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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5 04:56


어차피 마치다 케이타는 왕자로 태어나서 수윤제국에 오기 전에도 풍국에 사절단으로 갔을 때를 제외하곤 평생 궁에서만 살았지만 어린 태자비가 하루 종일 궁에 갇혀 있는 게 안쓰러웠기 때문에 태자는 잠행을 나갈 때 태자비를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학자 집안의 어린 아들 정도로 보이도록 단정하고 우아한 옷을 입히고 '전하' 대신 '형님'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하고 데리고 나가자, 어린 태자비는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연국에서도 궁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 데다 풍제국에 갈 때는 마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해서 저잣거리에 나와 보는 건 처음입니다."

누가 들을까 태자의 귀에만 그렇게 살짝 속삭였던 어린 태자비는 태자의 손을 꼭 잡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런저런 풍경을 열심히 눈에 담았고 교묘한 볼거리로 시선을 끄는 장사꾼이나 화려한 장신구를 파는 노점상을 보면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쏙쏙 내밀었다. 목청 좋게 호객을 하며 손님들을 끌어모으는 엿장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기에 엿장수 앞으로 데리고 가자 입을 반쯤 벌리고 엿장수의 현란한 춤사위를 구경하기도 했다. 엿장수는 눈을 반짝거리는 작은 태자비가, 아니 그 뒤에서 작은 아이를 든든하게 지키듯이 서 있는 태자가 좋은 물주로 보였는지 입을 헤 벌리고 있는 태자비의 입 안에 작은 엿조각을 쏙 넣어 주었다. 수윤제국에서는 당연히 태자가 애지중지하는 어린 태자비에게 좋은 것들만 먹게 하고 있었지만 연국에서도 아무리 눈치밥 먹는 왕자라고 해도 왕자는 왕자라 저잣거리에서 파는 엿을 먹을 일은 없었을 테니 생전 처음 먹어보는 엿의 맛이 신기한지 동글동글한 눈이 커다래져서 태자를 돌아봤다. 

"전... 형님!"
"맛있느냐?"
"네, 맛있습니다."

작은 태자비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다가 엿장수를 돌아봤다. 

"혹시 우리 형님도 하나 맛보게 해 주시면 안 되겠소?"
"아이고 되고 말고요, 도련님."

엿장수가 물주를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엿 한 조각을 태자비에게 건네주자 작은 태자비는 엿을 받더니 까치발을 하고 태자의 입 안에 넣어주려고 했다. 허리를 숙여서 받아먹자 어린 태자비는 발을 동동 구르며 태자를 바라봤다. 

"맛있습니까?"
"그래. 맛있구나."
"그럼 제가 사 드리겠습니다!"

잠행을 나오기 전에 용돈을 넣어 준 돈주머니를 꺼내려고 하길래 만류하고 엿을 넉넉히 담아달라고 하며 10전을 건넸다. 보아하니 노점 한쪽에 쌓아둔 종이봉투 가득 담은 엿을 1전에 팔고 있었던 듯하니 엿장수는 입이 찢어질 듯 좋아하며 봉지 두 개에 가득 엿을 담아서 건넸다. 양심이 아주 없는 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게다가 2전 벌 것을 10전을 벌었으니 기분이 작히나 좋은지 싱글벙글하고 있는 어린 태자비의 입 안에 엿을 하나 더 넣어주기도 했다. 

빵빵한 엿봉투를 품 안에 소중하게 안고 하나씩 빼 먹으면서 걸으면서도 여기저기 신기한 먹을거리가 보일 때마다 눈을 떼지 못해서 가다가 콩국도 사 먹이고 떡도 사 먹였다. 고기 고명을 가득 얹은 국수를 파는 노점상 앞을 떠나질 못하기에 국수도 한 그릇씩 먹고 일어섰다. 잘 먹고 쑥쑥 커 주면 어린 태자비가 빨리 잘 자라기만 바라는 태자에겐 기쁜 일이라 부지런히 사 먹이고 환궁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장신구점이었다. 가게 외관조차 화려하게 꾸며놓은 곳이다 보니 어린 태자비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기웃거려서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태자비는 점주가 회심의 상품들이라며 보여준 장신구들을 보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고 태자를 돌아봤다. 그러나 태자는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터라 태자비를 무릎 위에 앉히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점주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몇 달 전 책봉되신 태자비께서 거주하시는 궁이 은방울꽃궁이지 않습니까, 공자님들도 아시죠?"

황후의 궁인 모란궁은 황제와 황후가 대를 이어 바뀌어도 이름이 바뀌지 않지만 황제 후궁들의 궁이나 태자비, 태자 측비들의 궁은 사람이 새로 바뀔 때마다 이름이 바뀐다. 당연히 백성들은 새 사람이 들 때마다 바뀌는 궁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각 궁의 위치와 그 궁의 주인들을 알아야 하는 궁인들을 제외하고는 아예 관심도 없어야 정상인데. 

"한 달 전 병부상서 댁에서 열린 다도회에 참석한 전 금군 통령 댁 안주인께서 은방울꽃 머리꽂이를 꽂고 오셔서 화제가 된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가루베 다이키치가 병부싱서가의 안주인이 연 다도회에 은방울꽃 머리꽂이를 착용하고 참석하면서 은방울꽃궁과 태자비의 이야기가 회자됐었다. 아몬은 충직하고 뛰어난 장수지만 은방울꽃 머리꽂이에 담긴 정치적 함의 같은 걸 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 감각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부인은 나이는 어려도 정치적인 판단력이 뛰어난 이라 고관대작들과 그 부인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의도적으로 그 머리꽂이를 착용하고 가 준 모양이었다. 그래서 태자가 수윤제국에 제 편이 없는 어린 태자비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태자비의 편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얼마나 공들이고 있는지 많은 이가 알아챘다. 

"그런데 여기에 머리꽂이는 없는데요?"

아직 정치적 감각이 없는 건 이 어린 태자비도 마찬가지라서 눈을 또록또록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지만, 도성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가게를 운영하려면 정치적인 감각이 없어선 안 되는 만큼 노련한 점주는 당장 손을 내저었다. 

"태자 전하께서 직접 금군통령 댁 안주인과 호부시랑 쿠로사와 공에게 머리꽂이를 하사하셨는데 우리가 감히 어떻게 머리꽂이를 만들어서 팔겠습니까? 그래도 귀걸이나 팔찌, 반지, 목걸이, 옥패는 많으니까 마음에 드시는 걸로 고르십시오. 은방울꽃이 조각된 머리 관도 있습니다."

잠행이기 때문에 태자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청룡과 은방울꽃의 머리꽂이는 빼놓고 나온 태자비는 귀걸이나 팔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옥패에는 흥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은방울꽃을 조각해 넣은 백옥 옥패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은방울꽃 세공이 다른 옥패들보다 유독 선명하고 매우 섬세하게 세공했다는 것이 드러나는 옥패 하나를 집어서 태자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이거 사도 됩니까?"
"내가 사 주마."
"아닙니다. 이건 제가 사겠습니다."

옥의 질이나 세공의 수준을 볼 때 한두 푼 하는 게 아닐 게 뻔해서 혹시나 돈이 모자라서 곤혹스럽지 않을까 걱정되기는 했으나 돈이 모자라면 보태주면 되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비는 궁 안에서만 살고 있고 은방울꽃궁의 예산도 총관태감이 관리하고 있지만 황궁에 패물을 납품하는 이들이 정기적으로 모란궁부터 시작해서 각 궁을 돌면서 패물들을 선보이기 때문에 은방울꽃궁에 정식으로 배정되는 돈이 있음에도 마음에 드는 패물이 있으면 사라고 따로 용돈을 정기적으로 주고 있었는데 사 들이는 게 하나도 없더니 그 용돈을 가지고 나온 모양이었다. 작은 태자비는 통크게도 제 작은 주먹을 꽉 채우는 은자 하나를 꺼내놓았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아무렴요, 아무렴요. 거슬러드려야 할 돈이 더 많습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도련님?"

태자비는 미리 점찍어둔 것이 있었는지 옥패들 중에서 옥 장식이 단순해서 수수한 편이고 작지만 그래서 더욱 깔끔하고 귀여워 보이는 옥패를 하나 들더니 태자의 품에 쏙 안겨들면서 태자의 귀에 작게 귓속말을 했다. 

"제 궁의 궁인들에게 선물해도 됩니까?"

태자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태자비는 궁인들의 수만큼 작은 옥패들을 주문하며 점주에게 물었다. 

"돈이 모자란가?"
"아닙니다. 전혀 모자라지 않습니다."

점주는 태자비가 물정을 모른다는 걸 눈치챈 듯했지만, 태자비를 무릎 위에 앉혀놓은 '형님'의 눈빛이 살벌한 걸 알아챘는지 은자 한 냥을 꿀꺽할 생각은 하지 않고 착살하게 남은 돈을 거슬러 주었다.

"그럼 이것들만 잘 포장해 주게."

태자비는 받은 거스름돈도 꼼꼼하게 잘 확인해서 다시 돈주머니에 넣더니 옥패가 든 함을 소중하게 들었다. 태자비의 손이 작은 터라 궁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한 작은 옥패들을 담은 함은 태자가 들어주었다. 그리고 둘이 다시 궁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은방울꽃궁에 태자비를 데려다 준 후 태자궁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은방울꽃궁으로 돌아가자 태자비는 앞에 똑같이 생긴 함을 두 개 놓고 앉아서 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태자비는 그 중 하나의 함을 가지고 와서 태자에게 건네며 작은 머리통을 내밀었다. 

"다시 머리꽂이를 꽂아주십시오, 전하."

태자가 청룡과 은방울꽃이 세공된 머리꽂이를 쏙 꽂아주자 태자비는 사르르 웃으며 태자를 끌어안았다.

"저잣거리에 나가 본 건 너무 재미있었으나 전하께서 하사해 주신 머리꽂이가 없어서 내내 중요한 걸 빼놓고 다니는 것처럼 허전했습니다."
"그랬소, 나의 비?"

태자비는 작은 머리통을 꾸닥꾸닥하더니 태자에게 함을 받아 내려놓고 똑같이 생긴 함을 더 들어서 태자에게 열어 보였다. 

"이건 그대가 오늘 산 옥패가 아니오, 나의 비?"
"제가 전하의 은방울꽃이니까, 항상 절 생각하시면서 차고 계셔 주셨으면 해서."
"고맙소. 그대가 달아주겠소?"
"네, 전하!"

신이 잔뜩 난 어린 태자비는 태자의 허리에 은방울꽃이 세공된 백옥 옥패를 걸어주고 뿌듯하게 웃었다. 

"그대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대가 준 은방울꽃 옥패를 걸고 있으면 덜 외로울 것 같소, 고맙소. 나의 비."
"영광입니다. 전하."

작은 태자비는 조그만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면서 웃었다. 이 아이를 언제 다 키워서 명실상부한 비가 될까 하루하루 애가 타지만 이렇게 예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을 정도로 어여쁜 건 사실이라서 태자는 태자비를 무릎에 앉히고 동그랗고 예쁜 이마에 입을 맞췄다. 먹고 싶은 것을 넉넉히 먹어보지 못하고, 갖고 싶은 것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하면서 자랐는데도 마음씀이 넉넉한 어린 태자비는 태자의 무릎에 올라앉아서 은방울꽃궁의 궁인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저잣거리에서 잔뜩 사 온 간식거리며 작은 옥패들을 선물로 나눠주었다. 궁의 담이 높고 높아서 한 번 궁에 들어온 이들은 궁인이든 내관이든 함부로 궁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오랜만에 맛보는 저잣거리의 단것들은 입을 즐겁게 해 줬고, 태자비의 고마움과 신뢰가 담긴 옥패들은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웠다. 

따뜻하고 즐거운 밤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중반을 함께 들기 위해서 은방울꽃궁에 들었을 때였다. 은방울꽃궁 총관태감이 태자의 방문을 고하려 했으나 태자는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를 듣고 손을 들어 태감의 말을 막았다. 

"왕자 저하도 아시지 않습니까? 궁의 음인은 투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자신만을 생각해 달라며 은방울꽃 옥패를 선물하시다니요."
"... 태자 전하께서는 기쁘게 받아주셨네."
"아직 왕자 저하의 연치가 어려서 마음 상할까 봐 배려해주신 것이지요. 수윤제국의 황제 폐하나 황후 폐하가 아시는 날에는 크게 경을 칠 것이니 옥패를 다시 돌려달라고 하십시오."
"선물로 드린 건데 돌려달라고 하라고?"
"궁의 어느 음인이 감히 지아비를 저만의 지아비로 삼으려 합니까? 연국에서 그리 배우셨습니까?"
"..."
"음전하게 행동하시지 않으시면 연국에도 피해가 갑니다. 대왕 전하께서 연국을 위해 매순간 힘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난 잘하고 있네. 태자 전하도 잘하고 있다고 하셨네."
"수윤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진노하셔서 연국에 책임을 물으면 어찌 책임지시려 하십니까, 왕자 저하. 대왕 전하의 은혜를 이렇게 원수로 갚으시려 하십니까? 그러면 왕자 저하의 어머니는 무사하실 것 같습니까?"

태자는 거기까지 듣고 더 참지 못하여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태자가 금이야 옥이야 아끼며 어화둥둥 키우고 있는 작은 태자비가 시무룩하게 슬픈 얼굴로 태자를 바라보는 걸 보니 속이 뒤집혔다. 나도 행여나 생각없는 말로 저 고운 아이의 마음이 상할까 입을 열 때마다 단어 하나하나 골라가며 말을 하는데 저것이 감히. 

"정말 뭘 모르는 것은 네가 아닌가."

태자는 풀이 죽어서 태자에게 다가오지도 못하는 작은 태자비의 곁으로 다가가 태자비를 품에 안고 경망스럽게 입을 놀린 궁인을 내려다봤다. 태자비 전하 대신 '왕자 저하'라고 나불거릴 때부터 누군지 짐작하긴 했지만 역시나 태자비가 연국에서 올 때 함께 왔던 이들 중 하나였다. 태자비는 두 명의 궁인을 데리고 왔다. 하나는 태자비가 어머니의 궁에서 자랄 때 몸이 약한 어머니 대신 태자비를 키워 준 유모였고 이 유모는 지금도 태자비를 애지중지 정성을 다해 돌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궁인, 주제를 모르고 자발스럽게 혀를 놀린 이는 왕후를 제치고 연국 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으며 현재 연국 세자의 어미기도 한 연국 귀비가 딸려보낸 이라고 했다. 태자비가 연국 14왕자이던 시절부터 태자비를 아껴줬다던 둘째 왕자의 친모인 왕후도 아니고 일절 교류가 없었다던 귀비가 보낸 이라고 해서 계속 의심하고 있기는 했었는데. 

"... 태자 전하."

이 괘씸한 궁인은 태자의 어린 비가 자신을 편들어주길 바라는지 여전히 주제도 모르고 태자비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태자는 잔뜩 풀이 죽은 태자비를 품에 안고 다독이며 시선을 막았다.

"내가 태자인 건 알면서 나의 비가 태자비인 건 모르나? 네가 나의 비를 어찌 불러야 하는가."
"태자비 전하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굳이 왕자 저하라고 부른 이유가 있나?"
"시....실수였습니다."
"실수라. 황궁에서는 작은 실수가 생사를 가르는 법이지."
"태자 전하. 정말로 실수였습니다."
"나의 비는 연치가 어려도 야무지게 수윤제국에 잘 적응하고 있으나, 너는 전혀 적응할 의지도 없는 것 같구나. 몸을 움직이다 보면 쓸데없는 생각만 가득한 네 한심한 머리도 깨끗해지겠지. 안 그래도 세답방에 빨래를 담당할 이들이 부족하다 하니, 가서 몸을 움직이며 이곳이 연국인지 수윤제국인지 잘 생각해 보도록 해라."

태자가 태자를 따라온 태자궁 총관태감에게 눈짓하자 총관태감은 바로 내관들을 들였고, 내관들은 이 발칙한 궁인이 뭐라고 항변할 틈도 없이 입을 막고 끌고 나갔다. 저 궁인을 빨래방에서 굴리든 붙잡아놓고 연국의 귀비가 무슨 지령을 주고 수윤제국으로 보냈는지는 나중에 알아볼 일이고 급한 건 시무룩해진 태자비를 달래는 것이었다. 태자는 기운이 없어서 평소보다 작아진 듯한 어린 태자비를 무릎 위에 앉히고 축 처진 작은 몸을 토닥였다. 

"저 이가 한 말은 모두 헛소리니 새겨듣지 마시오, 나의 비."
"... 제가 잘못한 것입니까?"
"전혀 아니오. 내가 말하지 않았소. 그대는 나의 은방울꽃이고 나는 그대의 청룡이오. 내게 그대 외에 다른 비는 없을 것이니 마음껏 독차지하시오."
"참이십니까?"

태자비가 여전히 시무룩한 낯으로, 그러나 희망과 기대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태자를 바라봤다. 

"물론이오. 평생 내 맘에 들일 이도, 내 옆에 둘 이도 오직 그대뿐이오. 어떤 이름, 어떤 의미로든 그대 외에 나의 비는 없을 것이니, 내가 그대의 것이라고 온 천하에 외쳐도 되오."

그제야 표정이 사르르 풀리며 뺨이 발그레해지는 작은 태자비의 얼굴에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 태자는 태자비의 말랑한 뺨을 쓰다듬었다. 

"그대의 마음이 담긴 은바울꽃 옥패는 이제 나의 보물이 됐으니, 그대가 옥패를 다시 돌려달라고 하면 밤새 울 것이오. 그러면 그대는 내 울음소리 때문에 잠도 못 잘 것이오."

어린 태자비는 태자의 억지에 입을 반쯤 벌리고 바라보다가 곧 웃음을 터뜨리며 태자를 끌어안았다. 

"전하를 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소, 나의 비."

자기 주제를 모르고 혓바닥을 자발스럽게 놀려댄 쓰레기 덕분에 태자비의 작은 마음이 상했을 테니 혹시 중반을 먹고 체하지 않을까 싶어서 중반을 들고 난 후에도 청룡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은방울꽃궁에서 태자비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체하거나 두통을 호소하는 일은 없어서 석반까지 함께 들고 난 후 놀라고 마음이 상했던 어린 태자비를 위해서 태자가 금을 타며 몇 곡의 노래를 불러준 뒤 함께 침상에 들었을 때였다. 태자비는 하루하루 정말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에 태자가 태자비를 품에 안고 토닥토닥 재워주면 언제나 바로 색색 잠들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태자비가 잠들지 않고 졸린 눈을 비비며 태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졸음을 참고 계시오, 나의 비?"
"전하가 우실지도 모르니까 전하가 먼저 잠드시는 걸 보고 자겠습니다."
"그대가 옥패를 다시 거두어가지 않았으니 울지 않을 것이오. 안심하고 잠들어도 되오."
"전하가 주무시면 저도 안심하고 자겠습니다. 먼저 주무십시오."

옥패를 소중히 하고 있다고 안심하고 있으라고 장난을 친 건데, 마음 쓰게 해 버린 모양이었다. 어린 태자비가 태자 때문에 잠을 설치게 해서는 안 되니 눈을 감고 자는 척하고 있자, 태자의 눈 앞에서 손을 흔들어보고 조막만한 손으로 태자의 가슴을 부지런히 토닥이더니 곧 색색하는 귀여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태자비를 빨리 키워서 합방을 하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충만한데, 제 마음이 상한 건 뒷전이고 다 큰 어른인 태자가 불안함에 잠 못 들고 울까 봐 졸린 눈 비벼가며 열심히 토닥여주던 어린 비를 생각하니 그런 아쉬움은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정말로 가슴이 아플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태자가 잠든 것 같자 겨우 안심하고 잠든 작은 아이를 토닥거려주고 있자 이 작은 태자비가 자라는 걸 기다리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자를 아껴주는 태자비 덕분에 편안한 밤을 보내고 함께 든든하게 조반을 들고 난 후, 태자는 황궁의 후미진 곳에 있는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궁인들이 죄를 지었을 때 고신하고 투옥시키는 용도의 감옥의 심문실에 들어가자, 내관들이 어젯밤에 투옥시켜 두었던 궁인이 사지가 사슬에 묶인 채 늘어져 있었다. 태자비 앞에서는 세답방에 보내겠다고 했으나 총관태감은 태자의 의중을 눈치좋게 알아채고 감옥으로 데려다 두었다. 

감옥에 들어선 태자는 지난 밤 태자를 재우려 애쓰던 착하고 순진한 태자비는 상상도 못할 잔혹한 얼굴로 궁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태자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로 덜덜 떠는 궁인에게 다가가며 차갑게 물었다. 

"그래, 말해 보아라. 네 주인이 나의 태자비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지?"





#노부마치수수께끼의황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