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원인이 생각보다 사랑에 냉소적인 로저와 생각보다 순진하고 낭만적인 디키여서면 좋겠다. 그런데 웃기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로저는 감정의 영원성을 믿지 않아서 현재의 순간, 감정, 분위기에 충실한 정열적인 연애를 할 것 같고, 사랑의 숭고함과 순수성을 믿어서 화려함 보다는 관계의 안정을 추구해서 잔잔하고 개인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연애를 하는 디키였음 좋겠다.

둘이 사귀게 되면 서로의 다름을 신기해하고 스파크가 튀다가도 얼마 가지 못하고 비틀어지기 시작하겠지. 처음엔 다른 걸 알았지만 조금 다르네, 나랑 다른 부분이 잘 안 맞네 하면서 이해하고 넘기려다가 혼자 기분상해하는 일도 생기고 그러다 말로 풀어보겠다고 대화하다가 말싸움하는 일도 생기겠지. 둘이 대화를 빙자한 싸움을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라서 계속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어느 날 문득 도돌이표 같은 싸움을 지속하다 깨달았으면 좋겠다. 디키는 감정에 따르고 뜨거울 것 같던 로저의 마음이 실은 자기 생각보다 차갑고 이성적이라는 것에, 로저는 미지근하고 분위기보단 논리를 따를 것 같던 디키의 마음이 오래 쥐기엔 뜨겁고 감성적이라는 것에.

여기서 상처받는 건 디키일 것 같고 이해하면서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게 로저일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이 관계엔 끝이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겠지. 로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디키에겐 꿈에서조차 상상해볼리 없던 관계의 종말이 그렇게 짐처럼 둘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디키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