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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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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지마
[너 퇴사했어?]
[지금 어딘데.]
[내가 이런 말할 자격 없는 거 알아. 그래도 이렇게까지 연락하면 전화는 한번 정도 받아줄 수 있는 거잖아.]

 
[? 머리에 총 맞았니]
[업계 사람으로라도 남고싶으면 연락하지 마라]



이래서 내가 로스쿨 때부터 변호사랑은 절대 안 만난다고 했는데. 백인놈이 반지르르하게 생겨서, 예쁜 사슴눈 뜨면서 고상하게 영국 악센트 쓰는 거에 홀라당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업무용 폰에까지 연락한 전남친을 보며 허니는 혀를 내둘렀다.


XY 염색체는 믿는 게 아니다. 잘생긴 놈은 얼굴값, 못생긴 놈은 꼴값. 그래도 얼굴값이 꼴값보다는 낫지 하며 만났던 건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지. 분노에 가득 차 내일모레 팔 꽃을 다듬고 있다가 쾅, 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 쪽은 지금 밤 열시일 거였다. 잠이나 처자지, 왜 사람속을 뒤집어놓고 난리냐.



"집에 가서 밥이나 먹어야겠다. 퇴근, 퇴근..."



"퇴근하세요?"



"깜짝아... 언제, 언제 들어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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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셨구나. 방금 인사하면서 들어왔는데요...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못 들으셨나봐요."



가게 문틈 새로 케이팝으로 추정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허니는 꽃을 다듬고 있었다. 테일러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한 입모양을 보고 바로 들어가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고, 허니도 같은 생각을 했다. 노래 부를 때 들어왔으면 이제 수치스러워서 샌프란시스코에 비행기라도 타고 가서 골든게이트 브릿지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심지어 하마터면 저 잘생긴 얼굴을 보고도 놀라서 비명 지를 뻔 했다.



"네네, 아, 뭐 사러 오셨어요?"



"아뇨, 지나가다가 사장님 보니까 반가워서... 오랜만이라서요."



여가수가 허리케인 비너스를 찾아대는 소리에 허니는 허겁지겁 손을 뻗어 노래를 껐다. 아, 끄지 말고 볼륨만 낮출걸. 순식간에 정적이 흘러 허니는 못참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방금까지만 해도 진짜 누구든 찔러죽일 기세였는데, 너무 놀라면 그런 생각도 사라지는구나.



"아, 죄송해요. 너무 놀랐다가 긴장이 풀려서... 그러게요. 이번주에 처음 뵙네요. 프리지아는 맘에 드셨어요?"



본지 겨우 3일이나 지났을까, 토요일에 보고 화요일에 보는 건데 오랜만이라고 하는 게 말도 안됐지만 허니는 그러려니하고 대답 했다. 꽃집 특성상 손님이 매일 오는 게 더 이상하긴 해도, 동네 장사니까 아닌데요? 겨우 이틀 안 본 건데요? 하면서 쳐낼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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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들 화사하다고 좋아하더라구요... 그, 혹시 저녁 드셨어요?"



"아뇨. 이제 집 가서 먹어야죠. 아, 혹시 이름이... 저는 허니 비에요."




"테일러 자카르 페레즈입니다. 그냥 테일러라고 불러주셔도 돼요."



"아, 네... 저도 그냥 허니라고 불러주세요. 테일러는 저녁 드셨어요?"



"아뇨. ... 안 바쁘시면, 여기 코너만 돌면 멕시코 식당 새로 생겼거든요. 같이 드실래요?"



플러팅인가. 그냥 또래 만나서 반가워서 친구하려고 밥먹자고 하는건가. 하루종일 앉았다 일어났다 해서 피곤하긴 했지만, 어차피 내일 휴일이고... 전남친 때문에 잡친 기분을 그대로 들고 집에 가서 혼자 밥을 먹으면 더 슬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 비마저 이모부와 낚시를 갔으니, 진짜 혼자 먹을 게 뻔했다. ... 혼자 밥먹기 싫다. 오직 그 생각만으로 허니는 테일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 의사선생님이시구나... 어쩐지, 엄청 똑똑해보였어요."



"변호사한테 그 말 들으니까 진짜같아서 기분 좋네요."



"변호사면 뭐해요, 지금은 꽃집 알바생인데. 저 여기 다시 온 것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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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요."



허니는 망설였다. 업계 사람도 아닌데, 그냥 까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굳이 낯선 사람한테, 그것도 손님한테 내 약점을 까발릴 필요가 있나. 허니는 망설이다가, 아 상대방도 첫날부터 나한테 전여친 이야기 깐 거 보면 나를 메이크업샵 사장님 정도로 생각한 거 아닐까. 전남친 결혼식에 가는데 신부보다 예쁘게 해주세요,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을 하다가 단편적으로만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저희 엄마한테는 비밀이에요. 저 전남친이랑 사내연애하다가 헤어져서, 꼴도 보기 싫어서 내려온 거거든요."



"아... 그래서 나한테 초면에 그렇게 잘해줬구나..."



"아니라고는 못하겠네요. 그 날 이렇게... 이렇게 눈꼬리 처져서, 엄청 슬픈 표정으로 들어왔잖아요. 사람 신경 쓰이게."



"엄청 슬픈 게 아니라, 물론 그것도 맞는데... 너무 가기 싫은 표정이었거든요? 그리고 사람 눈꼬리가 어떻게 그렇게 처져요. 너무 놀리네."



"놀리다뇨, 사실을 말한 것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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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테일러에 대한 경계가 조금 풀렸는지, 비지니스 모드에서 조금 풀어진 허니였다. 뭔지는 모르지만 전남친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무알콜이라도 칵테일 한잔 할래요? 하고 먼저 물어오더니 테일러가 지난 주말에 있던 청첩모임 이야기를 하자, 허니는 나는 걔가, 울엄마한테 인사하고 싶대서 나랑 결혼할 줄 알았단 말이에요? 하며 제 이야기를 했다. 



"근데 뭐, 결혼할 사람은 따로 있나봐요. 나도 테일러도 나름 멀쩡한데, 결혼은 안하겠다고 한 거니까."



"허니는 뭐라고 하면서 헤어졌어요?"



"너랑 비밀연애여서 아무도 몰라서 다행이라고, 아, 꼴도 보기 싫으니까 회사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말자고도 했고요. "



"오, 나도 비슷하게 말했는데. 청첩모임에서 헤어지면서 너네한테 주는 게 이게 마지막이니까, 양심이라는 게 있으면 다신 보지 말자고 했어요."



"와, 진짜 잘했어요!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까지 하는 걸 보니 마음의 경계는 많이 무너졌나보다. 각자 차를 가져와서 알콜의 힘은 단 한방울도 빌리지 못했지만, 테일러는 애초에 허니가 저녁식사를 거절할 거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생각한 것보다 더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뉴욕같은 데 안 간다고, 집이 최고라면서 여기 정착할 거라는 말에 그럼 동네친구하자는 개수작까지 부리며 번호까지 받아왔다. 허니가 히히 웃으며 꿀단지 이모티콘으로 자기 자신을 저장하는 걸 보고 테일러는 기분이 간질간질해졌다. 


🍯
[집 도착!]
[대체 누가 내일 출근하지요?]

[너무해]
[그 누가 접니다 제가 해요]


🍯
[ㅋㅋㅋㅋ]
[내일 집 밖으로 단한발짝도 나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 내가 너무 얻어먹었으니까 내일 점심 사줘도 돼요?]



헙. 테일러는 제 입을 틀어막았다. 하마터면 너무 좋다고 단숨에 대답할 뻔 했다. 얘기하다가도 허니는 저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졌는데, 전남친 때문인 게 틀림없었다. 혼자 너무 앞서가면 허니가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애써 신나려는 기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척 답장을 보냈다.



[ㅋㅋㅋㅋㅋ]
[귀한 가게 정기휴일을 내주다니...]
[점심시간 한시에요. 병원 근처로 올래요?]



🍯
[넹 주소 보내주세요]


[링크]
[여기용]




허니는 주소 링크에 라이크를 누르더니 잘자라며 답장을 보내왔다. 테일러가 내일 점심시간을 기대하는 동안, 같은 시간 허니는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놓고 침대에 누웠다. 테일러가 다가오는 게 싫은 게 아니었다. 제 오지랖 섞인 다정에 누가 봐도 괜찮은 남자가 다가오는데 싫을 리가 없었다.


그저 허무할 따름이었다. 테일러에게 전남친이랑 결혼할 줄 알았다는 말을 하면서 누가 뒤통수라도 친 듯이 잠깐 아득해졌다. 그러게.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영상통화하던 엄마한테 너를 냅다 보여줄만큼 좋아했는데. 내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했고, 네 고향인 영국에 같이 가야할지도 고민했는데. 뉴욕에서 내내 쌓아온 커리어가 무엇을 위함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자 허니는 도망쳐왔다.



사랑한다고 하지 말걸 그랬나. 이렇게 덧없어지는데. 축축해지는 베갯잇을 견디다 못해 샤워기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서 허니는 한참이고 흐느꼈다. 물소리에 책상 위 핸드폰 진동음은 들리지도 않았다. 부재중만 가득하던 허니의 업무용 핸드폰이 꺼졌다.









테잨너붕붕
#테잨뻔한롬콤

2024.03.16 20: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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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잼!!!!!!!
[Code: d3ff]
2024.03.16 21:03
ㅇㅇ
모바일
아 ㄸ발 미친 의사였러?????
[Code: 95a7]
2024.03.16 21: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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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 로망
[Code: dbdf]
2024.03.16 21:48
ㅇㅇ
모바일
누구야누구 전남친👁👁
[Code: 8841]
2024.03.16 22:04
ㅇㅇ
모바일
전남친 누구얌+!!!! ㅠㅠㅠㅠ
[Code: 786d]
2024.03.17 00:24
ㅇㅇ
모바일
추천할수 없음
[Code: 4b7d]
2024.03.17 01:19
ㅇㅇ
모바일
전남친이 고오맙다 덕분에 허니가 테일러를 만났네(과몰입)( ・᷄д・᷅ )
[Code: c1e8]
2024.03.17 01: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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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너무 재미있어요ദ്ദി*꒦ິ꒳꒦ີ)
[Code: c1e8]
2024.03.17 01:25
ㅇㅇ
모바일
테잨이랑 영사해 전남친 개호로잡놈아 헌이가 일케 슬퍼한다 흑흑흑허흑 테잨이 노련한 거 존좋이네 하
[Code: 4033]
2024.03.17 02: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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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테잨이가 당기는 것도 너무 맛있고 뭔가 전남친도 사연 있은 거 같은데 그것도 맛있을 거 같아ㅜㅜ
[Code: cd11]
2024.03.17 11: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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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잨이랑 사랑하자고…. ٩( ᐛ )و
[Code: c115]
2024.03.19 00:16
ㅇㅇ
모바일
백인놈이 반지르르하게 생겨서, 예쁜 사슴눈 뜨면서 고상하게 영국 악센트 쓰는 거에 홀라당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전남친도 궁금하다 ㅋㅋㅋㅋ
[Code: 4d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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