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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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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싱글벙글한 테일러와 달리, 허니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기분이 가라앉았다. 마치 뉴욕에서처럼 닉이 일하고 있었다. 저걸 피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데. 출장이라니 당장 내쫓을 수도 없고. 허니는 힐끗 바라보다가 사무실 안으로 향했다.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문가를 쳐다보지도 않고 들어오세요, 하자 그다지 반갑지 않은 상대가 들어왔다. 안경을 벗고 눈을 꿈뻑거리는데 애써 밝은 척하는 게 티가 나는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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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지금 카페 가는데, 커피 마셨어?"



"... 좋은 아침. 어, 난 아침에 마셨어."



"... 그럼 뭐 밀크티 같은 거 사다줄게. 향수 바꿨네?"


 

"아, 어. 남자친구가 선물해줬어."



허니가 전에 쓰던 향수도 닉이 선물한 거였다. 허니가 햇병아리 변호사에다가- 지금은 중병아리 정도다- 둘이 사귀기도 전에, 허니 생일이라고 누가 아침에 말하자 점심시간에 몰에 나갔다오더니 대뜸 쥐어준 거였다. 직속사수라고 신경 쓴 거 같았는데, 사회초년생인 허니에게는 그게 나름 플러팅 같아서 마음이 생기던 시작이었다. 노예들끼리 눈 맞는 건 쉬웠다. 하루의 4분의 3을 같이 보내는데 안 맞을 리가. 



사수인데도 훨씬 여린 닉이 무덤덤한 허니의 다정에 흔들렸다. 날씨가 추워져서 콜록거리는 닉에게 면역비타민을 쥐어준다던지, 팀 내 유일한 영국인을 위해 회사 탕비실에 티를 신청해놓는다던지... 유명한 도예가가 소송 끝난 기념으로 허니에게만 특별히 선물한 머그컵 몇 잔 중 하나를 이가 나간 닉의 머그컵과 바꿔준다던지. 닉이 준 향수를 하루도 빠짐없이 뿌리고 다닌다던지. 다정이 병인 타입이었다.



"... 그래? 그것도 잘 어울리네. 갔다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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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은 속이 쓰려왔다. 허니는 저와 헤어지고 나서 급격히 말라서는 뉴욕을 떠났는데 얼굴이 좋아져있었다. 허니가 잠시 휴가를 갔겠거니, 갔다오면 얘기할 수 있겠거니 하고 기다리던 닉은 허니의 집 앞에 찾아갔다가 허니가 집을 뺐다는 사실을 듣고나서야 저가 차단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만이었다. 허니가 제 집에 찾아와서 엉엉 울 때까지만 해도, 직장 상사 부탁이어서 어쩔 수 없었단 말을 이해해주지 않는 허니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허니가 차분히 가라앉으면 저를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다. 비밀 연애였고, 당연히 저도 허니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저가 허니를 사랑하는 걸 허니가 당연히 알 거라는 건 오만한 제 착각이었다.



내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 아니, 나 모르겠어. 그리고 나는 이제 그런 거 하나도 안 중요해.
허니,
- 나는 내가 부족해서... 우리 집이 변호사 사무실 차려줄 정도로 부자는 아니라서, 그래서 그 여자를 만나러 나간 건 줄 알았어. 그런데 나를 사랑하는데 그랬어? 어떻게 그래? 어떻게 사랑하는데,
...
-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뒤통수를 칠 수가 있어? 차라리, 차라리 부잣집 사위가 되고 싶었다고 하지. 번듯한 사무실 하나 갖고 싶었다고 하지. 당신은 내가 바보같이 맨날 당신 좋다고 하니까,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 안해도, 바보같이 기다리면서 사랑한다고 하니까, 그거 믿고 그런 거야. 나 혼자 당신과의 미래를 꿈꾸는 걸 당신은 알았던 거라고.




어제 나눈 대화에 속을 베였다. 출근하는 허니가 피곤해보여 뭐라도 사다주려다가 허니의 바꾼 향수가 마치 닉을 잊어버렸다는 증거 같아서 한 번, 심지어 그 향수가 새 남자친구가 사준 거라는 게 한 번. 허니는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내상이 심했다. 


그냥 허니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가서 사과도 하고, 한번이라도 더 변명하고, 네가 없어서 얼마나 내가 무너졌는지 말하고, 허니가 받아준다면 혼자 짜던 결혼 계획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제 눈에 예쁜 건 남의 눈에도 예쁘다는 걸, 오래 만나서 잠시 잊고 있었다. 저가 사다준 밀크티를 잘 마시길래,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 우연히 둘이 남아도 밥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길래, 그래도 조금 기대를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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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가 설정해둔 배경화면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 저와는 몇년을 만나면서 주말이 아니면 해보지도 못한 배경화면이었다. 뒷모습이나, 겨우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이나 해두곤 했는데. 자세히 보면 허니는 피곤해보이긴 했어도, 저와 막 헤어졌을 때보다 생기가 돌았다. 심지어는 직장에서 비 변호사가 남자친구가 있는 걸 다들 암암리에 알았다. 엄청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친구가 회사 앞으로 종종 데리러 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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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가 저를 담아줬던 사진에 담겼던 애정이 그 사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씁쓸할 따름이었다. 허니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니까. 아, 진짜 내가 놓쳐버렸구나. 나를 그렇게 사랑해준 사람을 내가 오만해서 놓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령대기 신청을 하려던 마음을 고스란히 접었다. 허니가 별 마음이 없어보이면, 나에 대한 미련이 남아보이면 나도 여기 남아야지.


허니가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따뜻한 LA에 나도 살아야지. 허니를 똑 닮은 허니의 어머니와, 덤덤하다가도 애교가 많고 다정하다던 허니의 아버지가 사시는 그 도시에 나도 같이 가족이 되어서 살아야지, 했던 닉의 모든 기대들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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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덧없어질 줄 알았다면 사랑한다고 한 번이라도 더 말할걸. 닉은 혼자 남은 호텔방에서 소리도 못 내고, 퇴근길에 제 옆으로 따라붙어 새끼손가락을 겨우 붙잡으며 밝게 웃던 허니를 떠올렸다. 회사 앞으로 데리러 온 그 남자는 허니를 폭 끌어안고 가방을 건네 받았다. 남들이 보던 말던 입을 맞추고, 제 차에 태워 허니를 데리고 갔다. 뭐가 두려워서 너를 잃으면서까지 숨겨댔는지, 지난 모든 시간들이, 둘의 사랑을 비밀로 하기로 했던 첫 선택부터 후회됐다.



-



"오늘은 어땠어요?"



"똑같았어요. 일하구... 밥먹구, 아, 맞다. 테일러 나 눈가가 엄청, 쓰리고 빨개요. 이거 봐요. 엄청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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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잠깐만. 나 겉옷만 벗구요. 예쁜 얼굴 너무 가까이 있으면 놀라니까 조금만 떨어져줘요, 허니."



"얼른 봐요. 이 위에는 껍질도 벗겨진다고요. 엄청 쓰리고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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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봐요. 아이구... 날씨가 건조해서, 피부염 생긴 거 같은데. 일단 집에 연고 있으니까 바르고 자요."



"그거 집에 가져가도 돼요?"



"... 안 자고 가요?"



"나 이제 비상용 정장도 없어요."



"... 음식 테이크아웃하고 집에 들러서 가져오면 안돼요?"



"이틀 연속 외박하라구요?"

 


 

"같이 있고 싶은데. 약도 내가 발라주고..."



허니는 하루종일 피곤했던 오늘을 떠올렸다. 양심이 있으면 오늘은 재우겠지. 허니는 안일한 생각으로 집에 들러서 정장을 챙겨나오다가, 뭐 얼마나 큰 돈을 빌려고 집에서 자고 가지도 않냐며 부득불 따라나오는 비 여사 덕에 강제로 테일러를 소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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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왜 이렇게 늦게 나왔... 어, 안녕하세요, 사장님."



허니가 오면 정장을 받아주려고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테일러는 허니의 뒤에서 허니보다 2인치 정도 작고, 허니의 30년 정도 후쯤의 모습을 한 미세스 비가 나와 화들짝 놀랐다. 잔다던 친구 집이 남자친구 집이니? 하는 눈으로 허니를 째려보는 미세스 비에게 최대한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어머, 매주 병원 꽃 사가는 잘생긴 의사양반 아니야. 언제부터 우리 딸이랑...!"



"제가 가게 갔다가... 동네친구하자고 해놓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하하... 허니가 오늘 너무 피곤해서, 내일 출근길 데려다 줄 테니까 자고 가라고 했어요.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당신은 애 자고 온다는데 뭐하러 따라 나가서... 어, 의사선생!"



"그냥 의사선생 아니야, 이제. 허니 남자친구래."



"... 와있는 사람한테 애 두고 가라고 할 수도 없고. 결혼 전까지는 손만 잡고 자게. 허니엄마, 우린 이만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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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조만간 허니씨랑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맛있는 거 먹으러 와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가는 부모님을 보고 허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내일 집 가면 질문을 오백개는 받을 거다. 아빠, 손만 잡고 자기는 많이 늦었는데요... 하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뒷자리 손잡이에 옷을 걸어놓고 푹 한숨을 쉬는 허니에게 테일러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어머님 뵙고 나니까 더더욱 결혼해야겠다. 한 30년 뒤에도 저렇게 미인일 거라는 게 보장됐는데."



"이제 장가는 다 갔다. 언제 우리 엄마아빠는 꼬셔놨어요? 왜 이렇게 좋아하지?"



"매주 들리던 손님이니까...?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셔서 의사라고 했더니 우리 딸이 남자친구만 없으면 꼭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소개 안 시켜줬는데 알아서 잘 만나고 있어서 놀라신 게 아닐까 싶은데."



"... 하여튼 진짜 웃겨."



그래도 날 사랑하잖아요. 하는 말에 허니는 테일러를 밉지 않게 흘겨봤다. 이내 웃음을 터뜨리더니 가자 하는 말에 차를 부드럽게 출발시켰다. 비록 대놓고 사랑한다 아직 말해주지 않았어도, 웃기다는 말이, 흘겨보다가도 둥글게 휘어지는 두 눈이, 운전하느라 못봐도 저만 보고 대화하는 시선 같은 것들이 허니에게는 사랑이라는 걸 알아서 테일러는 괜찮았다. 









아주 짧게 닉갈 시점...






테잨너붕붕
약 닉갈너붕붕
#테잨뻔한롬콤

2024.03.21 21: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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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수인 내센세 사랑해 그러길래 있을때 잘하지 그랬냐 닉갈 이눔 자슥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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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21:43
ㅇㅇ
모바일
오셨다 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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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21:47
ㅇㅇ
모바일
단달에 후회찌통까지 종합세트로 성실수인센세가 선물을 주셨어 ㅜㅜ 하루종일 기다린 보람이 있어 ㅜㅜ
[Code: c432]
2024.03.21 21:59
ㅇㅇ
모바일
테일러 능글거리는데 존나 착해… 달달하다
[Code: 8746]
2024.03.21 21:59
ㅇㅇ
모바일
내가 후회 좋아하는거 어찌알고 센세가 이런 진수성찬을 ㅠㅠㅠㅠㅠ 하아아아 보란듯이 행복해보여서 너무 좋아요 센세 덕에 매일 녹아내려..
[Code: 1b2b]
2024.03.21 22:22
ㅇㅇ
모바일
테일러..
[Code: a78b]
2024.03.21 23:33
ㅇㅇ
크아아아아아아아ㅏ아ㅏ아아아아ㅏ 센세 사랑해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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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2 00:26
ㅇㅇ
모바일
오늘 하루의 마무리? 시작? 여튼 고마워 센세ㅠㅠㅠㅠ 아 달다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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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2 01: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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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ㅜ하진짜 너무 좋다 테잨 직진이 진짜 최고다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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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2 07:07
ㅇㅇ
모바일
아 ㅜㅜㅜ 닉갈 타지에서 혼자 우는 거 맘 찢어진다 ㅜㅜㅜㅜ 그치만 우리 애들 행복해서 넘 좋구요 엉엉엉 그냥 셋이 같이 잘 살면 안 될까!! 아냐 그치만..... 흐아아아
[Code: 5d51]
2024.03.22 08:26
ㅇㅇ
모바일
센세 롬콤 존잼이야 사랑해 센세
[Code: acaf]
2024.03.22 14:35
ㅇㅇ
모바일
아우 부럽고이쁘고 멋지다
[Code: 8ee2]
2024.03.22 16:30
ㅇㅇ
모바일
아진짜 닉 후회하는거 마음아픈데 존맛 존잼이다 진짜.. 테잨이 너무 능글맞고 달달하고 하 진짜 광대가 안내려가 ㅠㅠㅠ 센세는 천재야
[Code: c283]
2024.03.23 09: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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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이다..
[Code: 9bda]
2024.03.24 23: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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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갈 후회하는거 너무 좋다... 미안하다 그렇게 됐다ㅠㅠ 하지만 테일러랑 허니가 저렇게 꿀이 떨어지는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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