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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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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오인씹과 황실물을 더한.

"태자전하께서 빚을 다 갚아주셨다는게 사실이니 슌?"
"그 옷들도 다 태자전하께서 사주신거고?!"

갑자기 황궁으로 불려간 미치에다를 걱정하는 사람은 집안에 단 한명도 없었다. 다만

"태자전하께서 널 정말로 마음에 들어하셨나보다! 그래 정식 발표는 언제 하신다니?"
"혹시 우리한테 전해달라고 한 건 없었니?"

자식을 팔아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자들만 있을 뿐.

"...저 피곤해요. 먼저 들어갈게요."

방으로 들어온 미치에다는 쓰러지듯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까맣게 물든 시야 한편으로 문득, 아득한 기억 한조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미치에다 슌스케의 인생에서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그래서 너무 짧디 짧았던 그 시절이. 젊은 시절, 사고로 인해 다리가 불편하셨다는 슌스케의 할아버지는 어린 슌스케가 다가오면 아픈것도 잊으시고는 늘 당신의 무릎에 어린 손자를 앉혔었다.

'슌, 우리 슌은 운명의 상대가 있다고 믿니?'
'웅?그게 머에여?'
'우리 슌을 평생 행복할수있게 해줄수 있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단다.'
'움....그럼 할아부지가튼거네?'

손자의 해맑은 말에 할아버지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슌스케는 할아버지가 왜 웃으시는지도 모르고 같이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보다 슌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만날거야.'
'웅...언제???'
'음...우리 슌이 이담에 커서 할아버지보다 키가 더 커지는 날?'

할아버지, 내가 정말 잘한걸까요. 이런식으로 도망치는게 정말 잘한 선택인걸까요. 미치에다는 까무룩 쏟아지는 졸음 사이로, 언젠가 제 머리칼을 쓸어넘겨주었던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지는것만같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안녕, 좋은아침."

....오랜만에 할아버지가 나오는 꿈을 꿨다고 생각했는데 꿈을 아직도 꾸고 있는건가. 미치에다는 문앞에서 싱긋 웃고있는 메구로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선배가 여긴 어떻게..."
"너 오늘 1교시부터 수업 있는 날이잖아. 나도 오전수업 있거든. 같이 가려고 기다렸어."
"저는 지하철로 가면 돼요."
"지하철 타면 더 불편할껄. 너 이제 뉴스며 신문에 얼굴도 다 나왔잖아."

그게 다 누구때문인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치에다는 아침부터 피곤하지 않겠냐는 메구로의 말에 반박할수가 없었기 때문에 순순히 차에 올라탔다.

"아침 먹었어?"
"아니요."
"아 진짜? 나도 못 먹었는데."

묘하게 기뻐하는듯한 메구로에 미치에다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침밥 못먹은걸 왜 저렇게 좋아하지..?

"너 이거 좋아하지?맨날 먹었잖아."

미치에다는 자랑스럽게 편의점 비닐봉지에서 삼각김밥을 꺼내보이는 메구로에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삼각김밥을 매일 먹었던건 좋아해서 먹은게 아니라 돈 아끼느라 그런건데. 하지만 눈 앞에 왕자님의 기대에 찬 눈동자를 저버릴순없어, 미치에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일 좋아해요, 참치마요맛."
"아 정말? 다행이다. 그때 네가 골랐던 맛이 뭐였는지 헷갈렸는데."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선배."

메구로에게서 삼각김밥을 가져가려던 미치에다는 쑥 삼각김밥을 뒤로 빼는 메구로에 눈을 깜빡였다. 뭐지..?나 주는거 아니였나??줬다 뺏는건가?

"내가 까줄게."
"네?아니요, 제가 할께요."

미치에다의 불안하고 걱정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은것이 무색하게 메구로는 깔끔하게 포장을 벗겨낸 삼각김밥을 미치에다에게 내밀었다. 자.

"엣..?선배...삼각김밥 깔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때는 분명....밥이랑 김이랑 내용물을 삼단분리시켰잖아요..?미치에다가 차마 입밖으로 내지못한 의문은

"연습했어."

메구로가 풀어주었다.

"나 이제 컵라면도 잘 만들어. 동궁전 나인들이 가르쳐줬어. 근데 차안에서는 컵라면은 못 만들어먹으니까 이따 쉬는시간에 편의점 갈까?내가 만들어줄게."

한껏 뿌듯해보이는 메구로의 표정에 푸하핫- 미치에다는 더 웃음을 참지못했다. 동궁전 안에서 어린 나인들 사이에서 홀로 우뚝 서서 삼각김밥을 까는 연습을 하고 컵라면을 만들었을 메구로의 모습을 상상하니 코미디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미치에다는 너무 웃어버린 바람에 찔끔 새어나온 눈물을 닦아내다가 저를 빤히 바라보는 메구로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선배. 삼각김밥 까는 연습하는거 상상해버려서 그만..."

그런 미치에다를 바라보던 메구로 역시 피식 웃었다. 그런거 아니니까 사과하지마.

"생각보다 더 좋아서."
"네?"
"나때문에 웃는거."
"무...무슨. 그렇게까지는 아니거든요."

미치에다는 귀가 따끈하게 달아오르는것같은 기분을 떨쳐내려 애쓰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미치에다- 내가 교양수업때 조별발표에 잘 참여하지못했던거 너무너무 미안해"
"나도 신입생환영회때 너한테 술주정 부려서 미안해-"
"미치에다-"

미치에다 미치에다. 미치에다는 제 이름에 노이로제가 걸릴것만 같았다. 메구로에 의해 연인사이(이라고 속이고있는거지만)이 밝혀지고 각종 매체에서도 미치에다가 메구로 렌 황태자의 약혼자로 알려지자마자 동기선배들은 대번에 미치에다에게 달려와 과거의 잘못들을 고해성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미치에다군 교양수업때 자리 양보 안해줘서 미안..."

같이 수업을 들은적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타학과 학생까지 찾아와 벌이는 사과쇼에 미치에다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들키고나서 이렇게 될거라고...예상못한건 아니지만...


"밋치-"
"선배."

메구로의 등장과 강의실은 동시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강의실 안으로 들어온 메구로가 미치에다의 가방을 챙겨들었다.

"수업 끝난거 맞지? 그럼 나 밋치 좀 데리고 나가도 될까?"

와...진짜 기빨려서 죽는줄 알았네....지친 기색으로 벤치에 몸을 기대는 미치에다의 옆에 앉은 메구로가 뺨에 차가운 컵을 대주었다.

"자, 커피."
"아, 감사해요."
"요즘 주변이 많이 시끄럽지?미안."
"됐어요. 권력의 힘을 직접 체감할수있어서 신선한데요 뭘"

메구로의 시선을 느끼던 미치에다는 메구로를 향해 마시던 컵을 내밀어보였다.

"그...선배도 한입 드실래요?아, 이런건 제가 마시기전에 물어봤어야했나."
"괜찮겠어?"
"뭐가요?"
"결혼 전에 입술부터 닿아도."

그게 무슨 소ㄹ....뒤늦게 메구로의 말을 이해한 미치에다는 얼굴을 붉혔다.

"지금 무슨말을 하시는거에요!!"

푸핫- 웃음을 터뜨리는 메구로를 미치에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흘겨보았다.

"너 진짜 귀엽다 밋치."
"이익...선배 강의 안 들어가요?선배 오후수업 연강이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이것만 주고 갈거야."

메구로는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들었다.

"이건...선황폐하의 약혼지환이잖아요."
"받아. 니꺼잖아."
"...아빠가 팔아버린걸 선배가 다시 산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제거에요."
"내 아내될 사람의 반지잖아."

그러니까 네거 맞아. 처음부터 네거였어. 차마 반지를 받지못하고 머뭇거리는 미치에다의 손을 잡아당겨와 약지에 반지를 끼워준 메구로가 싱긋 웃었다.

"역시 잘 어울린다."

어쩐지 심장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갈게"

미치에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가방을 챙겨든 메구로는

"선배!"

저를 부르는 미치에다에 고개를 돌렸다.

"그...남은 수업 잘 들으세요!"

하고 살짝 손을 흔들어보이는 미치에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는 메구로의 손에는 미치에다와 똑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너도 좋은 하루 보내 밋치."

...라고 메구로는 웃으며 인사해줬지만....

"사채갚을 돈은 있고 고향친구한테 빌린 돈은 갚을돈이 없다?!장난해?앙?!!!"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미치에다의 눈앞에 펼쳐지는것은 생지옥이였다.

"그,그게! 빚은! 내가 아니라 우,우리 사위!그러니까 태자전하께서 갚아주신거라서..!어억..!"
"그럼 그 잘난 태자전하께 우리 돈도 좀 돌려달라고하면되겠네!!!"

고향친구라고 사정사정해서 빌려줬더니 갖고 이 배은망덕한 새끼가 홀랑 튀려고 해?!!!!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다시 발을 들어올리자 미치에다의 부친은 도망치듯 기어간 서랍장에서 금으로 만들어진 시계를 꺼내 사내에게 내밀었다.

"이,일단 이거부터 받아. 옛날거긴 해도 진짜 금이라서 꽤 값이 나갈테니ㄲ..."

그리고 미치에다가 그런 부친에게 달려든것은 순식간이였다.

"아빠 지금 뭐하는짓이에요!!!!!"
"넌 빠져!!!"
"이건 할아버지 유품이잖아요!"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잖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세상에서 하나뿐인 친구분이 주셨다고 평생 소중하게 간직해달라고 부탁한 시계잖아요!!!" 절대 안돼요!!!"
"이거 안놔?!!!"

미치에다가 꼭 쥐고 있는 시계를 빼앗아가려는 부친의 힘을 이기지못한 미치에다의 손안에서는 시계가 빠져나갔고.

"아...."

미치에다는 손바닥에 난 생채기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미치에다의 손을 타고 흐르는 피에 부친 역시 흠칫했으나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고는 낮게 욕설을 뇌까렸다.

"...그,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쯧...병원이나 가. 황실에서 상처 있는 오메가를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집을 나온 미치에다는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애초에 제가 갈곳따위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지친몸을 이끌고 어딘지도 모르는 전철역에 들어간 미치에다는 오오하시에게 연락하려고 했으나 핸드폰도,지갑도 전부 가방에 놓고 나와버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허탈한듯 웃으며 벤치에 쓰러지듯 기대어 앉은 미치에다의 눈에 공중전화 부스가 들어왔다.

충동이였다. 공중전화의 다이얼을 누른것은.

"여보세요."

메구로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나 왜 핫슨이가 아닌 선배한테 전화 걸어버린거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여보세요?"

미치에다는 그저 메구로의 목소리를 듣고있기만 했다.

뭐라고 말해야하지? 집을 나왔어요. 지갑이랑 핸드폰을 전부 놓고와버렸는데 갈데가 없어요. 그런거 선배한테 말할수있을리가 없잖아...

유일한 가족이였던 할아버지의 흔적마저 빼앗겨서 이제 나한테 남은건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머리속에서 어지러이 맴도는 것들은 많았으나 그 어떤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미치에다."

제 이름을 부르는 메구로에 미치에다는 심장 한켠이 욱신거려오기 시작했다.

"밋치, 너 지금 어디야."

어딘지만 말해줘, 내가 갈게. 다정한 메구로의 목소리에

"으윽..."

미치에다는 목끝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서러움을 더는 참을수가 없어서, 수화기를 쥔채 주저앉아버렸다.

"밋치."

메구로의 목소리에 미치에다는 무릎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가쁜숨을 몰아쉬는 이에게는 바람냄새가 났다.

"선...배."
"괜찮아? 다친곳은 없어?"

다급하게 제 상태를 묻는 메구로에 미치에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슬며시 생채기가 난 오른쪽 손을 뒤로 숨겼으나

"...너 손 왜 이래."

제 손을 낚아채서는 상처를 확인하자마자 얼굴이 굳어가는 메구로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밋치."
"....."
"나랑 결혼하자."

미치에다는 새삼스럽게 청혼해오는 메구로에 눈물이 그득한 눈을 들어올렸다.

"이대로는 안돼. 내가 더 못 기다리겠어."


그러니까 약혼말고, 결혼하자.


메메밋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