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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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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너 남친은 안 사귀냐? 맨날 나만 따라다니지 말고


노부는 아직 고등학생이었지만 부모님을 모두 잃었고 이제 가족이 없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으로 직행했다. 가족은 없어도 가족도 주지 않았던 사랑을 퍼부어주며 돌봐주는 아저씨는 있지만. 원래는 고등학교도 안 다니려고 했지만 아저씨가 말렸다. 학교에서 배우는 게 너한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도 그 시간을 성실하게 버텨냈다는 증서인 졸업장은 네가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더 좋은 일자리를 찾게 해 주고, 사람들에게 더 인정받게 해 줄 거라고. 그래서 노부는 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8시가 되면 전속력으로 달려나왔다. 이제 집에서 노부를 기다려 줄 가족은 없다. 그러나 노부가 기다려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전력으로 달려서 집 근처 지하철 역 입구에 도착한 노부는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지하철 역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8시 30분이 다 돼 가는 시간이라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올라오는 이들도 있고 야근에 피곤한 얼굴로 빠져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피곤한 얼굴을 한 아저씨가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아저씨!"

노부는 매일 아저씨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기다리는데도 매일 노부를 볼 때마다 기가 차다는 얼굴을 하는 아저씨는 오늘도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리지 말라고 했잖아."
"내가 기다려 줘서 좋으면서."
"안 좋아, 아저씨 피곤하다, 노부."

그러나 노부를 볼 때마다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는 아저씨의 손에는 오늘도 평소처럼 노부가 좋아한다고 해서 아저씨가 종종 퇴근길에 사 오는 고로케 봉지가 들려 있었다. 사실 그 가게의 고로케가 정말로 천상의 맛인 건 아니었다. 그저 어느 날 아저씨가 사 온 고로케를 같이 먹다가 아저씨가 맛있냐고 물어봐서 정말 맛있다고 말했더니 피식 웃었던 아저씨는 종종 피곤한 퇴근길에도 고로케를 사 왔다. 그 고로케의 맛은 평범했지만 아저씨가 노부를 생각하며 고로케를 사 오는 마음이 좋았다. 그래서 노부는 아저씨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 들여주면서도 고로케 봉지는 들어주지 않았다. 아저씨가 노부를 생각하며 사온 마음을 아저씨가 계속 들고가게 하고 싶었다.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랬다. 아저씨의 회사는 아무래도 블랙기업인 듯 아저씨는 매일 야근을 하는데도 매일 또 노트북을 들고 퇴근했다. 집에서도 종종 일을 하곤 했다.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아저씨가 돈 안 벌어도 잘 살게 해 줘야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노부는 매일 하는 다짐을 반복하며 아저씨와 나란히 집으로 향했다. 같은 집에 사는 것은 아니었다. 아쉽게도... 그러나 같은 아파트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사촌인지라 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노부는 재잘재잘 오늘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마트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아저씨는 들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아저씨, 내일 우리 마트에서 엄청 좋은 소고기 특별세일 이벤트하거든요. 사 올까?"
"손님한테 팔아야지, 네가 사 간다고 하면 그래, 너부터 가져가라 하겠어?"

아저씨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노부는 마트의 아이돌이었다. 마트에서 같이 일하는 아저씨나 아주머니들, 형과 누나들은 싹싹하고 성실한 노부를 좋아했다. 노부는 딱히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데도 시험기간이 되면 오히려 마트의 어른들이 더 난리였다. 시험공부하라고 사장 몰래 노부를 마트 내 직원 휴게실에 데려다 놓고 노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줬다. 그러나 사실 사장도 직원들이 노부 몫의 일까지 해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노부가 혼자 공부하고 있을 때 사장이 슬쩍 와서 초코바 하나랑 음료수 하나를 놓고 간 적도 많았다. 

"우리 딸 공부할 때 단 거 그렇게 찾던데. 공부할 때 단 거 먹어주는 게 머리도 잘 돌아가고 좋다더라."

그렇게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서 사장은 내일 노부한테 소고기 특별세일가에 직원 할인까지 해 줄 테니까 사 가서 든든히 좀 먹으라고 미리 귀띔해 주기도 했다. 

"나 사 간다고 하면 특별세일가에 직원 할인까지 더 해서 싸게 준다고 많이 먹고 많이 크라고 했어요."
"지금도 충분히 큰데 얼마나 더 크라고?"
"더 클 거예요. 아저씨보다 머리 하나 더 클 정도로."
"꿈도 야무지네."

아저씨는 터덜터덜 걷다가 망설이듯이 느릿하게 말했다. 

"사장님은 그냥 해 본 말일 수도 있어."

아저씨는 아마도 노부가 눈치없이 굴다가 사람들한테 미운털이 박힐까 봐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아저씨한테 노부는 항상 어린애라서. 아저씨보다 키도 덩치도 더 커진 지금도 역시. 

"아니거든요? 꼭 사라고 말했거든요. 돈 없으면 가불해 준다고도 했거든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네."

아저씨는 투덜거렸지만. 

"나 우리 마트에서 완전 사랑둥이거든요? 다 나 좋아하거든요? 나 싫어하는 사람 아저씨밖에 없어."

아저씨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냥 피식 웃고 말았지만 느슨하게 풀어진 입가에서 노부가 사랑받으며 일한다니 안심하는 게 느껴졌다. 아저씨도 노부가 마트에서 예쁨 받는다는 걸 아마 알긴 할 거다. 블랙기업에 다니느라 늘상 야근을 하는 아저씨가 노부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직후에는 종종 일찍 퇴근해서 노부가 일하는 마트에서 장을 보는 척하며 직원들 분위기나 노부가 일하는 모습을 훔쳐 보곤 했으니까. 사실 노부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아저씨가 직접 사장을 만나 노부를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기도 했고.

그래도 여전히 아저씨가 노부를 걱정하는 건 아저씨를 처음 만났을 때 노부가 너무 어리고, 너무 약하고, 너무 불쌍한 아이였기 때문에. 

아저씨가 노부를 구해 준 건 정말 고마운 일이고, 아저씨는 노부 인생의 구원자지만. 

그래서 아저씨한테는 노부가 여전히 어린아이인 건 너무 속상해... 





매일 그렇듯이 아저씨의 집에서 아저씨가 사 온 고로케를 데워서 같이 늦은 저녁 겸 야식을 먹고 아저씨의 집에서 목욕까지 한 뒤였다. 노부는 일하기 위해서 노트북을 펼치는 아저씨 맞은편에 문제집을 펼치고 앉으며 물었다. 

"우리 내일 고기 사 와서 스키야키 먹을까요?"

아저씨는 잠깐 고민하다가 지갑을 꺼내더니 카드를 내밀었다. 노부가 카드를 받지 않고 바라보고 있자, 아저씨는 카드를 까딱까딱하면서 입을 열었다. 

"스키야키 말고 고기 구워 먹게 등심이랑 안심이랑 너 먹고 싶은 부위로 섞어서 사 와."
"내가 살게요."
"어린애가 일해서 번 돈으로 사다 준 고기가 잘도 넘어가겠다."
"나 이제 몇 달만 지나면 졸업도 하거든요?"
"몇 달 지나야 졸업하지."
"내가 사 주려고 했는데. 말하지 말고 사 올걸."

노부가 투덜거리고 있자, 아저씨는 노부의 손에 카드를 끼워 주었다. 

"마트 아르바이트생 덕 좀 보자. 많이 사 와. 네 덕분에 고기 배터지게 먹게."

이런 걸로 좋아하면 안 되는데. 네 덕분에 고기 배터지게 먹을 수 있겠다는 말에 또 입술이 씰룩거렸다. 노부가 싫은 척 투덜거리며 아저씨의 카드를 지갑 깊숙이 잘 넣자, 아저씨는 또 피식 웃더니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부가 마트에서 아저씨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부모가 없는 노부에게 아저씨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는 마트에서 같이 일하는 이들도 잘 알았다. 그 덕분인지 노부가 아저씨가 고기 사 준다고 했다고 자랑하자 사장은 정육코너를 담당하는 직원이 안 그래도 넉넉히 담아 준 고기들에 더해 살치살도 몇 덩어리 슬쩍 같이 넣어 줬다. 노부가 신나서 고기를 들고 지하철 역 앞으로 뛰어가자 아저씨는 여느 때처럼 피곤한 얼굴을 하고 올라오다가 노부를 보고 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오늘은 같이 고기를 먹기로 약속한 걸 잊지 않았는지 잔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아저씨가 아무런 잔소리가 없는 날은 정말로 드물어서. 실컷 같이 고기를 먹고 다음 날 또 아르바이트를 마치자마자 전력으로 지하철 역 앞으로 달려갔을 때는, 또 잔소리가 노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 여친이나 남친은 안 사귀냐? 맨날 나만 따라다니지 말고."
"아 진짜!"
"뭐? 왜?"
"난 아저씨랑 결혼할 거거든요?"
"꿈 깨."

진짜 못됐다. 너무 못됐어. 

이 못된 아저씨 좋아하는 내가 죄지, 내가 죄야.





멘트 순서는 내 맘대로
왕감자임
그런데 이제 역키잡을 섞은
#노부마치
#놉맟오지콤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