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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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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질듯 문을 열고 달려들어오는 미치에다에

"오셨습니까, 황후마마."

쿄헤이는 그 언제나처럼 평온하게 웃으며 미치에다를 맞았다.

"나...알았어요!! 나를...그러니까메구로 슌스케 황후를 죽인 범인을요!!"

쿄헤이의 얼굴에는 조금도 놀란 기색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제가 황후마마를 찾아가기 전에, 먼저 와주셨네요."

다행입니다. 의미심장하게 웃은 쿄헤이가 미치에다의 두 손을 붙잡았다.

"에..?쿄,쿄헤이, 지금 뭐하ㄴ...."
"황후마마, 지금부터 황후마마께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딱 두갈래입니다."
"네..?"
"길을 한번 선택하시면, 다시는 되돌아가실 수 없을것입니다."
"그게 무슨..."

쿄헤이가 잡고있던 미치에다의 손을 천천히 놓아주자마자 미치에다는 제 양손에 각각 쥐어져있는 열쇠에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나 언제 이런거 갖고있었지?! 쿄헤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자그마한 하얀 상자가 미치에다의 눈 앞에 나타났다.

"이 상자 속에는...전생의 기억들을 전부 지우는 약이 들어있습니다. 황후마마께서 마시면...모두 잊게 되실겁니다. 괴로운 기억들도, 황후마마의 죽음에 대한 기억들까지도...전부."

미치에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렌에 대한 기억들도요?"
"네, 그렇습니다, 황후마마."

쿄헤이가 반대편 손가락을 튕기자 방금 전 상자와 똑같은 모양의, 검정색 상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 상자에는...황후마마께서 잊어버린 전생의 기억들을 전부 돌아오게 해주는 약이 들어있습니다. 황후마마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죽였는지, 황후마마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셨는지."

전부요.

"...어느 상자를 여시겠습니까?"

입술을 꾹 깨무는 미치에다를 보며 쿄헤이는 속으로 웃었다. 어째서 고민하시는건가요? 당신의 답은 항상 정해져있었는데. 전생에서도, 지금도, ...다음생에도 말입니다.

쨍그랑-

내용물이 모두 비워진 빈 유리병과 동시에 아래로 무너져내리는 미치에다의 몸을 받아안은 쿄헤이가 싱긋 웃었다.

"기나긴 꿈의 여정, 부디 조심히 다녀오시길."


그날은, 새로운 젊은 황제의 탄신일로 제국 전체가 들썩이는 날이였다.

"황후마마 오늘 정말정말 아름다우세요-"

분명히 황제폐하께서도 황후마마의 아름다움에 다시 반하실꺼에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신입 시녀의 해맑기 짝이 없는 발언에 다른 시녀들은 대놓고 상전의 앞에서 키득키득 웃으며 비웃음을 숨기지않았고 그에 어린 신입 시녀가 당황스러운 눈동자로 메구로 슌스케 황후를 쳐다보자 치장을 마친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시녀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정말?내가 그리 아름답니? 황제폐하께서 내게 시선을 주실 수 있을 정도로?"
"네? 네에...그야...황후마마께서는 오늘 제국, 아니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우시니까..."

그 말에 어린 시녀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칭한 얼굴이 처연한 슬픔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꼭 그랬으면 좋겠구나."

내가 그 정도로 아름다웠으면 좋겠구나. 그렇게해서, 그의 시선이 단 한번이라도 내게 올 수 있을 정도로.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제 부군 대신 저를 에스코트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황실군 단장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 황후의 시선을 눈치챈 이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황제폐하께서는, 제국 마법사협회의 장로분들을 상대하시느라...."

황후마마께서도 아시잖습니까, 마법사들이라는 양반들이 얼마나 깐깐한지. 몇천살은 더 산 양반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황제폐하께서도 고전을 치르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그게...

"...네,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얼마나 힘드실지."

진심으로 연모하고 있는 정인을 두고 다른 이와 결혼하여, 자신의 생일에 사랑하지도 않는 이를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반려로 소개해야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아주...잘 알고 있습니다."

메구로 슌스케는 느리게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에스코트는 괜찮습니다. 혼자가 더 익숙해서요."

저도 모르게 흘려버린 눈물을 전부 닦아내고, 회장에 들어가고자 했다. 제 부군은, 제가 우는 모습을 가장 싫어했으니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향한 황궁의 외진 곳에는 이미 다른 객들이 있었다.

"물건은 확실한가?"


저 사람은...이시즈카 후작...그리고.

"네. 독살이 목적이라면, 가장 확실한 방법일것입니다."

하세가와 백작..!

"아무도 몰라야할것이야."
"바로 독이 나타나는게 아닌, 서서히 퍼져 온몸을 마비시키는 약이라 아무도 모를것입니다. 검사를 해도 검출되지않는 특수한 독을 구해왔습니다."
"좋아, 사람은 제대로 매수했고?"
"그럼요- 황제궁 소속의 시종을 매수했으니 확실합니다"

제대로 해, 실수는 없어야해. 이번에야로 저 빌어먹을 애송이 황제를 없애고 스미다 공자를 황제로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이시즈카 후작과 하세가와 백작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메구로 슌스케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것을 느끼며 주저앉아버렸다가 다시 안간힘을 써 몸을 일으켰다.

"안돼...안돼...막아야해...."

렌...! 메구로 슌스케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다 이내 달음박질로 바뀌었다.

"황후마마, 어디 계셨습니까. 한참 찾았습니다!어서 연회장으로 드시지않으ㅁ...황후마마...?어찌... 울고 계십니까..?"
"나츠코...나츠코...."

시간이 없어.

"나를 도와줘."

반드시 그를 구해야해.

"메구로 슌스케 황후마마께서 드십니다-"

보고와 함께 커다란 문이 열리고 회장 안으로 들어서는 메구로 슌스케 황후에 일순 소란이 일었다. 어머, 에스코트도 없이 혼자 오셨나봐요, 황제폐하께서 에스코트하실 리 없으니 당연하겠죠, 용케 황후 자리에서 버티고 있네요 등등. 하지만, 메구로 슌스케 황후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메구로 렌 황제에게 다가간 메구로 슌스케 황후가 마법사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폐하에게 드릴 말씀이 있으니, 잠시 자리를 양보해주실수 있겠습니까."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저를 떨떠름하게 쳐다보는 마법사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않았다. 그런 황후의 모습에 메구로 렌 황제는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고 마법사들이 물러나자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허리를 숙여 황제에 대한 예를 표했다.

"생신을...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폐하."
"....고맙소, 황후."
"폐하, 작년 제 생일에 제게 약조했던것을 기억하십니까?"
"약조?"
"제가 폐하께 선물로 원하는것도, 바라는것이 없다고 했을때, 나중에라도 원하는것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셨던 것 말입니다."
"아...그랬지."
"...청이 있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말해."
"저 와인을 제게 주세요."

메구로 슌스케 황후가 가리키는 와인병에 시선을 준 메구로 렌 황제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황후가 술을 마실줄도 아는 사람인줄은 몰랐군."

생일선물이니 더 큰걸 바라도 될텐데, 별궁을 하나 더 지어달라던지, 보석이라던지. 메구로 렌 황제의 말에 메구로 슌스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저는 저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메구로 렌 황제가 제 옆에 서있던 보좌관에게 눈짓하자 보좌관이 와인병을 가져와 황후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황후가 생일날 받았어야한걸 이제 준 것뿐인데."
"저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폐하. 부디 받아주시겠습니까?"
"황후가 짐을 위해 손수 준비해주었다니, 안받을수가 없겠지."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준비해두었던 선물을 내밀었고, 메구로 렌 황제는 의아한 표정으로 제 황후를 바라보았다.

"이건...와인이 아닌가. 황후, 방금 내게 와인을 생일선물로 받지 않았던가?"
"네, 맞습니다. 와인을 좋아하시는 부군과 서로 좋은 와인을 교류하는 것이 제 생일의 소원이였습니다. 안되나요?"
"...안될리가. 생일선물은 고맙게 받지."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싱긋 웃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폐하."
"축하라면 아까 했지않은가."
"그냥...한번 더 해드리고 싶었어요."
"오늘따라...황후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는 기분인데."

메구로 슌스케는 작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폐하.

"폐하께서는 지금 행복하십니까?"
"뭐?"
"대답해주세요. 폐하는 지금 행복하세요?"
"뭐...행복하다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지. 짐의 생일에, 이리 많은 이들이 축하해주는데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나."
"...행복하세요, 폐하."

부디 더 행복해지세요, 렌.

"...황후?"
"네?"
"무슨 생각을 그리 해."

그냥...아무것도요.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고개를 저었고 메구로 렌 황제는 그런 황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와인잔 두개와 방금 전, 메구로 황후가 부군에게 바친 와인을 들고 나타난 시종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눈치가 제법 빠른 아이로군."
"...그러게요."
"황후도 한잔 할텐가?"
"그러겠습니다."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메구로 렌 황제의 손에 쥐어진 와인잔을 채우는 붉은 액체가 꼭 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나의 피가 되겠지만.

"어떻게 된거야!!! 황제가 멀쩡하잖아!!제대로 전달된거 맞아?!!!!"
"분명 연회 테이블에 제대로 들어간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와인이 확실해?!!"
"카루이'를 통해 받았으니 틀림없습니다!!"

황후의 왕관을 쓴 인형일뿐이였던 그 메구로 슌스케 황후가 손을 썼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제국의 역모자들은 독이 든 와인을 마시고도 멀쩡한 메구로 렌 황제의 모습에 혼돈에 빠졌고, 서로를 의심하다, 싸우고, 결국은 와해되었다. 황후궁에 홀로 남은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떨리는 손으로 와인의 병마개를 열었다.

옛날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에서 왔다는 노파에게서 옛날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체는 물고기였던 공주님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하지만 이해가 안돼요. 죽으면서 행복해하다니."
"너무 사랑하면 차라리 죽음이 행복해지는 법이랍니다."

사랑하는 왕자님을 구하기위해 온몸이 물거품이 되면서도 행복해했다던 공주님을,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비로소 이해할수 있었다. 와인병의 내용물을 반 정도 마셨을 때, 황후는 무서워졌다. 죽는것이 무서운것이 아니라, 이걸 전부 마시고 눈을 감게 되면, 더이상 그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 무서워졌다.

"...렌."

내가 이걸 전부 마시고나면 당신은 더이상 아프지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사라지고나면, 당신은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어.

"사랑해요."

아니...사랑했어요. 그것은, 메구로 슌스케 황후가 아닌 미치에다 슌스케로서의 마지막 고백이였다. 독은 아주 느리게 서서히, 메구로 슌스케 황후의 몸 안으로 퍼져갔다. 어느날은 눈을 뜨지못할 정도로 지독한 고열이 났고.

"커헉..."

어느날은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고, 어느날은 과호흡이 찾아왔다. 메구로 슌스케 황후의 모든 증상들은 황후의 황명으로 메구로 렌 황제에게는 영영 함구되었다. 원체부터 서왕국에서 태자비로 제국에 왔을때부터 몸이 약해 잔병 치레를 일삼던 메구로 슌스케 황후의 상태를 의심하는 이는 황궁 내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죽음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음을 직감한 날,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미리 준비해둔 단검을 꺼내들었다. 독이 퍼져 마비되어가는 몸이라, 팔에, 검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마지막 힘을 짜내었다.

그에게 제 죽음은, 자살이어야한다. 메구로 슌스케를 죽인 진짜 범인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되더라도 메구로 렌은 몰라야한다.

챙그랑-

피에 젖은 단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칼로 그은 손목도, 독으로 마비되어가는 심장도 아팠지만, 끝이 다가옴이 느껴질수록 메구로 슌스케 황후는 비로소 후련해지는 기분이였다.

"...다행이다."

이 고통을, 당신이 느끼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렌. 메구로 슌스케 황후의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내렸다.

"허억..흐으...흑..."

...마.

...마마.

황후마마...

....슌스케!

"아흐윽...흐...으으...윽..."

전부 쏟아져내린 메구로 슌스케 황후의 기억들 속에서 겨우 눈을 뜬 미치에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흐느꼈다.

"...황후마마, 정신이 드십니까?"

얼굴을 잔뜩 적신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채, 미치에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아 쿄헤이, 메구로 슌스케 황후의 죽음은 타살이 맞았어요. 범인은....

....메구로 슌스케 황후의 지독한 외사랑.







메메밋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