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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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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이요?"

아침부터 세자부부에게 할말이 있다며 황제궁으로 부른 황제와 황후는 두 사람에게 제안한것은 신혼여행이였다.

"그래, 둘다 국혼 치르자마자 바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신혼여행도 못 갔잖니. 렌한테 들으니 학교 시험도 끝나서 여유가 있는것같던데. 좀 늦긴했지만 신혼여행 가서 둘이 오붓하게 부부로서 시간도 보내고, 바람도 쐬면 좋을것같은데 어떠니?"

허니문 베이비도 좋고- 은근한 메구로 황후의 목소리에 네헤..?!미치에다는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뱉어버렸다가

"어머니, 슌은 아직 어려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 둘다 아직 아이 생각은 없어요."
"일찍이 황손을 본다면 슌스케군에 대한 여론도 좋아질텐데?"
"어머니."
"알았어, 얘는. 농담도 못하니?"

아무튼 벌써부터 팔불출이라니. 황후는 웃었으나 미치에다는 웃을 수 없었다. 아직도 형질 차별이 남아있는 이 사회에서는 오메가가 알파의 아이를 낳는건 아주 중요했으니까. 특히, 황족이라면, 더더욱 더 후계자를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황제폐하도, 황후마마는 아무것도 모르시는데...

대외적으로는 대학교에서 만난 두사람이 사랑에 빠졌다...는 적당히 뻔하고 적당히 로맨틱한 스토리로 이루어진 국혼이지만, 사실은 집안의 탈출을 원하는 저와, 적당한 결혼상대를 찾고있던 렌으로 인한, 서로의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계약...단지 그뿐이라는 사실을.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혹시나 선배가 나중에, 정말로 후계자를 원하게 된다면...어떻게해야할까. 미치에다는 우성 오메가지만 워낙 희미하고 약한 페로몬 탓에 열성 오메가로 자주 오해를 받았던 과거를 떠올렸다.

'고장난 우성 오메가' 미치에다는 그렇게 불렸었다.

"...슌?"

생각에 잠겨있던 미치에다를 현실로 돌려놓은것은 메구로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뭐를요?"
"신혼여행 말이야. 가고싶은곳 있어?"

저는....

"정말 여기로 괜찮아? 신혼여행이니까 좀더 멀리 가도 괜찮은데. 유럽쪽이나 하와이라던지."

미치에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학교 너무 길게 빠지는건 싫어요."

아무튼 누가 모범생 아니랄까봐. 피식 웃는 메구로에 미치에다는 덧붙였다.

"그리고...선배...아니 렌이랑 같이 오사카 와보고싶었어요."
"응?"
"제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다 이곳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같이 와보고 싶어서... 민망한듯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와 붉어지는 얼굴에 메구로는 씩 웃으며 미치에다의 머리칼을 흐뜨렸다.

"그런 생각도 다 했어? 기특하네-"

천천히 걷던 메구로는 이내 힐끗 눈동자만 움직여 저와 미치에다의 뒤에서 거리를 두고 걸어오는 황실 경호팀의 동태를 확인하고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슌, 내가 셋 셀테니까, 셋에 뛰는거야."
"네??"
"하나...셋!!!!"

잠깐 왜 하나에서 갑자기 셋인데요?!! 미치에다는 제 손을 잡고 냅다 달리기 시작하는 메구로에 속절없이 이끌려 함께 내달리기 시작했다. 미치에다는 보인것은 잔뜩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저들을 쫓아오는 황실 경호원들의 모습과

"앞만 보고 뛰어야 안잡혀, 슌."

잔뜩 신난듯한 메구로였다. 한참을 내달리다가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선 메구로는 사라진 저들을 찾느라 우왕좌왕하는 경호원들을 보며 작게 웃었고, 미치에다는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이래도 되는거에요?황제폐하랑 황후마마께서 아시면..."
"신혼여행인데 여기까지 와서 감시받는 기분은 싫어. 그리고 아버지는 몰라도...어머니는 오히려 재미있어하실껄?"
"그래도...나중에 돌아가면..."
"돌아가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다 책임질게."

응? 슌- 눈썹을 축 늘어뜨리는 모습이 꼭 대형견같아 결국 미치에다는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요..."

메구로가 챙겨온 분홍색 캡모자를 눈까지 눌러쓰여진 미치에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까만색 모자를 눌러쓴 메구로를 쳐다보았다.

"선배...대체 언제부터 계획하고 있었던거에요?"
"왜 다시 선배로 돌아왔어?"
"지금 그게 중요해요?!"
"슌, 고개 조금만 더 들어봐. 옳지."

미치에다에게 뿔테안경까지 씌워준 메구로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제 몫으로 챙겨온 선글라스를 꼈다.

"지금부터 우리는 황태자부부가 아니라, 신혼여행 온 신혼부부일뿐인거야. 알았지 슌?"
"....그치만 사람들이 렌이랑 제 이름 들으면 금방 알아차릴것같은데요."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이름으로 부르면 안되지, 자기야."

미치에다는 눈을 크게 떴다.

"갈까 자기야?"

복잡해지는게 제 머리인지 제 심장인지 알수없었다.

"우와아아....."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유원지의 풍경에 눈을 반짝거리며 터져나오는 감탄을 숨길줄모르는 미치에다에 메구로 역시 웃어버렸다. 이런 표정을 지을줄도 알았구나.

"진짜로 와본건 처음인데 엄청 넓어서 어디부터 봐야할지 모르겠어요..."
"미국에 있는곳은 여기보다 훨씬 커."
"가본적 있어요?"
"친구들이랑 몇번. 다음에 같이 가자."

미국을요?저랑요..?왜..? 머리위로 떠오르는 의문들을 입밖으로 내지못한 미치에다는


"이리와봐."

제게 손짓하는 메구로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 한껏 장난스러운 미소가 어려있는것을, 미치에다는 미처 보지 못했다.

"...이게 뭐하는거에요?"

메구로는 미치에다에게 우스꽝스러운 모양의 꽃모양 선글라스를 씌우고는 큭...웃음을 꾹 참았다.

"이쁘다"
"지금 저 놀리는거죠?"

선글라스 너머로 성난 고양이처럼 뾰족하게 올라갔을 미치에다의 눈을 생각하니 메구로는 더는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왜, 진짜로 잘어울려서 그런건데?"

그러자 미치에다 역시 지지않겠다는듯 우스꽝스러운 가재모양의 선글라스를 가져와 메구로에게 씌웠다.

"같이 써야 공평하죠."

얼굴 반을 가리는 커다랗고 두꺼운 선글라스를 쓰고 마스크를 쓴 미치에다와 메구로를 알아보는 사람도, 신경쓰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어딜 가나 저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수근거리던 사람들 사이에 갇혀살던 미치에다가 전혀 느껴보지못한 자유였다.

"저거 타볼래?"

미치에다는 환하게 웃고있는 메구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구로의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눈이 시리게 푸르러서 미치에다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어느새 깜깜해진 유원지의 폐장을 알리며 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을 구경하던 미치에다는 제 옆에 서있는 메구로를 흘끗 쳐다보았다. 언제부터 저를 쳐다보고있었는지 그대로 시선이 마주쳐버렸다. 선글라스로도 다 가려지지않는 다정한 검정색 눈동자에 가슴 한켠이 간질거렸다.

문득 황후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나중에 선배가 정말로 아이를 원하는 날이 올때에는...깔끔하게 이혼해주는게 낫겠지. 선배 입장에서도 제대로 우성의 페로몬을 가진 정실부인과의 아이를 가지길 원할테니까.

누구든지, 선배와 가정을 이루게되면...행복하겠지. 지금 나를 바라봐주는 이 눈동자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다는 눈빛을 받게 되겠지. ...그게 누구든간에.

"...이제 슬슬 갈까요?"

제 시선을 피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미치에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메구로는 미치에다의 손을 잡았다. 제 손안에서 움찔하는 작은 손을, 메구로는 놓치지않기위해 아주 조금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저 자그마한 머리속으로 무슨 복잡한 생각들을 잔뜩 하는지 모르겠지만, 메구로는 지금 잡고있는 손을 놔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여기는..."
"들키기 싫으면 끝까지 들키지말아야지. 예약된 호텔로 가면 우리 자유는 끝일껄?"

하며 낡은 펜션을 가리키는 메구로에 되려 놀란것은 미치에다였다.

"괜찮겠어요?"
"뭐가?"
"이런데서 잘수있어요?"

평생을 왕자님으로 살아온 메구로와 전혀 매칭이 되지않는 낡은 건물외관에 미치에다는 의문을 표했지만 메구로는 덤덤했다.

"엠티때 숙소보다 훨씬 좋아보이는데?"

메구로의 말에 미치에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요...

굳이 쓸데없는 돈 쓰기 싫어서 엠티를 가지않겠다던 저를, 대학교의 청춘 그자체를 이렇게 저버릴거냐고 경악하며 엠티비와 신청서를 미치에다 대신 제출해버린 오오하시의 손에 억지로 끌려가게된 엠티였다.

"뭐야, 메구로! 너 안온다며!"
"뭐....졸업전에 한번쯤은 괜찮지. 추억이잖아."
"캬- 짜식, 제일 늦게 와놓고 멋있는척하기는. 그렇게 안해도 충분히 멋있거든 임마?"

미이잇치- 아직도 삐졌어?? 에이잉 우리랑 놀러왔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제게 찰싹 안겨 애교를 부리는 오오하시에 작게 한숨을 내쉬던 미치에다는 메구로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눈 마주쳤다...미치에다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미치에다."

아예 제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메구로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던 미치에다는

"이거, 잘 썼어."

하며 내밀어지는 엠피쓰리에 아 이거였구나...안도의 한숨을 내쉬기가 무섭게

"저번에는 잘 들어갔어? 동네가 많이 깜깜하던데. 집에 들어가는것까지 봐줬어야했는데, 미안."

아무렇지않게 폭탄을 내던지는 메구로에 그만 할말을 잃고말았다.

"엥?뭐야. 메구로선배, 미치에다 집에 간적 있어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데려다줬어."
"둘이 친해요?"
"글쎄."

하며 미치에다를 바라보던 메구로는 여직 미치에다의 팔에 매달려있는 오오하시를 불렀다.

"후지와라군이 전화해달라던데."
"에??죠가요??왜요??"
"모르지 나야. 너 전화 안받는다고 걱정하던데."
"엣...핸드폰 배터리 나가있었네...충전기 가방안에 있는데...귀찮아..."
"나 보조배터리 있어. 빌려줄게."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후지와라군 망부석되기전에 전화해줘."
"아싸 선배님 땡큐!! 아무튼 죠꿍은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니까-"
"하하- 둘은 여전히 사이좋네."

오오하시까지 핸드폰을 들고 저 멀리 사라지자, 숙소 앞에는 두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미치에다를 쳐다보던 메구로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지만,

"메구로!!이리와서 이것좀 도와줘!!"

메구로군-!! 이내 다급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동기들의 재촉에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저 선배는 무슨 생각인거야 대체. 미치에다는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메구로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이내 가방을 챙겨들고 숙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적은 예산에 맞춰 잡은 숙소라, 오메가들이 머물기로 한 방은 턱없이 좁았다. 술에 취한 오오하시를 겨우 끌고와 구겨넣다시피 방에 집어넣어 눕히고 나니 미치에다가 누울수있는 공간은 없었다.

그렇다고 거실에서 알파들이랑 자면...위험할것같은데. 다들 술취한 상태고... 그냥...아예 밤을 새버릴까. 그게 나을것같기도 하고. 술에 취해 널브러진 인간들을 조심조심 피해 숙소를 나온 미치에다는

"미치에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거실에서 잘껄.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벤치에 앉아있는 메구로와 눈이 똑바로 마주쳐버렸으니까.

"너도 앉을래?"

거절한다해도 달리 있을 수 있는 곳도 없을뿐더러 술냄새와 잔뜩 취한 탓에 알파들과 오메가들의 페로몬들이 가득한 숙소에 돌아가고싶진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미치에다는 순순히 메구로의 옆에 앉았다.

"안자고 뭐해."
"그러는 선배는요."
"잠이 안와서. 너는?"
"뭐...저도..."
"그래?그럼 잠 안오는 사람들끼리 별구경이나 할까?"

매연투성이의 도쿄에서는 볼수없는 맑은 하늘에는 별들이 보석같이 흩뿌려져있었다.

"선배."
"응?"
"아까요."

저한테 무슨 말 하시려고 했어요? 미치에다의 물음에 메구로는 미치에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벽하늘보다 새까만 눈동자가 미치에다의 모습을 가득 담아냈다.

"....나중에."
"네?"
"나중에 말해줄게. 지금은 까먹어버렸어."
"그게 뭐에요.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불만에 가득찬 미치에다의 표정에 메구로는 웃었다. 새벽 바람이 두 사람의 얼굴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뭐...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은 새벽이네. 미치에다는 그렇게 생각했고.

"엠티 오길 잘한것같아."

메구로는 그렇게 말했었다.

"두명이서 머무를건데요."

외관은 낡았는데 안은 생각보다 깔끔하네...이리저리 펜션의 내부를 살펴보는 미치에다 대신 프론트로 가서 직원을 호출한것은 메구로였다.

"방은 하나로 주세요."

네?! 놀란 표정으로 저를 돌아보는 미치에다에 메구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신혼여행인데 각방 쓸려고했어?"



메메밋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