 먼 땅으로 보내고서 눈에 밟혀 어떻게 살아. 그냥 내가 가는 편이 낫지.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알렉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이 워낙 길어 저 앞에서는 한참 전에 뿔피리가 울렸는데도 이제야 알렉의 마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 행렬의 태반은 제국에서 이민족으로 보내는 식량과 귀금속, 비단 따위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민족의 병사들. 그들의 왕비가 될 이와 식량이 될 곡식을 호위하기 위해 온 자들이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식량이 더 소중한 자들일 지도 몰라. 알렉은 아까 전, 마차 문을 열어두고 대화했을 때 봤던 이민족의 병사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들 대부분은 수염을 말끔하게 깎았고, 머리칼도 짧았다. 제국의 풍습은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관을 쓰고 수염 역시 풍성하게 기르는 것이 일반적인 것과는 정반대였다.

  야만적이야. 알렉은 투덜거렸다. 그렇게 짧은 머리카락 위에 깊게 눌러쓴 가죽 투구, 그리고 몸을 감싼 단단한 가죽옷. 수염을 면도하면 뭐해, 그 덕에 얼굴에 난 흉터들이 고스란히 보이는 걸. 알렉의 아들이 될 거라고 했던 그 알파의 얼굴은 흉터 하나 없이 깨끗했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은 온통 흉터로 울퉁불퉁했다. 어쩌면 그래서 수염을 깎는 걸지도 모르지. 흉터로 덮인 얼굴을 드러내어 사람들을 위압하려고. 너무너무 싫을 것 같아. 저런 무서운 사람들 중 하나와 결혼해 그들의 왕비가 되어야 한다니. 알렉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일이 잘못 꼬였다면 그런 곳에 이지를 보냈을 지도 모른다니. 정말 끔찍할 뻔했다.


  "유모, 유모는 무섭지도 않아? 저 낯선 데로 가는데."


  알렉은 턱을 괴고, 휘장 사이로 설핏설핏 비치는 창 밖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민족의 행렬을 구경나온 사람들로 거리가 빼곡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저 사람들은. 속이 참 편해서 좋겠어. 남 일이라서 좋겠어. 알렉은 불평했지만, 혼례의 당사자가 자신이 아니었다면 자신도 마음 편히 거리로 나가서 행렬을 구경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무서워요, 도련님."


  유모가 고개를 돌리고 웃어 보였다. 알렉은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래도 도련님의 아드님이 되실 분이라던 그 분은 멀끔하니 잘생기지 않았어요? 그 분이 지켜주신다고 하셨으니, 큰 일은 없지 않겠어요?"
  "태평한 소리."


  알렉은 그녀의 말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괜히 핀잔을 주었다. 알렉의 성격을 알고 있는 유모는 다시 웃었다. 알렉은 어쩌면, 아니, 분명히 마지막이 될 도성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괴로워져 창을 등지고 앉아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아드님이 멀쩡하게 잘생겼으면 뭐해. 그래봤자 아드님인걸."
  "그래도 아드님이 잘생기셨으면, 신랑 되실 분도 잘생기셨을 지도 모르죠."


  어차피 살 붙이고 살아야 하는 낭군이라면요, 도련님, 잘생긴 쪽이 낫잖아요. 어딜 가든 잘생긴 알파는 드문데. 아드님이 저렇게 잘생기신 걸 보면 도련님 낭군 되실 분도 잘생기셨을 거예요. 피는 물보다 짙다잖아요. 연배는 비슷해도 울퉁불퉁 못생긴 알파보다야, 나이 차는 좀 나도 좀 잘생긴 알파가 낫지 않겠어요?

  그녀가 떠들어댔다. 알렉은 피식 웃었다.


  "그러게. 그럴 지도 모르겠네."


  알렉은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마음 편해지라고 하는 소리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등 뒤로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알렉은 눈을 꾹 감고 무릎에 뺨을 묻었다. 유모가 알렉의 어깨를 토닥토닥 쓸어 내렸다. 알렉의 마음을 편안해지게 하는, 익숙하고도 다정한 리듬이었다.








둘이 눈 맞아서 떡쳤으면 좋겠다

섀헌 말렉 아스알렉 해슘맷닫
2020.01.24 12:57
ㅇㅇ
센세 내가 센세 무순을 다 읽어봤는데 좀 문제가 있는것 같아...
[Code: efb4]
2020.01.24 12:57
ㅇㅇ
아무리 봐도 대작의 향기가 나는데 제목에 1이 붙어있지 않다니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게 분명해... 제목부터 취직당해 들어왔는데 존나 설정 미쳤다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억나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fb4]
2020.01.24 13:18
ㅇㅇ
모바일
와시발 알린이공주님 팔려나가는게 안쓰러운 상황인데도 매그너스랑 섹텐 오졌고... 이 무순에는 억나더가 있어야한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eed]
2020.01.24 18:15
ㅇㅇ
모바일
아 안돼ㅠㅠㅠ 아니 배덕하고 존잼이라 되지만 양어머니라니 안 돼ㅠㅠㅠㅠ 생각만해도 배덕하고찌통ㅠㅠ
[Code: 6147]
2020.01.24 18:31
ㅇㅇ
모바일
매알에 아스알렉 ㅠㅠㅠㅠㅠㅠㅠ 좆이 벌떡벌떡 서요 센세ㅠㅠㅠㅠㅠ
[Code: a24d]
2020.01.27 16:58
ㅇㅇ
모바일
센세 막줄 격한 공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드님이랑 떡치면 얼마나 배덕하고 좋은데 헉헉
[Code: 9d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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