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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7 21:42
#플로이드길들이기

소리내어 말하는 건 메이저가 가장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였다. 시선이 꽂히면 가슴이 울렁거렸고 이미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어 늘 후회하곤 했으니까. 아무리 연습하고 또 연습해도 새로운 곳, 새로운 얼굴 앞에서 메이저는 늘 처음처럼 얼어붙었다. 이런 파티, 지겹다 못해 신물이 날 지경이었는데도 여전히 메이저는 처음 어른들 앞에 선 아이처럼 구는 이유가 뭘까. 메이저는 밝은 샹들리에 아래에서 창가로, 창가에서 야외 테라스로 조금씩 도망친 끝에 정원 테이블 근처까지 다다랐다. 메이저는 번쩍거리는 시계를 다시 한 번 흘겨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10분만 지나면 완전히 사라져도 괜찮겠지. 원래 파티란 그런 법이니까.
 

"여기서 뭐 해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메이저가 고개를 돌렸다 다시 숙였다. 그를 향한 말이 아니었나 보다. 벌써 네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다. 누가 부르는 것만 같고, 손을 스친 것만 같고... 이게 다 그 때문이었다. 메이저의 고개가 활짝 열린 연회장 문을 향해 돌아갔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봐도 찾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보였으면 소리내어 한 번쯤은 불러봤을텐데.


"...마크."


역시 듣기에는 너무 작은 소리였다. 그래도 혹시 누군가는 듣지 않았을까? 메이저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 숨을 들이쉬며,


"마크."


불러보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아니 한 두 번쯤 눈을 굴리며 천천히 주변을 보았다. 밝고 활기찬 곳을 지척에 두고 까맣게 물든 하늘 아래 맥없이 홀로 떨어져 있는 스스로가 초라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집에 가는 게 맞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메이저는 괜히 정원을 따라 걸었다. 그냥... 여기 있다 누굴 만날지도 모르잖아. 이를테면... 

눈 앞에 갑자기 나타나 빙글빙글 돌고 있는 벌처럼.

아니다. 벌은 메이저가 원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벌이 여기 왜 있담. 꽃은 이미 진 지 오래다. 있다해도 저 안에나 있겠지. 멍청한 벌 같으니라고. 꽃 향기도 제대로 못 맡나? 벌에게라도 그렇게 쏘아대고 싶었으나 메이저는 벌과의 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할 자신 따윈 없었다. 아니, 언제부터 벌이랑 싸울 생각을 했지. 어렸을 때는 그래도 벌도 친구라고 도와주려 했었는데. 그 순간 메이저의 눈 앞에 마크의 잔상이 펼쳐졌다. 노을지는 정원에서 만났던 어린 모습으로.


'너도 내가 지켜줄게. 네가 그렇게 봤으니까.'


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알아. 내가 무슨 마음으로... 말 안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런건 말 안해도 다 알아.'


아, 마크가 정말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저 안에 있을 마크는 바쁠지도 모르고, 내가 방해가 될 수도 있고... 하지만 메이저는 기억하고 있었다. 마크가 처음으로 건냈던 말을.


'거기까지 데려다 줬으면 알아서 찾아가야지.' 


그건 벌에게도, 메이저에게도 하는 말이었을까? 확인하고 싶었다.

걸음이 빨라질수록 더 밝아지는 광경에 살짝 눈을 찡그려도 감지 않았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으므로.

 

-

 

벌 한 마리분의 패기로는 부족했던 걸까? 결심이 무색하게 메이저는 수십 분째 연회장 안을 빙글빙글 돌며 헤메고 있었다. 마크는커녕 같이 온 로버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반갑지 않은 얼굴들만 자꾸 마주치며 기운을 깎아먹는 판국이었다. 마크에게 전화를 해볼까 싶어 핸드폰을 물끄러미 보다보면 다시 용기가 곤두박질쳤다. 전화해서 뭐라고 하게. 어디 있어요? 취조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저 밥이랑 왔는데 마크도 왔나 싶어서... 왔으면 뭐 어쩔건데. 어렸을 때 일 기억나요? 이건 진짜 최악이다. 결국 메이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크를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이 안을 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슬슬 오기마저 생겼다. 만나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무슨 말이라도...

어...


"메이저!"


...해야지.

라고 다짐한 것이 무색하게 메이저의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갔다. 메이저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밥과 그 옆에 근사하게 서 있는 마크가, 어...

다 맞춘 퍼즐처럼 잘 어울려서. 저 사이에 낄 틈이 없을 것 같아서. 메이저가 비집고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게 틀어질 것 같아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 말이 많았던 입술도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도망갈까.


배라도 아픈 척,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긴 척 뒤돌아 뛰쳐나가면 될 것 같아. 변명은 나중에 해도 돼. 나는 원래 이러는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 뒤돌아 가야겠어. 저 그림을 깨선 안 돼. 그렇게 돌아서려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가게요? 도와줄까? 이래보여도 내가 해군이 인정한 구원잔데."


그 순간 메이저의 답은 하나였다.


조금씩 발을 떼어 걷다 조금씩 속도를 높여 뛰었다. 숨이 차도 돌아보지 않고, 어느새 잡아챈 손을 꼭 쥐고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작정 달렸다. 뒤에서 누가 소리쳐도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이 울려도 알 바 아니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 가슴이 너무 쿵쿵거려 한 걸음도 더 뛸 수 없었을 때가 되어서야 메이저는 나동그라졌다. 푹신한 잔디 위에 널부러져 찬 공기를 맞대고 한참이나 가슴을 때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땀이 흥건한 왼손을 꼭 잡고 있는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파들파들 떨리는 눈을 꼭 감은 채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보고 싶었어요."


정말로 보고 싶었던 예쁜 녹색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며 가까워졌다. 메이저는 기꺼이 이마를 맞대어 소리내어 말했다. 물방울이 톡톡 터지는 것처럼 뱃속이 간지러웠다.


"보고 싶었어요. 마크."
2023.10.07 21:55
ㅇㅇ
모바일
벌 한 마리분의 패기로는 부족했던 걸까? ㅋㅋㅋㅋ메이저야ㅠㅠㅠㅠㅠ벌이 되어서 메이저 응원해주고 싶다 힘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ㅠㅠㅠㅠ우리 메이저ㅠㅠ
[Code: 2a1b]
2023.10.07 21:57
ㅇㅇ
햐.... 나는 해군이 인정한 구원자가 나타나셨길래 이번에도 메이저가 제이크의 손을 잡고 도망갈 줄 알았어요 근데 마크를 데리고 도망나온 거구나ㅠㅠㅠㅠㅠ 장하다 메이저ㅠㅠㅠㅠㅠㅠ
[Code: 62b3]
2023.10.07 21:57
ㅇㅇ
모바일
메이저 또 도망가버릴까봐 걱정했는데 드디어 용기내서 소리내어 말했다!!!
[Code: ed8f]
2023.10.07 22:01
ㅇㅇ
아 메이저야ㅠㅠㅠㅠㅠ 마크손잡고 달리는거 영화같아ㅠㅠㅠ드디어 용기를냈구나
[Code: 60b1]
2023.10.07 22:38
ㅇㅇ
모바일
메이저 잘했어 ㅠㅠㅠㅠㅠㅠ 도망가고싶을땐 그렇게 마크 손을 잡고 같이 도망쳐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7e4c]
2023.10.07 23:19
ㅇㅇ
모바일
뛰면서 마크 입찢어져라 웃고있었을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ca10]
2023.10.07 23:39
ㅇㅇ
모바일
메이저ㅜㅜㅜ 용기냈어ㅜㅜ
[Code: d3eb]
2023.10.08 01:14
ㅇㅇ
메이저가 잡은 손이 마크였구나ㅋㅋㅋㅋㅋ 그런 용기있는 도망은 언제든 환영이다 메이저야ㅠㅠㅠㅠㅠㅠ
[Code: 2c89]
2023.10.08 02:07
ㅇㅇ
모바일
와 메이저 성장 서사 미쳤다 감동이야...
[Code: 26fc]
2023.10.08 02:07
ㅇㅇ
모바일
크아아아아아용기냈구나
[Code: 5a27]
2023.10.09 14:12
ㅇㅇ
모바일
메이저 드디어 내뱉었다..!!!
[Code: 90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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