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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04:58
ㅅㅇㅈㅇ


 나는 그와 자주 부딫였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우리는 서로를 모른척했지만 그럴때조차도 그의 탐색하는듯한 시선이 내 몸을 훑어내리는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애써 모른척 하며 고개를 숙인다, 물속에서 숨을 참는것처럼, 숨쉬기가 어려웠다.

"너 션이랑 아는 사이야?"

마고가 그렇게 물었을때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단번에 대답했다.

"아니."

거짓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는 '아는' 사이는 아니다. 우리가 서로를 알고 있을까? 서로에 대해 완전하게 알고 있을까? 마고는 별 의미없는 질문이었다는듯 어께를 한번 으쓱 하더니 감자튀김에 심할만큼 많은 캐첩을 찍어올렸다.

"소금 빼달라고 한거야?"

잠시후에, 마고는 콜라를 쭉 빨아들이며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부루퉁한 어조로 대답했다.

"감자튀김에 소금을 빼면 뭐가 남는데."

"그래도 너무 짜아."

"그건 니가 케찹을 무식하게 찍어서 그런거고."

마고는 나를 조금 흘겨보더니 플라스틱 쟁반에 대고 감자튀김을 톡톡 두들겼다. 마치 소금을 털어보겠다는듯이. 그동안 나는 밀크셰이크를 빨며 창 밖을 바라봤다. 마고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그런데 정말 아는 사이가 아니야?"

"뭐가?"

"션, 멘데스랑."

"아니라니까.. 갑자기 왜?"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휴지로 입을 닦아내며 말했다.

"걔가 널 보는 눈빛이.. 그게 너네 둘 이상하게 서로를 의식하는것 같아보여서."

"..걔랑 내가 왜 서로를 의식하겠어, 아는 사이도 아닌데."

"아니 뭐, 나는 뭐라도 있는줄 알았지."

"아,니,야."

나는 애써 덧붙였다.

"그런 인기남이랑 내가 엮일 일이 뭐가 있겠어."

마고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만약 진짜 엮인 사이라면.... 난 걔 친구 해리가 참 맘에 들더라."

"제발, 이 주책아!"

"그래도 혹시 알게돼면, 해리.. 알지?"

마고가 어설프게 윙크를 하자 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마고를 때리는척 하며 깔깔 웃었다. 그것을 끝으로 대화주제는 곧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마고와 헤어지고 오는길에는 평소처럼 자전거를 탔다.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마고와 나는 사는 동네가 달랐는데 두 동네사이의 길이 꽤 한적하고 어둡다, 완전히 밤이 되기전에 서둘러 가는게 좋을것 같았다. 한참 패달을 밟는데 뒤에서 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나더니 내 옆에 부드럽게 멈췄다. 지긋지긋한 검은색 트럭이었다. 창문을 내린 남자는 씩 웃으며 나를 보더니 여느때처럼 잘생긴 얼굴로 다정하게 물었다.

"어디 가?"

"네 알바 아니잖아."

"집에 가는구나."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다시 자전거를 몰았다. 션은 느리게 나를 따라오며 말했다.

"타."

"됐어. 운동할겸 타는거야."

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타. 걱정돼서 그래."

"너나 조심해, 앞에 나무 있다."

아, 그런 소리가 나더니 그는 차를 멈춰세웠다. 나는 그 타이밍을 엿봐 빠르게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바람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그와 대화하는 동안에는 듣지 못한것이다. 션이 뒤에서 허니, 라고 외치는걸 듣기는 했으나 나는 모른척 하며 발을 더 빠르게 굴렀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어두운 파란색을 띄기 시작한다, 고개를 젖히자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인적이 드문 이차선 도로를 지나고, 곧 주차된 차가 한두대씩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길이 겹칠까봐 애써 돌아가느라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예상보다 조금 늦어졌다. 문을 열자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션이 부엌에서 나오며 나를 바라봤다.

"늦었네?"

"말했다시피, 운동할겸 돌아왔어."

"..그래"

그는 어느새 성큼 다가와있었다. 내가 눈치 챌 틈조차 주지않고. 가까워지자 그의 몸에서 나는 비누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울렁이는 그의 목젖도 이 거리에서는 신경쓰일만큼 잘 보였다. 내가 순식간에 얼어버리자 션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느리게 말했다.

"여기, 나뭇잎."

그러고는 내 머리 위에 얹혀있던 나뭇잎을 흔들며 곧바로 멀어진다. 다정한 얼굴을 가장한채.
나는 참고있던 숨을 내쉬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고마워."

..오빠.

*

션 멘데스가 내 의붓형제가 된지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한살 많았고, 처음만날 당시에는 착하고 재밌는, 그냥 어린애에 불과했다.

나는 오빠가 생긴다는게 좋았다, 아빠가 생긴다는건 뭔가 이상하고 어색한 일이었지만 오빠는 달랐다. 나는 한번도 오빠가 있어본적이 없었다. 엄마가 부산을 떨며 노란색 원피스를 입히고, 머리를 묶어주는동안 내가 오로지 생각한건 새 오빠는 어떨까에 관한 상상밖에 없었다. 신데렐라를 읽어봐서 아는데, 새언니는 무섭고 흉악한 존재지만 새오빠라면 괜찮을것 같았다.

좋은 노래가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에 도착했을때, 꿈은 현실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갑갑해보이는 옷을 입은 남자애는 곱슬머리에 약간 부루퉁해보였지만, 곧 내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뜨러 갈줄 아는 다정한 오빠라는게 증명되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복도를 종종거리며 걸어가다, 갑자기 생각났다는듯 발랄하게 물었다. 내 이름은 션이야, 션 멘데스. 너는?

"..나는 허니야, 성은 비(Bee)고."

"꿀벌이라는 뜻이야?"

그 말을 들은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에 힘을 줬다. 흔치않은 성과 이름때문에 놀림받는 일은 지긋지긋했다.
그러나 그는 단단하게 내 손을 붙잡더니, 다정하게 웃으며 나와 눈을 맞췄다.

"예쁜 이름이야. 너랑 잘어울려."

처음 만난 의붓 오빠가, 첫사랑이 되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흥분한채 쇼파를 뛰어다니며 션과 결혼할거라고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그런 나를 붙잡고 한참을 간지럼 태우더니 곧 깔깔 웃으며 말했다. '허니, 션은 네 오빠야. 둘은 결혼 못해.' 사실 나는 그때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사랑만 있으면 할 수 있는게 결혼 아니었나?

왜 결혼할 수 없는지 이해한건 11살즈음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우리가 그렇게 친했던것은 아니다. 주요한 이유로는 션이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방학때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두번째 이유로는.. 아마 내가 자라버려서, 더이상은 아이스크림으로 쉽게 꾀어낼 수 있는 어린애가 아니었다는 점이겠지. 그러나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우리 둘은 항상 어긋나 있었다, 어긋날 운명이었다. 단지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을 뿐이다.

14살 여름방학에, 부모님은 세부로 한달간 여행을 떠났다. 멘데스씨의 취미는 여행이었는데 마침 엄마의 취미도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싱글맘으로써 홀로 날 키우느라 엄마는 요 앞의 마트조차 맘놓고 가본적이 없었다. 휴양지에서 입을 원피스를 몸에 대보며 웃는 엄마가 낯설만큼 행복해보였기 때문에 내가 이를 승낙했음은 당연했다. 그러나 잊고있었던건 션이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둘은 이제 남매야, 이참에 친해지는것도 좋겠다.' 아무렴 그런 속편한 소리나 내뱉는걸 보면 분명했다.

엄마 입장으로는 나도 이제 다 컸겠다, 집에는 지켜줄 형제도 있을거고 마침 여행을 함께 갈 동반자도 생겼으니 문제될것이 없다는듯 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나는 한번도 션을 형제로 여겨본적이 없었다. 션은 낯설고 어색한 타인에 불과했다.

어쨌거나 말릴세도 없이 떠나버린 부모님을 뒤로하고, 션과 나는 집에 남겨졌다. 션은 다른 지역의 기숙학교에서 갓 돌아온터라, 이 지역에 아는 친구가 몇 없었다. 나도 부모님의 부재를 틈타 파티를 열정도로 사교적인 성격은 못되었다. 텅 빈 집에 둘만 남은 감각이 어색해 도서관으로 피난도 몇번 갔지만, 유난히 더웠던 여름탓에 나는 금방 지치고 말았다.

예상외로 우리의 사이가 좋아진건 부모님이 떠나고 이주쯤 지날 무렵이었다. 나는 그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귀여운 여인' 을 티비로 보고있었다. 션은 저녁늦게 집으로 돌아와서는 덥다는듯 셔츠를 펄럭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저녁 먹었어?"

"..응, 너는?"

"먹었어."

션은 냉장고에서 커다란 아이스크림 통을 꺼내더니 한스푼을 떠먹었다. 그러나 곧 티비에 미동없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 봐?"

"...귀여운 여인."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 여자가 남자 잘만나서 팔자 펴는 스토리 라는 둥의 주변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왠지 멍청한 로맨스 애호가가 된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션은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더니 스푼을 하나 더 챙기고선 말했다.

"나도 그 영화 좋아해."

그날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아 나와 어께를 붙인채, 귀여운 여인을 끝까지 봤다. 커다란 아이스크림통이 텅 비고, 마지막 장면에서 리처드 기어가 꽃다발을 들어올리자 내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나를 션은 보고있었던것 같다.

"재밌었어?"

"응.."

나는 이상하게도 이 영화의 결말을 볼때마다 눈물이 났다. 아닌척 소매로 눈을 문지르자 션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걸 시작으로 션과 나는 함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장르도, 제작년도도 다른 영화를 틀어놓고 보다가 영화가 끝나면 그걸 주제로 삼아 한참을 떠들었다. 보통 우리의 의견은 비슷했지만 가끔은 이해할 수 없을정도로 사소한 문제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는 했는데 나는 그게 좋았다. 그렇게 우리 사이가 풀어지자 곧 우리는 아무 주제로나 수다를 떨고는 했다. 그건 션이 기숙학교로 돌아가고 난 이후에도 같아서, 나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하루에 몇번씩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 했다. 션은 어느새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션에게 나또한 그러리란걸 의심한적이 없었다.

우리 사이가 이상해진건 내가 16살, 션이 17살 무렵이다. 션은 갑작스레 기숙학교를 그만두고 내가 있는 학교로 전학왔다.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갑작스러운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현관에서 그를 다시 봤을 때, 나는 어색하게 얼어붙고 말았다. 션은 지난번에 만났을때와는 아주 달랐다. 갑자기 키가 큰것도 그렇지만 완전히 어른처럼 보였다, 마치 다른 사람인것처럼. 션이 옛날과 변함없이 웃어보이고 나서야 경직된 어께에서 힘을 풀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낯설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와 그는 한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바로 옆방이 그의 방이었고 매일 아침에는 어깨를 부딫였다.

그때쯤에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맥스라는 남자애였는데 신문부였고 목에 건 카메라를 덜렁거리는 괴짜였다. 그래도 좋은 애였다, 나도 그 애를 나름 좋아했었다. 다만 그를 볼때면 션을 볼때마다 느끼는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는게 다른점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션과 눈을 마주칠때면 배꼽 아래가 조여오는듯 했고, 가끔 식탁에서 손이 부딫일때면 식은땀이 날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이른 아침에 트레이닝복 바지를 걸친채 면도하는 션과 거울 너머로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우리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각에 얼어붙고는 했다. 사실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고자 맥스의 고백을 받아준것도 있었다. 맥스에게 나쁜짓을 하고있다는것도 알았지만 나는 그 혼란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날 나는 맥스와 데이트를 마치고 첫키스를 했다. 바로 우리집 근처에서. 사실 키스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수준의 짧은 입맞춤이었는데, 맥스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내일 봐' 라고 말하며 차를 타고 사라졌다. 나는 멀어지는 차를 배웅하고는 구겨진 치마를 탁탁 펴며 집으로 걸어갔다. 션이 나타난건 그때였다.

나는 나무에 기대서있던 그를 보고는 깜짝놀라 얼어붙었다. 설마 본걸까? 왠지 그에게만은 맥스와 만나는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션은 미동없이 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싶었으나 마침 뒤에 있던 가로등이 역광으로 그를 쬐어서 표정을 확인할수는 없었다.

"허니."

"션.. 아니 왜 나와있어?"

"너가 늦길래."

"9시가? 엄마한테 말해뒀는데.."

평소처럼 다정한 목소리였는데 왠지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이 상황이 못내 어색하고 당황스러워 농담처럼 '너는 매일 10시까지 돌아다니잖아.' 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션이 더 빨랐다.

"아까 그애 누구야?"

나는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션은 느리게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럴수록 어두워 보이지 않던 그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비참해보이는 표정이었다.
션은 당황으로 굳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며 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아무렇지 않은듯 피곤하게 웃었다.

"..아니야, 미안. 집에 가자."

션은 내 어깨에 자신이 입고있던 외투를 걸쳐주고는, 처음 만났을때처럼 내 손을 잡았다.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것처럼. 그러나 그제서야 나는 모든게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나는 더이상 아이스크림을 볼에 묻히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션의 손은 내 손을 덮고도 남을정도로 크고 따뜻했다. 션이 입고있을 때는 딱맞던 외투는 내 몸에 입혀지자 우스꽝스러울정도로 크게 떨어졌다.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찌르르 아팠다. 줄곧 부정했지만 모든게 어긋나버렸다. 우리는, 우리의 사이는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내 손을 붙잡고 먼저 걸어가는 그 등을 바라보며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션을 사랑해.

*

션을 사랑한다는걸 깨닫자 모든게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션이 학교에 과할정도로 적응해버린것도 나를 힘들게 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션은 잘생기고, 다정하고, 무엇이든 잘하는- 소설속 남자주인공 같은 애였으니까. 그러나 모든걸 옆에서 지켜본다는건 비참할정도로 나를 화나게했다. 나는 치어리더부 주장이자 잡지모델로 일하는 베키가 션에게 추근덕거리는것도 보았다. 베키는 무례하고 생각없이 말하는 경향은 있어도, 제법 착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애였다. 교내 식당에서, 베키는 무언가를 신나게 떠들고 있었고, 션은 미소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게 끔찍하게 싫었다. 그래서 나를 발견한 션이, 마치 인사하려는듯 손을 들어올리자 황급히 뒤돌아서서 도망쳤다. 션의 시선 아래서는 걷던 발걸음이 코너를 돌자 뜀박질로 변했다. 나는 빈 교실로 들어가 주저앉으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엉망이야, 다 엉망이야. 

나는 죄를 짓고있었다. 이제야 행복해진 엄마와, 아버지가 된 멘데스씨에게도 못할짓이었다. 그래서 션에게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화를 내며 학교에서 아는척 하지말라고 쏘아붙였다. 션은 입술을 깨물며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유가 뭐야, 허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션은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날 이후로 줄곧 우리는 이런 상태였다. 션은 내 요구대로 학교에서 아는척하지는 않았지만 학교바깥에서는 꾸준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우리가 옛날처럼 친하기라도 한것처럼. 그럴때면 내 마음속에는 고통스러운 불길이 타올랐다. 션의 다정함이 버겁고, 완전히 매정해지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션이 손댔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에 감각이 있는것도 아닌데 그 부위가 화끈거려서 눈물이 날것같았다. 마음에 고인것은 토해내지 않으면 썩는다. 이제 점점 한계치였다.

*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2주 전, 부모님은 갑작스럽게 캐나다로 떠났다. 여행이 목적은 아니었다, 션의 할머니, 멘데스씨의 어머니가 몹시 위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파티 열면 안된다, 너도 그리고 너도!"

엄마는 나와 션을 붙잡고 그렇게 일르더니 곧 뺨에 가벼운 키스를 남기며 떠났다. 내가 여전히 그를 형제로 받아들이지 못한것에 반해, 엄마는 션을 친자식처럼 여겼다. 심장에 뻐근한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부모님을 배웅하고 나자 나는 빠르게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

"허니."

그리고 나직하게 부르는 소리를 모른척 했다.

며칠간은 아무일도 없었다. 길이 얼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없는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버스를 타려면 평소의 등교시간보다 30분 먼저 시내로 나가야 하는데, 추운 아침에 일어나는게 너무 힘들었다. 션은 내가 아침에 나가는 모습을 볼때마다 할말이 있는듯 나를 빤히 바라봤지만 나는 그 시선을 항상 무시했다. 보나마나 내가 태워다줄게 같은 말이 하고싶은거겠지.

금요일, 체육관에서 실수로 떨어트린 폰을 같은반 에이미가 밟아버렸다. 아침부터 되는게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학교 앞 길이 얼어서 넘어졌고, 설상가상으로 핸드폰도 부숴졌다. 점심쯤에 엄마와 통화했을때는, 할머니의 병세가 생각보다 심각해 더 오래 머무를것 같다는 이야기만 들어버렸다. 집으로 가려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션이 예쁜 여자애와 차에 기대 대화하고 있는 모습까지 봐버렸다. 더이상 최악일 수 없는 기분이 끝까지 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버스기사가 내 신호를 무시하고 가버렸다.

나는 눈쌓인 정류장에 몸을 웅크린채 앉아 생각했다. 션이 여자친구를 사귀는건 좋은 일이다. 그가 여자친구와 사이좋은 모습이라도 보면 내 마음도 곧 정리할 수 있을것 같았다. 션이 내 친구이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가 근심걱정없이 나를 보며 웃던 얼굴도. 하지만 그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자 가슴은 다시 두근거렸다. 나는 비참함에 빠졌다. 션은 그동안 두손에 꼽게 많은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내가 맥스 이후로는 고백 한번 못받아본것에 비하면 얄미울정도의 성적이다. 사람들이 떠나고 난 후의 학교는 어둡고 쓸쓸하다. 나는 션의 차가 주차되어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병신처럼 눈물을 흘렸다. 그를 사랑하는게 힘들었다. 눈이 내리는것도 서러웠다. 홀로 버스를 기다리는게 제일 짜증났다.

겨우 6시가 다 되어서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건 6시 30분 즈음이였다. 평소라면 집에 있어야 할 션이 보이지 않았다. 추잡한 질투의 감정이 고개를 처들어서, '그 여자애랑 데이트나 하고있는거 아니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션을 기다리고 있었다. 8시가 넘어가자 내가 한심해졌지만 그럼에도 괜히 거실을 얼쩡거리며 션을 기다리는것만은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때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현관을 바라봤다. 션이었다. 션은 불켜진 실내를 확인하더니 휙 소리가 날만큼 빠르게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했다. 반면에 나는 션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는 중이었다. 션의 머리카락이며 외투에 눈이 잔뜩 쌓여있다. 볼과 코가 빨갛게 얼어있는게 낭만적인 데이트를 하고 온 모습도 아니었다. 그것보다 눈! 발밑에 웅덩이를 만들고 있잖아!

"션, 나가! 눈 털고 들어와야지!"

내가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는데도 션은 멍하게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가 데이트를 하다 온건 아닌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기분이 나아져 손수 어께를 털어주고자 손을 뻗었다. 그러나 곧 큰 손에 허리를 잡힌채 그에게 끌어안기고 말았다.

심장이 내려앉는다.

"...허니.."

션이 중얼거리듯 속삭였다. 안도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션?"

"왜 전화 안받은거야, 왜 늦게왔어.."

"왜.."

"걱정했어."

션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성배를 찾아낸 수도사 같기도 했다. 나는 온몸이 꽁꽁 얼을때까지 나를 찾아해맨듯한 그를, 나도모르게 더 세게 끌어안았다. 외투의 눈때문에 옷이 축축하게 젖어가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왜 너는 항상 그런식이야..?"

놓아주지 않을것처럼 나를 끌어안고있던 션은 내 목소리의 떨림을 눈치채고서야 다급하게 몸을 떼어냈다.

"허니? 울어?"

울지마, 쉬. 차가운 손이 볼을 덮었다. 나는 그에게 얼굴을 맡긴채 힘없이 흐느꼈다. 더이상 참기 어려웠다.

"넌 다 쉽지, 난 다 어려운데."

"허니,"

"나 너 좋아한단 말이야... 왜 자꾸 다정하게 굴어.."

션의 호흡이 멎었다. 나는 그냥 울며 그대로 서있었다. 한참 숨을 참는듯 가만히 있던 션이 더듬거리며 입을 땠다.

"허니, 나를 좋아해?"

"션은 나를 좋아해?"

나는 흐느끼며 되물었다. 션은 어쩔줄 몰라하며 내 눈물을 닦아내다 나를 다시금 끌어안았다.

"좋아해, 좋아해. 처음만났을때부터 계속."

알고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알수밖에 없다. 그의 애정은 곧고 변함없었으니까. 여자친구를 만드는 행위가 단순히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는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안됐다.

"..좋아하면 안되잖아.."

"왜.."

션은 할말을 잃은듯 다시 나를 바라보다가 곧 다급하게 입을 맞췄다. 찬 입술이 맞닿자 곧 따뜻해졌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에게도 더이상 반항할 힘은 없었기에 나는 그가 하는대로 몸을 맡기고 입술을 열었다. 션은 면티만 입은 내 등을 절박하게 끌어안으며 입술을 핥았다. 좋아해, 사랑해, 내가 어떻게 널 싫어해. 허니, 제발. 어느새 션도 울고있었다. 션의 외투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시 입술이 떨어지자 션이 우는것 같은 얼굴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션은 그날 현관에서 나를 안았다.




션멘너붕붕
2018.11.18 05: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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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대작의 시작이네오 선ㅅㅔ 억나더 가는겁니다 알조??????????!!!!!!!!!!!!!!!!!이건 진짜 붕간적으로다가 꼭 억나더 해야해요 센세 꼭 도라와야해ㅜㅜㅜㅜㅜ༼;´༎ຶ ۝༎ຶ`༽
[Code: 0a95]
2018.11.18 05: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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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센세... 너무 좋아서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느라 20분이 걸렸어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헉헉 유사 남매 존나 좋라 배덕해 짜릿해ㅜㅜㅜㅜㅜ
[Code: 97b7]
2018.11.18 06: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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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아아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크아아아아 제발 어나더 주세요 크아아아아아아아
[Code: 2281]
2018.11.18 08: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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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억나더가 없으면 윗붕들 다 죽어
[Code: 97fe]
2018.11.18 08: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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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엥에에에에엥에에에에엥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336]
2018.11.18 08: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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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분위기며 션멘허니 관계며 너무 좋쟈나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 어나더가 절실합니다 어나더 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328]
2018.11.18 08: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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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지금....속쓰려요...너무 좋아서....아니 너무...너무........하....션멘....너무....어흐흐흑
[Code: b829]
2018.11.18 08: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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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부분이해가안되니자세한어나더를주세여ㅠㅠ
[Code: e679]
2018.11.18 09: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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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 잘 모르겠어요 다시 설명해주세요ㅠ
[Code: 2f52]
2018.11.18 09: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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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나 미치누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센세ㅠㅜㅜㅜㅜㅜ아련한 션멘 개조아요ㅠㅠㅠㅠㅠㅠ진짜 억나더가 없으면 윗붕들 아랫붕들 다죽쏘ㅠㅠㅠㅠ
[Code: b47e]
2018.11.18 10: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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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미친 존나 취적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사랑해요ㅠㅠㅠ 어나더로 오실꺼죠????
[Code: 0e11]
2018.11.18 11: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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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억나더..... 억나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405]
2018.11.18 15: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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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좋탕ㄷㆍㅜㅜㅠㅡ
[Code: 4f16]
2018.11.18 18: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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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해요 ㅠㅠ
[Code: ff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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