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hygall.com/544242710



"살다살다 이런 큰 돈도 다 만져보고. 출세했다, 타니 료헤이."
"오늘 손님이 유달리 많네."
"어제보다 매출이 높을 건 확정이야. 이제 말 걸지마. 돈 세는데 헷갈려."


그가 앉은 탁상 양 옆과 뒤로 돈자루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타카노는 신이 나서 구리동전을 쓸어담고 있는 말괄량이 음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차양막을 슬쩍 올려 천막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리 될 것을 예상한 귀비마마의 통찰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경험을 전화위복시켜 유리한 수로 바꿔내시다니. 대단하신 분이야."
"뭐라고? 안 들려!"


혼잣말로 중얼거렸으나 타니는 셈에 방해를 받았는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나 줄 잘 섰다고."
"뭐래."







목마사건이 민간에 알려진지 오래되었다. 막 소문이 퍼질 무렵, 그 처참한 분위기란 말도 못했다. 사람들은 싼 입으로 그 사건이 얼마나 추잡하고 낯뜨거운지 조롱하였고 끊임없이 적나라한 장면을 상상하고 재생산하며 소문의 실체를 궁금해 했다. 만일 숙비가 쑥덕거리는 인파에 섞여 있었으면 큰 소리로 박장대소하였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소문의 질은 추하고 나빴다. 그러나 귀비는 사람들의 호기심이 그처럼 작용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느 날, 저잣거리 아이들이 누구에게 배웠는지 모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귀비마마는 말을 탄다네
황제폐하가 어여뻐 하네



아이들은 말을 탄다는 문구에 숨겨진 뜻을 몰랐다. 그저 천진한 동심에 골목마다 떼창을 부르고 다녔다. 듣는 어른들은 아이들과 달랐다. 그들은 노랫말에 내포된 음흉한 의미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가사의 함의로 치면 뒤에서 몰래 쑥덕거려도 모자랄 무서운 소리. 노랫소리가 들리는 골목마다 호된 꾸지람이 이어졌다. 그러나 아이들의 장난기가 어디 쉽게 근절되던가. 노래는 널리널리 제국 방방곳곳으로 퍼졌다.

 
귀비마마를 우롱하는 가사가 아무데서나 수시로 들려오자 사람들은 관청에 떼로 잡혀가 황실모독죄로 몽둥이질 당할까 우려하였다. 그러나 처벌은커녕 단속도 일체 없었다. 마치 모욕을 당하든 말든 수수방관하듯이. 시간이 지나자 아무도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노래의 중독성이 혀를 잠식해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애어른 할 것 없었다. 모두들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랫말을 타고 퍼진 소문 덕에 제국에 목마사건을 아니 들어본 자는 없었다. 그 쯤 되자 영원히 단물이 나올 것만 같던 자극적인 이야기도 구설에 올리기 시들한 소재로 전락하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드디어 소문이 종식된다고 안도하였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귀비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소문의 힘은 빠졌을지언정 아직 화제성은 살아있는 이 때를 그는 기회로 삼았다. 귀비는 아예 그럴 듯한 허구를 지어내 백성들에게 공연했다. 타카노를 사업 인력으로 차출하여 적당한 공연장 터를 찾아내었고, 또 극장을 세우고, 시장을 조성하고, 배우를 기용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이 사업의 진짜 주인이 귀비라는 사실은 엄중한 기밀에 부쳐졌다.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허구로 재창조했다. 사실이 부분부분 편집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 지어낸 이야기였다. 자극적인 내용을 소재로 하는 만큼 극은 기조부터 선정적이었다. 전기수가 무대 가장자리에서 비련의 연인이 돌고 돌아 연심을 확인하는 이야기를 읽어주면, 배우는 대사를 읊거나 이야기에 어울리는 춤을 추었다. 야하지만, 저속하지는 않았다. 어떤 구간은 음악이 흐르기도 하였다. 음악은 대체로 서정적이거나 농염한 분위기를 띠었다. 무대의 배경은 마구간으로 설정하였다. 하여 곳곳에 목마를 소품으로 두었는데, 사업의 상징물이나 다름없는 중요한 물건이기에, 조금이라도 저질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도록 근육과 갈기가 세심하게 살아있는 탁월한 공예품으로 준비했다. 목마는 극의 내용과 어우러지며 묘하게 야릇한 풍을 냈다.


극의 전개, 장치, 연기, 연출 그 모든 것이 이전에는 없던 형식의 예술이었다. 그리고 대단히 직관적이면서 또 관능적이었다. 연극은 빠르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극단 단원들은 평소의 품행부터 외모까지 일일히 관리를 받았다. 황제와 귀비의 실화를 근거로 하였으니, 자칫하면 배우의 평판이 곧 황제와 귀비의 평판과 동일시되고 만다. 배우들은 절대 품위를 잃어선 아니 되었고, 공연중에도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천박해 보이면 안 되었다. 대중친화적이지만 위엄 있는 인상을 남기는 것, 쉽지 않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할 선전목표였다. 타카노는 귀비마마께 받은 기획서를 매일 들여다보았다. 대중에 선전할 것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자신이 보고 느낀 귀비마마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배우들이 잘 재현하게끔 사사건건 극단에 간섭했다. 배우들은 타카노의 깐깐한 지시를 귀찮아 했지만 그럭저럭 기강을 유지했다. 


새로운 놀이문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비력 있는 중산층과 귀족들이 유행의 구심점이었지만 서민층에도 화선지에 떨어진 먹물처럼 급속하게 유행이 번졌다. 극장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은 유행에 뒤쳐지고 시시한 사람 취급받았다. 극장 주변에는 타카노가 직접 세우지 않은 장터와 민박이 급증했다. 노점 상인들도 즐비했다. 언제부턴가는 귀비마마를 닮은 인형과 목마 장난감을 만들어 파는 상인도 등장했다. 조악한 물건임에도 장난감은 불티나게 팔렸다.


귀비를 흉내내는 음인들도 거리에 널리기 시작했다. 창백한 낯빛, 또렷하고 총기가 흐르는 눈, 음울하게 앙다물어진 입, 우아하지만 묘하게 아랫도리를 근질이는 색기, 걸음걸이에 불필요한 움직임은 없고 말수는 적어야 한다. 멋 좀 부린다는 음인들이 하나 같이 똑같은 표정과 발걸음으로 돌아다니니 이런 진풍경도 없었다.


더욱 더 귀비를 닮고 싶은 욕망은 신분에 따라 엄격하게 차별을 둔 의복에 마저 뻗어나갔다. 선전縇廛의 비단상인들은 붉은 비단만 찾는 손님들 성화에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했다. 개중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귀비와 너무 똑같은 차림을 흉내내는 바람에 관청에 단속 당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이들은 모두 다음부터는 주의하는 경고만 받고 풀려났다. 법도대로 엄히 다스렸으면 곤장을 맞았어야 하는 범법행위가 선처로 끝나자 귀비마마는 너그러우시다는 풍문이 돌았다. 


연극은 사회현상 마저 바꾸어 놓았다. 본래 제국민은 소국민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꺼렸다. 그런데 요즘은 환상과 선망이 생겼는지 아리따운 소국 출신 음인과 애틋하고 관능적인 사랑을 나누고 싶어했다. 먼저는 돈과 권력을 앞세워 극단 배우를 사려는 제국 귀족들이 줄을 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배우들의 신비를 지켜야히는 타카노는 바빠졌다. 배우들이야 관리 하에 있으니 어떻게든 단속한다 쳐도, 귀족들이 문제였다. 타카노는 임시방편으로나마 외모가 반반한 소국민 음인을 소개시켜 교제를 부추겼다. 연극이 성행하는 와중에도 소국민을 멸시하는 풍조는 여전하여 귀족들은 떨떠름하게 거절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일단 정분이 나면, 진도는 일사천리였다. 출신의 귀천 따위야 불타는 연심에 던져넣을 장작일 뿐이었다.


블과 한 달, 그 사이에 제국민과 소국민의 혼인률이 급증했다. 비록 첩실 자리만 허용되었지만, 어쨌든 반목하고 갈등만 빚어내던 그들이 스스로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황제 부부가 추구하는 햇살정책에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연극사업 전체가 선제적으로 시행된 햇살정책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사업확장이 가속화되면서 타카노는 혼자 사장직을 지킬 수 없었다. 홀로 모든 업무를 일임받기에는 사업이 너무 커진데다, 본디 그는 황실군 소속 장수라 사업이 종료되면 다시 황궁에 돌아가야 했다. 하여 타카노는 이 공연사업의 대표가 될 바지사장을 물색했다. 잠재적인 후보가 제법 많았지만 최종적으로 낙점된 인물은 타니 료헤이라는 생각시 출신의 음인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내명부의 알력다툼에 이용당하다가 태상황이 승하할 때 궁에서 방출되었다. 덕분에 황궁이라면 학을 떼었고, 타카노가 황실군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를 볼 때 마다 있는대로 인상을 썼다. 자기소개에 따르면 궁인이었던 몸이라 혼인도 못하고 이런저런 잡역으로 입에 풀칠하고 산다고 하는데, 방출된 궁인이 출신을 속이고 혼인하여도 별달리 제재를 가하지는 않기에 출신 때문에 혼인을 못한다는 건 핑계였다. 오히려 괴팍하게 찡그린 인상과 다혈질 성질머리 때문에 정을 붙이려던 짝도 도망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타니는 황궁과 얽히기 싫다며 바지사장이 되어 달라는 타카노의 턱에 대뜸 주먹질을 했다. 민첩한 타카노는 가볍게 공격을 피했지만, 코 앞에 자리한 주먹엔 제대로 맞았으면 아구창이 돌아갔을 옹골짐이 있었다.


"꺼져. 진심이다. 절대 안 해. 협박해도 안 해. 설득도 안 당해. 황실의 황 자도 꺼내지 마. 가."
"힘도 좋네. 역시 마음에 들어."
"뭐 이 새끼야?"


주먹에 담긴 흉폭한 진심을 보고서도 타카노는 타니 료헤이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포기할 수 없었다. 타니 료헤이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불세출의 재주를 갖고 있었는데, 한 번 본 얼굴은 절대 잊지 않는 신기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뿐만 아니라 눈치가 빨라 수상한 자를 발견하는 눈이 귀신 같이 밝았다. 언젠가 타카노는 그와 함께 북적이는 인파 속에 있었다. 그런데 타니는 어지러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에 겹겹이 가려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얼굴을 투시경으로 들여다 보는 것 마냥 훤히 발견해냈다. 어떻게 보았냐고 물어도 그는 그냥 보인다고만 했다. 가히 놀라운 재주를 목도한 타카노는 타니를 반드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기실 그는 눈만 밝은 것이 아니라 몇 년 간의 궁생활로 다져진 내공 덕에 황궁의 생리에도 밝았다. 이 만큼 훌륭한 이력은 다시 못 찾는다. 장차 큰일을 함께 도모해 주리라.


타카노는 돈으로 타니를 유혹했다. 세치 혀 보다는 후한 선금이었다. 떠밀듯이 내민 돈주머니를 타니는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손바닥 안에 묵직함을 느낀 순간 그의 입 안에 침이 고였다. 가난 속에 단비처럼 내린 돈이 황궁에 대한 환멸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타니. 저기 저 사람. 몇 번째 방문이지?"


두어 번 관람을 했으면 질려서 다시는 안 올 것 같은데 수십 회차를 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타카노는 출궁한 후궁전 나인들이 시간을 내어 이 공연을 보러 오는 경우도 자주 목격하였다. 방금 발견한 자도 궁인이었다. 


"자꾸 말 걸지 말라고! 또 잊어버렸잖아!"
"사람 얼굴은 잘만 기억하면서 셈은 왜 그리 서툴러?"
"그럼 네가 세! 같은 자리에 서서 농땡이만 부리는 주제에!"


농땡이가 아니다. 엄연히 임무를 수행중이다. 현장 실무를 감독하느라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일이 잦아서 그렇지. 잔말 말고 빨리 오라고 손짓하자, 타니는 험상궂게 인상을 찌푸리며 타카노가 선 자리까지 왔다. 바깥을 내다본 그는 이마를 긁적이며 궁금했던 신원을 줄줄 불었다.


"덕비전 소속 지밀나인. 특이사항. 출궁하기만 하면 예외없이 이곳을 찾는다. 오늘로 6회차. 자주 방문하는 점이 눈에 띄지만 순수히 공연에 흥미가 있어서라고 추정중."
"궁인이 저렇게 자주 나올 수가 있나?"
"12시간 일하면 하루 꼬박 쉴 수 있으니까. 드문 일이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출궁할 수 있지."
"흠. 역시 그 쪽으로는 해박하네. 그 외에 주의할 점은?"
"딱히? 일단은."


타카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타니의 기억력을 짧게 칭찬했다.


"잘했어. 이제 가서 하던 일 해."


재수없는 칭찬에 타니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타카노는 자신을 향해 부라리는 두 눈을 모르는 척 했다. 


"너 진짜 내가 고자질 안 할 줄 알지? 농땡이 부린다고 다 말할 거야."
"귀비마마께서는 나를 더 신임하셔. 그리고 이것도 일이야. 나는 관리감독, 너는 내가 고용한 실무담당."
"뭔 씨! 서서 쳐다보기만 하면서 관리감독은 무슨 웃기고 자빠졌네. 눈 뜨고 자지 말고 백날 부족한 좌석 늘릴 궁리라도 해!"


나날이 느는 관객수에 자리가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객석 확보는 타카노의 업무였으므로 그는 말끝을 흐리며 조금 변명했다.


"다 중요한 일이라고... 이제 돈 세. 다 끝나면 모듬전 사줄게. 전 좋아하잖아."
"아, 짜증나!"


입으로는 짜증난다고 하지만 타니는 제 자리로 돌아가 구리동전을 세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셌는지 잊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세야 했다.






"장사 자—알 된다!"


타니는 붐비는 극장 입구를 바라보며 전을 씹었다. 타카노는 접시에서 완자를 한 점 집었다가 날카로운 젓가락 신공에 다시 떨어트렸다. 완자는 데구르르 굴러 타니의 앞으로 갔다.


"어딜 넘봐. 넌 한 개만 먹는다며."
"그래. 실컷 먹어라. 대신 사람들 얼굴 잘 기억하고."
"네네—."


말끝을 늘어뜨리는 불량한 대답으로 깐죽댄다. 타카노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완자 한 개 값으로 대략 쉰 명의 얼굴을 저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다면 가성비가 좋다. 그는 기꺼이 자신의 나무젓가락을 부러트렸다. 


놀거리와 먹거리가 있으면 사람은 모인다. 귀비마마가 세운 극장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의 대표격이 되었다. 홍보할 필요도 없었다. 백성들이 스스로 퍼트린 소문으로 홍보는 이미 되어 있었다.


"대박이지 않냐? 다들 이 극장이 생기기 전에는 뭐 하고 놀았는지 기억도 안 날 걸?"
"타니. 나 쳐다보지 말고 사람들을 봐."
"아이 씨.. 그 놈의 잔소리는."


그는 툴툴대며 고개를 인파 쪽으로 돌렸다. 타니를 바지사장으로 앉힌 이유는 저 밝은 눈. 수상한 자의 감식 및 색출이다. 한눈 팔면 곤란하다. 귀비마마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이 공연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으나 그 만큼 온갖 사람들이 꼬였다. 대부분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설령 깽판을 치고 다시는 건달놈이라 할지라도 타카노가 제압하고 겁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귀비마마를 견제하는 세력에서 몰래 감시원을 파견하여 동태를 살피고 있다면, 그게 누구인지 타카노는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어, 저번에 왔던 나인이다. 출궁해서 놀러왔나?"
"어디?"
"저기."


타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 끝에는 평상복을 입었지만, 비밀리에 신원을 조사하여 화비전 나인임이 확실시된 음인이 있었다. 그녀는 돈통에 입장료를 넣으며 줄을 서고 있었는데 옆에 또 다른 음인을 대동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아마 그 동행인 역시 궁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정체를 알아두기로 했다. 타카노는 심부름꾼을 시켜 그녀에게 감시를 붙였다.


"뭐야. 저 인간은 또 처음 보는 인간이네."
"또 누구? 어디?"
"저기. 얼굴은 왜 또 꽁꽁 싸매놨어?"


타니가 고개를 내뺐다. 하루에 열 명도 넘는 인원을 수상한 놈으로 가려내는 타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상한 자를 발견하면 뺀질거리던 목소리가 진지해진다. 바로 지금처럼. 타카노는 얼른 타니의 시선을 따라갔다. 


"대체 어디?"
"저기, 갓 쓴 놈. 왜 이렇게 못 봐?"
"네 안력과 비교하지 마. 얼굴 기억했어?"
"어."


타카노는 끝내 갓 쓴 자를 찾지 못했다. 타니에 비하면 턱없이 어두운 눈으로 인파를 뒤지는 사이 공연시간이 임박해 관객들이 천막 안으로 사라진 것이다. 한발 늦었지만 어떻게든 찾아내어 그에게도 감시를 붙이기로 했다. 


"오늘따라 감시 붙일 놈들이 많네."
"나 왜인지 알아."
"왜?"
"그분들께서 잠행 나오시는 날이잖아. 원래 제일 중요한 날에 일이 꼬이는 법이거든."
"참나.."


정말 이유를 아는가 했더니. 실없이 농담에 타카노는 언짢게 눈을 굴렸다. 그런데, 그 농담이 꼭 틀린 말이라 할 수는 없다. 분명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선전사업이 얼마나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황제와 귀비 내외가 직접 감사를 나오시는 것이니까. 타카노는 자신을 행운의 사나이라고 자부하지만, 일의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운 반면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힘든 하루가 되겠군."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중얼거렸다. 이번 기회에 꼭 좋은 점수를 따내 차후 승진의 발판으로 삼고 싶었다. 수상한 자가 얼쩡거리거나, 배우가 사고를 치거나, 무엇이 되었든 공연진행에 차질을 빚는 불미스러운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경비에 좀 더 신경써야겠어."


그는 결연한 발걸음으로, 같은 자리에서 서서 움직이지도 않는다고 맹비난 받은 곳을 벗어났다. 타니가 사색이 되어 말했다.


"씨. 떨려. 너 없는 동안 그분들 오시면 어떡하지."
"어쩌긴. 인사드리고 네가 모셔야지."


그는 커다란 접시에 딱 반입 남은 전 조각을 내려놓곤 입맛이 뚝 떨어진 눈으로 쳐다보았다.


"황가랑 얽히기 싫은데. 아이고 내 팔자야."
"아까는 당당하게 나를 근무태만으로 일러바치겠다며?"
"진짜 말할 거야."


무서워서 오금이 저려도 사소한 장난에 대한 앙갚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인가. 타니 료헤이의 앙심이란 깊고 하찮다.


"해질녁이니 슬슬 오실 때가 되었네. 걱정하지 마. 아마 네가 모시기 전에 내가 먼저 돌아올 거야."
"야!! 아마로는 안 돼. 무조건 돌아와."
"그때는 내가 그분들을 가까이서 모셔야 하니까 네가 대신 수상한 자를 감시해. 혹 낌새가 나쁘면 바로 내게 알려야 해."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서라도 타카노는 두분을 직접 모실 작정이다. 그것을 깨닫고 타니는 안심하였다. 전도 다시 달아졌다.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타니는 짧게 대꾸했다.


"가."








귀비병 걸린 백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