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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3 19:27




회사에서 아티스트마다 경호원을 붙여준 이유, 말하자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최근 인기가 좋아져 방송 출연이 많았던 제이라는 가수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는데 잠시 매니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괴한이 그를 공격한 것이다. 야외 촬영 전 차에서 대기 중인 상황이었고 차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이 차 주변에 스타일리스트와 방송 관계자 몇 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전혀 외진 곳도 아니었고 밝은 대낮이었다. 저벅저벅 운전석으로 향한 괴한은 자연스럽게 차에 타 문을 잠그고 뒷좌석에 앉은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스타일리스트가 소리를 지르며 차로 향했다. 매니저가 달려와 차 문을 열고 괴한을 끌어냈지만 이미 그 가수의 얼굴은 피떡이 되어 있었다.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스무 살의 앳된 가수가 돌연 활동 중단 소식을 전한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일반들에게는 새어나가지 않았지만 연예계는 그 사건으로 술렁였다. 물론 동요하지 않는 연예인도 많았지만 회사측에선 무시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스즈키 노부유키에게도 경호원이 한 명 붙게 됐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최소한 경호원이라면 저 보다 덩치가 커야하지 않나요?"
"스즈키. 실례잖아. 이번에 새로 계약한 경호 업체에서 가장 훌륭한 분으로 스카웃한 거라고."


딱 붙는 수트 덕에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경호원의 몸이 경호할 대상의 몸 보다 더 작고 말랐다는 것을. 하지만 회사측에선 그의 프로필을 믿어 보기로 했다. 체대 출신에 각종 무술 경력과 경호 아카데미에서 가장 우수한 점수로 수료했다는 점을.


"마치다 케이타입니다. 경호 실력과 덩치는 아무 상관 없다는 걸 앞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서서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이 꽤나 경호원 다웠지만 스즈키는 여전히 반신반의했다.


"나 업을 수 있어요?"
"스즈키. 어차피 너한텐 선택권 없어. 이미 고용했다고. 오늘은 인사하는 자리니까 적당히 해."
"가능합니다. 업는 거, 안는 거, 물 속에서 끄집어내는 거. 전부 다요. 원하신다면 지금 업어볼까요?"


소파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와 단숨에 몸을 낮추고 등을 내어줄 때 스즈키는 속으로 생각했다. '또라이네.' 그리고 또라이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연예계에 몸 담은 사람들은 어느정도 다 또라이라고 자부해왔기 때문이다. 일반인 보다는 꼭 한 술 더 떠야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오늘 처음 만난 남자의 등에 덥석 체중을 실어 업혔다. 짧은 순간이지만 스즈키는 그가 힘들어하길 바랐다. 역시 무리네요, 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기합 소리도 없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났다.


"이 상태로 복도를 전속력으로 뛸 수도 있습니다. 해볼까요?"
"아, 아이고. 그만 하시죠. 충분합니다."


매니저의 만류에 그는 순순히 스즈키를 내려놓았다. 진작 사인을 마친 계약서를 건네 받고 정중히 인사를 한 뒤 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쳐다보지 않던 스즈키는 문 닫히는 소리가 난 다음에야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저 사람 좀 또라이 같지 않아?"
"너 같은 애한테 딱인데 뭘."
"나 같은 애라니... 무슨 뜻이야?"
"넌 옆에서 좀 눌러줄 사람이 필요하잖아."
"눌러주긴, 저 사람이 나를? 장담하는데 한 달도 못 버티고 도망갈 걸. 인기 배우 경호하는 일이 쉬운 줄 아나."


자기 입으로 인기 배우라는 소리를 뱉은 게 쑥스러운지 스즈키는 괜히 저녁 메뉴로 대화 주제를 바꿨다.






















오랜만의 아침 스케줄이라 스텝들이 새벽 5시부터 맨션 주차장에 모였다. 스텝이라고 해봤자 매니저와 경호원뿐이지만. 스타일리스트는 최근에 퇴사했다. 구인 공고를 냈지만 연예인 스타일리스트 일은 고되고 급여가 적기로 유명해서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


"그러고 가세요?"


그래도 그렇지, 아침 인사도 없이 사람을 보자마자 그러고 가느냐니. 스즈키는 대답을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 평소 옷을 잘 입는 편도 아니고 스타일리스트가 구해지지 않아 스트레스 받던 중에 그런 소리를 들으니 신경질이 났다. 냉랭한 분위기에 매니저가 실없는 농담을 잔뜩 쏟아내며 운전대를 잡았다. 조수석에 마치다, 뒷좌석에 스즈키. 차는 새벽길을 빠르게 내달렸다. 분장실에 도착해 간단히 메이크업을 받고 오늘 입을 옷을 골랐다. 스타일리스트가 없으면 개인 옷을 입거나 프로그램 측에 부탁해 옷을 몇 벌 준비해달라고 할 수 있었다. 매니저와 한참을 옷 고르기에 집중하는데 불쑥 그가 끼어들었다.


"그거 입으면 답답해 보여요. 차라리 저 하늘색 입으세요."
"이거 말입니까?"
"네. 그리고 단추 두 개 정도 풀고 그 목걸이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머리도 뒤로 좀 넘기고."
"아... 너무 자유분방해 보이지 않으려나."
"드라마 홍보 때문에 나가는 거잖아요. 드라마 역할이 야쿠자 출신 선생님인데 자유분방해 보이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두 사람이 의견을 주고 받는 동안 스즈키는 멀뚱히 서서 대화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수상할 정도로 옷을 잘 입는 경호원이었다. 경호원이 왜 저렇게 꾸미고 다니는지 의구심이 들 만큼.


"그럼... 추천하신 대로 입어볼게요. 더 고민하기도 귀찮으니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긴 왠지 자존심이 상해 단추를 하나만 풀었다. 별 관심 없을 줄 알았고 당연히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대기실을 나서려는 스즈키를 붙잡았다.


"이러면 목걸이가 안 보이잖아요."
"아..."


별다른 말을 잇지 못한 건, 단추를 하나 더 풀어주려고 올라온 그의 손이 쇄골에 닿아서였다. 잠깐이었지만 아주 부드러웠다. 이런 손으로 누굴 경호한다는 거야, 라는 고약한 생각이 들지도 않을 만큼.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무대에 올라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사회자의 질문에 답을 했다. 미리 큐시트를 받기 때문에 어려운 건 없었다.


"오늘 굉장히 미남이네요. 평소에도 미남이었지만 오늘은 스타일링 때문에 뭔가 달라 보여요. 본인도 느끼나요?"


대본에 없는 질문을 잘 하지 않는 사회자였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결코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스즈키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이런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배우 때문에 당황하긴 사회자도 마찬가지였다. 스즈키상 같은 미남도 외모 칭찬은 부끄러운가 보네요, 라며 다같이 웃고 넘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대기실로 돌아와 매니저에게 잔소리 듣는 동안 마치다는 두 손을 모으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저기... 그냥 편하게 있어도 되지 않아요? 생각 보다 위험 상황이 없어 곤란하시죠? 연예인 경호라고 돈 많이 받았을 텐데 딱히 할 게 없어서."


매니저의 잔소리도 피할 겸 스타일링을 도와준 마치다에게 말이라도 걸 겸 화제를 돌린 것이 분위기를 제대로 망쳐 버렸다. 평소 노부의 입방정 때문에 머리가 아프던 매니저는 그게 무슨 실례되는 말이냐며 한마디 했고, 곧이어 마치다 역시 기분 나쁜 티를 감추지 않았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스즈키상이 보시기에 제가 쓸데없이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는 것 같아도, 언제 어디서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집중하고 있을 뿐이에요."


완전히 속마음을 들켜버린 기분에 스즈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자신이 그의 일을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직업 자체를 우습게 여겼다기 보다는, 애초에 난 경호원 같은 게 필요 없다는 오만함이 문제였다. 날 지키러 왔다는 사람이 나보다 작고 말라서, 손목이며 손가락이며 누굴 지켜주긴 커녕 주먹질이나 제대로 해봤을까 싶게 곱기만 해서.


"아, 죄송해요. 무례하게 굴 생각은 아니었어요."
"네."


맨션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마치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뒷좌석에서 눈을 감고 잠든 척 하던 스즈키는 어느 순간 정말 잠들어 버렸고 매니저 목소리에 눈을 떴을 땐 이미 주차장에 차가 세워진 뒤였다. 마음 같아선 주차장에서 손을 흔들고 헤어지고 싶었지만 마치다는 스즈키가 집에 제대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 귀가하겠다며 엘레베이터에 함께 올랐다. 20층이 꼭 200층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중간에 아무도 타지 않고 묵묵히 20층을 올라간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현관 앞까지 착실하게 따라왔다.


"아까 버릇 없는 말 해서 죄송합니다."
"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자 짧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결국 못 참고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보통은 괜찮다고 하지 않아요? 상대방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정면으로 마주친 눈동자는 서로를 피하지 않았다.


"안 괜찮으니까요."
"......"
"쉬세요. 그리고 비밀번호 바꾸시죠. 생일은 노출 위험이 큽니다."


저벅저벅 걸어 복도를 빠져 나간 그는 엘레베이터가 아닌 비상구 계단으로 향했다. 스즈키는 마음이 찜찜해 그의 뒤를 따라 비상구 문을 열었고 계단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는 얼굴과 똑바로 마주쳤다.


"여기... 금연인데요."
"스즈키상만 입 다물면 되잖아요."
"아, 뭐, 물론... 맨션 관리인한테 이를 건 아니지만..."
"하나 줘요?"
"담배 끊었어요."
"그래요. 들어가서 쉬어요. 내가 울기라도 할까봐 따라온 거 아니면."
"술 한잔 할래요? 친해질 겸..."


담배 연기를 강하게 뿜으며 그는 스즈키를 올려다 봤다. 나름의 화해 신청인 것 같아 거절하기 곤란했다.


"그래요. 대신 밖에서 마시면 드라마 방영 앞두고 괜한 트집 잡힐 수 있으니 집에서 먹죠."
"집 더러운데요"
"난 상관없어요."


알뜰하게 끝까지 태운 담배를 계단에 비벼 끈 그는 집주인 보다 빠르게 앞서 걷더니 도어락 커버를 열고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남의 집 문을 왜 자기가 열어요."
"생일은 이래서 위험하다고요. 지금 당장 바꿔요."


스즈키가 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바꾸는 동안 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경호원으로서의 버릇 같은 건 전혀 아니었고 그냥 누군가의 눈에 띌까 걱정돼서였다. 한 층에 네 가구가 사는 맨션인 것도 그렇고, 문 밖에 서서 한참이나 비밀번호 바꾸기에 열중인 걸 보면 자기 신상 보호에 별 생각이 없는 연예인 같았다. 경호원은 이런 사람을 지켜야할 때 가장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치다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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