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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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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늦게 퇴근한 노부는 착잡한 심정으로 현관문을 열었어 그런데 텅 빈 현관이 저를 맞이하는 게 아니겠어? 원래라면 제가 오자마자 잔뜩 뿔이 난 마치다가 달려들어 한참 컁컁하면서 난리를 쳐야 하는데..

그때부터 노부는 쎄한 기분이 들었어 자신의 여우는 이렇게 조용한 아이가 아닌데 대체 무슨 일이지? 황급히 걸음을 옮기다 문득 소리가 나는 서재로 들어선 그는 눈앞의 풍경에 탄식이 절로 나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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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진짜 가뜩이나 신경 쓸 거 많은데 너까지 왜 그래.”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리는 노부의 손길에선 짜증이 묻어 나왔어 그 태도가 마치 자신을 향하는듯해 마치다는 심장이 쿵 내려앉은 기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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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부가.. 계속 나 혼자 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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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류 엉망으로 만든 게 잘한 거야? 이걸 다..”




노부는 허망하게 어질러진 서재를 바라봤어 오늘 여우가 저지른 짓은 늘 부리는 투정이라 치부하기엔 과했어 충분히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 여우는 아직 회사의 사정 같은 건 이해해 줄 수 없나 봐

아직 어리니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성적으로 감정을 다스려 보려 해도 자꾸만 화가 치밀었지 울고 있는 마치다를 달래주고 싶지 않을 만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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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잘했다고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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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윽, 왜 무섭게 말해!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노부가 바쁘대서 얌전히 기다렸는데 노부는 계속 더 늦게 돌아오잖아 나만 집에 두고서! ”









매일 아침마다 가지 말라며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고 호시탐탐 서재에 들어와 여기저기 물어대며 놀아달라 칭얼대다 꾀병까지 부렸던 지난날들을 얌전히 기다린 거다 소리치는 것에 노부는 피로감이 밀려왔어
제가 그동안 너무 어리광만 받아줘서 그런 걸까 마치다가 안하무인으로 구는 게 그저 귀엽기만 했는데 지금은 버거웠어
무거운 한숨과 함께 여전히 주저앉아 눈물을 찍어내고 있는 마치다를 일으킨 노부는 단호하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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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네가 어지른 거니까 네 손으로 정리해서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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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싫어... 나 안아줘.”


우는 저를 달래주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 저를 바라보는 노부는 낯설기만 했어 제가 잘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무섭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안아달라는 자신의 말에도 여전히 팔을 풀지 않고 서있는 노부에게 다가가 억지로 품을 파고들자 위에서 낮게 혀차는 소리가 들려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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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어리광 부려도 오늘은 안 봐줄 거야. 나 화났어.”





그 말에 마치다는 서러움이 밀려왔어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노부가 늦어서 그런 거잖아 나만 집에 혼자 남겨두고! 회사에 사람 하나 없어도 잘 굴러간다고 소라형아가 그랬는데! 넌 대체 뭐가 그렇게 혼자 바빠! 쒸익 쒸익 거친 숨을 몰아쉰 마치다는 노부를 한껏 노려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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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 싫어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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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너 정말!”


빽 소리친 마치다는 노부가 잡을새도 없이 달아나 버렸지 결국 엉망이 된 서재엔 노부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화를 삭여야 했어 아까부터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뱉으며 그는 천천히 조각난 종이를 하나 둘 주워 모았어 많이도 찢었네. 이걸 다 찢을 동안 홀로 서재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제 여우는 또 이런 짓을 할까 그럴 때 난 어떡하면 좋을까 답이 없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어

하지만 어찌 되었건 제가 아무리 화가 나도 케이를 미워할 수 없다는 거야 또 자신이 케이의 보호자란 사실엔 변함이 없었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노부는 이번에도 자신이 먼저 숙이고 들어가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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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나와봐. 얘기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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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뭐해 마치다가 이미 단단히 토라져 버렸는걸
서재를 정리하는 그 잠깐도 기다리지 못한 마치다는 바로 저를 달래주려 오지 않는 노부에 잔뜩 서운함을 느꼈어
제 놀이방에 콕 틀어박혀 문을 꼭 잠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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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혼자 못 자잖아. 내가 화내서 미안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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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혼자 잘 수 있거든!?”











자존심 때문에 한말이긴 했지만 마치다는 오늘 밤 노부의 품에서 자고 싶지 않았어 제가 안아달라고 했을 때 안아주지 않는 노부가 꽤나 충격적이었거든
...물론 노부가 좀 더 문 앞에서 잘못했다고 빌면 용서해 줄 마음이 조금은 있었는데 아니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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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그래 알았어 케이 무서우면 침실로 와 알았지?”










하고 가버리는 거 있지? 마치다는 오늘 노부의 처음 보는 모습들에 혼이 쏙 빠질 지경이야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다 나오더라니까? 솟구치는 감정을 주체 못 해 애꿎은 쿠션을 파바박 때리던 마치다는 마침내 결심했어
가출을 하기로 말이야


그런데 가출할 땐 뭘 해야 하는 거지?

푹신한 쿠션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서 마치다는 포탈 검색창에 가출하는 법 따위를 띡똑띡똑 쳐보았어 하지만 별로 도움 되지 않는 정보들만 나와서 짜증이 난 여우는 홧김에 휴대폰을 멀리 던져버리곤 스르륵 잠에 들어버렸지
노부가 없으면 잠도 못 자는 어리광쟁이가 아무래도 오늘 친 사고 때문에 감정 소모가 심했나 봐


잠시 뒤 마스터키로 문을 따고 들어온 노부는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든 마치다를 보고 작게 탄식을 내뱉었어
이대로 안아들어 침대로 갈까 하다가 그럼 다음날 또 멋대로 저를 옮겨 놓았다며 잔뜩 성질을 부릴 것 같아서 잠자리만 봐주곤 조심스레 놀이방을 나섰지
여우는 그런 것도 모른 채 한결 편해진 숨을 내쉬며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


낯선 장소임에도 아주 푹 잠이 든 여우는 오후 한 시쯤 번쩍 눈을 떠졌어 어? 내가 이불을 덮고 잤던가 기억나지 않는 어젯밤을 잠시 되뇌다 의식 저편에 있던 마지막의 결심이 번뜩 떠올라 조심스레 놀이방을 나섰지

토요일인데도 노부는 출근을 한 것 같았어 식사를 챙겨주는 마사가 난처한 얼굴로 이사님은 잠시 급한 회의 때문에 회사에 가신 거니 금방 돌아올 거라며 저를 달래주었지만 여우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 지난주 토요일에도 똑같은 말을 했거든 어제의 마치다였다면 그 말을 듣고 슬펐을지 몰라 하지만 오늘의 마치다는 달랐지


왜냐면 저는 가출을 할 거니까 말이야!


전투적으로 밥을 먹은 여우는 곧장 드레스룸으로 갔어
그리곤 적당한 백팩을 찾아 제가 좋아하는 잠옷과 옷가지 몇 벌을 가방에 쑤셔 넣었지 늘 외출을 할 때면 노부가 모든 준비를 다 하는지라 제 손으로 뭘 챙겨본 적이 없던 여우는 가방을 싸는 게 엉성하기 그지없었지만 어쨌든 가출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챙기더니 수인화해서 비장하게 저택을 빠져나왔어


마치다의 목적지는 소라형아네 였지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쿄스케네는 절대 가기 싫었어 분명 잔뜩 놀려댈게 뻔하니까 말이야 사실 엄마아빠(노부네 부모님)한테 가는 게 제일 좋았지만 지금 두 분은 일 때문에 해외에 계시는 중이래 어쩔 수 없지 뭐

여우는 머릿속으로 소라형아네 빵집 위치를 되뇌며 우다다 달려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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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는 무사히 소라네에 도착할 수 있을까?




















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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