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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0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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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대공전하-"

모두의 축복을 받는 오늘은 나의 약혼식.

"긴장했나?"
"그럴리가요, 오늘만을 기다렸는걸요."

너의 그 아름다운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질 오늘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몰라. 나의 햇살, 나의 태양. 아사히.

"두 분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입맞춤을 해주세요."

결혼식도 아니고, 약혼식에 입맞춤을 시킬거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검은 눈동자 속에는 당황한 빛이 가득했다. 당연한 일이였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니까. 돈이면 무엇이든 하는 신관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싱긋 웃어보이고는 다시 내앞에 서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해도...괜찮겠어?"

전장의 검은 사자라는 무지막지한 별칭이 무색하도록 걱정과 배려가 가득 담긴 속삭임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뿐이였다.

"모든것은 전하께서 원하시는대로."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몰라도 상관은 없었다. 이윽고 조금 망설이던 기색의 이가 커다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가린 하얀 베일을 걷어올렸다.

뺨을 감싸오는 손이 단단하고 따뜻했다.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에 눈을 감아내리자 부드럽고 다정한 감각이 입술 위로 내려앉았다. 천천히 닿았다가 천천히 떨어지는 감각에 맞춰 눈을 떴다. 베일에 가려져 안보였던 눈부신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날도, 참 맑았었지. 전생의 내 장례식날이.

12살에 들어간 아카데미에서 아사히를 처음 만났다. 아사히 히루. 이름만큼 그 애의 인생은 따뜻한 빛만 가득했다. 갑자기 몰락해버린 자작가의 집안에서, 학업은 후원으로 이어나가고 생계는 각종 노동과 아르바이트로 겨우 연명해나가는 미치에다 슌스케와는 정반대의 세계에 살고 있는 아이였다.

부유한 백작가에서 태어나,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모든것을 지원해주는 백작 부부 밑에서, 하고싶은건 다하고, 가지고 싶은 것들은 전부 손에 넣을수있는 그 애는 매일 웃고 있었고, 미움도, 화도 모르는, 성정도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같은 그 아이를 모두가 사랑했다. 사랑에 빠질수밖에 없었다.

"밋치- 공책 없어? 괜찮아, 내가 빌려줄게-"

"밋치, 괜찮아? 자, 내 손 잡고 일어나."

"다들 그만해! 밋치가 뭘 잘못했다고 괴롭히는거야?"

그래, 나 역시도. 집안이 몰락한 뒤, 낡고 찌든 옷만 입고 다니고, 눈을 다 가릴 정도로 정리되지않은 머리카락에 모두가 음침하고 기분나쁘다고 눈쌀을 찌푸리고 손가락질을 했지만, 그애만이 아주 스스럼없이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이름 그대로, 그 애는 어둠뿐인 나에게 찾아온 아침이였고, 태양이였다.

그애만 있다면, 아카데미의 모두가 날 향해 손가락질해도 버틸 수 있었다.

"크하하하- 백작님 역시 정말 통이 크십니다!!!!당장 결혼식을 준비하겠습니다!!!"

15살의 내가 거대한 지참금과 함께 팔려간 백작가의 가주는, 아주 끔찍한 인간이였다.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점점 내 몸에는 상처와 멍이 늘어갔다.

"히루...히루, 나 좀 살려줘 제발..."

나는 우연히 만난 아사히를 붙잡고 울었고, 아사히는 그런 나를 안고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그리고는

"밋치...백작가에서 도망칠수있는 방법이 있어. ...할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수밖에 없었다. 그 끔찍한곳에서, 그 악마에게서 도망칠수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향해 아사히는, 너무도 예쁘게 웃었고 나는 겨우 그쳤다고 생각한 눈물을 다시 터뜨렸다. 아, 역시 너는 나의 햇살, 나의 구원자.

그런데....

"미치에다 슌스케, 오오시마 백작 독살혐의를 인정하는가?!!!!"

무슨 소리야. 독살이라니, 독살이라니. 아사히는 분명 심한 배탈과 고열을 일으키는 약이라고 했는데.

"미치에다 슌스케는...아카데미때부터 조금 특이한 아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살인까지 할줄은....몰랐습니다...."

히루...?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러고보니...미치에다 슌스케와 함께 아카데미에 다닐 적...그가 구워온 쿠키를 먹은 다음날 크게 배탈과 고열이 난적이 있어요."

'와아 밋치, 이거 진짜 나 주려고 만들어온거야?'

'고마워 잘 먹을게-'

'밋치 이거 너무 맛있다-'

"아...아ㅇ....으..."

재갈에 물린 내 입에서는 인간의 언어라고는 생각할수없는 소리들만 튀어나왔다.

"그리고 미치에다 슌스케는...아카데미 시절에도 독초학에 유독 두각을 보였죠."

오오시마 백작님이 죽고서 슌스케의 부친인 미치에다 자작님이 죽은것도...조금...수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머, 그러고보니..!"
"몰락한 미치에다 자작가를 오오시마 백작가가 구제해줬다고 들었는데!"
"자기 부친까지 제손으로 죽였다는건가요?!!!"
"악마다!!!"
"저 악독한 마녀!!!!"

사람들은 내게 욕을 했고, 재판장이 그들을 말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했다가 입을 열었다.

"죄인 미치에다 슌스케에게 교수형을 선고한다."

깜깜한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것일까. 그렇지않고서야, 이럴수는 없잖아. 아사히가 나를 버릴 리가 없잖아.

그래 나는 이 악몽에서 깨면 모든것이 돌아올거라 여겼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죽음의 날만 가까워질뿐이였다.

처형장으로 올라온 나를 보며 사람들은 욕을 하고, 침을 뱉고, 쓰레기와 돌을 던졌다. 모든것을 체념하고 죽음을 기다리고있을때,

"잠깐만요!!!!!"
"...소백작님?"
"친구였던 이한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게 해주세요."

아사히가 나타났다. 모두가 그런 아사히 히루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 악마를 끝까지 친구라고 칭해주다니..."
"역시 예비 대공비는 달라..."
"대공전하께서도 그런 성정에 반하신거겠죠."

아사히는 내 몸을 끌어안았다. 불쌍한 밋치, 내 친구.....

"내가 네 더러운 마음을 모를줄 알았니?"

뭐...?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나를 사랑해?"

그게 무슨...

"고귀하고 유서깊은 백작가의 피를 이은 나를, 감히 몰락한 자작 가문따위인 네가 마음에 품다니."

천박하고, 더러워. 차가운 목소리와 냉소가 비현실적이였다.

"잘 들어 미치에다. 내가 너한테 말을 건 이유는, 네가 대공가의 후원을 받는 아이였으니까."

단지 그뿐이야.

"뭐...네 덕분에 대공전하와 가까워지고, 약혼까지 하게 됐으니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둘께."

잘가.

나는 너를 사랑했지만, 감히 너를 바란적도, 단 한번도 욕심내본적도 없어. 너의 친구로 네 옆에 있는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어. 그런데, 네가 내 마음을 눈치챘다는 그게, 네가 나를 버리고, 날 죽음으로 몰아간 이유야???

아사히..!아사히!!

"미치에다 슌스케의 형을 집행한다."

달라지는건 없었다. 돌이킬수있는것도 없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건 죽음뿐이였다. 집행관에 의해 덮어진 천으로 인해 깜깜하게 차단된 시야. 눈을 감은 김에 나는 신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신이시여, 존재하고 계시다면 들으세요. 당신은 정말 개새끼중의 개새끼에요. 그것도, 아사히 히루의 충견이요. 아사히의 발등이라도 핥지 그랬어요, 혹시 알아요, 나처럼 이용이라도 해줬을지.

덜컹-

기도 끝은 죽음이였다.

"허억...."

목을 감싸쥐며 눈을 떴을땐

"괜찮니?"

나는 아주 낯설지 않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여긴....아카데미의 양호실...이잖아..? 내가 왜 여기...있는거야. 나...분명 죽었는데....?

"날이 더워서 탈수 증세가 와 쓰러진것같구나. 물이랑 약 먹고 푹 쉬다 가렴."
"저...!선생님!"
"왜 그러니? 어디 아픈곳 있니?"
"그게...오늘이...몇월 몇일..아니...지금이 몇년도죠?"

내 질문에 양호선생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가 내 눈앞에 손가락 두개를 펼쳐 흔들어보였다.

"미치에다군, 혹시 이거 몇개인지 알겠니?"

아무래도 선생님은 내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는것같았지만 그런것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대답해주세요! 오늘이 몇년도!몇월 몇일이죠?!"
"오늘은...제국력 2년 7월 30일이잖니."

말도 안돼...환생? 아니야...환생이면 아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건데 나는 여전히 미치에다 슌스케잖아. 그렇다는건...나는...과거로 돌아온건가..?

"밋치-!!"

아사히 히루. 그 목소리가 들려오자,

"괜찮아?! 네가 쓰러졌다고 해서 걱정했어!"

날 와락 껴안는 그 따스한 체온이, 향긋한 체향이 느껴지자 온몸에 피가 식고 혐오감이 온 신경을 지배하는 느낌에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아 나는 돌아왔구나. 신이시여, 당신은 개새끼긴 하지만 아사히의 충견까지는 아니였군요. 오해는 풀도록 하겠습니다.

"화단청소하러 간 애가 쓰러졌대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래. 네 숙제를 대신 하느라 내 숙제를 못해서 하게 된 화단청소말이지.

"응...미안해, 히루."

나를 놓아준 아사히가 말했다.

"있지, 밋치. 실은...나 공자전하랑 편지친구가 되었어."

그래, 대공가의 후원을 받는 내 이름을 팔아 가까워졌겠지.

"공자전하 더 멋있어졌겠지?"

대공자의 이야기로 한참을 떠들던 아사히가 나가고, 혼자 남은 양호실에서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아사히 히루를 추락시킬 생각을 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은것은 당연했다.

양호실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제일 먼저 교장실로 향해 퇴학서를 냈다. 다 쓰러져가는 자작저로 아사히의 편지가 왔지만 불태웠다. 나를 만나러온 아사히를, 병에 걸렸다고하고는 돌려보냈다.

안녕, 나의 햇살. 아름다운 살인자.

방을 나서자 지독한 알코올 향과 담배냄새가 났다. 술주정을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고는 정원으로 나오자 녹이 슬어 금방이라도 쓰러질것같은 우편함 속에, 오늘자 신문이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오늘이였지. 황제의 네번째 후궁과 사통한 시노자키 남작이 체포된것이. 시노자키 남작가는 한순간에 몰락하겠지. 멀지 않은 날에, 시노자키 남작 소유의 토지들이 전부 헐값에 경매의 매물로 나올것이였다.
그리고.

"전부 매입하겠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약값과 병원비를 위해 모아놓았던 돈들을 전부 털어 땅을 살거고. 죽기 전의 기억이 맞다면, 지금으로부터 2년뒤에 제국에는 거대한 가뭄이 찾아온다. 황제폐하도 손쓰지못할 거대한 가뭄 탓에 쌀과 설탕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게된다. 물론 지금 제국내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지."

나는 로브를 더 꾹 눌러써 눈을 가렸다. 웃음이 터져나올뻔한것을 참느라 혼났다.

제국의 수도, 그중에서도 커다란 위용을 자랑하는 대저택. 대문을 장식한 화려한 조각은 제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이였다. 문패의 적힌 미치에다의 이름은, 현 제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그 아무도 없었다. 미치에다 자작가는 제국을 집어삼킨 대가뭄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비축해둔 쌀들과 설탕,향유 등을 독과점 유통하며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가문이였으니까.

"도련님, 다이몬 공작가에서 5배의 웃돈을 줄테니 제발 쌀과 설탕을 팔아달라는 서신이 왔어요. 무려 3배에요 3배!"

시종의 말에 고급 물소가죽으로 만들어진 소파에 긴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던 이가 작게 웃었다. 그래? 3배란 말이지.

"거절하고 돌려보내."
"네?하지만..."
"공국에서는 7배를 제시했다고 하고 돌려보내."

미치에다 슌스케, 몰락한 미치에다 자작가를 한번에 제국의 부를 상징하는 가문으로 끌어올린 능력과, 황궁 연회에서 황제가 제국의 모란꽃이라는 명칭을 직접 부여해주었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로 최근, 제국의 신문들의 헤드라인은 전부 미치에다 슌스케의 일거수일투족이 장식하고 있을 정도로 그의 존재는 뜨거운 감자였다.

"아 그리고...대공가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그래? 어서 가져와.

늘 여유롭던 미치에다 슌스케는 답지않게 급한 손놀림으로 밀봉된 봉투를 뜯어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리카, 대공저에 갈 준비를 해라."

모든것이 최고급이여야 한다. 완벽해야해. 한치의 실수도 없이.

미치에다 자작저의 저택도 꽤 크다고 생각했는데, 대공가의 저택은 크기도 크기였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용감이 풍겼다. 드디어 이 곳에 오게 되었구나. 드디어.

미치에다의 도착 소식을 들은 대공저의 집사가 대문을 열고 나와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메구로 대공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미치에다 슌스케님."

대공전하께서는 응접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사의 안내를 받아 향한 응접실에는 그가 있었다.

북부 제도의 주인이자 전쟁터의 검은 사자, 그리고....

'아아 밋치 어쩌지?무도회에 가면 메구로 공자님과 춤을 출 수 있을까?'

'미안, 밋치- 오늘은 메구로 공자님을 만나러 가야해서-'

아사히 히루가 그토록 바라던 남자.

전생에선, 결국 쟁취해냈던 남자.

메구로 렌 공자...아, 이제는 메구로 렌 대공.

"아스리카 여신님의 햇살 속에서 평안을. 미치에다 자작가의 미치에다 슌스케입니다."
"이리와서 앉지."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이여도 그렇지,인사도 안 받아주다니. 뭐...만나준것만도 기적으로 여겨야하는건가.

솔직히 나도 예상하지 못했단 말이지. 전생에선 그림자를 볼 생각조차 못했던 메구로 렌 대공을 이렇게 독대하게 될 수 있을줄이야.

"장사하느라 바쁠텐데, 날 보자고 한 이유가 궁금하군."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는듯한 그의 첫인사에도 미치에다는 당황한 기색 하나없이 싱긋 웃었다.

"알아주시니 감사하네요. 대공전하께서도 바쁘실테니 용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약혼해주세요.




메메밋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