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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00:14

 




 

 즙요사 내에서 응접실의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부생을 안내한 아곤은 문 너머에 있는 이에게 부생이 도착하였음을 알렸다. 안쪽에서 부생의 방문을 허락하는 말이 떨어지고 미닫이 형식으로 된 문이 양쪽으로 밀려나듯 열리자 먼저 도착해 부생을 기다리고 있던 문덕의 모습이 보였다. 문덕은 도착한 부생을 확인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기껍게 맞이했다.

 

 공간에는 문덕 외에도 부생의 일행들을 안내하였던 인도자가 문덕과 함께 있었는데, 아마도 이례적으로 일어난 이번 일에 대해 좀 더 정확한 보고가 이루어 지고 있었던 듯 보였다. 문덕을 따라 일어난 인도자 역시 가볍게 부생에게 목례를 하며 부생을 맞이하였다. 의도야 어떻든 자신의 팀원들에게 술법을 사용한 사람인지라 인도자에게 꽤나 퍽퍽한 감정을 갖고 있는 부생은 그저 형식적으로 그의 인사를 받아 넘겼다.
 

 

"수고했습니다. 그만 돌아가 보세요.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이어서 하도록 하죠. 션처장, 이쪽으로 앉으시죠.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문덕은 그런 부생의 상태를 눈치채고 인도자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문덕에게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인도자가 금세 밖으로 나가자 문덕은 엎어져 있는 찻잔 하나를 들어올려 바르게 돌려놓아 부생의 앞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다관을 들어 부생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다관은 이제 막 준비되어 있었던건지 찻잔에 따라진 차에서는 따근한 수증기가 아른아른 피어 올랐다. 문덕은 비어있는 자신의 찻잔에도 차를 따라내고는 부생에게 손짓을 하며 본인이 따라준 차를 권했다. 당연히 부생은 찻잔에 손도 가져다 대지 않았다. 이미 한 차례 차 안에서 무방비하게 있다가 즙요사의 술법에 팀원들을 보호하지 못했던 부생의 입장에선 문덕이 주는 차를 섣불리 마실 순 없었다. 문덕은 그런 부생의 모습을 예상 했다는 듯 본인의 몫으로 따라낸 차를 입에 머금으며 향을 음미하다가 목 뒤로 넘겨 그대로 삼켰다. 부생은 문덕이 자신을 안심시킬 목적으로 먼저 차를 들이켰음을 알아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생은 여전히 차를 마실 생각이 없었다.

 

 단정한 움직임으로 찻잔을 내려놓은 문덕은 여전히 차에는 손도 대지 않는 부생을 바라 보았지만 이렇다 할 행동을 하는 대신에 그저 담담한 표정을 한 상태로 부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즙요사는 고귀한 혈통에 따라서 황제라 칭해졌던 이들이 이 땅을 통치할 때 부터 존재해오던 기관입니다. 그 당시 즙요사의 존재가치는 황제인 그들에게서 유일하게 찾을 수 있었죠.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황제를 지키기 위해 생겨나 황제만을 위해서 그 존재를 이어간 기관입니다."

 


 다소 튀는 방향으로 대화의 물꼬를 튼 문덕이 부생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이 부생은 일단은 들어나 볼 심산인 듯 문덕의 말에 집중해 왔다. 문덕은 그러한 부생의 반응에 내심 안도했다.
 

 인도자의 보고를 들은 후 잠시 고민을 하던 문덕은 더이상 부생의 기억을 조작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즙요사에는 향을 이용한 술법 이외에도 기억을 조작하거나 삭제하는 다양한 술법들이 존재하였다. 허나 문덕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요괴들은 물론이고 지성인과 야수족에게도 그 위력을 발휘하는 강력한 즙요사의 술법이 이미 부생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게 확인이 되었다. 이 예외적인 상황에서 부생에게 또 다른 술법을 사용하였다가 만약 실패한다면? 문덕은 부생에게 빚을 졌던 그 날을 떠올리곤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본인의 키를 훌쩍 넘는 언월도를 허공에 휘두르며 요괴들을 한번에 가르던 부생은 그 자리에 존재하던 어느 누구보다도 강했다. 상급 요괴에 필적하는 부생의 무력을 목도했던 문덕은 섣불리 술법을 사용하였다가 또다시 실패하게 되어 부생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면, 즙요사가 감수할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문덕은 부생에게 즙요사의 비밀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 땅의 해성인들 중 가장 존귀한 자였던 황제들은 늘 주위를 날카롭게 경계했고 불안해 하고 초조해 했습니다. 그들이 제 아무리 높은곳에 존재하고 그 혈통이 비범하다 하여도 그들 역시 결국 해성인이었으니까요. 세상에는 우리 해성인 외에도 지성인이 있고 야수족이 있으며, 요괴들 또한 존재하고 있습니다. 션처장도 알다시피 약 만년 전 성물의 힘으로 지성인은 지성의 세 우두머리의 관리 아래 저 깊은곳에 갇히게 되었고 야수족은 해성인들과 우호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해성인들이 그 두 무리들에게 피해를 받는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허나 요괴들은 아니었죠. 본성 자체가 흉악하고 간교한 요괴들은 먹이사슬 관계에서 가장 위쪽에 위치한 포식자입니다. 요괴들에게 우린 한낱 먹이에 불과하죠. 황제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히나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여 그들응 꺾어내고 그로인해 풍겨나오는 공포심을 즐기는 요괴들에게 황제들은 언제나 군침이 도는 먹잇감들이었죠. 황제들은 자기들을 지켜줄 이들이 필요했습니다. 요괴들과 필적할 만큼 강한 이들을."


 

 잠시 쉬어가듯 말을 끊은 문덕이 다시 찻잔에 입을 갖다대고 입술을 축였다. 찻잔은 바닥을 드러내었지만 문덕은 다시 제 찻잔을 채우지 않았다. 문덕은 대신 부생의 반응을 한번 더 확인했다. 부생은 여전히 문덕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문덕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런건지 부생의 손은 어느새 앞에 놓인 찻잔의 표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황제는 기골이 단단한 어린 아이들을 각지에서 비밀리에 차출하여 산속 깊은곳에서 함께 생활하게 하였습니다.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한 잠자리를 주고, 공부를 가르치며 일 년여를 지켜보다 그 중 절제력이 뛰어난 아이들 몇명을 추려내어 만월이 뜨는 날 자시가 되면 아이들의 목을 억지로 벌려 요괴의 피를 마시게 하였죠. 열에 아홉은 날뛰는 요괴의 기운들을 참지 못하고 그렇게 스러져 갔지만 열에 하나 정도는 그 힘을 제것으로 소화시켜 각성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요괴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아이들은 황제의 직속기관인 즙요사로 보내지게 되었죠. 이것이 우리 즙요사의 시작이며 즙요사가 그림자 기관으로 존재하게 된 이유입니다."

 

 

 말을 마친 문덕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생은 자쳐보이는 문덕의 모습에 이번엔 자신이 다관을 들어올려 문덕의 칫잔에 차를 부어 주었다. 그러한 부생의 행동에 문덕은 옅게 웃어보이며 부생이 따라준 차를 입안에 머금었다.

 

 부생은 여전히 자신의 팀원들에게 술법을 걸어온 즙요사를 좋게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랜시간 선조들이 목숨걸고 지켜온 기밀들을 자신이 수장을 맡고있는 지금 기관 외의 사람에게 들켜버린 것도 모자라 모든 진실을 말하게 된 문덕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니, 부생은 왠지 모르게 입 안이 썼다.

 

 허나 그것도 잠시, 부생은 문덕이 전해 온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제가 문덕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던 그것과는 별개로 분명하게 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떠올렸다. 제 이야기를 다 쏟아낸 문덕은 부생이 따라준 차를 홀짝이며 이제 부생의 답변을 듣기 위해 조용히 부생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부생이 입을 열어 문덕에게 말을 건내왔다.


 

"배수장이 내게 즙요사의 기밀사항을 말해주었다는 건 우리 팀원들에게 해가 되든 되지 않든 더이상 그 어떤 즙요사의 술법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즙요사에선 특조처 분들에게 어떠한 술법도 사용하지 않을 것 입니다."

 

"조약에 대해선 어떻게 하실겁니까? 이미 1 조약도 2 조약도 다 깨져버린 상황 아닙니까?"

 

"혹, 션처장은 팀원분들에게 술법에 대해 언급 한 적이 있습니까?"

 

"배수장과 만나기 전까진 함구하기로 인도자와 약속을 하여 팀원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오늘 알게된 이야기를 팀원분들이나 타인에게 말할 건가요?"

 

"즙요사의 내부적인 일을 어디서든 떠들고 다닐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2조약은 깨지지 않은 것 같군요. 앞으로도 조약은 꼭 지켜주실거라 믿습니다."


 

 부생은 문덕의 답에 내심 놀랐지만 겉으로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문덕은 제 패를 다 보여준 상태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을 끌고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즙요사의 기밀을 부생에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조약을 꺼내들어 더이상 기밀이 퍼지지 않도록 위험을 차단시켰다. 한 기관의 수장을 할 정도라면 어느정도 특출날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문덕은 부생의 예상을 훻씬 뛰어넘는 수완가였다.


 

"긴 시간을 거쳐온 현재의 즙요사는 이제 위에 있는 높으신 분들을 위해 일하는게 아닌 이 땅에 살아가는 해성인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아이들을 잡아 가두는 일도 그 아이들에게 요괴의 피를 먹여 억지로 힘을 각성시키는 일도 없습니다. 그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이라면 본인의 선택에 따라 요괴의 피를 마셔 각성한 후 현장업무를 할 지, 아니면 일반 행정업무를 할 지를 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보통 사람들이 즙요사를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죠. 그리고 업무 특성 상 비밀스럽게 움직여야 할 때가 대부분이라 우리는 항상 즙요사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이번일도 우리에겐 즙요사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지만, 션처장을 포함한 특조처 분들에겐 큰 결례가 되었다는걸 압니다. 은혜를 갚기는 커녕 오히려 배은한 것 같아 그저 송구스럽습니다."


 

 다시한번 진심으로 사과하는 문덕에게 부생은 대답을 하는 대신 본인의 앞에 놓여있던 찻잔을 들어올려 문덕의 찻잔에 부딪혔다. 그리고 담겨있던 차를 한번에 입안으로 털어넣어 목뒤로 넘겼다. 예상 치 못한 행동을 하는 부생을 보고 살짝 놀랐다가 이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 문덕의 얼굴이 부생의 두눈 가득 들어왔다. 싱그러운 찻잎향이 부생의 코끝과 입안에 가득 맴돌았다.



 

진혼 부생문덕 웨이란 주일룡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