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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2 21:02
ㅅㅇㅈㅇ
로맨스판타지 게임, ‘30살까지 동정이면 마왕이 된대’.
줄여서 체리마왕, 발매 후 엄청난 판매량을 달성하며 큰 인기를 끌게 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별다른 특이점이 있진 않았다.
타고난 속성에 따라 마법을 쓸 수 있는 세계, 잘생긴데다 사교성까지 좋은 리얼충 주인공은 모든 이에게 숭배를 받는 빛의 속성 마법사이다.
그렇게 마법학교에 입학한 주인공에게 몰려드는 여러 명의 히로인들. 불, 물, 바람, 땅, 식물의 속성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지닌 그녀들을 공략해 사랑을 나누며 마왕을 저지해 세계의 멸망을 막아낸다는 진부하고도 단순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으나 이 게임의 인기 요소는 각각의 히로인과 연애를 하게 되는 과정과 인물들의 서사였으니….
쿠로사와 유이치는 누구보다 리얼충의 면모를 지닌 남자였다. 훤칠하고 멋진 외모,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직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모든 이에게 친절하다.
그는 연애를 하기 위해 노력한 적 또한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레 다가오는 수많은 이성들, 지덕체에 미와 부까지 두루 갖춘 쿠로사와는 연애 시장에서 본인이 선택받길 바라는 위치가 아니었다.
골라서 만날 수 있는, 선택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웃사이더의 길을 선택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멋대로 착각하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해 주는 것엔 질렸고, 충분히 상처받았다.
쿠로사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 그와 짧은 만남을 가졌던 지난 연애 상대들에게 있어서 그는 트로피 같은 존재였을 뿐, 잘생기고 능력 좋은. 보기에도 좋고, 사귄다는 것만으로도 남의 부러움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런 정도.
그러나 쿠로사와는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지독한 짝사랑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의미 없는 만남을 모두 그만두었고, 닿을 수 없는 거리에 홀로 슬퍼하다가도 때로는 허무맹랑한 망상을 하며 웃음짓기도 했다.
그 상대가 터무니없이 높은 위치라서, 또는 연예인이나 그런 사람이라서 닿을 수 없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그의 짝사랑 상대는 게임 속의 캐릭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며 데이터로 이루어진 결과물에 불과했다.
그 캐릭터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체리마왕’, 그 게임 속에 등장하는 최종 빌런이자 주인공의 안티테제. 마왕이 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남자 ‘아다치 키요시’였다.
쿠로사와가 아다치 키요시에게 푹 빠져들게 된 것은 바야흐로 7년 전, 연애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던 쿠로사와를 놀리기 위해 질 나쁜 장난으로 게임에서나 연애하라며 ‘체리마왕’을 선물한 친누나에 의해서였다.
게임에도, 애니메이션에도 달리 흥미가 없었던 쿠로사와는 누나의 장난에 짜증이나 좀 내다가 아무렇게나 게임을 처박아 두고 방치해 버렸으나 그것을 서서히 잊어갈 때쯤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인해 플레이를 시작했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모두에게 기대를 받았던 것과는 달리 처음으로 불려간 접대 자리에서 얼굴마담으로서의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회사에 민폐를 끼쳐 버리고 말았던 날, 술기운까지 겹쳐 상당히 우울해져 있던 쿠로사와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짓을 해 버렸다.
이 게임의 주인공이 그렇게나 팔자가 좋다는데.
괴로운 기억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던 ‘체리마왕’을 꺼내 처음으로 플레이를 시작하자 별다른 사연도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주인공의 하렘 마법학교 라이프가 펼쳐지게 되었다.
그냥 똥겜이잖아? 이딴 게 무슨 인기가 있다는 거야…. 별생각 없이 아무나 걸리라는 심정으로 성의없이 선택지를 골라가며 히로인을 상대하던 쿠로사와, 그런 그의 시야에 들어온 존재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아다치 키요시, 마법을 다루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어둠 속성을 갖고 태어난 어둠의 마법사이다.
장남이지만 어둠의 마법사인 탓에 가족에게도 애정을 받지 못하는 신세에 기질도 소심해서 언제나 고독한 입장이다.
왠지 사악할 것 같은 이미지지만 의외로 후반부에 마왕이 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얌전하고 순한 성격의 캐릭터.
그러나 그의 특기 마법은 바로 저주, 독, 그리고 각종 마물과 귀신을 자유자재로 불러내고 다루는 강령술까지 하나같이 음침하고 파괴적인 것들이었으니….
뭐, 본인이 좋아서 이런 마법만 배운 건 아닌 것 같다만 설정상 어둠 속성의 흑마법이 대개 이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듯했다. 이러니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마저 기피하며 시한폭탄 취급에 히로인들도 대부분 얘를 싫어한다는 모양. 그런 탓에 사랑받지 못하는 본인의 처지를 비관해 흑화해서 마지막에는 주인공과 대립하는 마왕이 된다.
그러니까 반전 요소와 최종 악역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그런 사연 있는 빌런 캐릭터였다.
그런 빌런 캐릭터, 그것도 남자 캐릭터가 7년이나 쿠로사와의 최애로서 사랑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별생각없이 지루하게 플레이를 하고 있던 쿠로사와는 게임의 흐름에 따라 아다치와도 대화를 하게 되었다.
체리마왕의 주인공은 언제나 일이 잘 풀린다. 쉽게 주목받고, 쉽게 호감을 얻으며 쉽게 인기를 얻는 녀석. 그랬던 주인공이 다루기 힘든 빛의 마법의 난이도에 좌절하는 구간이 있다.
마물을 상대하던 결정적인 순간에 마법이 찐빠가 나 상처를 입은 주인공이 홀로 화원에서 우울을 달래려고 할 때, 그곳에는 이미 아다치가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라, 너는…. 아다치 키요시?]
[… 아, 주인공군이구나.]
[대화를 해 보는 건 처음인가. 여기는 웬일이야?]
[그게, 그냥… 여기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헤어 컬러부터 총천연색으로 아주 염병지랄을 하는 체리마왕의 등장인물들에 비해 아다치의 캐릭터 디자인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어둠을 상징히는 건지 검은 머리라는 점만 빼면 평범한 헤어 스타일, 교복은 언제나 단정하게, 언제나 무표정. 나쁘게 말하면 성의가 없는 디자인.
이때까지만 해도 쿠로사외는 아다치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인기 없어 보이는 녀석의 교과서.’라며 가차없는 평가를 내렸을뿐.
둘의 짤막한 스몰토크가 지나가고 나면 주인공이 아다치에게 뜬금없는 고민 상담을 시작한다.
[나 말이야, 사실은 아다치가 부러웠어.]
[… 내가? 어째서?]
[실은… 지금의 기대가 부담스럽게 느껴졌거든. 내가 빛의 마법사라서 필요 이상의 대우를 받는 것도, 모두들 외적인 것만 보고 판단해서 멋대로 호감을 가지는 것도. 난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말이야.]
[아, 응….]
[아다치군은 이런 관심 같은 건 받아 본 적 없으려나? 정말 자유로워 보여서… 부러워. 나는 언제나 모두의 기대를 충족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
[……]
다른 건 몰라도 주인공은 미친 새끼가 확실했다.
모두에게 대우받는 능력을 타고나 여러 인기 요소를 갖춘 주제에 자신과 완벽히 반대 입장에 놓여 있는 왕따에게 가서 배부른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다….
물론 쿠로사와 또한 주인공의 대사에 공감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어느 정도 비슷한 입장이고, 오늘만 해도 그런 부담에 지쳐 평소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이 게임을 하게 되었으니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런 인성 터진 주인공의 대사에 아다치도 어이가 없는 건지 그늘진 표정과 함께 대답이 없었고, 이것을 지켜보던 쿠로사와는 생각했다.
저 녀석이 마왕이 돼서 날벼락을 날려도 ‘주인공은 올 것이 왔구나’하며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아다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 상황에서는 아다치가 주인공의 멱살을 잡고 한 대 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 그렇지 않아.]
[응?]
[주인공군이 나약하다거나… 그렇게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니까.
엄청 열심히 노력했잖아. 마법도, 전투도. 마물에 대한 약점이나 특징도 엄청나게 리서치해서 전부 외우고 있지.
어둠의 마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반 애들에게 해 준 일도 있었고,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야. 주인공군은.]
아다치의 대사가 한 줄씩 띄워질 때마다 쿠로사와의 머릿속이 멍해지고 있었다.
마치 화면 너머 쿠로사와에게 전해 주는 것처럼, 그렇게 위로하고 있는 아다치를 넋을 놓고 바라보던 쿠로사와는 접대를 위해 거래처 사장의 리서치를 하며 자료를 준비하고 외우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화면 속의 아다치가 처음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무나도 상냥한 그런 미소.
[뭐야, 비웃는 거야?]
[아니, 아니야. 뭔가… 주인공군의 약한 모습이라고 할까…. 신선해서. 항상 완벽하다는 이미지였으니까.]
[… 그런가.]
[좀 더 쉬어.]
중반부까지 빛의 마법을 잘 다루지 못하는 주인공과 다르게 아다치는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타박상에 찰과상을 달고 있는 주인공에게 조심스레 손을 뻗은 아다치, 그가 주인공의 어깨에 어색하게 손을 얹고 눈을 감자 어두운 오오라가 주인공의 전신을 감싼다.
아다치가 행한 것은 어둠 속성의 치유 마법. 그러나 빛의 치유 마법과는 근본이 다른 구조라 타인의 상처를 낫게 하는 대신 반드시 대가가 따랐다.
주인공의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과는 달리 아다치의 몸에는 주인공이 입었던 상처가 군데군데 생겨나 있다. 타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법을 사용하는 본인의 생명력을 까야만 하는 치명적인 단점. 이게 흑마법의 무서운 점이다.
깨끗했던 얼굴에 이런저런 생채기를 달고서는 부드럽게 웃어 주는 아다치를 마주하던 주인공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마주 웃으며 대답한다.
[고마워, 아다치! 흑마법도 도움이 되는구나!]
그리고 그는 그대로 떠나 버렸다….
유일한 희망을 짊어졌다는 주인공이 저딴 새끼라니, 어쩌면 저쪽 세계의 멸망은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끝까지 인성질을 하다가 떠나 버리는 주인공 대신 쿠로사와는 그의 뒤편에서 배경과 합쳐져 블러 처리가 되어 있는 아다치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아다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었다면 저 싸가지 없는 주인공에게 좋은 말 따윈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실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쿠로사와의 무거운 부담, 그리고 내면의 페르소나. 그 깊은 곳의 상처까지 아다치가 어루만지고, 가져가서 자신이 짊어져 준 것같이 느껴졌다.
결국 쿠로사와는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했다.
공략에 성공한 히로인도 없었을뿐더러,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아다치는 뜬금없이 치한으로 몰리더니 퇴학 처분을 받고는 내내 자취를 감춰 버린다.
물론 아다치가 휘말린 치한 사건이 오해라는 게 곧 밝혀지기는 한다. 그러나 게임 속의 인물들은 존나게 쿨했다.
이미 사라진 놈은 뒤돌아 보지도 않고 “어차피 쟨 위험했으니까!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하며 짝짝꿍, 그 시점에서 컨트롤러를 쥔 쿠로사와의 손등에는 굵은 핏대가 솟아 있었다.
니들이 뭔데? 대체 아다치가 뭘 잘못했는데?
그렇게 졸업 후 10년이 지나 30살을 맞은 주인공은 게임 내 히로인들과 좋은 친구 사이가 되어 잘 사는 듯 보였으나….
마왕의 부활로 인해 세계 평화는 깨지고, 빛의 마법사인 주인공은 히로인들과 함께 마왕 토벌에 나선다.
마왕의 정체는 어둠의 마법에 집어삼켜져 흑화해 버린 아다치, 언제나 고독했던 그는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고 세계를 멸망시킬 존재가 되었다.
주인공은 그래도 선역이랍시고 아다치를 회유하고자 노력하기는 했다. 히로인들과 함께.
[아다치! 난 네가 불쌍해. 넌 사랑을 모르니까!]
[그래, 아다치군! 미움받는 게 괴로운 건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면 안 돼!]
[네가 치한이 아니라는 건 밝혀졌어! 그러니까 화내지 마!]
[……]
우와, 저 개새끼들… 진짜 제정신인가?
쿠로사와가 황당할 정도로 어이없는 대사들. 아다치도 이번엔 상당히 빡쳤는지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어 보였고, 그 시점에서 쿠로사와는 컨트롤러를 놓고 멍하니 게임 속 화면을 구경했다.
원래대로라면 주인공인 플레이어가 히로인들과 함께 아다치와 싸워 5:1 다구리를 쳐서 이기고, 패배한 아다치는 모든 마법의 힘을 잃은 채 주인공에 의해 짐짝마냥 연행되어 세계 평화를 위협한 마왕이라며 참수를 당한다. 아무리 악당으로 설정된 캐릭터라지만 이렇게까지 억까를 해야만 하나.
그러나 쿠로사와가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질 않으니 주인공 파티는 그야말로 비 오는 날 먼지 나듯이 아다치에게 줘터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흑마법과 더불어 우두커니 서 있는 주인공에게 달려가 분노의 핵꿀밤을 날리더니 마법으로 히로인이고 뭐고 평등하게 전부 조져 버리는 아다치, 그를 보는 쿠로사와의 얼굴엔 흐뭇한 웃음이 걸렸다.
그래, 아다치! 잘한다! 원하는만큼 실컷 패 버려!
그렇게 쿠로사와는 게임 클리어에 실패했고, 세계는 마왕으로 흑화한 아다치에 의해 멸망해 버리고 말았지만 그것이 아쉽진 않았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지.
그날, 쿠로사와는 잠드는 시간을 미뤄가면서 인터넷으로 아다치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공식 설정집, SNS에서 돌아다니는 비하인드 설정, 그에 대한 여담이나 자신과 같은 아다치 팬들의 2차 창작물까지 탐닉하며 아다치라는 캐릭터에 깊게 빠져들어갔다.
그렇게 차원을 뛰어넘는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아다치 덕질로 하루하루를 보낸 지가 몇 년째.
좀 꼴사납긴 하지만 쿠로사와는 아다치를 덕질하며 울었던 적도 있었다. 안 그래도 인생 자체가 억까에 부조리함 그 자체인데, 어째 살아남는 엔딩조차 없다….
기껏 아다치의 친밀도를 올려 친구로라도 지내려고 했더니만 그 엔딩에선 마왕이 되어 미안하다며 스스로 자살.
아다치와의 전투를 피하고 안 싸우는 루트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히로인이 아다치의 뒤통수를 까서 죽인다.
던전을 돌 때마다 아다치가 싫다는 히로인의 반응을 무시하고 파티에 꾸역꾸역 아다치의 캐릭터를 넣어서 어울려 다니기도 했었다. 검사인 주인공의 뒤에서 착실하게 딜을 넣고 버프를 걸어 주는 아다치,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히로인들이 끼어들어 자꾸 아다치를 갈구는 게 짜증 나지만 참았다.
그런데 매번 히로인들에게 무호흡 딜링을 쳐맞고 매도당하는 게 더럽고 서러웠는지 아다치가 어느 순간부터 파티 초대를 거절하더니 자살해 버린다.
어떤 루트에선 아다치를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여자애, 도S에 얀데레다….
아다치에게 고백을 하긴 하는데, “아다치군이 더 불행해졌으면 좋겠어….”라는 정신나간 소리를 하며 시종일관 데이트폭력에 가스라이팅을 해대며 괴롭힌다.
이 경우에는 여자애가 아다치를 부추겨 마왕으로 만들지만 주인공과의 친밀도가 높으면 아다치가 끝까지 거부한다. 그리고 아다치는 화가 난 여자애에게 “마왕이 되지 않는 아다치군은 멋지지 않아!!” 라는 대사를 들으며 살해당한다.
그 외에도 주인공과 친밀도가 최악으로 치닫으면 마왕이 되어 싸우고 패배했을 때, 주인공에게 주먹으로 얻어맞고 죽기도 하고 사형을 면해 국외 추방으로 끝나도 암살을 당한다.
그러니까, 해피 앤딩이든 배드 앤딩이든 아다치는 죽는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무조건 파멸이 예정된 운명, 그의 미래에 희망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나 아다치가 죽지 않는 히든 엔딩이나 공략 루트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수없이 반복해서 게임을 플레이했지만 슬프게도 그런 미래는 없었다.
특히나 마왕이 된 아다치를 돌려놓기 위해 제 손으로 직접 아다치를 패야 했던 후반부 전투 모드에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까지 느껴야 했으니… 한두 대 때려 보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컨트롤러를 던졌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손으로 짝사랑하는 상대를 패야 한다니, 어떻게 이런 가혹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아다치는 게임 내에서 아예 공략이 불가능한 캐릭터다. 애초애 남성향 하렘물인 만큼 BL 요소를 넣어놨을 리가 없으니.
하지만 쿠로사와는 남자라고 해서 BL을 싫어할 거란 편견을 가진 제작진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난 아다치와 사랑을 하고 싶다고! 이토록 사랑스럽고 착한 존재가 억까에 휘말려 악당으로 타락한다니, 그럼에도 구원해 줄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커다란 한이었다.
내가,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아다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오늘도 쿠로사와는 출근길과 퇴근길에 아다치의 테마 OST를 들으며 게임 내 그가 등장하는 모든 씬을 회상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퇴근 후에는 자신과 같은 아다치의 팬들이 그의 행복을 바라며 만들어낸 2차 창작물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의 사진 앱과 배경화면 또한 모두 아다치.
그리고 꿈 속에서는 아다치를 품에 안고 그의 환한 웃음을 보며 행복하게 사랑을 나누었다.
언제까지고 똑같이 반복되는 덕질이지만 쿠로사와는 그것들이 매번 새롭고 재미나게 느껴졌다. 아다치라는 존재 자체가 쿠로사와의 삶을 굴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으니까.
그랬던 쿠로사와의 삶은 갑작스럽고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퇴근해서 아다치 덕질을 할 생각만 가득하던 쿠로사와, 졸음운전으로 인해 방향을 잃은 트럭이 자신을 향해 돌진하던 그 순간에도 그의 머릿속엔 아다치만이 떠올랐다.
그렇게 트럭에 치여 생을 마감하기 전, 쿠로사와는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아다치와 만나고 싶다고.
그와 만나서 자신이 먼저 다가가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자신이 상상한 모든 사랑을 주고 싶다고. 그렇게 염원했다.
***
“…로사와! 괜찮아?“
너무나도 청명하고 푸른 하늘, 그것이 천천히 눈을 뜬 쿠로사와의 시야를 가득 채워왔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귓전을 때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어쩐지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기분, 천천히 몸을 일으킨 쿠로사와 멍한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색 머리와 크고 동글동글한 눈을 가진 상처 투성이의 남학생, 그리고 분홍색, 밝은 갈색, 파란색, 녹색, 은색의 다양한 헤어컬러를 자랑하는 예쁜 여학생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들은 분명…. 내가 알고 있던 그들이 맞는 건가? 어리둥절해진 쿠로사와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자 분홍색 장발의 여학생이 검은 머리의 남학생에게 날카로운 질타를 날리기 시작했다.
“아다치! 제대로 치유 마법을 쓴 거 확실해?”
“아, 그게… 분명 치유를 했는데….”
“쿠로사와군이 다치기 전에 막았어야지. 너란 애는 정말….“
미안해…. 시무룩한 얼굴로 사과를 중얼거리는 남학생, 그를 보는 쿠로사와는 자신도 모르게 허벅지를 꼬집었다.
존나 아프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체리마왕의 게임 속 세상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들은 분명 체리마왕의 등장인물임이 확실했다.
분홍색 머리의 불 속성 마법사 하나비, 파란색 머리의 물 속성 마법사 미즈키, 은색 머리의 바람 속성 마법사 후우라, 밝은 갈색 머리는 땅 속성 마법사 토모에, 녹색 머리는 식물의 마법사 키노코다.
그리고 제 옆에서 시무룩한 얼굴을 한 검은 머리 남학생은 분명히 ‘아다치’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 아다치?”
“어? 응. 쿠로사와, 다친 곳은 어때? 괜찮아?”
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아다치 키요시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는 거지?
얼굴에 이런저런 생채기를 단 아다치는 걱정스레 쿠로사와의 상태를 살피며 걱정을 해 왔지만 우습게도 쿠로사와 스스로 살피기에 자신에겐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히로인들의 대화로 미루어보아 던전을 탐험하다 선두에 섰던 쿠로사와가 다쳤고, 그렇게 의식을 잃은 그를 아다치가 옮겨다가 치유 마법으로 회복시킨 모양.
그래서 아다치의 꼴이 엉망이었던 건가….
히로인들이 쿠로사와의 주위에 모여 왁자지껄 떠드는 동안, 아다치는 묵묵하게 근처에서 상처 투성이 모습으로 쿠로사와를 조심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쿠로사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신을 바라보는 아다치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자신을 올려다보는 순수한 눈망울, 여기저기 상처 입은 모습이 쿠로사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그저 올려다볼 뿐인 아다치에게 먼저 손을 내민 쿠로사와, 아다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쿠로사와를 바라본다.
그는 쿠로사와가 알던 아다치 키요시가 확실했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도 고마움을 받을 줄도 모르는, 그런 맹하고 순진한 면을 가진 사랑스러운 캐릭터.
“아다치,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다쳤구나. 정말 미안해. 내가 제대로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이런 일을 겪게 만들었네.”
“… 쿠로사와? 어째서 사과를… 나는 괜찮아! 지금도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고.”
그제서야 아다치는 조심스럽게 쿠로사와의 손을 맞잡아 온다. 예상 밖의 전개에 당황한 히로인들, 그녀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쿠로사와는 눈앞의 아다치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멀쩡하다고는 했지만 아프기는 한 건지 “윽-” 하며 살짝 휘청이는 아다치, 쿠로사와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그를 붙잡아 품에 껴안았다.
나도 모르게… 저질러 버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아다치를 껴안은 팔은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다. 난데없이 그에게 안긴 아다치 역시도 당황했는지 뻣뻣하게 굳은 상태, 하지만 쿠로사와는 그를 더욱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자꾸만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쓰는 중이었다.
어쨌든 쿠로사와는 현실에서 죽음을 맞고 게임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혼자였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했겠지만 아다치가 자신을 구하고 대신 상처를 입었다는데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이유는 나중에 생각해도 괜찮다. 지금은 꿈에 그리던 자신의 짝사랑 상대, 최애와의 첫만남을 오롯이 만끽할 뿐.
“… 정말 고마워. 언제나 너에게 감사하고 있어.“
”쿠로사와….“
자신의 내면을 어루만져 준 그 상냥함,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던 그에게 늘 전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미래를 바꾸고 싶었다. 아낌없는 사랑과 애정을 주어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지금의 주인공은 쿠로사와 유이치, 그가 만들어 나갈 엔딩이 어떤 형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아다치에게 다가올 비참한 최후를 막고,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으니까
마치아카 쿠로아다 동정마법
로맨스판타지 게임, ‘30살까지 동정이면 마왕이 된대’.
줄여서 체리마왕, 발매 후 엄청난 판매량을 달성하며 큰 인기를 끌게 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별다른 특이점이 있진 않았다.
타고난 속성에 따라 마법을 쓸 수 있는 세계, 잘생긴데다 사교성까지 좋은 리얼충 주인공은 모든 이에게 숭배를 받는 빛의 속성 마법사이다.
그렇게 마법학교에 입학한 주인공에게 몰려드는 여러 명의 히로인들. 불, 물, 바람, 땅, 식물의 속성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지닌 그녀들을 공략해 사랑을 나누며 마왕을 저지해 세계의 멸망을 막아낸다는 진부하고도 단순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으나 이 게임의 인기 요소는 각각의 히로인과 연애를 하게 되는 과정과 인물들의 서사였으니….
쿠로사와 유이치는 누구보다 리얼충의 면모를 지닌 남자였다. 훤칠하고 멋진 외모,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직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모든 이에게 친절하다.
그는 연애를 하기 위해 노력한 적 또한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레 다가오는 수많은 이성들, 지덕체에 미와 부까지 두루 갖춘 쿠로사와는 연애 시장에서 본인이 선택받길 바라는 위치가 아니었다.
골라서 만날 수 있는, 선택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웃사이더의 길을 선택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멋대로 착각하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해 주는 것엔 질렸고, 충분히 상처받았다.
쿠로사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 그와 짧은 만남을 가졌던 지난 연애 상대들에게 있어서 그는 트로피 같은 존재였을 뿐, 잘생기고 능력 좋은. 보기에도 좋고, 사귄다는 것만으로도 남의 부러움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런 정도.
그러나 쿠로사와는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지독한 짝사랑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의미 없는 만남을 모두 그만두었고, 닿을 수 없는 거리에 홀로 슬퍼하다가도 때로는 허무맹랑한 망상을 하며 웃음짓기도 했다.
그 상대가 터무니없이 높은 위치라서, 또는 연예인이나 그런 사람이라서 닿을 수 없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그의 짝사랑 상대는 게임 속의 캐릭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며 데이터로 이루어진 결과물에 불과했다.
그 캐릭터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체리마왕’, 그 게임 속에 등장하는 최종 빌런이자 주인공의 안티테제. 마왕이 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남자 ‘아다치 키요시’였다.
쿠로사와가 아다치 키요시에게 푹 빠져들게 된 것은 바야흐로 7년 전, 연애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던 쿠로사와를 놀리기 위해 질 나쁜 장난으로 게임에서나 연애하라며 ‘체리마왕’을 선물한 친누나에 의해서였다.
게임에도, 애니메이션에도 달리 흥미가 없었던 쿠로사와는 누나의 장난에 짜증이나 좀 내다가 아무렇게나 게임을 처박아 두고 방치해 버렸으나 그것을 서서히 잊어갈 때쯤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인해 플레이를 시작했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모두에게 기대를 받았던 것과는 달리 처음으로 불려간 접대 자리에서 얼굴마담으로서의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회사에 민폐를 끼쳐 버리고 말았던 날, 술기운까지 겹쳐 상당히 우울해져 있던 쿠로사와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짓을 해 버렸다.
이 게임의 주인공이 그렇게나 팔자가 좋다는데.
괴로운 기억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던 ‘체리마왕’을 꺼내 처음으로 플레이를 시작하자 별다른 사연도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주인공의 하렘 마법학교 라이프가 펼쳐지게 되었다.
그냥 똥겜이잖아? 이딴 게 무슨 인기가 있다는 거야…. 별생각 없이 아무나 걸리라는 심정으로 성의없이 선택지를 골라가며 히로인을 상대하던 쿠로사와, 그런 그의 시야에 들어온 존재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아다치 키요시, 마법을 다루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어둠 속성을 갖고 태어난 어둠의 마법사이다.
장남이지만 어둠의 마법사인 탓에 가족에게도 애정을 받지 못하는 신세에 기질도 소심해서 언제나 고독한 입장이다.
왠지 사악할 것 같은 이미지지만 의외로 후반부에 마왕이 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얌전하고 순한 성격의 캐릭터.
그러나 그의 특기 마법은 바로 저주, 독, 그리고 각종 마물과 귀신을 자유자재로 불러내고 다루는 강령술까지 하나같이 음침하고 파괴적인 것들이었으니….
뭐, 본인이 좋아서 이런 마법만 배운 건 아닌 것 같다만 설정상 어둠 속성의 흑마법이 대개 이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듯했다. 이러니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마저 기피하며 시한폭탄 취급에 히로인들도 대부분 얘를 싫어한다는 모양. 그런 탓에 사랑받지 못하는 본인의 처지를 비관해 흑화해서 마지막에는 주인공과 대립하는 마왕이 된다.
그러니까 반전 요소와 최종 악역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그런 사연 있는 빌런 캐릭터였다.
그런 빌런 캐릭터, 그것도 남자 캐릭터가 7년이나 쿠로사와의 최애로서 사랑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별생각없이 지루하게 플레이를 하고 있던 쿠로사와는 게임의 흐름에 따라 아다치와도 대화를 하게 되었다.
체리마왕의 주인공은 언제나 일이 잘 풀린다. 쉽게 주목받고, 쉽게 호감을 얻으며 쉽게 인기를 얻는 녀석. 그랬던 주인공이 다루기 힘든 빛의 마법의 난이도에 좌절하는 구간이 있다.
마물을 상대하던 결정적인 순간에 마법이 찐빠가 나 상처를 입은 주인공이 홀로 화원에서 우울을 달래려고 할 때, 그곳에는 이미 아다치가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라, 너는…. 아다치 키요시?]
[… 아, 주인공군이구나.]
[대화를 해 보는 건 처음인가. 여기는 웬일이야?]
[그게, 그냥… 여기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헤어 컬러부터 총천연색으로 아주 염병지랄을 하는 체리마왕의 등장인물들에 비해 아다치의 캐릭터 디자인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어둠을 상징히는 건지 검은 머리라는 점만 빼면 평범한 헤어 스타일, 교복은 언제나 단정하게, 언제나 무표정. 나쁘게 말하면 성의가 없는 디자인.
이때까지만 해도 쿠로사외는 아다치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인기 없어 보이는 녀석의 교과서.’라며 가차없는 평가를 내렸을뿐.
둘의 짤막한 스몰토크가 지나가고 나면 주인공이 아다치에게 뜬금없는 고민 상담을 시작한다.
[나 말이야, 사실은 아다치가 부러웠어.]
[… 내가? 어째서?]
[실은… 지금의 기대가 부담스럽게 느껴졌거든. 내가 빛의 마법사라서 필요 이상의 대우를 받는 것도, 모두들 외적인 것만 보고 판단해서 멋대로 호감을 가지는 것도. 난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말이야.]
[아, 응….]
[아다치군은 이런 관심 같은 건 받아 본 적 없으려나? 정말 자유로워 보여서… 부러워. 나는 언제나 모두의 기대를 충족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
[……]
다른 건 몰라도 주인공은 미친 새끼가 확실했다.
모두에게 대우받는 능력을 타고나 여러 인기 요소를 갖춘 주제에 자신과 완벽히 반대 입장에 놓여 있는 왕따에게 가서 배부른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다….
물론 쿠로사와 또한 주인공의 대사에 공감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어느 정도 비슷한 입장이고, 오늘만 해도 그런 부담에 지쳐 평소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이 게임을 하게 되었으니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런 인성 터진 주인공의 대사에 아다치도 어이가 없는 건지 그늘진 표정과 함께 대답이 없었고, 이것을 지켜보던 쿠로사와는 생각했다.
저 녀석이 마왕이 돼서 날벼락을 날려도 ‘주인공은 올 것이 왔구나’하며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아다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 상황에서는 아다치가 주인공의 멱살을 잡고 한 대 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 그렇지 않아.]
[응?]
[주인공군이 나약하다거나… 그렇게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니까.
엄청 열심히 노력했잖아. 마법도, 전투도. 마물에 대한 약점이나 특징도 엄청나게 리서치해서 전부 외우고 있지.
어둠의 마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반 애들에게 해 준 일도 있었고,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야. 주인공군은.]
아다치의 대사가 한 줄씩 띄워질 때마다 쿠로사와의 머릿속이 멍해지고 있었다.
마치 화면 너머 쿠로사와에게 전해 주는 것처럼, 그렇게 위로하고 있는 아다치를 넋을 놓고 바라보던 쿠로사와는 접대를 위해 거래처 사장의 리서치를 하며 자료를 준비하고 외우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화면 속의 아다치가 처음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무나도 상냥한 그런 미소.
[뭐야, 비웃는 거야?]
[아니, 아니야. 뭔가… 주인공군의 약한 모습이라고 할까…. 신선해서. 항상 완벽하다는 이미지였으니까.]
[… 그런가.]
[좀 더 쉬어.]
중반부까지 빛의 마법을 잘 다루지 못하는 주인공과 다르게 아다치는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타박상에 찰과상을 달고 있는 주인공에게 조심스레 손을 뻗은 아다치, 그가 주인공의 어깨에 어색하게 손을 얹고 눈을 감자 어두운 오오라가 주인공의 전신을 감싼다.
아다치가 행한 것은 어둠 속성의 치유 마법. 그러나 빛의 치유 마법과는 근본이 다른 구조라 타인의 상처를 낫게 하는 대신 반드시 대가가 따랐다.
주인공의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과는 달리 아다치의 몸에는 주인공이 입었던 상처가 군데군데 생겨나 있다. 타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법을 사용하는 본인의 생명력을 까야만 하는 치명적인 단점. 이게 흑마법의 무서운 점이다.
깨끗했던 얼굴에 이런저런 생채기를 달고서는 부드럽게 웃어 주는 아다치를 마주하던 주인공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마주 웃으며 대답한다.
[고마워, 아다치! 흑마법도 도움이 되는구나!]
그리고 그는 그대로 떠나 버렸다….
유일한 희망을 짊어졌다는 주인공이 저딴 새끼라니, 어쩌면 저쪽 세계의 멸망은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끝까지 인성질을 하다가 떠나 버리는 주인공 대신 쿠로사와는 그의 뒤편에서 배경과 합쳐져 블러 처리가 되어 있는 아다치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아다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었다면 저 싸가지 없는 주인공에게 좋은 말 따윈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실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쿠로사와의 무거운 부담, 그리고 내면의 페르소나. 그 깊은 곳의 상처까지 아다치가 어루만지고, 가져가서 자신이 짊어져 준 것같이 느껴졌다.
결국 쿠로사와는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했다.
공략에 성공한 히로인도 없었을뿐더러,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아다치는 뜬금없이 치한으로 몰리더니 퇴학 처분을 받고는 내내 자취를 감춰 버린다.
물론 아다치가 휘말린 치한 사건이 오해라는 게 곧 밝혀지기는 한다. 그러나 게임 속의 인물들은 존나게 쿨했다.
이미 사라진 놈은 뒤돌아 보지도 않고 “어차피 쟨 위험했으니까!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하며 짝짝꿍, 그 시점에서 컨트롤러를 쥔 쿠로사와의 손등에는 굵은 핏대가 솟아 있었다.
니들이 뭔데? 대체 아다치가 뭘 잘못했는데?
그렇게 졸업 후 10년이 지나 30살을 맞은 주인공은 게임 내 히로인들과 좋은 친구 사이가 되어 잘 사는 듯 보였으나….
마왕의 부활로 인해 세계 평화는 깨지고, 빛의 마법사인 주인공은 히로인들과 함께 마왕 토벌에 나선다.
마왕의 정체는 어둠의 마법에 집어삼켜져 흑화해 버린 아다치, 언제나 고독했던 그는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고 세계를 멸망시킬 존재가 되었다.
주인공은 그래도 선역이랍시고 아다치를 회유하고자 노력하기는 했다. 히로인들과 함께.
[아다치! 난 네가 불쌍해. 넌 사랑을 모르니까!]
[그래, 아다치군! 미움받는 게 괴로운 건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면 안 돼!]
[네가 치한이 아니라는 건 밝혀졌어! 그러니까 화내지 마!]
[……]
우와, 저 개새끼들… 진짜 제정신인가?
쿠로사와가 황당할 정도로 어이없는 대사들. 아다치도 이번엔 상당히 빡쳤는지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어 보였고, 그 시점에서 쿠로사와는 컨트롤러를 놓고 멍하니 게임 속 화면을 구경했다.
원래대로라면 주인공인 플레이어가 히로인들과 함께 아다치와 싸워 5:1 다구리를 쳐서 이기고, 패배한 아다치는 모든 마법의 힘을 잃은 채 주인공에 의해 짐짝마냥 연행되어 세계 평화를 위협한 마왕이라며 참수를 당한다. 아무리 악당으로 설정된 캐릭터라지만 이렇게까지 억까를 해야만 하나.
그러나 쿠로사와가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질 않으니 주인공 파티는 그야말로 비 오는 날 먼지 나듯이 아다치에게 줘터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흑마법과 더불어 우두커니 서 있는 주인공에게 달려가 분노의 핵꿀밤을 날리더니 마법으로 히로인이고 뭐고 평등하게 전부 조져 버리는 아다치, 그를 보는 쿠로사와의 얼굴엔 흐뭇한 웃음이 걸렸다.
그래, 아다치! 잘한다! 원하는만큼 실컷 패 버려!
그렇게 쿠로사와는 게임 클리어에 실패했고, 세계는 마왕으로 흑화한 아다치에 의해 멸망해 버리고 말았지만 그것이 아쉽진 않았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지.
그날, 쿠로사와는 잠드는 시간을 미뤄가면서 인터넷으로 아다치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공식 설정집, SNS에서 돌아다니는 비하인드 설정, 그에 대한 여담이나 자신과 같은 아다치 팬들의 2차 창작물까지 탐닉하며 아다치라는 캐릭터에 깊게 빠져들어갔다.
그렇게 차원을 뛰어넘는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아다치 덕질로 하루하루를 보낸 지가 몇 년째.
좀 꼴사납긴 하지만 쿠로사와는 아다치를 덕질하며 울었던 적도 있었다. 안 그래도 인생 자체가 억까에 부조리함 그 자체인데, 어째 살아남는 엔딩조차 없다….
기껏 아다치의 친밀도를 올려 친구로라도 지내려고 했더니만 그 엔딩에선 마왕이 되어 미안하다며 스스로 자살.
아다치와의 전투를 피하고 안 싸우는 루트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히로인이 아다치의 뒤통수를 까서 죽인다.
던전을 돌 때마다 아다치가 싫다는 히로인의 반응을 무시하고 파티에 꾸역꾸역 아다치의 캐릭터를 넣어서 어울려 다니기도 했었다. 검사인 주인공의 뒤에서 착실하게 딜을 넣고 버프를 걸어 주는 아다치,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히로인들이 끼어들어 자꾸 아다치를 갈구는 게 짜증 나지만 참았다.
그런데 매번 히로인들에게 무호흡 딜링을 쳐맞고 매도당하는 게 더럽고 서러웠는지 아다치가 어느 순간부터 파티 초대를 거절하더니 자살해 버린다.
어떤 루트에선 아다치를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여자애, 도S에 얀데레다….
아다치에게 고백을 하긴 하는데, “아다치군이 더 불행해졌으면 좋겠어….”라는 정신나간 소리를 하며 시종일관 데이트폭력에 가스라이팅을 해대며 괴롭힌다.
이 경우에는 여자애가 아다치를 부추겨 마왕으로 만들지만 주인공과의 친밀도가 높으면 아다치가 끝까지 거부한다. 그리고 아다치는 화가 난 여자애에게 “마왕이 되지 않는 아다치군은 멋지지 않아!!” 라는 대사를 들으며 살해당한다.
그 외에도 주인공과 친밀도가 최악으로 치닫으면 마왕이 되어 싸우고 패배했을 때, 주인공에게 주먹으로 얻어맞고 죽기도 하고 사형을 면해 국외 추방으로 끝나도 암살을 당한다.
그러니까, 해피 앤딩이든 배드 앤딩이든 아다치는 죽는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무조건 파멸이 예정된 운명, 그의 미래에 희망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나 아다치가 죽지 않는 히든 엔딩이나 공략 루트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수없이 반복해서 게임을 플레이했지만 슬프게도 그런 미래는 없었다.
특히나 마왕이 된 아다치를 돌려놓기 위해 제 손으로 직접 아다치를 패야 했던 후반부 전투 모드에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까지 느껴야 했으니… 한두 대 때려 보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컨트롤러를 던졌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손으로 짝사랑하는 상대를 패야 한다니, 어떻게 이런 가혹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아다치는 게임 내에서 아예 공략이 불가능한 캐릭터다. 애초애 남성향 하렘물인 만큼 BL 요소를 넣어놨을 리가 없으니.
하지만 쿠로사와는 남자라고 해서 BL을 싫어할 거란 편견을 가진 제작진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난 아다치와 사랑을 하고 싶다고! 이토록 사랑스럽고 착한 존재가 억까에 휘말려 악당으로 타락한다니, 그럼에도 구원해 줄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커다란 한이었다.
내가,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아다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오늘도 쿠로사와는 출근길과 퇴근길에 아다치의 테마 OST를 들으며 게임 내 그가 등장하는 모든 씬을 회상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퇴근 후에는 자신과 같은 아다치의 팬들이 그의 행복을 바라며 만들어낸 2차 창작물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의 사진 앱과 배경화면 또한 모두 아다치.
그리고 꿈 속에서는 아다치를 품에 안고 그의 환한 웃음을 보며 행복하게 사랑을 나누었다.
언제까지고 똑같이 반복되는 덕질이지만 쿠로사와는 그것들이 매번 새롭고 재미나게 느껴졌다. 아다치라는 존재 자체가 쿠로사와의 삶을 굴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으니까.
그랬던 쿠로사와의 삶은 갑작스럽고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퇴근해서 아다치 덕질을 할 생각만 가득하던 쿠로사와, 졸음운전으로 인해 방향을 잃은 트럭이 자신을 향해 돌진하던 그 순간에도 그의 머릿속엔 아다치만이 떠올랐다.
그렇게 트럭에 치여 생을 마감하기 전, 쿠로사와는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아다치와 만나고 싶다고.
그와 만나서 자신이 먼저 다가가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자신이 상상한 모든 사랑을 주고 싶다고. 그렇게 염원했다.
***
“…로사와! 괜찮아?“
너무나도 청명하고 푸른 하늘, 그것이 천천히 눈을 뜬 쿠로사와의 시야를 가득 채워왔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귓전을 때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어쩐지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기분, 천천히 몸을 일으킨 쿠로사와 멍한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색 머리와 크고 동글동글한 눈을 가진 상처 투성이의 남학생, 그리고 분홍색, 밝은 갈색, 파란색, 녹색, 은색의 다양한 헤어컬러를 자랑하는 예쁜 여학생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들은 분명…. 내가 알고 있던 그들이 맞는 건가? 어리둥절해진 쿠로사와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자 분홍색 장발의 여학생이 검은 머리의 남학생에게 날카로운 질타를 날리기 시작했다.
“아다치! 제대로 치유 마법을 쓴 거 확실해?”
“아, 그게… 분명 치유를 했는데….”
“쿠로사와군이 다치기 전에 막았어야지. 너란 애는 정말….“
미안해…. 시무룩한 얼굴로 사과를 중얼거리는 남학생, 그를 보는 쿠로사와는 자신도 모르게 허벅지를 꼬집었다.
존나 아프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체리마왕의 게임 속 세상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들은 분명 체리마왕의 등장인물임이 확실했다.
분홍색 머리의 불 속성 마법사 하나비, 파란색 머리의 물 속성 마법사 미즈키, 은색 머리의 바람 속성 마법사 후우라, 밝은 갈색 머리는 땅 속성 마법사 토모에, 녹색 머리는 식물의 마법사 키노코다.
그리고 제 옆에서 시무룩한 얼굴을 한 검은 머리 남학생은 분명히 ‘아다치’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 아다치?”
“어? 응. 쿠로사와, 다친 곳은 어때? 괜찮아?”
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아다치 키요시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는 거지?
얼굴에 이런저런 생채기를 단 아다치는 걱정스레 쿠로사와의 상태를 살피며 걱정을 해 왔지만 우습게도 쿠로사와 스스로 살피기에 자신에겐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히로인들의 대화로 미루어보아 던전을 탐험하다 선두에 섰던 쿠로사와가 다쳤고, 그렇게 의식을 잃은 그를 아다치가 옮겨다가 치유 마법으로 회복시킨 모양.
그래서 아다치의 꼴이 엉망이었던 건가….
히로인들이 쿠로사와의 주위에 모여 왁자지껄 떠드는 동안, 아다치는 묵묵하게 근처에서 상처 투성이 모습으로 쿠로사와를 조심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쿠로사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신을 바라보는 아다치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자신을 올려다보는 순수한 눈망울, 여기저기 상처 입은 모습이 쿠로사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그저 올려다볼 뿐인 아다치에게 먼저 손을 내민 쿠로사와, 아다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쿠로사와를 바라본다.
그는 쿠로사와가 알던 아다치 키요시가 확실했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도 고마움을 받을 줄도 모르는, 그런 맹하고 순진한 면을 가진 사랑스러운 캐릭터.
“아다치,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다쳤구나. 정말 미안해. 내가 제대로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이런 일을 겪게 만들었네.”
“… 쿠로사와? 어째서 사과를… 나는 괜찮아! 지금도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고.”
그제서야 아다치는 조심스럽게 쿠로사와의 손을 맞잡아 온다. 예상 밖의 전개에 당황한 히로인들, 그녀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쿠로사와는 눈앞의 아다치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멀쩡하다고는 했지만 아프기는 한 건지 “윽-” 하며 살짝 휘청이는 아다치, 쿠로사와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그를 붙잡아 품에 껴안았다.
나도 모르게… 저질러 버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아다치를 껴안은 팔은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다. 난데없이 그에게 안긴 아다치 역시도 당황했는지 뻣뻣하게 굳은 상태, 하지만 쿠로사와는 그를 더욱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자꾸만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쓰는 중이었다.
어쨌든 쿠로사와는 현실에서 죽음을 맞고 게임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혼자였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했겠지만 아다치가 자신을 구하고 대신 상처를 입었다는데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이유는 나중에 생각해도 괜찮다. 지금은 꿈에 그리던 자신의 짝사랑 상대, 최애와의 첫만남을 오롯이 만끽할 뿐.
“… 정말 고마워. 언제나 너에게 감사하고 있어.“
”쿠로사와….“
자신의 내면을 어루만져 준 그 상냥함,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던 그에게 늘 전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미래를 바꾸고 싶었다. 아낌없는 사랑과 애정을 주어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지금의 주인공은 쿠로사와 유이치, 그가 만들어 나갈 엔딩이 어떤 형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아다치에게 다가올 비참한 최후를 막고,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으니까
마치아카 쿠로아다 동정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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