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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7 04:58



혼인은 황실에서 다 알아서 준비할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일정은 알아야 하므로 노부는 다음 날 오전에 일터에 가서 그만 둔다는 말을 전하고 바로 아버지와 함께 황궁에 들었다. 등왕과의 혼례 때문에 왔다고 하자 문지기는 예부로 안내해 주었다. 예부에서 알려준 혼인 날짜는 생각보다 가까워서 고작 한 달 후였다. 한 달 안에 준비가 다 되느냐고 묻자 황궁에서는 이미 반 년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노부는 바로 전날 알았는데 말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황제는 대들 수 없는 상대인지라 아버지가 먼저 퇴궐한 후 등왕의 궁으로 가자 전날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는 마치다 케이타가 노부를 맞아줬다. 

"편안한 밤 되셨습니까, 전하?"

마치다 케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편안한 밤을 보냈소?"
"네, 전하."
"예부에 들렀다 오는 길이오?"
"네, 혼례 날짜도 들었습니다."
"한 달 후라지."
"네. 저는 어제 들었는데 말입니다."

노부가 약간의 불만을 담아서 그러나 그냥 우스개소리인 척 말하자, 마치다 케이타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어제 들었소."

불만스러웠던 노부의 표정과 달리 불만이나 분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담담한 표정으로 마치다 케이타는 그렇게 말했다. 그 표정을 보자 어쩌면 이 사람은 평생을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아서 혼인 한 달 전에 '넌 이 사람과 혼인해라'라는 말을 들어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부당한 대우에 익숙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부는 쓴 침을 삼키며 말을 돌렸다. 

"그날이 올해 최고의 기일이라 합니다."
"그렇소?"

어쨌든 혼인을 할 사이고 노부는 대화제국 죽음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 왕야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길일에 혼례를 치를 수 있으니 우리의 앞날에도 좋은 일만 어쩌고 이런 말들을 늘어놓으며 늘 무표정한 얼굴인데도 귀여운 왕야의 마음도 풀어주려고 했을 때였다. 

"지금 진국으로 향할 사절단이 준비 중이오."
"진국 말씀이십니까?"
"어디 있는지 아시오?"

모르죠.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난 전하와 달리 대화제국 밖으로 한 걸음도 안 나가 봤는데. 

대화제국의 징집 규율은 독특한 면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백성에게 병역의 의무가 있지만, 집안의 대가 끊길 것을 우려해 병역 회피를 하려 하는 이들이 많기에, 황제는 집안에 외아들 혹은 외동딸만 있을 때는 병역의 의무를 면제시켰다. 형제나 자매가 여럿일 경우 한 명은 반드시 병역을 면제받았다. 스즈키 집안에는 아들이 셋이었기 떄문에 노부의 형 두 명이 계속 징집을 당하는 동안 노부는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노부는 한 번도 전쟁터에 나간 적이 없었다. 

"제가 대화제국 밖으로 걸음해 본 적이 없어서."
"대륙 북쪽에 있는 나라요. 윤국은 북부의 서쪽 끝에 있고, 진국은 북부의 동쪽 끝에 있소."

'있었고'겠죠. 윤국은 전하가 이번에 멸망시키고 왔잖아요. 이미 윤국의 멸망 소식은 저잣거리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노부는 오늘 직장을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하러 갔을 때 동료에게 지난 전쟁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대화국은 남부와 대륙의 중앙 지역을 중심적으로 정복해 왔기 때문에 윤국은 북부의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대화제국이 고전할 거라 예상하고 방비를 소홀히 한 모양이었다. 등왕의 부대가 윤국까지 진격해 가는 시간, 그리고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 전쟁에 소요된 시간의 몇 배일 정도로 순식간에 멸망당했다던가. 윤국은 거의 저항도 못하고 무너졌다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노부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이동에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고, 전투는 만만했다면 노부를 만나러 왔던 왕야의 손등과 얼굴, 갑옷과 투구에 튀어 있던 피는 어디서 나온 것이었으며 왜 미처 지우지 못했느냐였다. 무심코 그런 질문을 하자 노부와 똑같이 말단관리지만 친척 중에 고위관리가 있어서 곧 승진할 거라는 소문이 도는 동료가 그랬다. 

등왕 전하의 부대가 도성에 들어오기 직전에 암살단이 움직였다 하오.
암살단?
맞소, 암살단. 도성에 거의 다 와서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린 모양이긴 한데, 아무래도 사신의 명성도 있는 데다 부대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기에 암살단도 꽤 규모가 있었다 하더이다.
몇 명이나?
10명이 넘었다던데.


노부가 침을 꿀꺽 삼키자 노부가 그 등왕과 혼례를 치르게 됐다는 것을 모르는 동료 관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스즈키 형도 사신의 추종자였소? 걱정 마시오. 일부러 긴장이 풀리는 식사 시간을 노렸는데 등왕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고 다 목이 따였다고 하니까.
배후는? 누가 암살단을 보낸 건지는 알았다고 하오?
지금 알아내고 있겠지. 살아남은 놈이 몇 있는데 잡혀갔거든. 우리 폐하가 '사랑하는 나의 아우'를 건드리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수 차례 천명하셨고.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왕야에게는 정말로 상처 하나 보이지 않긴 했으니 암살단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건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착잡해서 차를 한 모금 마시려던 노부는 노부가 등왕의 궁을 방문한 지 벌써 꽤 됐는데 차 한 잔 내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천덕꾸러기로 자란 황자라고 해도 지금은 사신으로 불리는 남자인데 궁인들의 간이 배 밖에 나온 모양이었다. 죽음의 신이 무섭지 않다니, 간도 크지 다들.

​​​그래도 화로에 주전자는 올려져 있어서 뚜껑을 열어 보니 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다행이네. 마치다 케이타가 자신의 집에서 내 온 차를 좋아하는 것 같길래 마침 노부가 선물로 찻잎을 가져온 터라 그 찻잎을 꺼내 찻잔에 담았다.

"북부의 동쪽 끝이면 가는 데만 한참이나 걸리겠습니다."
"사절단은 우리와 달리 마차가 여러 대 움직이니까 아마 가는 데만 한 달은 걸릴 것이오."
"네."

그 사절단에 이 왕야가 포함될 리는 없었다. 황제는 '사랑하는 아우'를 오직 검으로만 썼다. 타국과의 외교 자리에 이 아우를 세운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노부가 갈 것도 아니고. 사절단이 오가는 것과 두 사람의 혼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텐데. 

"그리고 진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아마 열흘 안쪽일 테고. 돌아오는 데도 한 달 정도."
"네."
"그러니 빠르면 두 달 보름, 늦어도 세 달 후에는 출정할 것이오."
"네.... 네?"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주전자를 들고 있던 노부가 흠칫 놀라서 손을 크게 떨자 마치다 케이타 노부의 손을 굳게 잡고 주전자를 탁자 위에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진국은 호전적인 성향이라 하니 화제국에 흡수되는 것을 거부할 테고 사절단이 돌아오자마자 내가 출정해야 하오."
"..."
"그래서 혼례가 급하게 잡힌 듯하오."
"아..."

노부는 쿵쾅쿵쾅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다시 주전자를 들고 마치다 케이타의 찻잔에 뜨거운 물을 따른 다음 자신의 찻잔도 채웠다. 노부는 징병된 적이 없지만 주변에 징병을 당한 사람들은 꽤 많았고 노부의 두 형도 전쟁에 나간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늘 무사히 돌아오라는 말을 하며 작별했었는데 10년간 내내 전장에서 살아왔을 이 사람한테는 뭐라고 말을 해 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한 노부는 그래서 일단 가지고 온 함을 꺼내놨다. 

"전하, 혹시 드시면 탈이 나는 음식이 있으십니까?"
"탈이 나다니?"
"먹으면 발진이 돋는다거나 열이 난다거나... 배탈이 난다거나 숨쉬기 힘들다거나 하는 음식이 있습니까?"
"그런 건 없소."
"감, 호두, 잣, 꿀, 유자 그리고... 해바라기씨, 대추를 드셔도 괜찮습니까?"
"괜찮소."

그래서 노부는 안심하고 둘째 형수의 야심작이 담긴 함을 열었다. 둘째 형수는 죽음의 신이 자신의 설기를 너무 마음에 들어한 나머지 사랑하는 아우에게도 갖다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는(노부는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둘째 형수의 기쁨이 망상을 멋대로 키운 듯했다)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자신작은 설기가 아니라며 야심차게 만들어 준 것이다. 손이 많이 가서 잘 안 만들지만 이게 진짜 자기의 자신작이라고. 

마치다 케이타는 노부가 내놓은 형수의 야심작을 보면서 동글동글한 눈을 깜박거렸다. 

"곶감?"
"곶감단지입니다."
"곶감... 단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암살단을 만나기도 했을 정도로 늘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사는 사람이라 칼을 쓰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탁자 위 바구니에 담긴 작은 칼을 들었다. 다 시들어 빠진 과일 옆에 그래도 구색을 갖추기 위해 놓아 둔 모양이었다. 곶감단지를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자 견과류와 대추, 유자청과 꿀이 안을 꽉 채우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형수가 전하께 꼭 맛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해서 가지고 와 봤습니다."
"고맙소."

마치다 케이타는 노부가 작게 잘라 준 곶감단지를 한 조각 집어서 입에 넣었고 얌전히 씹었다. 그리고 예쁘고 큰 눈이 곧 동그래졌다. 입에 맞는 모양이었다. 어떤 맛인지는 노부도 알고 있어야 장단을 맞춰줄 수 있는 만큼 오기 전에 형수에게 하나 얻어 먹고 온 노부는 견과류의 고소한 맛과 꿀의 달콤함, 견과류와 곶감의 식감이 잘 어우러져서 계속 손이 가는 맛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치다 케이타는 미세한 표정 변화로 보아 맛이 마음에 든 게 분명한데도 노부가 이미 잘라 놓은 것들만 다 집어먹었고 노부가 다시 작은 칼를 들려고 하자 손을 들었다. 

"아니, 잠깐."
"더 안 드실 겁니까?"

마치다 케이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맛이 진해서 좀 물리시는 모양입니다."
"아니오. 무척 맛있소."
"그럼... 아..."

마치다 케이타가 살린 그 동생 때문이군. 어린 동생의 목숨을 담보로 또 다른 동생을 '사랑하는 나의 아우' 따위로 지칭하면서 15년째 전장에 돌리고 있는 잔혹한 황제는 그 사랑하는 아우에게 어린 동생의 이름을 붙인 봉호를 주어서 그가 아끼는 동생의 목숨이 그에게 달려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듯이, 어린 동생에게는 그 목숨을 살려준 형의 이름을 딴 봉호를 주어서 그를 살린 것이 누구인지 잊지 않게 했다. 그래서 선왕의 21왕자 노보루는 마치가 케이타의 이름에 쓰이는 한자를 따서 계왕이라는 봉호를 받았다. 

"계왕 전하 말씀이십니까?"
"음."

노부는 고개를 끄덕이는 마치다 케이타를 보며 아직 풀지 않은 다른 함을 가리켰다.

"똑같은 양을 담아서 왔습니다. 이걸 드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고맙소."

이제 먹겠거니 했는데 마치다 케이타는 찻잔도 내려놓고 큰 눈을 깜박거리며 노부를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아...

노부가 서둘러 작은 칼을 들어서 다시 곶감단지를 한 입 크기로 잘라주자 그제야 하나씩 집어서 오물오물 먹는 마치다 케이타를 바라보던 노부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 이를 악물었다. 천덕꾸러기로 자랐다더니 황자는 황자인 모양이지. 그러나 그런 것마저도 그저 귀엽기만 하니 어쩔 것인가.

다리가 긴 체형이라서 앉아 있으니까 좀 작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노부와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정도로 키가 크고 어깨도 넓은 남자인데 부지런히 곶검단지 조각을 오물오물 먹고 있는 걸 보니 작은 새 같았다. 벌새라는 새가 있다. 노부도 본 건 몇 번 안 되지만 정말로 작은 새가 정말로 벌처럼 빠르게 날아다니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빨리 날기 위해서는 온몸의 힘을 다 써야 하기 때문에 무척 많이 먹어야 살 수 있어서 깨어 있을 때는 계속 먹어야 하고 뭔가를 먹을 수 없는 상태, 그러니까 잠을 잘 때는 먹은 것이 다 소진돼서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온몸이 항상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잘 때는 거의 반쯤 죽은 것 같은 상태라든가.

작고 (노부보다 작다는 이야기다. 아주 키가 큰 남자라는 건 알고 있다) 누구보다 맹렬하게 살고 있고, 그래서 전장에서 싸우지 않을 때는 한없이 고요한 남자. 그만큼 삶이 누구보다 치열한 사람인데. 오물오물 열심히 먹고 있는 게 너무 귀여워서. 사신이란 걸 알고 있어서 정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벌써부터 혼자서 너무 정을 주고 있어서 문제일 정도였다. 저쪽은 노부에게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그대는 뭘 좋아하시오?"

마치다 케이타 먹으라고 담아온 곶감단지를 더 집어먹은 마치다 케이타는 손을 닦고 노부가 따라 준 차도 호록 마시더니 조용히 물었다.

"네?"
"그대에게 계속 얻어먹기만 하니까"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닌가.

"혼례를 치르고 한 달 후 정도까지는 계속 도성에 계실 예정이십니까?"
"그렇소."
"그러면 자주 얼굴을 뵙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음..."
"계속 함께 살아가야 할 사이지 않습니까? 제가 매일 궁을 방문하겠습니다."
"알겠소."





그 후로 노부는 죽음의 신이라 불리는 귀여운 왕야의 허락을 받아서 매일 사신의 궁을 방문했고, 갈 때마다 다과를 만드는 솜씨가 좋은 둘째 형수의 도움으로 다양한 간식을 가지고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궁을 방문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을 때, 하인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등왕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등왕 전하가? 오셨다고? 여기에?"
"네, 들어오시라고 했는데 문 앞에서 기다리시겠다고."

노부가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달려나가자 등왕은 문 앞에 혼자 서 있었다. 몇 번이나 암살 위협을 당했다면서 이 사람이 겁도 없이. 노부는 서둘러 등왕에게 다가가며 주변을 살폈다. 근처에 사람이 몇 명 있기는 했으나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사람은 없어서 가슴을 쓸어내린 노부는 얼른 등왕 앞에 가서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늘 그대가 내 간식을 챙기지 않소. 항상 얻어먹을 수는 없으니 그대에게 보답을 하고자 왔소."
"보... 아, 네 보답. 네. 그럼 나가나요?"
"부관에게 맛있는 닭고기 요리를 내놓는 곳을 들었소."
"감사합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인데 눈이 반짝거리고 얼굴에 예쁜 홍조가 조금 떠올라 있는 게 이 나들이에 너무 신나 보여서 흔쾌히 따라나섰다. 마치다 케이타가 데리고 간 객잔은 노부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곳인데 정말로 숨은 맛집이었는지 닭고기 요리가 정말로 훌륭했다. 사실 노부는 닭고기의 맛보다 부지런히 닭고기를 먹고 있는 왕야를 지켜보는 것을 더 즐겼지만. 평소처럼 작은 새가 먹이를 쪼아먹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닭고기와 채소를 집어먹고 있는 걸 보니 정말로 지상 최고의 요리를 맛보는 기분이라서. 

그리고 오랜만에 도성 거리를 걷는다는 왕야의 말에 함께 산책 겸 노점상이 가득한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자, 어떤 남자가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을 땅에 찍어 누르고 있었다.

"소매치기... 아니, 강도인가?"

혼잣말을 하자 왕야가 물끄러미 노부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없이 바로 옆의 노점으로 고개를 돌렸다. 옥패를 팔고 있었는데 꽤 조잡했지만 모양만은 화려했다. 그 옥패들을 바라보고 있던 왕야는 다시 노부를 돌아봤다. 

"근처에 장신구점이 있소?"
"네, 몇 개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건 저기 옥 장식을 걸어놓은 저곳입니다."
"잠시 가 봐도 되겠소?"
"물론 괜찮습니다. 전하."

그래서 왕야를 쫓아가 보자 옥패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던 왕야는 소나무가 새겨져 있는 옥패를 하나 골라서 노부에게 보여줬다. 

"어떤 것 같소?"
"훌륭합니다. 조각도 괜찮고 옥도 무척 고급 옥을 쓴 것 같아 보이네요."
"마음에 드시오?"
"네."

그때까지도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돈을 쓸 고객이라는 걸 알아봤는지 바로 옆에서 정중하게 시중을 들고 있던 주인에게 값을 치른 왕야는 노부의 허리에 직접 그 옥패를 걸어 주었다. 

"전하?"
"소나무는 십장생 중의 하나가 아니오."
"네."
"내가 많이 노력하겠으나 나는 황가의 피를 이었고, 아주 많은 목숨을 해쳤으니 나와 혼인을 하면 그대의 삶도 여러 가지 풍파에 시달릴 수도 있소."
"..."
"그러나 소나무가 비바람을 이기고 오랜 세월을 버티듯, 그대도 무사히 버텨주길 바라오."
"...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많은 피를 묻히고 많은 목숨을 거두고 산 생이라 길고 평안한 삶을 살지 못하는 처지임을 알면서도 주제를 모르고 내가 그대를 반려로 욕심을 내었소. 그래도 그대는 내가 지켜줄 테니, 그대도 그대를 지켜주시오."
"..."
"나는 이런 일을 하는 한 오래 살지는 못하겠으나, 내가 목숨을 잃으면, 내가 어떤 연유로 목숨을 잃게 되든 그대와 그대의 집안에는 어떠한 해도 가지 않겠다고 폐하께서 직접 약속해 주시었소. 그러니..."
"... 전하."
"하지만 당장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마시오."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말한 마치다 케이타는 노부에게 걸어준 옥패를 한 번 살짝 쓰다듬어 준 후 장신구를 파는 가게를 나섰다. 자신은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그래도 너는 보호해 주겠다고 말하는 혼인 상대의 뒤를 노부가 착잡하게 따라가고 있을 때였다. 노부가 막 가게를 나섰을 때, 앞서 걸어가고 있던 마치다 케이타가 갑자기 돌아서면서 노부를 끌어당겨 확 품에 안았다. 그 품이 생각보다 더 단단한 것에 놀라기도 전에 마치다 케이타는 검을 검집에서 꺼내지 않고도 검집째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노부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칼날이 마치다 케이타가 치켜든 검집에 부딪치며 날카로운 금속음이 거리를 울렸다. 





#사신마치다사신의반려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