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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4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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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는 상자 안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고 노부를 바라봤다. 그리고 입술을 몇 번 달싹거렸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을 뗐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살짝 벌어져 있는 입술이 귀여워서 입술에 입을 촉 맞추자, 키스가 처음도 아닌데 케이는 손을 파다닥 파다닥 흔들며 당황했다. 
 
"아니, 지금 키스가 아니라."
"아니라?"
"이거 뭐야?"

케이는 상자를 내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긴요, 하얀보석이잖아요."
"아니, 이걸... 이걸 네가 만들었어?"
"네."
"아니, 언제? 아니, 왜? 아니, 어떻게? 아니-"

아니, 아니만 계속하는 케이의 입술에 입술을 꾹 누르며 입을 맞춰주자 마구 흔들리고 있던 눈동자가 한참 만에야 겨우 차분해지는 게 보였다. 노부는 S급 빙결의 소환사를 위한 하얀보석이 들어 있는 상자를 쥔 케이의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보면서 상자 안에 든 하얀보석을 집어 올렸다. 케이가 노부에게 만들어줬던 붉은보석만큼 크고, 원래도 빙결의 소환사들이 A급까지 쓰는 보석이 다이아몬드인 만큼 굉장히 반짝거려서 보기에도 예뻤다. 자기가 만들었지만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진 게 너무 뿌듯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보석을 들고 보석에 미리 걸어둔 체인을 케이의 목에 걸어주자, 잘 때 잠옷 대신 입고 잤던 도톰한 가운 위로 걸쳐진 하얀보석을 보면서 케이가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이걸 어떻게 만들 생각을 했어?"
"케이가 나랑 같이 토벌 나갔다가 다쳤을 때 있잖아요."
"응."
"사실 그때부터 생각했었어요."
"왜?"

노부는 케이의 손에 하얀보석을 쥐어주고 보석을 쥔 케이의 손을 감싸 쥐었다. 

"내가 다쳤을 때 케이가 내 몸도 닦아주고 그랬던 것처럼 나도 간병 잘해 주려고 했는데."
"잘해줬잖아. 실제로."

노부는 감사의 의미로 윙크를 하며 손에 감싸쥐고 있던 케이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런데 케이의 보석이 너무 작아서 놀랐어요. 케이가 내 보석 만들어준 거 보면 큰 보석을 만들 힘이 없는 건 아닐 테데, 여러 사람 챙기다보니 그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아끼는 일에 서툴기 때문인지. 

류세이는 최근 들어서 노부에게 다소 유해지고 부드러워진 편이었는데 그 이유를 얼마 전에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혹시나 해서 사쿠마와 아몬, 츠지무라에게 보석을 누가 만들어줬는지 물었는데 츠지무라는 케이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S급이어서 스승이 만들어 줬다고 했고, 사쿠마와 아몬은 S급이 됐을 때 케이가 만들어서 선물해 준 것이라 했다. 사쿠마의 자색보석은 매혹의 소환사를 위한 보석인 만큼 어딘가 위험하고 요염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방향에 따라 적자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청자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아찔해 보였고. 방어의 소환사인 아몬의 보석은 커다란 검은색 보석을 가지고 있었는데 검은색인데도 아주 맑은 느낌의 보석이라 신기했다. 그리고 케이는 노부의 보석도 아주 크고 아주 강하고 아주 단단하고 아주 예쁘게 만들어주기도 했고.

케이가 만들어줬다는 사쿠마와 아몬, 그리고 노부 자신의 보석이 모두 크고 놀라울 정도로 순도가 높았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 속이 답답해졌다. 자기 울타리 안에 들어온 S급 소환사들 셋의 보석을 최상급으로 뽑아주고 자기는 적당히 조그만 보석 하나 만들어서 걸고 다니는 걸 생각하니 뭔가 목에 걸린 기분. 그래서 노부가 잠시 말없이 자신의 붉은보석만 만지작거리고 있자, 불냥이와 고토의 훈련을 봐 주고 있던 류세이가 다가와서 툭 말했다. 

[마치다 상이 살던 마을 박살나고 어른들 다 죽을 때 마치다 상도 10대였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들었습니다.]
[10대라고 해도 막 19살, 18살 이런 것도 아니고. 진짜 10대 중반. 일찍 각성해서 그때도 이미 소환사였지만 C급이었고, 아이였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뭐 저 사고뭉치 꼬맹이한테 들은 거긴 한데.]
[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아직도 자기를 아이들과 함께 숨겨준 마을 어른들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고, 그때 자기가 마을을 지키기 못한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늘 자기가 해야 할 일만 생각하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같은 건 생각하는 것도 본 적이 없거든요. 마을에서 데려온 애들 챙겨야 하는 책임도 서글프고 무거울 텐데 여기저기서 사람도 많이 주워오고. 주워진 입장에서 나는 할 말이 없긴 하지만.]
[...]
[워낙 그런 사람이다 보니까 뭐... 솔직히 지금까지 남의 연애 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쪽이랑 마치다 상 연애하는 걸 보는 건 좋더라고요.]
[좋다고요?]
[마치다 상이 그렇게 바보처럼 실실거릴 수도 있는 사람이란 거 처음 알았거든. 되게 바보같은데 또 보기는 좋더라고.]

류세이는 그렇게 말하고 괜히 멎쩍은지 노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는 불냥이와 합을 맞춰보고 있는 고토에게 다가가며 잔소리를 했다. 

거기서 타다오미 네가 불냥이의 공격을 그쪽으로 쏘면 다이짱의 공격에 부딪쳐서 무효화되잖아. 
맛치 형이랑 스즈키 삼촌은 상충 안 하던데?
너희도 상충 안 하고 싶으면 더 연습해야 돼. 농땡이부리지 마라, 사고뭉치 꼬맹이.
꼬맹이 아니야! 사고뭉치도 아니야!

둘이 투닥거리는 걸 보던 노부는 제 큰 손을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란 붉은보석을 보고 있다가 다시 보석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하얀보석 만들기를 시작했다. 노부는 전 약혼자에게도 보석을 만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을 사랑했었으니까 보석이 깨졌다는 말에 바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케이의 말대로 진짜 S급이 아니라서 보석을 만들 수 없었던 건가.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여전히 그 사람이 노부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감정은 이미 정리된 지 오래였다. 한때는 애틋했던 감정도, 가슴을 드글드글 끓게 하던 원망도. 

예전에 그를 위해 푸른보석을 만들어 줄 때는 몸이 점점 축나는 것도 계속 정신력이 고갈되는 것 같은 것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케이를 위한 하얀보석을 만들 때는 힘이 빠져나간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매일매일 빠져나가는 만큼 채워졌으니까.

케이는 노부가 하얀보석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 의식하고 힘을 채우려 한 건 아니었지만 밤마다 케이를 안고 자면 조금 사라졌었을지도 모를 정신력도 체력도, 소환사의 힘도 사용한 이상으로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었으니까. 물론 케이와 함께 밤을 보내는 시간은 갈수록 점점 더 황홀해졌지만, 이제 앞으로 더 황홀해질 것 같지만, 꼭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그냥 케이를 품에 안고 잠들면 기분 탓인지 회복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그래서 정말로 힘들지 않아서. 

"케이는 내 보석 만들어줄 때 맨날 얼굴 창백하고 초췌할 정도로 고생 많이 하면서 만들어줬는데 난 만들 때 별로 안 힘들었어서 뭐 생색 낼 일도 아니에요, 사실."

그때까지 발그레하게 뺨에 홍조를 띄우고 눈가도 촉촉해져서 울먹울먹하고 있던 케이는 노부의 말을 듣고는 갑자기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노부를 노려봤다. 

"왜 그래요?"
"그때 내가 너 보석 만들어주고 있을 때 날 몹시 의심하고 매우 경계하고 전혀 못 믿었던 거 생각나서."
"... 네?"

그때 아무도 못 믿을 정도로 마음이 꽉 닫혀 있는 상태였던 건 사실이었다. 구체적으로 케이가 노부에게 뭔가 나쁜 짓을 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기보다 그냥 아무도 못 믿었던? 그러나 결과적으로 케이를 못 믿었던 건 맞아서 노부가 사과의 의미로 케이를 품에 꼭 안고 불퉁하게 나온 입술에도 그리고 매섭게 치켜뜬 눈가에도 촉촉 입을 맞춰주자, 케이가 여전히 입술을 삐죽거리며 설명을 했다. 

"힘이 똑같이 나가는 건 맞아. 소환사가 가지고 있는 힘도 그렇지만 집중력도 상당히 들어가고, 아무래도 장시간 정신을 극도로 집중해야 하니까 체력도 훅훅 떨어지지. 그런데 내가 만드는 보석의 주인이 될 사람이 나에 대해서 애정이나 호감 같은 게 있다면 같이 손을 맞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정 정도 회복이 돼."
"... 사쿠마 상이랑 아몬 상 보석을 만들어줬다고 들었는데요."

노부가 지금은 질투할 때가 아니라 혼날 때라는 걸 잠시 잊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쳐다보자, 케이는 노부의 뺨을 쿡 찌르더니 대답을 이었다. 

"코타로는 훈련한다는 핑계로 불러내서 매번 스트레칭 도와달라고 하면서 마음을 받았고."
"네."
"쿄스케는 우리 중에 제일 S급 각성이 빨랐던 녀석이라, 아직 미성년자일 때 S급이 됐거든."
"아..."
"그래서 귀찮아하면서 짜증내는 애를 그냥 무릎 위에 앉히고 막 주물주물하면서 괴롭혔지."
"... 네?"

케이는 키득키득 웃었지만 사쿠마가 짜증을 내지는 않았을 게 뻔했다. 사쿠마는 케이가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장난을 쳐도 귀찮아하기만 할 뿐 벗어나려 하기는커녕 뭐라고 한 적도 없었으니까. 요즘도 맨날 그러듯이 뺨이 발그레한 게 보이는데도 귀찮은 표정을 짓고 가만히 있었겠지. 

"뭐, 그때도 내가 너 맨날 찾아가서 손잡고 있고 가슴 토닥여주고 그랬잖아."
"아..."
"그래도 별로 회복이 안 되더니 역시 너는 나를 의심하고! 경계하고! 못 믿고!"
"아니..."

케이는 눈을 사납게 뜨고 노려보는 척하던 것도 집어치우고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아까보다 지금 더 속이 상한 듯 눈매가 시무룩해진 게 보여서 노부는 케이를 다리 위에 올려앉히며 온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마음을 늦게 열어서 미안해요. 내가 어리석어서 다시 마음을 열 때까지 망설임이 너무 길었어요."

그러자 케이는 눈꼬리를 예쁘게 휘며 웃었다. 

"역시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 네?"

케이는 넌 역시 안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더니 노부의 입술에 입을 쪽쪽 가볍게 맞춰주고 힘차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아무래도 난 절대 내 노부를 뺏앗기기 싫으니까 빠르고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노부가 얼떨결에 같이 일어서서 케이를 바라보자 케이는 여전히 웃고 있지만 진지해진 얼굴로 노부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디 있어? 타카하시 료헤이."





#소환사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