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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04:36
태섭텀인데 다른 커플링도 쵸큼 섞임



태섭은 가이드였음. 초등학생 때부터 쭉. 센티넬들이 히죽거라며 음담패설을 입에 담는 일? 두 손가락으로 다 꼽지도 못함. 태섭은 이런 취급이 익숙했고, 익숙한 만큼 참지 않았음. 무시하고 참았다가 정말로 바지가 벗겨질뻔한 적 이후로 태섭은 살기 위해 참지 않는 법을 익혀야만 했지.


“…너 바보야? 가이드가 때린다고 상처나는 센티넬이 어디있어?”
“센티넬은 아픔도 못느끼냐?”


태섭은 지지않고 대꾸했음. 때리는데 그거 말고 중요한게 뭐가 있어. 그리곤 한 손으로 우성의 멱살을 잡아 억지로 눈을 맞췄음. 우성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었지.

우성의 관자에 주먹을 꽂는 대신, 태섭은 천천히 손을 내렸음. 멱살을 잡은 손도 탁 놓았지. 눈물에 젖은 정우성은 멍해 보였음. 태섭은 괜히 고개를 돌려 하늘만 쏘아봄. 한숨이 절로 나왔지. 아, 이걸 진짜 어떡하냐.


“……더 안 때려?”
“이따 팰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섭은 때릴 생각이 없었음. 정우성이 일부러 주먹을 맞은걸 모르지 않았거든. 반격 의사도 없는 상대를 패는건 성미에 안맞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성과 닿은 순간 본능적으로 깨달았음. 우성이 왜 그랬는지. 슬프고 서러워서 어린 아이처럼 떼를 쓴 것 뿐이란걸 알아버렸지. 자기가 뱉은 말에 본인이 상처받은 것도, 그래서 후회하는 것까지도. 태섭은 짜증스레 손으로 뒷머리를 쓸음.


“…나도 이 상황이 갑작스럽거든? 생각 정리 좀 하자.”


잠시 두 사람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음. 우성은 고개 숙여 땅을 보고, 태섭은 눈을 찌푸려 센터를 노려봤음.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뒤엉켜 윙윙거림. 회색빛 건물을 향한 태섭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음.


일단, 매칭인지 뭔지 당장 끊어야겠는데.


고민해봤자 결론은 그거였지. 이 모든 일의 원흉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 당사자 둘이 배째고 드러누우면 뭐 어쩌겠어? 그 서약선지 계약서인지도 다시 한 번 읽… 이건 준호 선배가 필요한데. 거기에 그 연수란 것도 알아봐야했음. 뭘 가르치길래 센티넬이 저렇게 기겁을 해?

만에 하나 매칭을 못끊으면 그 다음엔? 태섭은 손가락을 톡톡 두드림. 공유가이딩을 맺어야하나. 센티넬들이 서로 가이드를 공유하는 이른바 공유가이딩은 센터 내에선 비일비재했지. 내가 정우성과 정대만의 가이드가 되고, 정우성 전담 가이드가 정대만도 가이딩해주면 되겠지 뭐. …생각해보니 꽤 괜찮은데? 그러면 법적으로 문제될 것도 없고, 정우성도 세기의 짝사랑 상대랑 헤어지지 않아도 되잖아?

태섭은 마음을 굳힘. 연구원들 들쑤셔서 매칭 좀 알아보고, 연수는 빠지고, 정우성 가이드 알아봐야겠다. 척 봐도 할 일이 많았음.


“난 센터 간다.”


우성은 아무 대꾸도 안함. 그래도 훌쩍이던 울음은 멈췄고, 감정도 좀 진정되어 보였지. 우성은 혼자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음. 쟤랑은 나중에 얘기하자. 태섭은 잠잠히 우성을 살피다가 이내 걸음을 옮김.

매칭 끊는게 먼저다. 태섭은 걸음을 빨리함. 센터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음. 그중에는 센티넬도 적지 않았지. 복작거리는 머리통을 보며 태섭은 눈을 깜빡거림. 그러고보니 하루종일 정대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음. 정대만부터 찾아야하나? 이 인간 아직도 검사 안끝났어? 혹시 매칭 생겼나?

순간 태섭의 걸음이 우뚝 멈춤. 대만을 떠올리니 꾹꾹 눌렀던 고민이 치밀어 올랐지. …정대만한테 매칭된거 말해야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벌써 막막함. 저 매칭 됐다는데요. 선배는 어떡하냐구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뭔 배신이에요 법이 그렇다는데. 아, 알았어요, 다른 가이드 구해오면 되잖아요. 공유가이딩도 괜찮죠? 상상만으로 결론이 나옴. 오케이, 뒤로 미루자.

두 명한테 가이딩 받으면 두 배로 좋은거겠지. 태섭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함. 정대만은 웬만해선 방사가이딩만 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음. 그보단 정우성의 가이드쪽이 더 걱정이었지. 그쪽에서 태섭의 제안을 거부하면 일이 복잡해질게 뻔했거든. 애초에 누군지도 모르고.

태섭의 생각은 우성을 처음 소개해준 연구원에게로 미쳤음. 연구원이라면 우성의 가이드를 알지도 모르지. 매칭 끊는 법도 물어야하는데 잘됐다 싶음. 태섭은 곧장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버튼을 누르고, 팔짱을 낀채 짝다리를 짚었음. 얼른 올라가라, 얼른. 띵-! 안내음성이 나오고, 태섭은 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가려 했음. 어깨를 톡톡 건들이는 손만 아니었다면 아마 그랬을터임.


“뿅.”


뿅?

뒤를 돈 태섭은 황당해짐. 웬 정장 입은 남자가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거든. 나 부른거 맞아? 주위를 휘 휘 둘러봐도 남자의 시선은 태섭에게 고정되어 있었음. 태섭은 검지로 스스로를 가리킴. 남자의 고개가 느릿하게 끄덕임. 나 부른거 맞네?


“나 알아요?”
“용.”
“용? 드래곤?”
“뿅.”
“아 뭐라는거야.”


태섭은 대놓도 인상을 와사삭 구김.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덧붙였음.


“알아용.”
“….”


그게 끝이었음. 어떻게 안다, 용건이 뭐다, 하다못해 자신이 누구라는 말조차 없었음. 태섭의 한쪽 눈썹이 올라감. 어쩌라는… 아니 진짜 어쩌라고.


“오늘은 인사뿅.”


오늘?


“설마 내일도 본다는건 아니죠?”
“글쎄용.”
“….”
“태섭은 어때용.”
“내 이름은 어떻게… 하 됐다. 또 뿅거리겠지.”
“뿅.”
“제가 그쪽을 왜만나용.”


태섭은 부러 남자의 말투를 똑같이 흉내냄. 남자는 태연했음. 전혀 동요하지 않은 얼굴로 물끄러미 태섭을 바라봄.


“정우성 가이드니까뿅.”


정우성 가이드랑 무슨 상관이야. 태섭은 남자에게 묻는 대신 깔끔하게 무시함. 얽히면 귀찮아질 것 같았거든. 정우성 가이드도 (아직) 아닌데다, 되더라도 당장 관둘 거니까. 태섭은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척척 걸어감.


“사람 잘못봤슴다.”
“그럴리가용.”
“그냥 가던 길 가죠?”
“….”


남자는 별 대꾸 없었음. 태섭은 복도를 타박타박 걸어감. 뒤에서 터벅터벅 소리가 이어졌음. 태섭이 걸음이 멈추자 남자도 귀신같이 멈췄음. 다시금 타박타박 걸으니 또 뒤에서 터벅터벅 소리가 났음. 코너를 몇 바퀴나 빙글빙글 돌아도 등 뒤의 구두소리는 멀어질 기미가 안보였음.


“저기요, 각자 갈 길 가자니까요?”
“가고 있어용.”
“아까부터 따라오는 것 같은건 내 착각인가? 그쪽은 알아서 가는데 그게 우연히 나랑 똑같은 방향이다?”
“세상에 그런 우연이 어디있어용.”
“맞는 말인데 그쪽이 하니까 진짜 열받네…. 그럼 왜 따라오는데요.”
“정우성 가이드니까뿅.”


정우성 가이드는 스토킹당할 의무라도 있는건가? 태섭은 안그래도 싫었던 매칭, 반드시 끊어버리리라 다짐함. 이를 갈고 있는 태섭을 보던 남자가 갑자기 허리를 숙임.


“태섭 말고용.”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앞에 있었음. 무거운 숨이 코끝에 닿자 태섭이 퍼뜩 놀라 걸음을 주춤거림. 남자는 단정하고 깊은 동공으로 태섭을 빤히 바라봤음. 기분이 상한 건가? 태섭은 기민하게 남자를 살핌. 처음과 같은 무표정한 얼굴에선 무엇도 읽어낼 수 없었어. 남자는 검지를 들어 스스로를 가리켰음. 그리 낮거나 높지도, 그렇다고 부드럽거나 딱딱하지도 않은 목소리가 말했지.


“정우성 가이드뿅.”



*



남자의 이름은 이명헌. 그 유명한 산왕을 이끄는 국내 최고의 가이드였음. 명헌은 “따라와뿅.”하더니 태섭을 사무실로 데려옴. 안그래도 우성의 가이드에 볼일이 있었던 태섭은 명헌을 따라 소파에 앉았음. 앞에 놓인 탁자에는 과자 몇 개와 서류가 한가득했지. 그 중 하나는 태섭에게도 익숙했음. 구불구불한 모양의 그래프. 태섭의 파장 측정 검사지였음.

태섭은 한쪽 눈썹을 쓱 올려 명헌을 쳐다봄. 이게 왜 여기있어요?라는 의미로.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 얼굴이 검사지와 태섭을 번갈아봄. 이윽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음.


“닮았어용.”


또뭐라는거야. 찌그러진 태섭의 눈썹을 보며 이명헌이 한 마디 덧붙임. 똑같다뿅. 그말대로 태섭의 파장과 눈썹의 모양의 똑닮았었음. 태섭은 눈썹과 똑닮은 서류더미를 손가락을 가리켰음.


“내 거 가져가도 돼요?”
“용.”


명헌의 대답을 알아서 해석한 태섭이 종이를 집어들었음. 그 밑에는 처음 보는 파장 검사지가 있었지. 검사자 이름에는 ‘이명헌’이라 쓰여있었음.

태섭은 고개를 돌려 명헌을 바라봄. “봐도 돼용.” 그제야 태섭이 종이를 마음껏 살핌. 그래프를 보는 눈이 휘둥그레짐. 이거 그거 아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이정도면 코끼리가 아니라 아파트를 삼켰나본데? 그정도로 이명헌의 파장은 대단히 옹골찼음. 태섭과 명헌의 파장은 딱 두 군데가 겹쳤고, 기가 막히게도 그 두 부분이 각각 정대만과 정우성의 파장과 일치했지.

내 파장 반 똑 잘라서 이명헌한테 못주나. 태섭은 진심으로 생각함. 슬프게도 정우성과의 매칭률은 송태섭이 더 높았고, 정대만과의 매칭률은 이명헌이 더 높았음. 태섭은 괜스레 자신의 검사지, 정확히는 그 밑의 ‘매칭됨’이란 글자를 흘겨봤음.


“이제 좀 알겠어용?”
“뭐를요. 댁 파장이 모자처럼 생긴거?”
“잘들어용. 태섭은 이제 북산 소속 아니에용.”


순간 태섭의 사고회로가 정지했음. 명헌이 태섭의 얼굴을 보며 보충설명해줌. 태섭은 이제 산왕 가이드에용.


“뭔 헛소리야 그게.”
“우성의 매칭가이드잖아용.”
“누가, 하…. 그 얘기 말인데, 안하기로 했어요. 정우성도 싫다고 했고.”


…뿅. 명헌이 짧게 대답함. 그 전까지 여상하게 뱉던 뿅보다 더 낮은 목소리였지. 태섭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음. 그거 무슨 의미인데요.


“정우성이 하지 말라고 했을 리 없어서.”
“싫다고, 자기 가이드 있다고 하던데요.”
“잘 생각해용. 우성이 매칭 거부하자고 말했어용? 센터에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용?”


태섭이 눈썹을 찌푸렸음. 정우성은 매칭이 싫다고 했고, 자기는 가이드가 있다고 한 뒤에… 가이딩 연수를 듣지 말라고 했지. 생각해보니 같이 센터에 가자거나 계약서를 쓰잔 식의 말은 하지 않았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명헌이 말을 이었지.


“센터 소속의 가이드가 매칭 거부하면 불법뿅.”
“…센티넬이 거부해도?”
“센티넬은 거부권 없어용.”


태섭은 그제야 저에게 찡찡거린 우성이 조금 이해가 됨. 애초에 거부권도 선택권도 없는 우성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부탁, 내지는 협박 뿐이었음. 근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태섭은 왈칵 얼굴을 구김. 이렇게 냅다 산왕 가이드가 되면 정대만은 어쩌고?


“담당 센티넬이 북산인데 왜 제가 산왕 소속이에요.”
“매칭가이드는 해당 센티넬 팀 소속뿅.”
“뭔…, 그런 법이 어디있어요?!”
“그런 법이 있어용. 태섭이 사인도 했어용.”


씩씩대는 태섭의 앞에서 명헌이 종이를 보여줬음. 국가에 충성 얼씨구 하는 내용과 태섭의 사인이 적혀 있었지. 명헌의 손가락이 빼곡한 글자 사이 어딘가를 가리켰음. 센티넬과 매칭시 안내사항이었어. 명헌의 말대로 ‘을’은 ‘갑’에 소속된 센티넬과 매칭시 해당 센티넬 팀으로의 이동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있었음. 태섭은 ‘을’과 그 뒤의 ‘이하 송태섭’ 을 맹렬히 노려봄.

장난해? 둘이 합의하는 것도 아니고 나만 이동한다고? 가이드는 인권도 없어?

표정에 생각이 드러났는지 명헌이 대답해줌.


“가이드 연봉이 왜 높겠어용.”
“가이드도 일 하잖아요.”
“센티넬은 목숨을 걸고용. 센터가 센티넬을 구슬리는 방법이에용. 가이드는 돈, 센티넬은 매칭가이드.”
“이거 만든 새끼… 그뭐냐, 법무팀 어디있어.”


태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남. 빙빙 돌면서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생각하려 애썼음. 계약을 취소하자니 북산팀 전원의 센터 계약이 물거품될 위험이 있었음. 그렇다고 홀라당 산왕팀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


“난 북산 가이드고, 아무 데도 안 가요.”


태섭은 명헌에게 으르렁거림. 명헌은 별 말 없이 고개만 까딱였음. 좋은 수라도? 기다렸다는 듯 태섭이 명헌 앞에 털썩 앉아 눈을 마주했음.


“나랑 공유가이딩 좀 맺읍시다. 그쪽이 정대만도 가이딩 해주면 나도 정우성 가이딩 할게요. 대만이형은 방사가이딩만 해줘도 돼요. 그쪽은 지금처럼 정우성 가이드 하시고, 나는 나대로 북산 가이드 하면서 서로 갈 갈 갑시다. 어때요?”
“구려용.”
“아 그럼 어쩌자고…! 뭐, 어떤 점이 구린데요?!”
“매칭가이드를 공유하는 센티넬이 세상에 어디있어용.”
“뭔 세상까지 찾아요, 그쪽 센티넬 얘긴데.”


태섭이 대놓고 짜증을 부려도 명헌은 덤덤했음. 동요라곤 눈 씻고 찾어볼 수 없는 얼굴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림.


“태섭은 아무것도 모르군용.”


누가 정우성 가이드 아니랄까봐 정우성이랑 똑같은 말 하네. 아무것도 모르는게 누군데. 태섭은 건성으로 대꾸함.


“정우성은 좋다고 난리칠텐데.”
“글쎄용.”
“내기할래요? 정우성이 받아들이면 공유가이딩 하는 걸로?”
“아니용.”
“왜요, 자신 없어요?”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용.”


명헌은 태섭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한 마디를 툭 내뱉었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 말엔 확실히 할 말이 없었지. 태섭도 우성도 공유 가이딩을 통한 현상 유지가 최선이지만, 명헌에겐 그저 초과근무였을 뿐임. 태섭은 어떻게든 명헌을 설득해야 했음.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덮고, 태섭은 한탄하듯 명헌에게 물었음.


“원하는거….”


말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음. 이명헌이 말한다고 다 들어줄 수 있을까 싶음. 돈? 국내 넘버원 가이드인 저쪽이 더 많음. 가이딩? 저쪽도 가이드인데. 산왕에 들어가면 정수기에 설사약 탈거라는 협박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가망이 없었음.

그때 명헌이 불쑥 얘기를 꺼냈지.


“원하는거 있어용.”


태연자적한 얼굴로, 명헌이 덤덤하게 얘기함.


“나한테 가이딩 연수 들어용.”


태섭은 눈을 질끈 감았음. 가이딩 연수 듣지마-! 어디선가 찡찡거리는 정우성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했음. 산왕은 뭐가 문제냐. 태섭은 명헌에게 대꾸함.


“정우성은 듣지 말라던데.”
“그런데용.”


씨알도 안먹힘. 이명헌은 존나 어쩌라는 눈빛으로 쳐다봤음.


“난 들으라 말했는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게 딱 이 꼴이었음. 둘이 치고박고 싸우지 않으면 못나오는 방에 들어가면 안되나? 한 명만 이겨서 나와라. 태섭은 정신이 아득해짐. 정우성이고 이명헌이고 그냥 둘이 백 분 토론에서 이긴 새끼만 떠들었음 좋겠다. 그럼 백 분 동안 이명헌 뿅 한 마디만 하고 정우성만 떠들다가 끝나겠지.


“태섭의 센티넬은 뭐래용.”


태섭은 갑작스런 명헌의 물음에 갈피를 못잡았어. 뭐, 매칭된거? 공유가이딩 얘기? 아니면 가이딩 연수? 그럼에도 태섭이 할 말은 한 가지 뿐이었음.


“아직 말 안했는데요.”


아…. 태섭의 입에서 앓는 소리만 나옴. 대만까지 떠올리니 절로 두통이 일었음. 명헌은 말없이 태섭을 지긋이 쳐다봤음. 뭘 봐요. 눈빛으로 묻자 명헌이 말했어.


“사고부터 치는 스타일?”


아 왤케 열받지.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말만 하는 명헌은 정우성과는 다른 종류의 피로감을 주었음. 예에- 문제아라서요. 지친듯한 목소리를 뱉은 태섭이 고개 들어 천장의 조명을 노려봄. 명헌의 말에는 뼈가 있었어. 얼른 대만에게도 공유가이딩 말을 꺼내야 했지.

태섭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음. 연수 듣지마! 귓가에 쨍알거리는 환청이 들리고, 눈 앞에는 명헌이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음. 절로 한숨이 튀어나옴. 대체 가이딩 연수가 뭐길래 둘 다 이모양이야.


“가이딩 연수… 수업만 듣는거 아니죠.”


명헌은 아무 대답 없었음. 그 반응에 확신만 커짐. 진짜 뭔가가 있긴 하구나. 태섭은 고개를 움직여 명헌을 똑바로 직시함.


“얘기해봐요. 알아야 뭘 결정하지.”
“…오른쪽 서류 두 번째 뿅.”


기묘하게도, 모든 것이 명헌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음. 태섭이 공유가이딩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가이딩 연수를 받는 흐름이 너무도 자연스러웠지. 찜찜한 기분으로 태섭이 눈 앞의 서류더미를 살폈음. 오른쪽의 서류 첫 장을 넘기자 표제가 눈에 들어왔음.

매칭가이드 교육연수 계획서

1주차에 파장과 형질에 대해 배우고 그 다음에는 매칭을 학습하는 무난한 계획이었음. 그 뒤로 방사 가이딩, 접촉 가이딩 실습 등 익숙한 단어가 이어졌음. 무심하게 글자를 읽어내리던 눈동자가 일순간 정지함. 구강 가이딩. 그리고 아래에는, 단 한번도 배우지 않았고, 배울거라 예상치도 못했던 것이 적혀 있었음.

점막 가이딩


“이게 무슨….”
“….”
“…아니죠?”
“….”
“그쪽한테 가이딩 연수 들으라며. 무슨 뜻인데요.”


태섭이 명헌을 바라봤음. 머릿속엔 끔찍한 생각이 엉킨 채였지. 그럴리가. 설마. 아니겠지. 명헌의 표정은 끔찍이도 잠잠했음. 그게 미친듯이 불안했지. 그럴 리 없다는 걸 아는데도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음. 태섭은 핏발 선 눈으로 명헌을 노려보았어. 명헌은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는 건조한 태도였음.


“말 그대로인데용.”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고!”
“뭐가 이해가 안돼뿅.”


명헌이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었음. 하얗고 단정한 손가락이 태섭의 구역을 침범해 흰 종이를 천천히 쓸었지. 1주차, 파장과 형질. “여기부터.” 단단한 손톱이 종이를 톡톡 두들겼음. 이어서 방사가이딩, 접촉, 그리고 구강가이딩까지. 손가락이 천천히 아래를 향할수록 섬찟한 감각이 올라왔음. 이윽고 검지가 점막가이딩 부분을 가리키고, 나지막한 소리가 귓가에 들렸음. “여기까지.”


“전부 가르쳐줄테니까 배우라고.”


뿅. 명헌이 여상히 덧붙였음. 검은 눈동자 만큼이나 속을 알 수 없는, 섬뜩하고도 평온한 목소리로.






명헌태섭 우성태섭
2023.03.30 06: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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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발 너무좋아 센세 이명헌 ㅈㄴ섬찟하다 개좋음ㅌㅌㅌ
[Code: b846]
2023.03.30 08: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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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ㅌㅌㅌ 존잼이에요 센세
[Code: 5615]
2023.03.30 08: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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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야아아악 개재밌다어뜩카냐 너무너무 재밌는데...일상생활 불가능... 넘버원 가드가 넘버원 가이드가 되는 이 언어유희가 넘 좋아... 으아악 가이딩연수 으아아아아악 분위기 미치겠다아아악
[Code: 6a63]
2023.03.30 08: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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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아아아악 대작이다 너무쟀어서 돌아버림
[Code: d93b]
2023.03.30 08: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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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재밌어서…..
[Code: d93b]
2023.03.30 08: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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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명헌 뭐하는 놈이냐 개좋네
[Code: 2e2a]
2023.03.30 09: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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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다정한 태섭이ㅜㅠ 진짜 어떻게 되려나ㅜㅠ너무 좋음
[Code: 5f92]
2023.03.30 10: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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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다....
[Code: 3706]
2023.03.30 11: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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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미미미미미쳤다 설정이나 전개나 다 너무 신박해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어 ㅠㅜㅠ 센세는 천재야 와
[Code: 7c23]
2023.03.30 12: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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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애시키같은 우성이랑 속을 알수 없는 태섭이 개꼴린다ㅌㅌㅌㅌㅌㅌ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새우가 이렇게 꼴리는거구나
[Code: a491]
2023.03.31 07: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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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둘이 백 분 토론에서 이긴 새끼만 떠들었음 좋겠다.



진지하게 보고 있다가 속절없이 웃어버렸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ㄱㄱㅋㅋㅋ
[Code: 904d]
2023.04.01 11: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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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헌이 뿅뿅거리다 중간중간 어미 빼고 묵직하게 얘기하는 거 진짜 기절.....대체 뭔데 왜 명헌이가 말하는 우성이는 다른 건데ㄷㄷㄷㄷㄷ의문투성이 속에서 태섭이는 어찌할 것인가 센세 이건 마스터피스야 알지??? 어디 가면 안돼
[Code: 516e]
2023.04.09 23: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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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억나더 기다리고있어 ㅜㅜㅜ
[Code: 42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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