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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5 22:29

눈을 떴다.
 

보이는 건 잿빛 하늘이 아닌 새하얀 천장이었다.
 

들리는 건 고도상승 경고음이 아닌 작게 삑삑대는 정체모를 기계음이었다.
 

잡히는 건 전투기의 조종간이 아닌 바스락거리는 이불이었다.
 

맡아지는 건 매캐한 폭약 냄새가 아닌 알 수 없는 약품 냄새였다.
 

점점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브래드쇼 환자브래드쇼 환자정신이 드십니까?
 

 
 

 
 

환자여기는 병원이었다.
 

눈을 굴려 주변을 살핀다.
 

의사  명과 여러 명의 간호사들이 나를 둘러싸고나를 바라본다.
 

의사가 다시 입을 연다.
 

 
 

 
 

브래드쇼 환자제 말 들리십니까?
 

 
 

 
 

들린다들리지만 대답할 수 없다
 

눈만 꿈뻑이자 의사가 다시 한 번 묻는다.
 

 
 

 
 

브래드쇼 환자목소리가 안나오십니까맞으면 눈을 한 번만 깜빡여주세요.
 

 
 

 
 

말을 해보진 않았지만 목소리가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일단 보호자분께 병원측에서 연락 드렸습니다
 

보호자분 오실 때까지 섣부르게 움직이려 하지 마시고 일단 안정 취하고 계세요.
 

두 달 만에 깨어나셨으니 아마 움직이기 힘들 겁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이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브래드쇼가 아니다
 

다시 한번 주변을 살펴 본다.
 

의사가 가리고 있던 벽면이 보인다벽면에 걸린 달력도 보인다.
 

2020 10.
 

이상하다. 2020년이라니?
 

이상하다그러고보니 이 방을 가득 채운 물건들이 내가 알고있던 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너무 깨끗하고너무 튼튼하고알 수 없는 기계들도 많다
 

이상하다
 

 
 

나는 1940년을 살고 있었는데.
 

 
 

병실 문이 열린다누군가 다급하게 뛰어들어온다.
 

 
 

 
 

브래들리!
 


 

 
 

누구지나는 이런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아니서글프게 운다.
 

이 사람이 브래들리 브래드쇼의 보호자인 것 같다.
 

나는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굳어버린 머리를 굴려본다.
 

 
 

나는 브래들리 브래드쇼가 아니다.
 

지금은 2020년이고나는 1940년에 살고 있었다.
 

의사가 나에게 두 달 만에 깨어났다고 했으니 내가 80년동안 잠들어 있던 것은 확실히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다른 이의 몸 속으로 들어온 건가시간 여행?
 

그 어느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확실한 건두 가설 모두 입 밖으로 내서는 안된다는 것.
 

모든 확률을 고려해야한다그 어떤 것도 확신해서는 안된다.
 

 
 

 
 

거울좀
 


 

 
 

짧은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도 꽤나 힘이 들었다.
 

남자가 가져다 준 거울을 본다익숙한 내 얼굴이다.
 

몇 년 전 훈련하다가 다쳐 생긴 뺨의 흉터까지도 똑같다.
 

엄지 손가락이 유독 큰 것 까지도 익숙한 나의 손이다.
 

 
 

 
 

브래들리괜찮니의사는 조금 있다 들어오기로 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생긴거면 지금 바로,
 


 

 
 

눈 앞의 남자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몸을 틀었다.
 

 
 

 
 

아니에요괜찮아요삼촌 와줘서 고마워요.
 


 


 

남자의 얼굴과 내 얼굴로 추정되는 나이 차이에 가장 적절한 호칭이었다.
 

삼촌.
 

남자의 얼굴에 안도감이 퍼진다나의 선택이 옳았다.
 

남자그러니까 브래드쇼의 삼촌과 대화를 나누며 브래드쇼의 정보를 수집했다.
 

브래드쇼도 전투기의 조종사였고작전 도중 적기의 공격에 추락했다는 것도 나와 똑같았다.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를 배려하는지남자는 질문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얼마 후 의료진이 들어오고몇 가지 간단한 체크를 한 뒤 물러갔다.
 

사고 당시 두부에 강한 충격이 있었으니 기억을 하는 데 약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의료진이 나가고 남자아니 삼촌도 곧이어 병실을 떠났다
 

 
 

비록 80년 후의 세계이지만추락하는 전투기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있던 내가 다시 살아났다.
 

어차피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떠난 지 오래였다.
 

여기든내가 살던 세계이든 혼자인 건 똑같았다
 

모두가 날 브래드쇼로 알고 있으니나는 기꺼이 브래드쇼가 되기로 했다.




행맨은 나오지도 않았네
타임 슬립인지 멀티버스인지 단순 영혼 체인지인지 뭐가 됐든 눈을 떴다. 로 시작하는 루행루가 보고싶다...

루스터행맨루스터 텔러파월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