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일본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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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알아.”
초조하듯 돌아가던 펜이 잠시 멈췄다. 저도 모르게 불퉁한 말투가 새어나갔다. 방금 뱉은 말의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사실 칸타는 저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다. 벌써 한 달째 매일같이 마주하는 얼굴을 모를 리 없었지. 애써 모르는 체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가 저보다 두 학년 높다는 사실은 명찰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흰 색인 자신의 명찰과 달리 파란 명찰. 그 위에 정갈하게 수놓아진 ‘오노즈카 하야토’라는 이름도. 그리고 그가 자신을 꽤 좋아한다는 사실까지 알아버렸지만.
창 너머 보이던 흐릿한 실루엣이 옅어지자 칸타가 그제서야 슬쩍 고개를 돌렸다.
마치 저를 볼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운동장에서 붕붕 팔을 휘두르는 저 사람은,
그러다가도 눈이 마주치자 장난스레 웃으며 귀를 물들이는 저 사람은.
“지치지도 않나.”
그러게, 진짜 뭘까. 칸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별안간 좋아하게되는 마음을, 그 순수한 애정을 그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오노즈카를 몰랐다.
***
둘의 우연하고도 운명적인 만남은 바야흐로 한 달 전.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칸타가 기억하는 처음은 그랬다. 이전의 일상은 복사한 듯 같은 나날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사토 칸타는 그런 지루함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지루한게 아니라 평화롭다고 해두자. 왜 마음에 드냐고? 변화없는 일상을 유지하는데는 별다른 노력도, 열정도 필요치 않았으니까. 도전이 없는 일상에는 실패도 없었다. 욕심이 없는 그가 바란 딱 한 가지는 언제나 예측가능한 안전한 일상. 단지 그거 하나뿐이었는데.
미꾸라지 한 마리가 모든 것을 망쳤다.
***
까마득한 언덕을 걷다가 살짝 숨이 가파를 즈음 도착하게 되는 곳. 딱 그 언저리에 칸타의 집이 있었다. 학교까지는 자전거로 5분. 한 마디로 등교하기 최적의 장소라는 뜻이다. 이 집에 사는 거의 유일한 이유기도 했고.
07:00 기상
07:05 샤워
07:30 아침
07:45 설거지
07:50 출발
책상 위의 가지런히 붙여진 계획표는 꽤 오래된 듯 누렇게 색이 바래져있다. 몇 년간 한치의 오차없이 되풀이된 계획처럼, 케케묵은 낡은 종이. 손목시계가 7시 50분을 가리키자마자 집을 나선 칸타의 콧잔등이 잠시 씰룩였다. 그러니까 이건, 근래 드물게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상태라는 뜻이다. 날씨 완벽. 시간 완벽. 다림질 상태 완벽. 일 년에 몇 없을 완벽의 트라이앵클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들키기라도 한 듯, 곧 온 마을을 뒤흔드는 비명이 울려퍼졌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칸타의 눈썹이 불쾌한 듯 꿈틀댔다. 평소와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 등굣길을 완성하는 노랫소리마저 저 남자의 비명에 그대로 묻혀 하나도 들리지 않았거든. 요란한 소리의 근원을 눈으로 좇았다. 저 멀리 언덕 끄트머리부터 자전거를 탄 사람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남자가,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칸타의 눈동자가 떨릴 정도로 빠르게. 남자의 손이 분주했다. 쉴 새 없이 브레이크를 쥐었다 폈으나, 그에 따라 진작 멈췄어야 할 자전거는 미동도 없이 미친 듯이 구르고 있었고. 그리고 마침내 기적적으로 자전거가 끼익-하고 멈춘 순간, 남자의 몸이 하늘을 가르고 날았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선물…. 이라기엔 꽤 거대한데. 시꺼먼 그림자가 칸타의 머리 위로 드리우고 있었다. 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잠시 사고가 멈춘 칸타를 다시 현실로 이끈 건 공중을 가르고 전해지는 묵직한 공기였다. 그리고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고- 엄청난 소리와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남자는….
제 품에 얌전히 안겨있었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칸타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