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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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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https://hygall.com/570310072


4 너는 무슨 애가 그런 말을
7 나이는 어려가지고 입만 살았지


노부는 여전히 열심히 아저씨를 꼬시고, 아저씨는 여전히 철벽같은 태도를 고수하고, 마트 사람들은 여전히 노부를 예뻐하고 노부는 여전히 통장의 돈을 불려가면서 지냈다. 그 와중에 중간고사 기간에 돌입했다. 여느 때처럼 마트 사람들은 노부가 공부를 하게 해 주었고 노부는 늘 그렇듯 최상위권은 아니라도 안정적으로 상위권의 성적을 얻어냈다. 성적표가 나온 날 마트 사람들의 칭찬을 잔뜩 받고 사장님이 우리 딸이 네 반만큼만 성실해도 소원이 없겠다며 또 고기를 듬뿍 싸 줘서 그걸 들고 신나게 지하철 역으로 달려갔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저씨는 노부가 좋아한다고 고로케를 사 들고 퇴근하고 있었다. 아저씨의 손에 들린 고로케 봉지를 보자 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언젠가 한 번 노부가 일하는 마트가 자잘한 내부 인테리어 공사로 하루 쉬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노부는 아저씨의 회사 앞까지 마중을 간 적이 있었다. 아저씨는 회사 앞까지 찾아온 노부를 보고 쉬는 날이면 집에서 푹 쉴 것이지 회사 앞까지 왔냐고 나무랐지만 기왕 노부가 회사까지 온 김에 따뜻한 고로케를 먹이겠다고 아저씨가 매일 고로케를 사 오는 집에 데려갔었다. 아저씨의 회사는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었다. 아저씨의 수입이 나쁜 편이 아닌데도 아저씨가 지금의 아파트에 사는 건 지하철 역이 가깝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회사에서 나와서 바로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에서 내린 후 바로 집에 돌아갈 수 있어서 좋다고 했었는데. 노부는 그날 알았다. 집에서, 아니 지하철 역 앞에서 기다리는 노부를 위해 한 시간이라도 일찍 퇴근하겠다고 저녁도 안 먹고 8시까지 야근을 하다 오는 아저씨가 말이다. 때때로 아니 종종 노부에게 먹이겠다고 먼 길을 돌아서, 그것도 가게가 문 닫을까 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발걸음을 서둘러 가서 지하철 역에서 꽤나 먼 가게에 가서 고로케를 사 온다는 걸. 

그러면서도 아저씨는 가게 주인 아저씨가 내어 준 따뜻한 차와 함께 막 튀긴 따뜻한 고로케를 먹는 노부를 보는 게 마냥 좋은지 뿌듯하게 웃었다. 

"갓 튀긴 거 바로 먹으니까 더 맛있지?"

기분은 좋았다. 물론 정말로 기분이 좋았는데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맨날 말로는 넌 아직 애기고 너 때문에 귀찮다고 하면서. 넌 내 짝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면서. 

그때를 떠올리며 잠깐 아저씨 손에 들린 고로케 봉지를 바라보던 노부는 곧 활짝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흔들었다. 

"저 중간고사 잘 봤다고 사장님이 고기 주셨어요. 집에 가서 고로케랑 같이 먹어요."
"성적표 나왔어?"
"네, 1학기 때보다 잘 나왔어요. 집에 가서 보여줄게요."
"잘했어. 고생했다."

노부의 미래에 몹시 관심이 많고 생각도 많은 아저씨는 정말로 기분 좋은 듯 피곤한 얼굴 위로 밝은 미소를 띄웠다. 아저씨가 고로케는 아침에 데워준다고 했기 때문에 저녁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었다. 고기를 구워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노부에게 고기를 구워먹이는 건 더 좋아하는 아저씨는 손만 씻고 얼른 고기를 구울 불판을 내놓고 각종 소스를 만들고 샐러드도 재빨리 만들어서 냉장고에 든 절임과 함께 내놨다. 그동안 샐러드에 넣을 채소만 씻었던 노부는 서둘러 불판에 고기를 올렸다. 노부를 정말 아껴주시는 사장님이 주신 고기는 팔았다가는 문제가 생길 만한 몹쓸 고기도 아니었고, 정말 좋은 고기였다. 아저씨와 노부는 질 좋은 고기를 잔뜩 먹었고 아저씨가 노부의 준수한 성적표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에 노부는 빌려온 DVD를 같이 보다가 슬쩍 물었다. 

"아저씨 저 생일 선물 받고 싶은 거 말해도 돼요?"
"뭐, 받고 싶은 거 있어? 말해."

아저씨는 어린애는 비싼 거 살 필요 없다면서 아저씨 생일 선물은 비싼 걸 못 사게 하면서 노부의 생일 선물은 항상 가격이 제법 나가는 것들로 준비해 줬다. 노부의 새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난 뒤에 노부가 처음 받았던 생일선물은 스마트폰이었고 그 다음 해에는 노트북이었다. 좋긴 했지만 아저씨한테 너무 부담일 것 같아서 싼 걸로 사달라고 하자, 아저씨는 머쓱해하며 노트북은 너 공부하라고 사 준 거라고 했었다. '요즘은 공부할 때도 컴퓨터 다 있어야 된대.' 그러면서. 그저 인강이나 듣기엔 너무 비싼 모델이었는데. 다음 해부터는 싼 거 사 줄 거라고. 노부는 그때도 가슴이 뛰었다. 그건 아저씨가 매년 노부의 생일을 챙겨줄 거라는 말이니까. 그 다음 해부터는 말했던 대로 금액대가 조금 내려가긴 했지만 하나같이 비싸고 소중한 선물이었다. 올해도 뭐든 사 줄 생각인지 아저씨는 흥미롭게 보던 영화에서 눈을 돌려 노부를 바라봤다. 

"나 생일 선물로 키스!"
"... 무슨 스?"

아저씨는 품에 안고 있던 쿠션을 툭 떨어뜨리고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노부를 바라봤다. 

"키스요, 키스. 생일 선물로 키스해 주세요. 올해 생일 선물은 아저씨 키스로 받고 싶어요."

아저씨는 여전히 황당하다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노부의 이마에 손가락을 딱 튕겨 꿀밤을 먹였다. 

"너는 무슨 애가 그런 말을."
"왜요! 나도 이제 18살 되는데! 첫 키스는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저씨랑 키스하고 싶어요."
"나이는 어려가지고 입만 살았지"
"아저씨!"
"기각! 다른 선물 생각해."
"키스!"
"시끄러워. 다른 선물 생각해 오지 않으면 올해 생일 선물은 없다."

아저씨는 노부에게 가끔 쌀쌀맞아도 항상 너그러웠고 노부가 바라는 건 웬만하면 다 해 줬지만 한 번 안 된다고 하면 절대로 안 되는 거였다. 노부는 원망스럽게 아저씨를 쳐다봤지만, 아저씨는 노부의 시선을 눈치챘을 텐데도 모르는 척 TV 화면만 보고 있었다. 흥미진진하게 보던 조금 전과 달리 화면을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정말 아저씨한테 난 안 되는 건가. 

그날 아저씨는 노부에게 미안했는지 시무룩하게 집에 돌아가는 노부를 배웅하며 그랬었다. 

"생일 선물 마음에 드는 거 고르면 말해. 그걸로 준비해 줄게."
"... 알았어요. 잘 자요, 아저씨."
"그래, 잘 자라."

노부가 집에 들아가기 전 돌아보자 여전히 문을 열고 서서 지켜보고 있던 아저씨가 작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노부가 시무룩한 와중에도 같이 손을 흔들어주자 아저씨는 안심한 듯 다시 손을 작게 흔들어주었다. 노부가 집에 들어와서 문을 잠그고 나자 그제야 아저씨의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잠기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바로 옆집인데도 노부가 집에 들어가서 문단속까지 잘 하는 걸 봐야 안심할 수 있으면서.
노부가 '맛있다'고 했다는 이유로 수시로 피곤한 퇴근길에 굳이 길을 돌아가면서까지 고로케를 사다 줄 거면서.

그 정도로는 아껴주면서.

왜 나는 안 되는 건데요, 아저씨.





#노부마치
#놉맟오지콤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