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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2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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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에요?"

마치다는 편하게 지내던 몇 년 전에도 그랬고 다시 만난 이후에도 이름을 부를 땐 늘 스즈키라고 불렀었기 때문에 '노부'라는 호칭과 함께 갑작스럽게 확 좁혀오는 거리에 당황하긴 했었다. 노부라니. 문제는 갑자기 이름을 불렀을 때 불쾌하기는커녕 가슴이 쿵 뛰었다는 것이지만. 모르고 무심결에 부른 거라면 지적해주면 스즈키라고 돌아갈까 봐 모른 척 앞부분을 물었다. 

"변신이라뇨?"

마치다는 마치다의 손길을 귀찮아하는 사쿠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유쾌하게 대답했다. 

"말했듯이 넌 인상착의가 매일 스팸전송되고 있어서 널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으로 보이도록 가벼운 환술을 걸어서 나랑 같이 토벌전 가자고."
"인큐버스의 능력을 사람한테 쓰는 건 금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환술은 인큐버스의 능력이 아니야, 우리 쿄스케짱 능력이지. 네 외모가 다르게 인식되는 수준이니까 이건 금기도 아니고."
"그냥 다른 사람들한테만 제가 다르게 보이는 겁니까?"
"우리한테도 다르게 보여. 환술로 바뀐 모습으로."
"... 그렇습니까?"
"어. S급 환술 스킬만 돼도 환술이란 걸 상대가 인식하면 본래 모습이 보이거든. 그런데 우리 쿄스케짱이 좀 많이 유능해. SS급 환술이라 환술이란 걸 인식해도 본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
"좋아? 시작할까, 노부?"

다시 한 번 '노부'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다시 심장이 쿵 뛰었다. 노부가 어째서인지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리려고 어색하게 입가를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쿠마는 계속 노부를 위아래로 훑어보기만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치다가 고개를 기울여 쿄스케를 바라봤다.

"뭐해, 쿄스케?"
"누구로 바꿔줄까 해서요."

그 말에 마치다가 피식 웃었다. 

"뭘 고민해. 우리한테 선택지가 얼마나 있다고. 우리한테 신분증이 있고 나중에 문제가 안 될 사람 걸로 바꿔야 하니까 어차피 우리 애들 중에 하나로 바꿔야 하는데. 질풍이랑 전격은 토벌전 못 나가는 걸 그쪽에서도 아니까 안 되고, 다이하고 코타로, 류세이, 타다오미, 소라는 지금 다른 토벌전 나가 있잖아. 남은 건 너랑 츠지무라 박사, 시시오, 이치로밖에 없는데 네 명 중 하나지."
"세 명 중 하나죠."
"누가 빠졌는데? 너? 너는 안 돼?"
"쿠니시타."

쿠니시타 이치로는 노부도 몇 번 만났다. 원래는 A급 빙결의 소환사로 가끔 가루베를 가르치거나 가루베나 고토를 데리고 토벌전을 가지만 건물에 있을 때는 아마미야 료이치로와 함께 이 기숙사 같은 건물의 식당을 맡고 있었다. 무뚝뚝한 편이긴 하지만 음식 솜씨는 무척 좋은 남자였다. 왜 그 사람은 안 된다는 건지 몰라서 노부가 바라보고 있기만 하자, 마치다가 키득키득 웃으며 사쿠마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치로 짱은 왜 안 돼?"

사쿠마는 누가 건드리는 걸 싫어하는지 마치다가 어깨동무를 하거나 어깨를 툭툭 치는 걸 매우 귀찮게 여기는 것 같긴 했다. 그러나 고토의 말에 의하면 사쿠마도 마치다가 도시로 올 때 데리고 온 동네 동생들 중 하나라더니 마치다를 형처럼 느끼는 듯 손을 치우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이치로 짱'은 안 되냐는 말에는 눈을 뾰족하게 뜨고 마치다를 돌아봤다. 

"쿠니시타는 내 거니까. 누가 겉모습을 빌려가는 것도 안 돼요."

마치다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내가 미안해. 그럼 이치로짱의 쿄스케짱도 뺄까?"
"누구한테 내 모습을 입히는 것도 영 내키진 않으니까."

사쿠마가 냉랭하게 대답하자 마치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럼 오늘은 시시오로 하자. 머리색도 다르니까 비슷한 느낌이 훨씬 덜할 거야."

사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양 손을 들고 노부의 몸 방향으로 손바닥을 펼치더니 뭐라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입 안으로 중얼거렸다. 잠시 그러고 있자 노부를 바라보고 있던 마치다가 고개를 기울이며 피식 웃었다. 노부는 제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손을 보자 마치다와 똑같은 은색의 장갑이 끼어 있던 손이 노부에게도 익숙한 붉은 화염의 소환사 장갑으로 바뀌어 있는 게 보였다. 

"그 분이 화염의 소환사입니까?"
"맞아. A급 화염의 소환사, 소환수는 화염의 검은수리. 카나자와 시시오."

마치다는 대답과 함께 소환사용 신분증 목걸이을 내밀었다. 받아서 보자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진중하고 딱딱해 보이는 모습의 남자 사진과 카나자와 시시오라는 이름이 들어 있는 신분증이었다. 마치다는 그대로 노부의 어깨를 잡아서 빙 돌리며 등 뒤에 있던 거울 앞에 세웠다. 마치다가 알려준 '우리쪽' 소환사들 중에 아직 못 본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카나자와 시시오였다. 노부가 만나지 못한 그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다. 

"너랑 동갑이고, 말이 별로 없는 성격이니까 특별히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냥 편하게 행동해도 돼. 어차피 나한테 토벌전이 배당되면 내가 우리 애들을 몇 명씩 데리고 가는 일도 흔해서 누가 의심하지도 않을 거야."

그 말과 함께 노부는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으로 외출했다. 세상은 노부가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일 같은 것에는 전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것처럼 여전히 매끄럽게 잘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소환사 놀이를 하고 있었고,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직장인들과 자전거에 장바구니를 싣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느긋하고 명랑했다. 오늘따라 날도 맑아서 파란 하늘에 떠 가는 흰 구름마저 야속할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노부가 무정하고 매정한 세상의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자 마치다는 노부의 뺨을 콕 찔렀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설마 토벌전이 무서워서 한숨을 내쉬었다고 생각한 건가. 명색이 S급이고 몇 년이나 토벌전을 혼자 다녔는데. 그래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씩 웃고 있는 얼굴이 예뻐서 노부도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가요."





그 후로도 노부는 여러 차례, 마치다가 '우리 애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하나의 모습을 하고 마치다와 함께 토벌전에 나갔다. 가끔 S급 화염의 소환사와 S급 빙결의 소환사가 실제로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가루베나 고토를 데리고 가기도 했고, 위험도가 높은 토벌전일 때는 아몬이나 츠지무라 혹은 미야무라가 동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합을 맞춰가는 속도도 빨라졌다. 아직까지 마치다와 합이 완전히 맞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토벌전에서 실제로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편이 사쿠마가 만든 허상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할 때보다 합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되었으니까. 

가끔 실수를 하거나 서로 호흡이 안 맞을 때도 있었지만 마치다와 함께 합을 맞춰서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것은 예전에 혼자서 기계적으로 몬스터들을 죽이고 다닐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든든하고 좋았다. 몬스터 토벌 자체가 즐거운 건 아니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해 방어 스킬을 써 주고 합을 맞춰 스킬들을 배치해 빠르고 효율적으로 몬스터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신났다.

어쩌면 너무 신나 있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마치다도 노부 못지 않게 토벌전에 함께 나오면 늘 들떠 있었고 S급 두 사람이나 있는 토벌전이 큰 난관이 있을 리도 없어서 순조로운 토벌에 긴장이 풀려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아몬과 츠지무라, 미야무라, 야오토메가 고토와 가루베를 데리고 다른 토벌전에 간 탓에 노부와 마치다만 토벌을 나온 날이었다. 토벌은 순조로웠다. 몬스터 출몰을 막기 위해 도시 전체를 감싸도록 쳐 놓은 결계 밖에 있는 폐시가지의 폐건물에서 토벌전을 벌인 두 사람이 보스급의 마지막 몬스터를 처치하고 난 후였다. 여전히 질풍과 전격 쪽 소환수들이 제대로 통제가 안 되는 터라 화염이나 빙결, 매혹, 치유, 방어계 소환사들 중 하나로 환술을 걸어야 외출을 할 수 있는데 그날따라 사쿠마와 쿠니시타를 제외한 모두가 다 다른 토벌전에 가서 노부는 사쿠마 쿄스케처럼 보이는 환술을 걸고 나온 상태였다. 사쿠마가 여전히 '쿠니시타는 내 거! 외양도 못 빌려줌!'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폐시가지로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은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건물 전체에 결계부터 쳤다. 몬스터들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 폐시가지 곳곳으로 퍼지면 안 되니까. 그 후에 1층부터 쭉 올라오면서 몬스터들은 다 처리했지만 마지막 순찰을 한 번은 해야 했다. 바로 순찰을 시작하려던 노부는 뒤에서 들리는 마치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선글라스 떨어졌다."

마치다가 바닥에서 주워서 건네주는 선글라스는 사쿠마가 늘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노부는 안경도 쓰지 않고 선글라스도 잘 착용하지 않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아서 오늘 내내 몇 번이나 떨어뜨렸던 그 선글라스였다. 

"귀찮네요."
"쿄스케가 늘 착용하고 다니는 거라 돌아갈 때는 써야 되니까 지금은 일단 어디 넣어 놔. 주머니에나."

그런데 또 사쿠마가 늘 입는 의상 스타일이 주머니도 아주 크고 입구도 넓어서 넣어두면 빠질 것 같았기 때문에 노부가 한숨을 쉬며 머리에 써 봤다가 셔츠에 걸어봤다가 바지 주머니에 꽂아봤다가 이리저리 반쯤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마치다도 선글라스를 받아서 여기저기 꽂아주며 둘이 같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

마치다가 갑자기 노부를 확 밀어내며 빠르게 주문을 외자 옆에서 피닉스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은빛드래곤의 입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쏟아졌다. 그 차갑고 매서운 냉기는 숨어 있다가 튀어나왔는지 마치다와 마주보고 서 있던 노부의 등 뒤에서 노부를 공격하려 했던 몬스터에게 쏟아졌다. 몬스터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앞발을 든 채 꽁꽁 얼어붙은 걸 보고 안심할 새도 없었다. 케이가 노부 쪽으로 툭 쓰러지듯 기댔다. 

"케이!"

마치다는 노부에게 기댄 채로 다시 주문을 낮고 빠르게 외웠고 은빛드래곤은 더 강한 냉기를 쏘아내며 몬스터가 꼼짝도 못하게 두꺼운 얼음을 덧씌웠다. 그래, 지금은 저걸 해치우는 게 급했다. 노부는 품에 기댄 마치다를 끌어안은 채로 주문을 외웠다. 곧 피닉스가 얼음 위로 불길을 쏟아냈지만 얼음은 그대로 꽁꽁 얼어 있었다. 두 사람이 합을 맞춰서 만든 스킬 조합 중 가장 강력한 스킬조합으로 피닉스는 은빛드래곤이 만들어낸 얼음을 전혀 녹이지 않고 얼음 안에 갇힌 몬스터만 태울 수 있었다. 오직 피닉스만 할 수 있는 스킬이라서 두 사람의 합동공격을 본 고토가 방방 뛸 정도로 신기해했었고 언제나 노부에게 냉랭하고 불퉁한 야오토메마저도 흥미로운 표정을 했을 정도의 스킬이었다. 얼어서 꼼짝도 못하는 상태에서 피닉스의 공격을 받은 몬스터는 곧 새카맣게 타서 죽어 버렸다. 그걸 본 마치다가 떨리는 팔을 들며 다시 주문을 중얼거리자 은빛드래곤이 날카로운 창 같은 얼음덩어리를 쏘아냈고 새카맣게 타 버린 채로 얼음에 갇혀 있던 몬스터는 얼음 창을 맞고 그대로 터져 버렸다.

그리고... 

노부가 마치다를 끌어안은 채로 내려다보자 그제야 마치다가 몬스터의 발톱에 베여서 찢어진 배를 감싸쥐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다의 손이 온통 피로 젖어 있었다. 

"케이!"

마치다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중얼거렸다. 

"아이씨... 잘난 척 실컷 해 놓고 쪽팔리게."
"케이!"

상처를 덮고 있는 손이 실시간으로 점점 더 붉게 물들고 있는데 지금 그게 문제냐고! 하필이면 츠지무라나 미야무라도 없는 날에! 노부가 입술을 깨물며 상처라도 확인하려고 피로 물든 마치다의 손을 상처에서 치우려고 할 때였다. 

"그래도 케이는 듣기 좋네."

통증으로 벌써 식은땀이 배어나는 얼굴에 연한 홍조를 떠올린 채 씩 웃는 마치다를 보니 이 와중에도 그 얼굴이 너무 예뻤다. 토벌전에서 방심했던 스스로가 너무 밉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케이가 듣기 좋다는 둥 느긋한 소리를 하고 있는 케이가 답답한 이 와중에도, 식은땀에 젖은 채 뺨이 발그레해진 채 웃는 얼굴이 정말로 너무 예뻤다. 

환장할 정도로. 






#소환사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