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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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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가족끼리 식사자리인데 빨리 벗어나고 싶다
히라랑 있을 때 보다 떠들썩한 식사이지만, 나는 어색한 웃음만 비추고 있다
하룻밤만 자고 가라는 여동생의 말을 뒤로한 채 엄마에게 갖은 반찬을 받아 히라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창밖을 바라보며 어린시절을 떠올려본다
나의 어릴 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눈물이 날 것 같이 아프지도 않았지만, 웃음이 나올만큼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이 꼬리를 물어 본가를 갈때마다 내 자리는 별로 없다는 생각이든다

히라가 있는 곳으로 빨리 가고 싶다
지하철 창 바깥으로는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 안가지고 왔는데..”
.
.
.

뛰어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전철역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린다

“키..키요이!”

오늘 촬영있다고 늦는다고 했는데 쟤가 왜 여기있지?

“너 오늘 늦는다고 했잖아”

“내가 오..오늘 아침에 비 온다고 얘기 모..못해줘서”

“그래서 그냥 촬영 째고 온거야?”

“노구치상한테 말했어, 키요이를 데리러 가야한다고, 그러니까 속시끄럽다고 그냥 보내주셨어”

노구치상은 분명 머리를 짚고 속으로 욕하고 있을게 안봐도 뻔하다
조금은 노구치상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나 몇시에 온다고 말 안했는데?”

“기다렸어 언젠가는 올테니까..”

내가 캄캄한 방안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렸던 마음이었다

“바보야? 내가 자고 왔으면 어쩌려고”

주책맞게도 눈물이 날 것 같다
같잖게 뭔 눈물이야

그냥 두 팔로 히라를 꽉 안아본다

“키..키요이?”

히라는 당황한 것 같지만 지금은 놓아줄 수 없다
나는 이 남자가 좋다
바보 같고 어린 생각이지만,
나만 바라봐 주는 이 눈, 나만 생각하는 이 마음을 놓칠 수가 없다

조금 뒤 히라도 손을 올려 나의 등을 쓰다듬어 준다

“무..무슨일 있었어?”

“아니”

“괘..괜찮아?”

“..그냥 이렇게 잠시만 있자 히라”

안긴품에서 히라의 향이 느껴진다
딱히 향수를 쓰지 않지만, 늘 사용하는 바디워시의 향이 난다
시원하고 달콤한 향, 이 향기는 히라의 집에서도 맡아진다
쓸쓸했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된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히라의 품에서 벗어나 우산을 집어들었다
히라는 두개의 우산을 가져왔지만 나는 우산을 하나만 쓰고 히라와 팔짱을 꼈다
히라는 잠깐 놀란것 같았지만 이내 행복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 손에 있던 우산을 받아들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저번에 말했던 쇼핑하자”

히라는 나에게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사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나 오늘 죽어도 좋을 것 같아 키요이..”

“그렇다고 죽지는 마 나랑 같이 오래 살아”

“ㅇ..응 그럴게!”

기분 나쁜 남자이지만, 이 남자랑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앎그 히라키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