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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8 01:15
“일어나.”

낯익은 목소리에 이즈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거친 동작으로 몸을 일으키자 복부에서 통증이 밀려들어 다시 침대 위로 쓰러지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갔다. 그러자 단 한 번도 이 집에 온 적 없는 어떤 인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러게 왜 혼자 그러고 다녀요.”

이즈미는 제 눈을 의심했다. 혹시 하루타인가? 배에 입은 상처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져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네가.

“네, 맞아요. 아키토예요.”

여전히 건방진 말투로, 조금은 쑥스럽다는 듯,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하는 그 사람을 보고 이즈미의 눈은 거의 뽑혀나갈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이내 잠들기 전 꿈 속에서 아키토를 만났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러자 맥이 풀렸다. 그래, 이것도 꿈이겠지. 이즈미는 아키토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줄 알고 놀랐던 자신이 한심해서 쿡쿡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배가 아팠다. 며칠 괴롭겠군. 회사에는 또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하나. 고통을 참으려 이를 악 무는데 또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꿈 꾼다고 생각하죠? 일어나라고요.”

이즈미가 감고 있던 눈을 다시 떴을 때, 죽기 전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아키토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표정하고 퉁명스러운 얼굴이었다. 하루타라면 절대로 저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이즈미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키토가 자신의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도.

“기쁘지 않아요? 모처럼 살아 돌아왔는데.”
“너….”
“보고 싶었어요? 아닌가. 그럼 미웠어요?”

믿을 수 없었다. 몇 년만에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고작 저따위 것이라니. 이즈미는 생각도 하기 전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도 아닌가. 하긴, 그랬으면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한테 키스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하고. 혹시 그 사람 좋아해요? 혹시 이즈미씨, 제 얼굴이 취향이었다던가? 사실 내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런 건가요?”
“시끄러워.”
“그래서, 키스하고 싶어졌어요?”

천천히 무릎을 꿇고 다가오는 아키토의 얼굴을 이즈미는 그저 빤히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너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때, 이즈미는 손을 뻗어 아키토의 얼굴을 밀어냈다. 손에 닿은 아키토의 얼굴이 따뜻했기에 이즈미는 그의 생존을 의심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여전히 시건방진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저 자가 아키토가 아니라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

“살아있었어? 그럼 내가 묻은 건 도대체 뭐야?”
“비밀이에요. 우리는 공안이잖아요. 이런 일도 있는 거죠.”
“내가 너보다 높은 사람이야. 잊었어?”
“제가 이즈미씨보다 우수한 공안인 거 잊어버렸어요?”
“건방지게.”
“보고 싶었어요?”
“…….”
“옆 집 남자를 보고 제가 살아 돌아 온 줄 알았어요?”
“조용히 해.”
“이즈미씨.”

제 얼굴을 밀어내고 있는 손을 걷어낸 아키토가 아주 느린 동작으로 이즈미의 위로 타고 올랐다. 이게 꿈이라면 영락없이 가위라도 눌릴 자세인데. 괴롭지도 무섭지도 않았기에 이즈미는 다시 이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저를 내려다보는 아키토의 얼굴이 눈물이 날 정도로 익숙했기에 이즈미는 그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키스하고 싶어요?”
“… 응.”

비죽 올라가는 입술을 보고 이즈미는 아키토가 정말 살아있음을 느낀다. 건방진 녀석.
아키토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토록 그리웠던 제 체온을 나누어주었다. 이즈미는 망설이지 않고 아키토의 옷깃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배의 상처는 죽어도 건드리지 않겠다는 듯, 아키토는 등에 힘을 주어 쓰러지지 않았다. 깊숙한 곳까지 혀가 얽히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때까지 이즈미는 아키토를 놓지 않았다.

“다친 사람이 무리하면 안되잖아요.”

떨어지는 입술이 아쉬워 따라가다가 배에 고통을 느낀 이즈미가 인상을 쓰자 아키토가 웃었다.

“이거 봐. 쓸데 없이 복수같은 거 한다고 그러니까 키스도 제대로 못하는 거 아니에요.”
“너 때문이잖아.”
“…….”
“너 때문이라고, 아키토.”

아키토의 얼굴이 묘한 빛으로 굳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이즈미는 또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을 닦아냈다.
아키토는 말이 없었다. 그저 이즈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해. 어떻게 살았는지.”
“시끄럽다면서요.”
“그러니까. 네가 조용하면 오히려 무섭다고.”

여전히 이즈미는 제 품 안에서 숨쉬지 않는 아키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아무리 불러도 눈조차 마주쳐주지 않던 모습을.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을테니까 이제 잊어버려요.”

아키토의 손가락이 이즈미의 이마를 두 번, 톡톡 건드렸다. 여전히 건방진 태도였다. 이즈미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샜다. 정말 살아있었구나, 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즈미의 얼굴을 보고 슬쩍 웃은 아키토가 몸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잠들어 있던 것은 자신인데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는 뒷모습을 보고 이즈미가 미소지었다.

“가려고?”
“가야죠. 아직 작전 중이거든요. 여기 온 것도 비밀이에요.”
“언제 다시 올 건데?”
“글쎄요. 길어지네요.”

벗어두었던 정장 자켓에 팔을 꿰어넣는 아키토를 보며 이즈미가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배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이라면 제대로 보내주고 싶었다.

“됐어요. 그냥 누워있어요.”
“보고 싶을 거야.”
“… 알아요.”

그리고는 아주 쓸쓸한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와 입맞추는 아키토의 얼굴을 이즈미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눈에 담았다.

“그냥,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이제 다른 사람 만나도 돼요.”
“그게 가능했으면 벌써 내 옆에 다른 사람이 누워있었겠지.”
“그래도 옆 집 남자는 안 돼. 거기는 남편이 있잖아요.”
“하루타 씨한테 그런 마음 없어. 너랑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고.”
“알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런 엉망진창인 사람보면서 나 떠올리지 말라고요. 나까지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니까.”
“하루타 씨 뒷조사 했어?”
“현역 공안 무시하지 마세요.”

잘도 저를 속이고 살아있던 아키토가 얄미웠다. 이즈미가 제 손에 잡힌 아키토의 팔뚝을 꼬집자 간지럽다는 듯 픽 웃어버리는 것도 미웠다.
아키토가 아주 천천히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손잡이를 잡았다.

“이즈미 씨. 평범하게 살아요, 평범하게. 복수하지 말고. 나 살아있으니까 복수 할 이유도 없잖아, 이제.”

맞는 말이었다. 이즈미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 고개를 끄덕였다.

“또 만나러 와.”
“글쎄요. 마중은 나올게요.”
“응?”
“그리고 눈 떠요. 이즈미 씨가 봐야할 사람은 따로 있어요. 분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 자식이라면 나보다 당신한테 더 잘 할테니까.”
“무슨 소리야?”
“이제 일어나요, 이즈미 씨.”
“아키토, 잠깐만.”
“건강하세요.”

아키토가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리고 이즈미는 잠에서 깨어났다.

“악몽이라도 꿨어요?”

눈을 떴지만 눈물로 범벅이 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즈미는 그 사이로 보이는 키쿠노스케의 얼굴을 보았다. 아키토가 꿈이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을 가렸다. 그바람에 이즈미는 키쿠노스케가 어떤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고 생각한 이즈미상의 꿈…
하루타랑 키스하고 쓰러진 다음에 꾼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키토이즈미 약 키쿠이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