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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4 05:09



연반ㅈㅇ 알오ㅈㅇ



타케루가 너무 울어서 노부가 이불에 꽁꽁 싸매여져 있는 타카토를 슬쩍 타케루 앞에 보여주자, 조그만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좋은지 타케루는 눈물 젖은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현무가 나타난 일의 뒷수습을 노부와 타카토가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아직도 화가 나고 황당한데, 제 반려의 얼굴을 보여주니 좋다고 얼굴이 풀어지는 친우를 보니 또 그리 나쁘지만도 않았다. 그러나 900년 만에 실실 웃는 친우가 보기 좋아도 12시진이나 진통에 시달리고 현무 때문에 또 놀란 탓에 쉬지도 못한 반려가 옆에 있으니, 노부는 친구들을 서둘러 내쫓았다.

그러나 벗들이 다 떠나고도 노부와 케이타는 늦게까지 잠들지 못햇다. 류세이의 반려는 노부와 케이타의 아이가 청룡이라 그런지 확실히 발달이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다. 타카토는 오늘 태어났는데 발달이 빠른지 아닌지 알 수 있느냐고 (미심쩍게) 물어보자, 오늘 태어난 아이가 눈의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라나. 발달이 빨라서 아이가 예쁜 건 아니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좋았다. 그저 노부만의 아이였다면 아이가 노부의 피를 이었다고 해도, 노부와 같은 청룡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랑스럽진 않았을 것 같은데, 노부의 품에 안긴 채로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며 입을 못 다무는 반려와 함께 만든 아이란 걸 생각하자, 그저 잠을 자는 것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그러나 물론 가장 예쁘고 가장 좋은 건 따로 있어서... 고생한 반려를 더는 이대로 둘 수 없겠다 싶어서 노부는 반려를 침상으로 이끌었다.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잘 싸매두고 사방을 꽁꽁 막아둔 아이의 작은 침상 옆을 떠나지 못하는 반려를 침상으로 데려온 뒤 품 안에 누워서 배시시 웃는 반려를 보자 입가가 절로 허물어졌다. 매일 밤 품 안에 안고 토닥토닥 직접 재워주는데도 노부의 품 안에서 안심하고 잠드는 반려를 보면 볼 때마다 가슴이 울컥했다. 

"타카토가 좀 자랄 때까지 꿈길 초대는 조금 미룹시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익히려면 타카토도 너무 힘들 테니."

노부의 반려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우리 타카토는 한동안 젖 빠는 법이나 머리 가누는 법, 몸 뒤집는 법, 기는 법을 배우기도 벅찰 테니까요."
"하루에 8-9할은 자면서 보낸다는데 남은 1-2할의 시간 동안 그 많은 걸 다 배우려면 힘들겠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누구나 다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니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노부의 반려는 아무래도 몸이 많이 피곤한지 졸린 눈을 깜박거리면서도 말을 이었다. 

"청룡으로서는 어떤 걸 배워야 합니까? 나는 법이나..."

말꼬리가 길게 늘어지는 것이 영 졸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더니 노부의 반려는 곧 노부의 팔을 베고 색색 잠들어 버렸다. 노부는 반려가 길었던 진통과 이후의 소동 때문에 많이 지쳐서 숙면에 들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답을 했다. 그의 반려가 그에게 답을 구하며 던진 질문에 답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으니까. 

"나는 법이나 방어나 공격 등 신수들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능력들은 다 배워야 할 것이고, 치유나 복원, 예지도 어느 정도는 익히겠지만 그런 것들은 청룡의 대표적인 힘은 아닌지라 우리 아이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하오. 우리 타카토가 타케루를 다시 반려로 받아들일지 아닐지 알 수 없지만, 그 아이도 자신의 반려를 지켜야 하니. 힘들게 자기를 낳아 준 모친에게 효도하는 법도 배우고."

그러자 푹 잠든 줄 알았던 노부의 반려가 품 속에서 작게 웃더니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노부의 뺨을 쓰다듬었다. 

"부친에게 효도하는 법도 배워야지요."
"안 잤소?"
"전하가 말씀을 하시는데 어찌 잡니까?"
"나 때문에 못 잘 줄 알았으면 조용히 있었을 것인데."

어린 시절 노부가 잠 못 들고 울까 봐 졸린 눈을 부비며 노부를 재우려 애쓴 적도 있었던 노부의 반려는 지금도 눈도 뜨지 못하고 웃으며 노부를 토닥이며 노부의 품에 고개를 푹 파묻었다. 

"이제 잡시다, 좋은 꿈 꾸시오."
"편안히 주무십시오, 전하."
"편안한 밤 되시오, 나의 비."





류세이의 반려가 말한대로 타카토의 발달은 꽤 빠른 편이었는데 탄생할 때 현무가 나타났던 일 덕분인지 궁 안의 누구도 타카토의 빠른 성장에 의구심을 표하지 않았다. 현무의 축복을 받은 아이니 당연히 빨리 성장하리라 믿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아이가 빨리 자라고 있어서 노부와 노부의 반려 모두 타카토가 자라는 걸 지켜보느라 다른 데 신경 쓸 틈도 없이 빠르게 2년이 또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은방울꽃궁으로 손님들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아몬과 가루베는 혼례를 치른 지 오래인데 계속 아이가 없다가 뒤늦게야 아들을 보고 행복으로 반짝거리고 있었지만, 노부와 케이타는 그런 아몬과 가루베 부부를 보고서도 마음 편히 웃을 수가 없었다.

타카토가 태어났던 날 타케루가 은방울꽃궁 위를 빙빙 돌며 날아다닌 덕분에 타카토가 황위를 거부하기 힘들어졌으니 타케루 네가 책임지라고 하긴 했지만. 또한 타케루가 태자의 반려가, 훗날의 황제의 반려가 될 수 있을 신분으로 현신해 오라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떡하니 금군 통령의 아들로 태어나서 올 줄이야. 노부와 케이타는 잠시 말을 잃었지만 가루베가 계속 아이를 갖고 싶어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두 사람은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그리고 태어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는 타케루는 역시 신수라 발달이 빠른지 아장아장 다가오더니 태자비에게 안겨 있던 타카토의 손을 꼭 잡으며 배시시 웃었다.

아몬과 가루베는 혹여나 태손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댄 게 문제가 될까 조금 걱정하긴 했어도 자기들의 아이가 마냥 귀엽고 예쁜 듯했지만, 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의 안에 현무가 들어 있다는 걸 아는 노부와 반려에겐 신체 나이의 어림을 핑계로 반려에게 닿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게 훤히 보였다. 그런 마음이 훤히 보인다고 해서 사랑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십여 년을 어린 몸으로 사는 수고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반려가 가장 부담없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타카토보다도 어린 몸으로 현신하는 노력까지 하는 걸 봤는데 마음이 안 갈 수가 있을까. 결국 노부와 반려가 타카토의 손을 잡고 배싯배싯 웃고 있는 타케루를 보며 웃어 버리자, 타케루는 더 용기가 생긴 듯 허리에 매고 있던 조그만 주머니를 열어서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당과를 꺼내더니 타카토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우리 아이 먹이려고 제가 대충 만들어 본 것인데."

가루베는 난처한 얼굴로 웃으면서도 아이에게 먹고 싶을 때 챙겨먹으라며 작은 주머니 안에 담아 주었던 간식을 친구에게 나눠 주는 게 기특한 모양인지 환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 타카토는 작은 손으로 당과를 톡 잘라서 반을 타케루의 입에 넣어주고, 나머지 반을 제 입에 넣으며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아몬이나 가루베나 아이를 미끼로 억지로 태자와의 연을 강화할 마음은 품지 않을 사람들이었지만,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 가루베는 종종 타케루를 데리고 은방울꽃궁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황자녀들에겐 일부러 궁 밖에서 글동무를 구해서 붙여주기도 하고, 둘이 서로를 좋아하는 듯하니 둘이 친구로 지내게 하면 좋겠다 여긴 모양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타케루는 정말로 다시 만난 반려를 놓칠 생각이 없었고, 다시 타카토의 반려가 되기 위해서 가장 확실한 인물로 현신해 온 것이었다. 남은 것은 타카토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타카토가 두 돌을 지났을 때에 노부는 타카토에게도 자신의 반려에게 주었던 것과 같은 용비늘 목걸이를 걸어주며 목걸이를 사용해 노부의 꿈으로 오라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노부와 반려는 처음으로 아기청룡에서 조금 더 자란 아이청룡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부친이나 모친의 품에 가뿐하게 안길 수 있을 정도로 작았지만 이제는 날개도 제법 자랐고 몸의 태도 완연히 청룡처럼 보이게 된 어린청룡은 아이같은 귀여운 목소리로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은 많고 익숙하지 않은 것도 많아서, 노부가 입에서 불길을 뿜어내는 것을 보여준 후 따라해 보라고 하자, 타카토는 입에서 아주 조그마한 불똥만 톡 뱉어내고는 의기소침해졌다. 작은 입에서 위협적인 불길 대신 소박하게 톡 튀어나오는 작은 불똥도 너무 귀엽고, 제 입에서 제 부친처럼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나오는 대신 조그마한 불똥만 튀어나오는 걸 보고 당황한 얼굴도 너무 귀엽고, 노부나 노부의 반려가 작은 불똥을 만든 것도 아닌데 원망하듯 쳐다보는 울망울망한 눈도 너무 귀여웠다. 그래서 오늘은 꼭 불길을 내뿜는 걸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은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노부는 반려와 어린청룡을 데리고 날아다니며 놀다가 바람이 좋고 물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우리 타카토 천재다 너무 빨리 배우고 있어서 이 모친과 부친이 가르치기가 힘들 정도다 한참 칭찬을 해 주며 달랬다. 그러자 오만하지는 않지만 저가 속상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모친과 부친의 마음은 충분히 헤아릴 정도로 착한 아이는 곧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속상함을 털어냈다.

훗날 노부의 반려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모두 끝내고 나면 노부와 함께 전 대륙을 둘러볼 시간은 차고도 넘친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이라서 더 기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걸 알기에 노부는 타카토와 반려를 데리고 종종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황제는 정정했고 4황자가 태자비와 태손을 살해하려 시도했다가 처벌을 받은 이후 아무도 태자와 태자비를 위협하려는 이들이 없었다. 애초에 4황자 말고는 정치 권력에 욕심이 있는 황자녀들도 거의 없었고. 황자녀들의 취미도 워낙 다양해서 여행이 취미인 황자는 어느 지역에 가면 폭포와 기암괴석의 풍경이 절묘하다, 어느 지역에 가면 소금사막이 근사하다 알려주었고, 음악에 조예가 깊은 한 황녀는 어느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전통음악을 꼭 들어봐라.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그 지역 전통악기와 해당 지역 특유의 정서가 어우러져서 정말 독특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조언해 주었다. 

그렇게 세 가족이 단란하게 떠나는 여정에는 가끔 타케루가 따라붙기도 했다. 타케루와 타카토가 정혼을 한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워낙 서로를 좋아하고 꼭 붙어 있었던지라 아이들이 고작 대여섯 살 때부터 저 두 아이에게 다른 반려를 붙여줬다가는 사달이 나도 크게 날 거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타케루는 아주 어릴 때부터 황실 가족의 일원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러나 노부는 타카토가 이런저런 주변사람들에 밀려서 반려를 선택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드디어 타카토가 작은 불똥 대신 제법 그럴 듯한 불길을 뿜어낸 날, 축하 잔치를 겸해서 셋이서 노부의 꿈속에서 도란도란 맛난 것들을 먹으며 물었었다. 

"타케루가 마음에 드니, 타카토?"
"네."
"타케루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고려해서 네 마음이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단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하렴."

그때였다. 타카토는 새콤달콤한 나무열매를 꿀꺽 삼키고 노부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 노부의 반려는 벌써 깨서 노부의 품 안에서 묘한 표정을 하고 누워 있었다. 

"잘 잤소, 나의 비?"
"편히 주무셨습니까, 전하?"

노부는 여전히 오묘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반려의 뺨을 쓰다듬다 웃었다. 

"타카토가 한 말이 계속 신경 쓰이시오?"

그러자 노부의 반려는 눈꼬리를 귀엽게 접으며 웃었다. 

"사실 우리 타카토가 타케루를 처음 본 날 타케루한테 받은 당과를 반으로 똑 잘라서 타케루의 입 안에 넣어줄 때부터 타카토가 타케루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건 당연히 알았고, 타케루가 줄곧 주장한 대로 우리 아이가 타케루의 반려가 맞다는 것도 알았지만."
"직접 들으니 또 다르시오?"

노부는 그저 웃기만 하는 반려의 얼굴을 보며 지난 밤 꿈에서 조그마한 어린청룡이 진지한 표정으로 하던 말을 떠올렸다. 

- 당신께서는 보셨겠으나 저는 900년 전 그때 타케루가 저를 잃고, 아이를 잃고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이가 얼마나 괴로웠을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보다 저를 더 우선해 주었던 이니. 그 이가 저를 잃고 괴로웠던 시간 이상으로 행복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다시는 그 이가 저 때문에 괴롭지 않도록, 제 옆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그게 저의 바람입니다.

아직 발음도 또박또박 못하는 아이라 발음이 군데군데 새기는 했으나 진심은 충분히 전해졌다. 그래서 아이가 작은 입에서 불길을 뿜어낼 때보다 더욱 청룡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노부가 그런 자신의 아이를, 자신과 같은 청룡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타카토는 배시시 웃으며 노부를 폭 끌어안고 짧은 팔을 뻗어서 케이타도 꼭 끌어안았다. 

- 그래도 저는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사랑하는 두 분의 아들입니다. 제가 다시 저의 반려를 만날 수 있게 된 것만큼, 두 분의 아들로 태어나 사랑받고 자라는 것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영리한 아이는 노부는 청룡이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만, 아직은 인간인 모친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지 노부 반려를 꼭 끌어안고 조그만 입으로 제 모친의 뺨에 입을 촉 맞췄다. 

- 사랑합니다, 어마마마.

노부의 반려는 아이의 애교에 결국 웃고 말았는데 고작 네 돌인 아이가 제 반려를 지키는 것이 삶의 목표라 말하는 걸 들으니 기분이 묘한 모양이었다. 

"그대에겐 내가 있잖소, 나의 반려."

노부의 반려는 부러 골이 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삐진 듯 속삭였다. 

"역시 제게는 전하뿐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타카토는 여전히 두 사람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타카토는 두 사람의 품 안에서 사랑만 받으며 쑥쑥 자랐고, 타케루는 자연스럽게 황궁과 제 집을 오가며 900년이나 기다려 온 시간을 만끽했다. 





세월이 흘러 노쇠한 황제는 양위를 선언했고, 태자는 즉위식을 치르게 되었다. 이제 노부는 황제의 궁으로, 노부의 반려는 모란궁으로 옮겨야 하기에 노부는 즉위식을 치르기 전날 은방울꽃궁에서 마지막으로 밤을 보내며 이제는 어른이 된 지 한참인 반려를 어릴 때처럼 무릎 위에 올려 앉았다. 

"900년 전 타케루가 현무를 낳을 것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현무가 제 반려에 눈이 멀어 세상보다 반려를 더 귀히 여기게 됐기 때문이라 여겼소."
"네."
"결국 현무는 반려를 잃자 세상을 불태우면서 하늘의 우려가 옳았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했지."
"음, 네."
"그때 나는 세상에도 사람에도 그다지 애정도 흥미도 없었소. 세월이 흐르며 청룡의 제단이 잊혀지게 된 것은 내가 세상을 잊고 그저 존재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지. 그래서 새 현무가 태어날 뻔한 것을 알았을 때 곧 새로운 청룡도 태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현무가 그랬듯. 하지만 내 마음을 움직인 이가 아무도 없으니 청룡을 어떻게 태어나게 할 수는 없었지만."
"..."
"그런데 그 잊혀진 제단을 그대가 정돈해 주고, 양갱을 올리고, 절을 올리고, 나의 행복을 빌어주었을 때."
"..."
"내게 세상이 다시 의미를 가지게 됐소."
"전하."

노부는 그저 흑백으로 존재하고 있던 세상이 다시 빛을 찾게 했던 어린 아이를 떠올렸다. 노부의 반려는 어릴 때도 귀하고 예뻤다. 그러나 노부가 그저 아이의 예쁜 낯에 마음이 움직인 건 아니었다. 그저 조심스럽게 제단을 닦고 하나뿐인 양갱을 올리고 곱게 절을 하는 아이가, 행복하세요 속삭이던 아이가, 내관의 손을 잡고 돌아가면서도 제단을 몇 번이나 돌아보던 아이가 그리도 예뻤다. 그 아이가 예쁘다고 생각한 순간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던 세상이 서서히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노부는 그때보다 더 아름다워지고 우아해진 반려의 뺨을 쓰다듬다 조용히 속삭였다. 

"나의 반려... 그저 살아지고 있어서 살아 있던 내가 세상을 스스로 살아가게 한 이가 바로 너였다. 네가 내게 삶을 주고 세상을 주었다. 네가 내 삶이고 내 세상이다."

노부의 반려는 까맣고 예쁜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고 물끄러미 노부를 바라보다가 노부의 입술에 가만히 입술을 맞대어 왔다. 

"전하는 제게 삶이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란 것을, 세상이 두렵기만 한 곳이 아니란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전하가 제 삶을, 제 세상을 아름답게 해 주셨습니다."

노부가 달콤한 반려의 입술을 한참 머금고 달콤함을 즐기다 촉 가볍게 입을 맞춰주자, 노부의 반려는 노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시 속삭였다. 

"저도 전하의 삶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 아름답고 귀한 반려를 위해서 노부는 푸른색의 비단 예복을 겹겹이 걸치고 반려와 함께 즉위식을 진행하며 황궁의 하늘 위로 푸른 몸체가 눈부시게 반짝이는 청룡의 모습을 드러냈다. 꿈에선 종종 청룡을 보았지만 현실에선 처음으로 청룡을 보는 노부의 반려는 눈을 반짝거리며 황궁 전체를 덮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데도 위압적이지 않고 우아한 청룡을 바라봤다. 거대한 청룡이 날개짓을 할 때마다 푸른 빛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황실 가족들의, 문무백관의 그리고 백성들의 환호가 수윤제국을 뒤흔들었다. 즉위식 축하 사절단으로 온 류세이가 그 광경을 보고 요란하게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이죽거리자 노부는 타카토의 정혼자 자격으로 타카토의 옆에 서 있던 타케루를 보며 씩 웃었다. 

"명색이 청룡이 다스리는 나라인데 현무의 축복을 받는다는 말을 듣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리고 타카토가 성장하는 동안 내도록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소식이 없던 아마미야는 웬 의원 하나를 옆에 달고 즉위식을 보러 왔다. 

"내 반려야. 츠지무라 슌타로. 인사해."

집안 대대로 의원 일을 하고 있다는 의원은 제 반려가 이제 수윤제국의 황제가 된 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하자 놀라서 허둥거렸지만 제 반려를 나무랄 생각은 하지 못하고 혹여나 제 고운 반려가 벌을 받을까 서둘러 반려를 뒤로 감추는 것이 긴긴 세월 외로웠던 백호도 드디어 제 짝을 만난 모양이었다. 

너무 긴 세월을 무미건조하고 외롭게 살던 친우들이 이제 제 반려들을 만나서 노부처럼 아름다운 세상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역시 현무보다 청룡이 더 멋있는 것 같습니다. 청룡이 최고입니다."

그렇게 속삭이는 반려가 그의 곁에 있다는 것이 제일 기뻤다. 






읽어준 부케비들 너무 ㅋㅁㅋㅁ 놉맟은 출차순하고 부케비들은 영원히 놉맟 같이 해!!!
#노부마치수수께끼의황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