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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0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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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센느제국 제2의 도시라고 불리는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몬스터들이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말과 함께 즉각 가서 토벌하라는 명령을 받은 스즈키 노부유키는 서둘러 대공저로 향했다. 하필 몬스터 발생지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가 제2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도시 내 치안은 좋아도 도시를 지키는 방어력은 좋지 않은 곳이었다. 몬스터들이 도시 쪽으로 몰려가면 피해가 극심할 것이라 대공저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가져가야 할 보석들과 술법들을 생각하던 스즈키의 머릿속이 갑자기 멍해졌다.
혹시 3황자의 수작인가?
몬스터들은 아무 데서나 갑자기 나타나곤 하지만 아무런 징조도 없다가 갑자기 이렇게 대규모로 나타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몬스터들에 대한 대처와 보석술사들의 배치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 담당자는 아주 곤란한 얼굴로 3황자는 현재 수도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고 즉각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대공 전하에게 연락했다고 했다. 그 담당자가 말한 3황자가 수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건 3황자가 왕부의 수련실에서 수련하던 중 술법을 잘못 썼는지 보석이 깨진 건지 수련실이 폭발하면서 3황자 본인도 크게 다쳤다는 것이었다. 3황자 왕부에서 수련실이 폭발했다는 소식은 스즈키도 며칠 전에 들었다. 사실이란 것도 확인했다. 다만 3황자의 부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스즈키는 마차의 앞쪽 창을 열었다.
"마치다 가로 가지."
"네, 전하."
마치다 가에 도착한 스즈키는 바로 마치다 가의 가주를 찾았다. 공방에서 한창 보석 가공을 하고 있던 마치다 가의 가주는 스즈키가 혼자 갑자기 찾아왔다는 말에 가공할 때 착용하는 앞치마도 채 벗지 못하고 후다닥 달려나왔다.
"가족이 다 함께 며칠 대공저에 머무실 수 있습니까?"
"지금은 작업 중인 것이 있어서 곤란한데. 무슨 일입니까? 우리 케이타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마치다 케이타 경은 괜찮소."
3황자가 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건 스즈키의 짐작일 뿐이었다. 케이라면 무슨 이야기든 다 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은 달랐다. 게다가 마치다가의 가주는 케이를 3황자와 결혼시키려 하지 않았었나. 그때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으니 그랬겠지만. 아무리 케이의 부친이라 해도 전적으로 믿을 수가 없었다. 정치술에는 전혀 재주가 없는 스즈키가 말을 고르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은 옮길 수 없단 말입니까?"
"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가공 중인 보석을 옮기면 보석이 훼손됩니다. 그렇다고 또 이걸 놓고 가기에는 작업 기한이 여유롭지 않은 터라... 무슨 일입니까?"
스즈키는 케이와 결혼할 때 대공저 주변으로 사방에 블랙 다이아몬드를 땅에 묻고 블랙 다이아몬드를 매개로 거대한 결계를 쳐놨다. 마치다 가에도 같은 결계를 쳐놨으면 안심일 텐데 그때는 돈이 있어도 블랙 다이아몬드를 구하기 힘들 때였기 때문에 블랙 다이아몬드가 부족해서 결계를 치지 못했다. 3황자가 이 정도로 끈질길 것도 몰랐고. 그렇다고 지금 결계를 치자니 그 결계를 치는 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결계를 칠 여유도 없었다.
얼마 전 케이가 만들어 준 귀걸이를 받은 이후에 대규모 공간 방어술을 익히긴 했지만 아직 수련 중이라서 장시간 대규모 방어술을 유지하면 갈수록 방어력이 약해질 테고, 지금 스즈키가 들은 몬스터들의 수를 생각하면 토벌에 며칠은 걸릴 텐데 언제 3황자가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이 집에서 꼭 지켜야 하는 공간이 어디입니까?"
"... 이 집에서... 꼭...?"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마치다 가 가주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곧 침을 꿀꺽 삼키고 공방으로 안내했다. 가주가 작업 중이었기 때문에 작업대는 어지러웠지만 케이가 이 집을 고칠 때 침실을 포기하는 대신 공방을 자기 뜻대로 꾸몄다더니 케이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을 지키게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스즈키는 공방과 공방에 연결된 금고실에 결계를 쳤다. 좁은 공간의 결계인 만큼 최소 열흘은 유지되리라. 이번에 아무 일 없이 지나가면 꼭 마치다 가 저택 전체에 영구 결계를 치리라 다짐하며 스즈키는 결계를 재확인하고 가주를 돌아봤다.
"제가 며칠 수도를 비울 예정입니다."
"네."
"혹시 제가 수도에 없을 때 자택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들과 사용인들 모두 데리고 이곳으로 대피하십시오. 이 결계는 무엇이든 다 막아줄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라는 게..."
"아직 모릅니다. 제 기우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 케이타는..."
"대공저는 안전합니다. 그래서 대공저에 잠시 가 계시라 한 것입니다."
"아... 그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일은 가주께서만 알고 계십시오. 말이 나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혹시 3황자가 정말 뭔가를 획책 중이라면 일이 틀어지는 걸 눈치채고 공격을 서두를 수도 있기에 그렇게 경고하자 가주는 다시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는데 케이와 닮은 그 얼굴에 공포를 닮은 불안과 결연한 의지가 공존하는 걸 보자 마음이 약해져서 저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졌다.
"아무 일도 없을 수 있습니다. 제 기우일 수도 있으니 크게 걱정은 하지 마시되 경계는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갑자기 몬스터 대처 팀에서 연락이 와서 나갔던 스즈키는 딱딱한 얼굴로 돌아와서 집사를 부르더니 짐을 싸게 했다. 짐이라고 해 봐야 보석은 본인이 챙기기 때문에 간단한 옷가지 정도뿐이었지만.
"무슨 일입니까? 몬스터 토벌입니까?"
"그렇소. XX 주변에 몬스터가 대규모로 출몰했다고 하오."
"몇 명이나 갑니까?"
"혼자 갑니다."
"안 돼요!"
마치다가 소리를 빽 지르자 보석들을 챙기고 있던 스즈키는 챙기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마치다에게 다가와서 손을 잡아주었다.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준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오. 몬스터 발생지와 XX가 가까워서 서둘러야 하오."
"그럼 나도 같이 갈게요."
"그대가 몬스터들이 날뛰는 곳에 있으면 내가 너무 걱정되고 무서워서 힘을 쓸 수가 없소."
보석 가공은 정말 자신있지만 보석술은 진짜로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짐만 될 게 뻔한데도 이 사람을 몬스터들이 날뛰는 곳에 혼자 보내는 게 너무 싫었다. 사실 스즈키 대공이 항상 몬스터 토벌에 혼자 다닌다는 소문은 전에도 많이 들었었다. 혼자 가서 몬스터들을 싹쓸이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대단하다고 혀를 차기도 했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싫고 너무 속상했다. 이 나라에 보석술사가 몇 명인데 왜 혼자 가래? 다들 뭐하고 있는데! 몬스터 대처 및 보석술사 관리국 좋아하네! 차라리 이름을 암흑의 대공 비서팀으로 바꾸지 그래! 내가 보석을 가공해 준 보석술사들만 해도 100명은 넘을 텐데 그 100명 넘는 놈들은 다 어디서 뭐하는데? 보석 갖고 공기놀이해? 3황자 그 자식은 또 뭐하는데? 맨날 사실 암흑의 대공과의 실력차가 그리 크지는 않다고 입 털고 다닌다더니 실력을 보이고 말을 하든가! 파티만 하지 말고 사냥을 하라고 이 자식아!
마치다가 속상해서 대답은 안 하고 씩씩거리고 있자 스즈키 대공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머뭇거리다가 마치다를 끌어안았다.
"털 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겠소. 다른 이들이 없어야 내가 더 빨리 그대에게 돌아올 수 있소."
"...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고 오면..."
"다치고 오면?"
마치다는 다정하게 마주쳐오는 대공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심술궂게 말했다.
"손가락 끄트머리라도 다치고 오면 각방이에요."
스즈키 대공은 흠칫하더니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손톱 끄트머리도 다치지 않겠소."
"알았어요, 약속."
마치다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대공은 같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마치다의 손가락에 감아 주었다. 그리고 대공은 얽혀 있는 두 사람의 손을 들어서 마치다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천천히 말했다.
"3황자는 수도에 있을 것이오. 아무 일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 그대는 이 저택을 절대로 떠나지 마시오."
"... 3황자요?"
"몬스터가 대량으로 출몰하기 전에 한두 마리씩 간간히 목격되거나 그 지역의 동물들이 대피하거나 하는 징조가 나타나는데 이번엔 도시에 가까운 곳인데도 그런 징조를 목격한 이가 전혀 없었던 게 마음에 걸려서... 이런 일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오."
"..."
"대공저 전체에 결계가 있으니 공방에는 자유로이 다녀도 되고 정원을 산책해도 괜찮소. 대공저만 벗어나지 않으면 괜찮소."
"알았어요."
스즈키 대공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다도 스즈키 대공의 손등에 입술을 꼭꼭 눌러주자 스즈키 대공의 뺨이 또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너무 귀여웠다.
대공이 토벌을 나가고 사흘이 지나고 나흘 째를 맞았을 때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가족들이 바쁘거나 마치다가 바쁠 때 식사 시간을 놓쳐서 혼자 밥 먹는 일도 종종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매일 둘이 같이 밥을 먹다가 혼자 먹으니 입맛이 없어서 사흘 내내 식사 때마다 깨작거리게 됐다. 덕분에 대공비를 잘 보살피라는 대공의 명령을 받았던 쿠로사와의 얼굴이 매일 더 심각해지고 있었지만 정말로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나흘째 날 아침에 아침 식사를 대충 먹고 공방으로 향하고 있을 때 정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수도경비대의 정복을 입은 남자가 쿠로사와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뭔지 궁금하긴 하지만 쿠로사와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다시 공방으로 발길을 돌릴 때.
"마치다 가의 저택의 전소될 위기입니다!"
마치다가 고개를 휙 돌리자 마치다를 발견했는지 수도경비대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다 케이타 경! 본가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로는 정신이 없었다. 같이 온 다른 수도경비대원의 말을 뺏아서 수도경비대원과 함께 마치다 가로 향했다. 저택은 정말로 활활 타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는! 형이랑 형수는요? 하인들은 나왔어요?"
얼굴이 익숙한 이웃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자 친절한 이웃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아무도 못 빠져나왔어요. 아무도."
소방대가 와 있었지만 불길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이웃들을 본 마치다가 집 안으로 뛰어들려고 하자 이웃들이 마치다를 붙잡아 말렸다. 마치다가 이거 놓으라고 발버둥을 치고 있을 때, 마치다의 귀에 익숙하지만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렸다.
"왜 아직도 불길을 못 잡는 것이냐! 불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불길을 못 잡았어!"
고개를 휙 돌리자 상체를 전부 붕대로 휘감고 손가락 끝까지 붕대를 감은 채 재킷과 망토를 걸치고 있는 3황자가 말에 탄 채로 소방대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즈키 대공과 마치다의 결혼식 때 3황자를 따라와서 보좌하고 있던 3황자의 보좌관이 3황자에게 뛰어왔다.
"전하. 술법으로 일으킨 불길이라 소방대가 잡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술법이라니! 누가 술법으로 이런 짓을 해! 술법을 써서 사람을 해하면 사형인 걸 모르는가!"
"이게 발견이 됐습니다!"
그리고 보좌관에서 뭔가 건네받은 3황자는 입을 벌린 채 잠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다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말이 되느냐! 이건 블랙 다이아몬드 아니냐! 스즈키 대공이 마치다 가에 불을 질렀던 말인가! 네가 귀족 모함죄로 죽고 싶은 것이냐!"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깨진 블랙 다이아몬드 조각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스즈키 대공이 왜... 스즈키 대공이 왜 마치다 가에 불을 지르겠느냐?"
*****
3황자가 그 말을 막 마쳤을 때였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어수선해졌다. 3황자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눈에 힘을 줬다. 스즈키 대공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라센느제국에서 술법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은 사형이었다. 보석술사들의 힘이 강하기에 그들을 제어하는 규칙도 강했다. 스즈키 노부유키는 토벌전을 마치고 돌아오는대로 처형당할 것이다. 그걸 위해서 3황자는 마치다 케이타와 스즈키 노부유키의 힘이 닿아 있는 라소르 제국을 피해서 무리하게 정글의 가운데에 있는 나라와 접촉했다. 라소르제국의 블랙 다이아몬드를 구입할 때 필요한 돈의 5배나 주고 블랙 다이아몬드를 구했고 평범한 방법으로는 끌 수 없는 '꺼지지 않는 불길'을 일으키는 술법을 담았다. 미차다가의 자택에서 블랙 다이아몬드를 깨는 건 XX 근처에서 몬스터들을 봉인한 루비를 깬 그 놈에게 시켰다. 일의 전모를 아는 이는 적을수록 좋으니까. 일이 끝나면 그 자 하나만 처리하면 깔끔하리라.
자신의 계획에 한 치의 실수도 없다는 걸 재확인한 3황자는 배신감과 분노에 치를 떠는 마치다 케이타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에야...
사람들이 왜 소리를 지르고 있는지 알았다.
마치다 케이타의 온몸이 새카만 기운에 둘러싸여 있었고 마치다 케이타의 눈이 새카맣게 불타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마치다 케이타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블랙 다이아몬드 반지와 마치다 케이타의 가슴께에서 흔들리고 있는 블랙 에메랄드 목걸이에서 암흑의 기운을 닮은... 아니, 혼돈 그 자체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제대로 들렸다.
"혼돈이다! 혼돈의 보석술사야!"
"마치다 케이타가 혼돈의 보석술사였어!"
"폭주다! 전부 피해! 폭주한다!"
마치다 케이타가 혼돈의 보석술사로 강제로 각성하며 폭주하고 있었다.
#놉맟 #암흑의대공혼돈의가공사
라센느제국 제2의 도시라고 불리는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몬스터들이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말과 함께 즉각 가서 토벌하라는 명령을 받은 스즈키 노부유키는 서둘러 대공저로 향했다. 하필 몬스터 발생지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가 제2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도시 내 치안은 좋아도 도시를 지키는 방어력은 좋지 않은 곳이었다. 몬스터들이 도시 쪽으로 몰려가면 피해가 극심할 것이라 대공저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가져가야 할 보석들과 술법들을 생각하던 스즈키의 머릿속이 갑자기 멍해졌다.
혹시 3황자의 수작인가?
몬스터들은 아무 데서나 갑자기 나타나곤 하지만 아무런 징조도 없다가 갑자기 이렇게 대규모로 나타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몬스터들에 대한 대처와 보석술사들의 배치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 담당자는 아주 곤란한 얼굴로 3황자는 현재 수도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고 즉각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대공 전하에게 연락했다고 했다. 그 담당자가 말한 3황자가 수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건 3황자가 왕부의 수련실에서 수련하던 중 술법을 잘못 썼는지 보석이 깨진 건지 수련실이 폭발하면서 3황자 본인도 크게 다쳤다는 것이었다. 3황자 왕부에서 수련실이 폭발했다는 소식은 스즈키도 며칠 전에 들었다. 사실이란 것도 확인했다. 다만 3황자의 부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스즈키는 마차의 앞쪽 창을 열었다.
"마치다 가로 가지."
"네, 전하."
마치다 가에 도착한 스즈키는 바로 마치다 가의 가주를 찾았다. 공방에서 한창 보석 가공을 하고 있던 마치다 가의 가주는 스즈키가 혼자 갑자기 찾아왔다는 말에 가공할 때 착용하는 앞치마도 채 벗지 못하고 후다닥 달려나왔다.
"가족이 다 함께 며칠 대공저에 머무실 수 있습니까?"
"지금은 작업 중인 것이 있어서 곤란한데. 무슨 일입니까? 우리 케이타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마치다 케이타 경은 괜찮소."
3황자가 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건 스즈키의 짐작일 뿐이었다. 케이라면 무슨 이야기든 다 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은 달랐다. 게다가 마치다가의 가주는 케이를 3황자와 결혼시키려 하지 않았었나. 그때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으니 그랬겠지만. 아무리 케이의 부친이라 해도 전적으로 믿을 수가 없었다. 정치술에는 전혀 재주가 없는 스즈키가 말을 고르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은 옮길 수 없단 말입니까?"
"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가공 중인 보석을 옮기면 보석이 훼손됩니다. 그렇다고 또 이걸 놓고 가기에는 작업 기한이 여유롭지 않은 터라... 무슨 일입니까?"
스즈키는 케이와 결혼할 때 대공저 주변으로 사방에 블랙 다이아몬드를 땅에 묻고 블랙 다이아몬드를 매개로 거대한 결계를 쳐놨다. 마치다 가에도 같은 결계를 쳐놨으면 안심일 텐데 그때는 돈이 있어도 블랙 다이아몬드를 구하기 힘들 때였기 때문에 블랙 다이아몬드가 부족해서 결계를 치지 못했다. 3황자가 이 정도로 끈질길 것도 몰랐고. 그렇다고 지금 결계를 치자니 그 결계를 치는 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결계를 칠 여유도 없었다.
얼마 전 케이가 만들어 준 귀걸이를 받은 이후에 대규모 공간 방어술을 익히긴 했지만 아직 수련 중이라서 장시간 대규모 방어술을 유지하면 갈수록 방어력이 약해질 테고, 지금 스즈키가 들은 몬스터들의 수를 생각하면 토벌에 며칠은 걸릴 텐데 언제 3황자가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이 집에서 꼭 지켜야 하는 공간이 어디입니까?"
"... 이 집에서... 꼭...?"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마치다 가 가주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곧 침을 꿀꺽 삼키고 공방으로 안내했다. 가주가 작업 중이었기 때문에 작업대는 어지러웠지만 케이가 이 집을 고칠 때 침실을 포기하는 대신 공방을 자기 뜻대로 꾸몄다더니 케이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을 지키게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스즈키는 공방과 공방에 연결된 금고실에 결계를 쳤다. 좁은 공간의 결계인 만큼 최소 열흘은 유지되리라. 이번에 아무 일 없이 지나가면 꼭 마치다 가 저택 전체에 영구 결계를 치리라 다짐하며 스즈키는 결계를 재확인하고 가주를 돌아봤다.
"제가 며칠 수도를 비울 예정입니다."
"네."
"혹시 제가 수도에 없을 때 자택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들과 사용인들 모두 데리고 이곳으로 대피하십시오. 이 결계는 무엇이든 다 막아줄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라는 게..."
"아직 모릅니다. 제 기우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 케이타는..."
"대공저는 안전합니다. 그래서 대공저에 잠시 가 계시라 한 것입니다."
"아... 그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일은 가주께서만 알고 계십시오. 말이 나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혹시 3황자가 정말 뭔가를 획책 중이라면 일이 틀어지는 걸 눈치채고 공격을 서두를 수도 있기에 그렇게 경고하자 가주는 다시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는데 케이와 닮은 그 얼굴에 공포를 닮은 불안과 결연한 의지가 공존하는 걸 보자 마음이 약해져서 저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졌다.
"아무 일도 없을 수 있습니다. 제 기우일 수도 있으니 크게 걱정은 하지 마시되 경계는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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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몬스터 대처 팀에서 연락이 와서 나갔던 스즈키는 딱딱한 얼굴로 돌아와서 집사를 부르더니 짐을 싸게 했다. 짐이라고 해 봐야 보석은 본인이 챙기기 때문에 간단한 옷가지 정도뿐이었지만.
"무슨 일입니까? 몬스터 토벌입니까?"
"그렇소. XX 주변에 몬스터가 대규모로 출몰했다고 하오."
"몇 명이나 갑니까?"
"혼자 갑니다."
"안 돼요!"
마치다가 소리를 빽 지르자 보석들을 챙기고 있던 스즈키는 챙기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마치다에게 다가와서 손을 잡아주었다.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준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오. 몬스터 발생지와 XX가 가까워서 서둘러야 하오."
"그럼 나도 같이 갈게요."
"그대가 몬스터들이 날뛰는 곳에 있으면 내가 너무 걱정되고 무서워서 힘을 쓸 수가 없소."
보석 가공은 정말 자신있지만 보석술은 진짜로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짐만 될 게 뻔한데도 이 사람을 몬스터들이 날뛰는 곳에 혼자 보내는 게 너무 싫었다. 사실 스즈키 대공이 항상 몬스터 토벌에 혼자 다닌다는 소문은 전에도 많이 들었었다. 혼자 가서 몬스터들을 싹쓸이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대단하다고 혀를 차기도 했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싫고 너무 속상했다. 이 나라에 보석술사가 몇 명인데 왜 혼자 가래? 다들 뭐하고 있는데! 몬스터 대처 및 보석술사 관리국 좋아하네! 차라리 이름을 암흑의 대공 비서팀으로 바꾸지 그래! 내가 보석을 가공해 준 보석술사들만 해도 100명은 넘을 텐데 그 100명 넘는 놈들은 다 어디서 뭐하는데? 보석 갖고 공기놀이해? 3황자 그 자식은 또 뭐하는데? 맨날 사실 암흑의 대공과의 실력차가 그리 크지는 않다고 입 털고 다닌다더니 실력을 보이고 말을 하든가! 파티만 하지 말고 사냥을 하라고 이 자식아!
마치다가 속상해서 대답은 안 하고 씩씩거리고 있자 스즈키 대공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머뭇거리다가 마치다를 끌어안았다.
"털 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겠소. 다른 이들이 없어야 내가 더 빨리 그대에게 돌아올 수 있소."
"...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고 오면..."
"다치고 오면?"
마치다는 다정하게 마주쳐오는 대공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심술궂게 말했다.
"손가락 끄트머리라도 다치고 오면 각방이에요."
스즈키 대공은 흠칫하더니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손톱 끄트머리도 다치지 않겠소."
"알았어요, 약속."
마치다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대공은 같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마치다의 손가락에 감아 주었다. 그리고 대공은 얽혀 있는 두 사람의 손을 들어서 마치다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천천히 말했다.
"3황자는 수도에 있을 것이오. 아무 일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 그대는 이 저택을 절대로 떠나지 마시오."
"... 3황자요?"
"몬스터가 대량으로 출몰하기 전에 한두 마리씩 간간히 목격되거나 그 지역의 동물들이 대피하거나 하는 징조가 나타나는데 이번엔 도시에 가까운 곳인데도 그런 징조를 목격한 이가 전혀 없었던 게 마음에 걸려서... 이런 일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오."
"..."
"대공저 전체에 결계가 있으니 공방에는 자유로이 다녀도 되고 정원을 산책해도 괜찮소. 대공저만 벗어나지 않으면 괜찮소."
"알았어요."
스즈키 대공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다도 스즈키 대공의 손등에 입술을 꼭꼭 눌러주자 스즈키 대공의 뺨이 또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너무 귀여웠다.
대공이 토벌을 나가고 사흘이 지나고 나흘 째를 맞았을 때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가족들이 바쁘거나 마치다가 바쁠 때 식사 시간을 놓쳐서 혼자 밥 먹는 일도 종종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매일 둘이 같이 밥을 먹다가 혼자 먹으니 입맛이 없어서 사흘 내내 식사 때마다 깨작거리게 됐다. 덕분에 대공비를 잘 보살피라는 대공의 명령을 받았던 쿠로사와의 얼굴이 매일 더 심각해지고 있었지만 정말로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나흘째 날 아침에 아침 식사를 대충 먹고 공방으로 향하고 있을 때 정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수도경비대의 정복을 입은 남자가 쿠로사와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뭔지 궁금하긴 하지만 쿠로사와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다시 공방으로 발길을 돌릴 때.
"마치다 가의 저택의 전소될 위기입니다!"
마치다가 고개를 휙 돌리자 마치다를 발견했는지 수도경비대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다 케이타 경! 본가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로는 정신이 없었다. 같이 온 다른 수도경비대원의 말을 뺏아서 수도경비대원과 함께 마치다 가로 향했다. 저택은 정말로 활활 타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는! 형이랑 형수는요? 하인들은 나왔어요?"
얼굴이 익숙한 이웃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자 친절한 이웃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아무도 못 빠져나왔어요. 아무도."
소방대가 와 있었지만 불길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이웃들을 본 마치다가 집 안으로 뛰어들려고 하자 이웃들이 마치다를 붙잡아 말렸다. 마치다가 이거 놓으라고 발버둥을 치고 있을 때, 마치다의 귀에 익숙하지만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렸다.
"왜 아직도 불길을 못 잡는 것이냐! 불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불길을 못 잡았어!"
고개를 휙 돌리자 상체를 전부 붕대로 휘감고 손가락 끝까지 붕대를 감은 채 재킷과 망토를 걸치고 있는 3황자가 말에 탄 채로 소방대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즈키 대공과 마치다의 결혼식 때 3황자를 따라와서 보좌하고 있던 3황자의 보좌관이 3황자에게 뛰어왔다.
"전하. 술법으로 일으킨 불길이라 소방대가 잡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술법이라니! 누가 술법으로 이런 짓을 해! 술법을 써서 사람을 해하면 사형인 걸 모르는가!"
"이게 발견이 됐습니다!"
그리고 보좌관에서 뭔가 건네받은 3황자는 입을 벌린 채 잠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다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말이 되느냐! 이건 블랙 다이아몬드 아니냐! 스즈키 대공이 마치다 가에 불을 질렀던 말인가! 네가 귀족 모함죄로 죽고 싶은 것이냐!"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깨진 블랙 다이아몬드 조각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스즈키 대공이 왜... 스즈키 대공이 왜 마치다 가에 불을 지르겠느냐?"
*****
3황자가 그 말을 막 마쳤을 때였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어수선해졌다. 3황자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눈에 힘을 줬다. 스즈키 대공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라센느제국에서 술법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은 사형이었다. 보석술사들의 힘이 강하기에 그들을 제어하는 규칙도 강했다. 스즈키 노부유키는 토벌전을 마치고 돌아오는대로 처형당할 것이다. 그걸 위해서 3황자는 마치다 케이타와 스즈키 노부유키의 힘이 닿아 있는 라소르 제국을 피해서 무리하게 정글의 가운데에 있는 나라와 접촉했다. 라소르제국의 블랙 다이아몬드를 구입할 때 필요한 돈의 5배나 주고 블랙 다이아몬드를 구했고 평범한 방법으로는 끌 수 없는 '꺼지지 않는 불길'을 일으키는 술법을 담았다. 미차다가의 자택에서 블랙 다이아몬드를 깨는 건 XX 근처에서 몬스터들을 봉인한 루비를 깬 그 놈에게 시켰다. 일의 전모를 아는 이는 적을수록 좋으니까. 일이 끝나면 그 자 하나만 처리하면 깔끔하리라.
자신의 계획에 한 치의 실수도 없다는 걸 재확인한 3황자는 배신감과 분노에 치를 떠는 마치다 케이타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에야...
사람들이 왜 소리를 지르고 있는지 알았다.
마치다 케이타의 온몸이 새카만 기운에 둘러싸여 있었고 마치다 케이타의 눈이 새카맣게 불타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마치다 케이타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블랙 다이아몬드 반지와 마치다 케이타의 가슴께에서 흔들리고 있는 블랙 에메랄드 목걸이에서 암흑의 기운을 닮은... 아니, 혼돈 그 자체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제대로 들렸다.
"혼돈이다! 혼돈의 보석술사야!"
"마치다 케이타가 혼돈의 보석술사였어!"
"폭주다! 전부 피해! 폭주한다!"
마치다 케이타가 혼돈의 보석술사로 강제로 각성하며 폭주하고 있었다.
#놉맟 #암흑의대공혼돈의가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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