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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5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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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세이, 어디야? 지금 어디에 있어? 바로 갈게."

직원들이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둘러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전화기 너머로 다행히도 평소처럼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유치원에 있어요. 선생님이랑 경찰 아저씨도 있어요. 선생님 바꿔줄까요?
"응. 류세이. 선생님 좀 바꿔 줘."

잠시 후에 선생님을 부르는 류세이의 목소리에 이어 잠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노부가 예상하고 있던 유치원 교사가 아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스즈키 노부유키 상?
"네, 스즈키 노부유키입니다. 누구시죠?"
- xx서 형사과 타니 료세이 형사입니다. 마치다 류세이군하고는 어떻게 되시죠?"
"아빠입니다. 류세이는 괜찮나요?"

류세이와 성이 다른 걸 뻔히 알면서도 요즘 이혼 가정이 많아서 흔히 접하는 상황인지 타니 형사는 별말없이 말을 이어갔다. 

- 네, 류세이군이 바로 선생님께 도움을 구해서 선생님과 기사분의 도움으로 류세이군은 무사합니다. 지금 오실 수 있습니까?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20분 안에 도착합니다.
- 알겠습니다.

옆에서 류세이의 목소리가 뭐라고뭐라고 들리더니 다시 류세이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지금 올 수 있어요?
"응. 바로 갈게. 선생님이랑 조금만 있어. 진짜 금방 갈게. 
- 응! 조심해서 빨리 오세요!

20-30분 후에 계약할 상대가 오기로 돼 있었지만, 노부가 '류세이가 납치당할 뻔했다'고 하자, 이치로는 얼른 가라고 등을 떠밀었고, 노부가 서두르다 소파에 걸려 넘어질 뻔하자, 급히 부축해 준 타카노가 노부의 손에서 차키를 뺏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서두르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까요."
"그럼 좀 부탁해."

안 그래도 가는 동안 연락할 곳이 있었던 노부는 차키를 순순히 넘기고 빠르게 타카노를 따라나갔다. 타카노는 영업사원이라 외근이 많기 때문인지 원래 타고난 건지 운전이 아주 능숙해서 빠르고 안정적으로 유치원으로 향했고, 노부는 그 사이 얼른 전화를 걸었다. 

- 노부?
"케이, 나 오늘 유치원 갈 일이 있어서 제가 류세이 데리고 올게요."
- 아, 그래줄래? 그 어플 때문에 가는 거야? 류세이가 재미있다고 하던데.

역시. 류세이가 자기를 납치하려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류세이는 케이가 류세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걸 알고 너무 놀랄까 봐 케이 대신 노부에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었다. 노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럼 점심은 네가 먹일 거냐고 천진하게 묻는 케이에게 들리지 않을 한숨을 내쉬었다. 

"유치원에서 금방 볼일만 보고 바로 류세이 데리고 갈게요. 케이 배 많이 안 고프면 좀 기다렸다 같이 먹을래요?"
- 어, 나는 좋아. 오늘은 직원들 먼저 먹고 오라고 하지 뭐.

케이는 평소에 류세이와 점심을 먹고 매장 직원들은 직원들끼리 먹는데, 아이인 류세이의 점심시간을 우선하다 보니 평소엔 직원들이 1시쯤에 점심을 먹는다고 했었다. 오늘은 덕분에 애들 밥 빨리 먹을 수 있게 됐다며 웃는 목소리를 들으며 노부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오늘 류세이 점심 조금 늦어져서 배 많이 고플 테니까 류세이가 좋아하는 거 먹어요."
- 알았어. 함박스테이크 먹으러 가자, 그러면.
"알았어요. 빨리 끝내고 데리고 갈게요."

케이를 안심시켜둔 노부는 부모와 연을 끊고 나온 뒤에도 계속 연락하고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 바쁜 사람인데 다행히 지금은 좀 한가했는지 바로 전화를 받았다. 

- 어, 노부유키. 
"형..."





유치원 앞에 차가 멈추자마자 서둘러 유치원으로 달려들어가자 선생님에게 안겨 있던 류세이가 노부를 향해 달려왔다. 

"류세이! 괜찮아? 어디 안 다쳤니? 어디 보자."

류세이는 노부가 몸을 휙휙 돌려보게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노부가 류세이의 얇은 손목에 남은 손자국에 와락 미간을 찌푸리자 류세이는 짧은 팔로 노부의 목을 감고 폭 안기며 속삭였다. 

"나 괜찮아요. 그 할머니가 나한테 같이 가자고 해서 싫다고 하니까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해서 소리 질러서 선생님 불렀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금방 구해줬어요."

노부는 류세이를 안은 채로 류세이 뒤에 있던 교사에게 고개를 작게 숙여서 인사하고 옆에 서 있던 경찰을 돌아봤다. 

"타니 료헤이 형사님이십니까?"
"네."
"사진은 찍었나요?"
"사진이요?"

노부가 류세이의 팔을 살짝 들어서 멍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곳을 보여주자 타니 형사는 인상을 와락 구기더니 유치원 밖에 있던 이들을 불렀다. 유아 납치 미수사건이었기 때문인지 미수에 그쳤음에도 경찰들이 꽤 몰려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미드에서나 봤던 자와 하얀색 판을 꺼냈다. 노부는 류세이의 가느다란 팔을 붙잡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혹시 몰라서 방에 들어가서 류세이의 셔츠를 올려봤지만 팔에 남은 멍 말고는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류세이도 그 할머니가 팔만 잡았다고 했기 때문에 팔목 사진만 여러 장 찍고 나자 타니 형사는 류세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다 끝났어. 씩씩하게 잘 했어."
"헤헤."

노부가 류세이를 다시 품에 안고 일어서서 타니 형사를 바라보자 타니 형사는 뒤를 흘긋 바라봤다. 뒤에 닫혀 있는 문이 있고 그 문 앞에 제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서 있는 걸 보니 교실인지 놀이방인지 뭔지 안쪽의 방에 노부의 어머니가 갇혀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지금껏 인사만 하고 아무 말도 없던 다른 형사가 미간을 찌푸리고 다가왔다. 

"용의자의 신분을 확인했습니다만... 정말로 고소하실 겁니까?"

대기업 오너의 배우자인데 정말로 고소할 거냐는 의미를 알아들은 노부는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을 잃었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납치가 친고죄였지? 품 안의 류세이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도록 심호흡을 하고 있자, 타니 형사가 그 형사를 돌아봤다. 

"납치는 미수로 끝났어도 범죄를 인지한 순간 수사에 들어가야 합니다."

타니라는 형사는 내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게 성격은 아주 안 좋아 보였는데 정의감은 넘치는지 타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형사를 나무라듯 차갑게 대꾸했다. 

"물론 고소할 겁니다. 민,형사 소송을 다 걸 겁니다."

재벌가의 눈밖에 나고 싶지 않은지 타니의 동료 형사는 더 미간을 구겼지만, 노부는 왜 어머니가 갑자기 이런 극단적인 짓을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오는 길에 형에게 전화를 했었고, 어머니가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섣불리 납치같은 짓을 저지르려 한 이유가 뭔지도 알았다. 노부가 어릴 때도 노부를 보호해 주려고 했었던 노부의 형은 어머니가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해 주었다.  

노부는 류세이를 구해 준 교사에게 제대로 다시 인사를 하고 류세이의 가방을 받아서 맨 다음 류세이를 다시 품에 안았다. 

"그럼 수사 진행에 대해서는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타니의 파트너는 여전히 표정이 구겨져 있었지만, 타니는 노부의 명함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류세이군이 가고 나면 용의자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먼저 가시죠."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류세이가 다시 납치 용의자와 마주치지 않게 해 주려는 배려에 노부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류세이도 노부의 품에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래, 잘 가. 류세이."





케이는 타카노까지 같이 오자 깜짝 놀랐지만 사무실에서 타카노가 재미있게 놀아줬던 기억이 있는 류세이가 '힘세고 재미있는 삼촌'이라고 하자, 마음에 들었는지 흔쾌히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씩씩하고 활기차 보이지만 갑자기 모르는 사람에게 납치당할 뻔했는데 류세이 마음이 멀쩡할 리 없어서 노부는 함께 식사를 마친 후 오늘도 류세이에게 마음을 달래줄 크레이프를 사 주려고 했었다. 

"나 없을 때 류세이한테 크레이프 사 준 거 이미 들었는데?"

케이가 눈을 매섭게 뜨고 바라봤지만. 

"양치질 잘 시키면 되죠."
"그날 초콜릿이랑 아이스크림도 추가하게 해 줬다면서."
"대신 오늘 저녁에는 채소 잔뜩 먹이자고요. 샤브샤브 먹을까요?"

케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면서 품에 안고 있던 류세이의 뺨에 입을 쪽 맞췄다. 

"엄마가 못 먹게 하는 것도 막 사 주는 사람 생겨서 좋겠네, 우리 류세이?"

류세이는 헤헤 웃으면서 케이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크레이프 못 먹게 해도 엄마가 제일 좋아."

그러면서도 류세이는 크레이프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눈치 빠르게 노부에게 딱 달라붙어서 욕심껏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추가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예전에 노부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때 노부의 눈치를 보면서도 제 뜻대로 하고 말던 케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노부는 그냥 웃었다. 





"타카노 상이 너무 고생하시네. 애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러다 몸살나기도 하는데. 어떡해."

놀이터에서 타카노가 류세이와 놀아주는 동안 케이는 노부와 벤치에 앉아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부는 씩씩해 보이는 류세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케이의 손을 꼭 잡았다.

"케이."
"응?"

류세이만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노부를 바라보는 케이의 따뜻하고 예쁜 눈을 바라보며 노부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늘 어머니가 왔어요."
"... 네 어머니?"

노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케이의 양 손을 완전히 감싸 쥐었다. 

"류세이의 유치원 앞에 와서 류세이를 데려가려고 한 모양이에요."
"뭐!"

케이가 벌떡 일어나서 노부는 케이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류세이 지금 멀쩡하잖아요. 저기 봐요. 잘 놀고 있죠, 우리 류세이. 케이 닮아서 몸도 건강하지만 마음은 더 강한 아이예요. 류세이는 괜찮을 거예요. 케이."

케이는 사색이 된 채 숨을 헐떡거리면서 류세이를 바라봤다. 류세이는 쫓아가는 척만 하고 있는 타카노를 달고 꺄르륵 웃으며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점심도 많이 먹었는데 크레이프까지 잔뜩 먹어서 걱정했더니 벌써 소화 다 됐겠네."

케이는 농담을 하려고 했지만 입가도,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전부 떨리고 있었다. 노부는 케이를 더 꽉 끌어안으며 차가워진 이마에 입을 맞췄다. 

"둘째 형과 통화를 했어요."

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는 이복형들과 나이차가 많이 났는데, 형들은 어린 시절에 학대에 가까운 혹독한 교육을 받는 노부를 종종 도와줬었고 어머니의 가혹한 양육에서 보호해주려고 했었다. 그래서 부모와 연을 끊고도 여전히 형들과는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집을 나와 케이와 결혼을 했을 때도 형들과는 몇 번 만났기 때문에 케이도 노부의 형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형들한테 그룹을 완전히 물려주려고 한대요. 그래서 회사가 완전히 형들에게 넘어가게 되자 다급해져서 그런 미친 짓을 한 건가 봐요. 이번에 류세이 납치 미수 건으로 고소하면서 진단서를 위조해 케이에게 사기를 쳤던 것도 고소할 거예요. 형들은 어머니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확실히 처벌받을 수 있게 협조할 거라고 약속했어요."

3세대에게 그룹을 넘겨주는 시기인 탓에 불필요한 구설수를 막으려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노부는 형들에게 노부가 그동안 모아 왔던 어머니의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범죄에 대한 정보도 넘겨주기로 했다.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주식도 적지 않기 때문에 그걸 노려서라도 노부에게 협조할 것이었다. 원래도 노부에게 우호적이고 선한 사람들이니까. 

"그럼..."
"납치 자체도 큰 죄지만 류세이는 미성년자고 유아기 때문에 가중처벌이 될 거예요. 류세이가 소리지르는 걸 듣고 달려나온 유치원 선생님과 차 안에 있다가 놀라서 뛰어나온 유치원 버스기사도 납치 시도를 봤기 때문에 류세이가 어리다고 증언이 무시될 일도 없고요. 감옥에 가겠죠."
"그럼 접근금지같은 것도 될까?"
"접근금지도 해 달라고 해야죠. 그런데 아마 출소하면 해외로 보내거나... 그쪽에서 처리할 거예요."
"그쪽?"
"형들이요. 계속 문제를 일으키면 회사 쪽에도 좋을 게 없으니까."

케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제는 타카노가 밀어주는 그네를 타면서 웃고 있는 류세이를 바라봤다. 

"류세이는 정말 괜찮아? 많이 놀라지 않았어?"
"저도 달래줬고 괜찮아 보였지만, 케이가 잘 달래줘요. 류세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케이잖아요. 케이가 품에 꼭 안고 달래주면 안전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을 거예요."
"응."
"미안해요. 케이."
"네가 왜 미안해. 네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류세이가 자기가 아니라 노부에게 전화를 한 게 마음쓰이는지 케이의 얼굴이 우울해져서 노부는 케이의 뺨을 감싸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케이가 울까 봐 저한테 연락한 거예요. 상황 잘 해결되고 나서 차분하게 말해서 엄마 울리지 않으려고."
"...어..."
"류세이랑 저랑 약속했거든요."
"응?"
"케이 울리지 말자고."
"뭐야 그게."

케이는 농담이라고 생각한 건지 피식 힘없이 웃었다. 진짠데.





타카노는 그날 영업 돌 곳은 다 돌았기 때문에 어차피 한가했다고 했지만 오후 내내 따라다니며 고생해 준 게 미안해서 사과하자 손을 내저었다. 

"저 이 지역에 혼자 와서 회사 사람들말고는 아는 사람도 없거든요. 거래처 사람들은 뭐 일로 만난 사이니까 빼고."
"응."
"혼자 밥 먹는 거 안 좋아하는데 이렇게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좋죠. 샤브샤브는 또 혼자 먹으면 맛이 안 나잖아요. 덕분에 맛있게 포식합니다."

다행히 타카노는 그렇게 넉살좋게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렇게 다 함께 식사를 마친 후 먼저 타카노를 집에 내려주고, 케이와 류세이를 집에 데려다줬을 때였다. 케이는 류세이의 손을 잡고 서서 머뭇거리다가 차창을 톡톡 두드렸다. 창을 내려주자, 케이가 고개를 숙여서 류세이와 함께 차 안을 들여다봤다. 

"우리집에서 잘래?"
"그래도 돼요?"
"오늘 오랜만에 우리 류세이 안고 같이 자려고 하는데 괜찮으면 너도 같이 자자. 내 침대 커."

거절할 수 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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