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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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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가게를 열기 전 도매 시장을 다녀오기위해 태섭은 늘 일찍 일어났다. 남편인 대만 또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고, 그는 늘 태섭에게 아침을 차려줄정도로 부지런하고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대만이 프랑스산 버터에 노릇하게 구워준 식빵과 써니사이드업,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전기포트에 내려진 커피의 냄새를 맡는 건 태섭에게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태섭은 일종의 위화감을 느꼈다. 얼굴을 쓰다듬으며 걱정하는 다정한 손길, 눈빛과 목소리가 어째서 안정을 주지 못하는가. 어딘가 불편해보이는 태섭의 입에 얼마 전 구입했다는 탱글한 독일산 소세지를 넣어주며, 남편 대만이 오늘까지 가게를 닫고 병원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태섭은 고개를 저었다. 남편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다 차를 태워주겠단 상냥한 통보를 했다. 몸도 성치 않은 애가 혼자 운전해서 시장에 가게 둘 것 같냐는 말에 태섭은 실없이 웃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사랑하는 남편이고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만들었다.

시장에서 간밤에 본 남편과 친구 간의 메세지를 생각하다 가시에 손가락을 찔리거나 베였다. 그러한 행동은 남편의 걱정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는 역시 당분간 가게를 닫고 쉬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태섭이 태평하게 이미 예약건이 밀려있어 그럴 수 없다니 그럼 기존의 예약건만 하자고 한다. 하여간 쉬어야 한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었고 제법 강경하기까지 했다. 태섭은 남편의 불안을 진정시키려 짧지만 깊은 키스를 나누고 포옹도 했다.
가게로 가는 차에서 태섭은 대만에게 자기가 없는 며칠동안 달재가 가게에 찾아오거나 연락을 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창에 기대 턱을 괸 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남편의 기색을 살폈다. 신호가 바뀌고 남편은 클러치를 밟으며 기어를 바꿨다. 그는 늘 요즘같은 때는 찾기도 힘들다는 수동변속기 차량을 고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영화에나 나올법한 올드카를 몰았다. 각진 차에서 내린 수트차림의 대만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어더랬다.

"나 걔 연락처도 모르잖아."


-


가게로 출근한 태섭은 스케쥴러에 적힌 예약을 확인하고 당일 예약분의 꽃다발이나 바구니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예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손님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사과하고 환불해주었다. 기념일과 같이 특정한 날짜여야만하는 것이 아니면 이해하고 예약날짜를 미뤄준 고마운 손님도 많았다. 남편이 수습하기 전 난장판이 된 가게를 목격해 무슨 사고가 났으리라 짐작해 걱정의 말을 건네는 손님도 있었다. 고맙게도 크게 화를 낸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일을 모두 처리한 태섭은 자기가 인복은 있다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을 바쁘게 보내고 오후에 앉아서 숨을 돌릴 틈이 생기니 다시금 남편과 친구의 메세지를 떠올렸다. 만약 그에 대해 추궁했다면 남편은 동명이인이라고 발뺌을 했을까? 이달재라는 이름이 흔치 않은데 평소 남편의 성정을 생각하면 친구나 지인과 이름이 어떻게 같냐며 달재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가까이 지냈으리라. 그리고 남편에게 연락한 달재는 태섭을 알고있지 않은가. 정대만의 남편인 송태섭을 아는 이달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그 메세지는 태섭의 실종으로 인해 남편이 극도로 분노했음을 암시했다. 심지어 공통된 지인도 있어보였다.

"설마..."

바람인가? 하지만 달재의 말투는 마치 상급자에게 말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정말 남편이 어떤 불법적인 일에 말려들었거나 조폭이라도 된단 말인가.

태섭의 고민이 깊어질 무렵 가게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울렸고, 태섭은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가게로 들어선 사람은 이달재였다.

"달재, 너 꼴이 왜 그래?"
"태섭아."

달재는 특유의 선한 웃음을 지었고 얼굴에 거즈와 반창고, 시퍼런 멍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머쓱하게 뒷목을 문질렀다. 회식에서 취객과 시비가 붙은 것을 말리다가 그리 되었다는 핑계는 전혀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따지는 것을 원치 않는 듯 하여 믿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오히려 달재가 태섭에게 어디서 구르기라도 했냐고 되물었다.

"사고가 좀 있었어. 혹시 남편에게 연락 못 받았니?"
"나 형님 번호 모르잖아. 가게가 며칠 닫았다는 것도 방금 너한테 들어서 알았어."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요즘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차가 가게로 들이박기라도 한 거야? 급발진이나 그런..."
"......달재야."
"어, 태섭아."
"혹시 대만이 형이... 사채같은 걸 쓴 게 아닐까? 너무 무서워."

달재의 입술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태섭은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떠볼만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태섭은 달재에게 조폭같은 사람들에게 납치당했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얗게 질리는 얼굴을 보아하니 연기를 잘하는 것인지 이런 반응을 예상치 못한 것인지. 아무튼 빚때문에 일수꾼이 찾아온 것 같다고 말하니 달재는 이상하게도 대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같이 사는 나도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알아."
"형님을 자주 보진 않았지만... 얼마나 널 소중하게 여기시는지는 잘 아니까..."

그럴듯한 대답을 고르는 달재는 멋쩍게 웃었다.

"절대 너에게 해가 될만한 짓은 하지 않으실 거야. 널 소중하게 대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어."

원래도 사람을 보는 눈썰미가 뛰어나 몇 번 보지 않은 사람을 꿰뚫곤 하던 달재였다. 그러나 묘하게 뉘앙스가 달랐다. 단시간에 파악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을 말하는 느낌이었다. 눈썰미가 뛰어난 것 또한 사실이니 이 부분을 물고 늘어져봤자 원하는 답이나 반응을 끌어낼 순 없을 것이다. 그래도 태섭에게 확신을 주기엔 충분했다. 그들은 감추는 게 있다.


-


당분간 가게 문을 저녁이 되기 전 일찍 닫기로 했다. 수화기 너머의 남편은 그 결정에 대해 잘 생각했다고 했다. 숨기지 못한 퉁명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말투가 어린애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태섭은 집에 빨리 들어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병원에 들러 상처 처리를 받고 오후 느즈막하게 집에 돌아온 태섭은 거실에 앉아 티비를 켜고 ott를 실행했다. 그리고 생각나는 조폭영화란 영화는 죄다 섭렵하기 시작했다. 영화에 나오는 조폭들과 제 남편을 비교했다. 폰으로 뉴스나 유튜브같은 것을 검색해 실제 조폭들의 사진을 보기도 했다. 현대의 조폭들은 야쿠자들의 이레즈미와 같은 문신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보였다. 그것은 태섭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남편의 벗은 몸을 수도 없이 보았다. 그의 몸은 아주 깨끗했고 흉터라곤 왼쪽 턱에 있는 것이 전부인데, 그마저도 태섭이 낸 것이었다.

태섭은 남편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아닌 밤중에 테라스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 나가보았더니 화분을 죄다 깨뜨리고 쓰러져있던 키 큰 남자. 파편에 베인 것인지 다친듯 했고 도통 일어나지를 않아 부축하기 위해 건드리니 갑자기 예민하게 고함을 치며 매섭게 손을 뿌리쳤다. 이내 태섭의 얼굴을 확인하곤 안심했는지 그대로 눈이 뒤집어지며 기절했고 결국 구급차를 불렀었다.

그 뒤로 일주일인가 열흘 뒤였나,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쯤이었을 것이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 아침이어도 밤처럼 어두운 시각이었는데 기척도 없이 가게로 들어온 남자가 안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태섭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거대한 그림자만 보였던 태섭은 강도라고 생각해 그대로 원예가위를 쥔 손을 휘둘렀고 주먹과 가위날에 맞은 남자는 왼쪽 턱에 큰 상처가 나 흉터가 남게 되었다. 나중에 누가 감사 인사를 그렇게 하냐고 얼마나 역정을 냈던가. 그 뒤로는 가게 문에 종도 달았다.
연애하고 결혼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만남이 특이했을 뿐 이유도 없이 가게를 찾아오며 썸타는 과정도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

"네가 꽃집 사장이라 네가 만든 것 이상으로 예쁜 꽃다발을 구할 수가 없어."

들꽃 한 송이를 꺾어와 사랑을 고백하며 내밀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손톱에는 시커먼 흙이 끼어있었다. 파들거리는 연약한 꽃송이가 태섭을 꽃처럼 웃게 만들었다. 남자는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는 들꽃을 태섭의 코 가까이에 들이밀었고 태섭은 그를 받아들고 향기를 맡았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네요."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어느새 조폭 영화가 아닌 로맨스 영화만 보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은 창밖이 어두워져 문득 집 안에 빛이라고는 티비에서 나오는 불빛밖에 없음을 알게 된 탓이다. 태섭은 티비를 끄고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텅 비어있어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전화를 하려고 했다. 남편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에 적힌 남편의 저장명을 보고 미소를 지은 태섭은 경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대만도 아침에 비어있는 냉장고를 보았을테니 뜻이 통한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늦어서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없다는 매정한 말을 했다. 계속 미안하다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 너머가 소란스러웠다. 태섭은 본가에 갔다 오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 안이 고요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데 왜 이리 추운 걸까.


-


오랜만에 모인 삼남매의 입은 쉴새없이 나불거렸다. 정확히는 태섭을 뺀 나머지 둘이었다. 거의 주둥아리라고 부를 수준이었다. 형인 준섭은 운동을 했던 사람이라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도 먹는 양이 엄청났다. 태섭이 불판에 고기를 굽는 족족 형의 입으로 사라졌다. 보다못한 아라가 준섭의 젓가락을 세게 쳐냈다.

"우리도 좀 먹자! 양심있으면 오늘은 큰 오빠가 삽시다?"

아라는 투덜대며 키오스크로 고기와 맥주를 추가주문했다.

형제들은 이제 상처가 아물어가는 흔적과 옅은 멍만 남은 태섭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갑자기 생각이 급발진한 것인지 준섭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남편이 때리냐고 소리를 질렀다. 가정폭력이 언급되니 주변 테이블의 시선이 확 쏠렸다.

"미쳤어? 아니야! 며칠 전에도 직접 아침 차려서 입에 먹여주기까지 했는데!"
"아..."
"미친."

알고싶지 않은 혈육의 염장질을 들은 준섭과 아라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얼마 전에 집에 와서 저녁먹고 갔을 때 오빠 꼬라지보고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남매 중 유일하게 자기를 닮아 입을 닫고 속내를 숨기는 아들을 신경쓰는 어머니 또한 똑같이 속내를 숨기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한 성정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아들과 딸이 줄곧 태섭을 신경 쓰고 걱정하는 엄마를 모를 리가 있나.

"안 그래도 그 날 물어보셨어."
"근데 왜 똑바로 대답을 안 했어? 그러니까 엄마가 오빠 맞는다고 오해하잖아."
"맞는다고 생각한 건 형 아냐?"
"모전자전이라고 같이 생각한 거지 태섭아. 안 그래도 그 자식 마음에 안 들었어. 뺀질이같은 낯짝하며..."
"어딜 봐서 뺀질이야. 건실하게만 생겼구만... 그리고 안 때린다니까?"
"어어? 저거 지 남편이라고 편드는 거 봐."
"아니이~ 딴소리 말고 어디서 왜 그랬는지나 말하라고요~ 오빠 연애질 안 궁금해!"

태섭은 머뭇대다 넌지시 자영업하다보면 겪는 재수없는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소주를 따르던 준섭은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았다. 잔 밖으로 튀다 못해 넘친 소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이 태섭의 얼굴 정중앙을 가리켰다. 준섭은 남동생에게 숨기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태섭이 내놓은 대답이 엄마에게 들은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태섭은 확실해지면 말해주겠다고 얼버무렸다.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형제들에게 내 남편이 조폭이면 어쩌지? 같은 소리를 하는 게 말이 되겠냔 말이다.


-


오랜만에 저녁까지 가게를 열어둔 태섭은 동생 아라에게 메세지가 와있는 것을 확인했다. 꽃가게가 있는 상가 거리에 있는 술집에 있으니 마치면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아라가 이런 식으로 예고도 없이 사람을 불러낸 적도 없고 그럴만한 사람도 아니어서 의아함이 들었다. 다른 의심이 든다면 최근에 범죄 영화를 과하게 본 탓일까. 불꺼진 가게 안을 보며 문을 잠그며 태섭은 까닭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불안이 기우였음을 증명하듯 술집의 제일 구석 자리에 앉은 아라는 오뎅탕을 숟가락으로 불며 떠먹다 태섭을 발견하고는 쭉 내밀었던 입술을 집어넣고 손을 들어보였다. 자리에 앉으니 이미 맥주 한 병이 비어있었고 금방 딴 맥주와 조금 줄어있는 소주병이 보였다. 태섭이 혀를 차며 앉으니 아라는 기다렸다는듯 잔을 들고 소맥을 말아주었다.

"오빠. 태섭 오빠. 내가 감이 참 좋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태섭은 아라가 말아준 소맥을 한 번에 들이켰다. 아라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태섭에게서 잔을 달라고 재촉해 거의 뺏어가다시피 하곤 다시 소맥을 말았다.

"오빠 진짜 무슨 일 있지?"

태섭은 시치미를 떼며 밑반찬으로 나온 콘샐러드를 퍼먹었다. 아라는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고 앉아 메뉴판을 뒤적거렸다. 짐짓 무심해보이는 얼굴과 달리 제법 날카로운 말투였다. 대답이 없는 오빠를 흘겨보는 눈빛 또한 그랬다.

"내가 중고등학생이었으면 그냥 적당히 분위기만 보고 넘어갔을 거야. 근데 이젠 안 그러기로 했거든. 헉! 치즈 가리비구이? 이거 시켜야지. 여기요~!"

태섭은 테이블 아래로 폰을 만지작거렸다. 잠금화면의 미리보기로 남편이 오늘도 저녁에 들어가기 힘들겠다고 보낸 메세지가 보였다.

"아무튼 분명히 뭔가 큰 일이 있는데 말을 안 하는 게 뻔히 보인단 말이지."
"......너 형한테 용돈 받았지?"

젓가락으로 신나게 유리잔 바닥을 두드리며 소맥을 말던 아라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콱 소리나게 찍었고 유리잔은 두 동강이 나 기껏 황금비율로 만 소맥은 테이블과 바닥에 죄다 흘리고 말았다. 반쯤 뜬 눈으로 아라와 술웅덩이를 노려본 태섭은 묵묵히 티슈를 꺼내 테이블에 쏟아진 술을 닦았다. 얼마 받았냐고 물으니 그걸 또 솔직하게 액수를 말한다. 태섭은 아라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겨 딱밤을 때렸다. 높은 비명을 지른 아라는 아픈 이마를 문지르면서 태섭을 쏘아보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라밖에 없어 첫째인 준섭이 용돈을 주며 막내의 옆구리를 찔러댄 것이다. 아라는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닦으며 준섭이 합세한 2대1이 아닌 1대1인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 말했다. 아라는 집 안의 분위기와 가족들의 의중을 잘 읽어내는 아이였고 준섭은 그림으로 그린듯한 장남의 표본 그 자체였으므로 실제로 그러했을 것이다. 가게가 어려워 자금이 필요한지 묻던 아라는 무언가 퍼뜩 생각난 듯 사채라도 썼냐고 비명을 질렀다. 태섭은 아라의 손목을 잡아 진정시켰다.

진실에 약간의 과장만 하기로 했다. 최근 가게 운영시간을 줄이며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 영화를 많이 보다보니 과몰입을 했다. 우리 가게에도 그런 사람들이 올까봐 무섭다. 말이 이어질 수록 아라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태섭은 아라에게 영화에 나오는 그런 조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아라는 가리비 위에 버터에 구운 은행을 얹으며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예전의 태섭도 누군가 묻는다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아라가 출장이 잦은 대만의 직업이 정확히 뭐냐고 물었다. 그냥 회사원이라는데 뭐가 그리 궁금하냐고 면박을 줘도 자기 오빠가 얼마나 잘난 남자를 잡았나 궁금해서 그런다며 능청스런 대꾸가 돌아왔다.

"아무튼~ 돈 문제면 형부가 대출받아도 되잖아. 우리도 어느 정도는 도와줄 수 있으니까 너무 끙끙 앓고만 있지 말라구."
"알았어 알았어."
"저 저 건성으로 대답하는 거 봐. 사채같은 거 쓰면 안 된다?"
"안 써."

태섭은 글라스 잔에 소주를 가득 따른 뒤 한 번에 반을 마셨다. 맞은편에서 아라가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태섭은 테이블 위에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았다. 머리가 핑 돌면서 취기가 올라왔다.

"무서우니까 절대 안 해."


-


태섭은 의심과 초조함을 해결하고 싶었다. 의부증마냥 평생 남편을 의심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침 가게는 정기 휴일이었고 대만은 어제 집에 들어왔다. 지금 맞은편에 앉아 태섭이 만들어준 달걀말이와 함께 아침밥을 먹고 있는 저 잘생긴 남자는 자기가 미행당할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 종일 무엇을 할 거냐는 대만의 물음에 토스트기에서 튀어오른 식빵을 꺼내오며 비밀이라고 답했다.
식사를 마친 대만이 식기를 정리하며 조만간 이직을 할 생각이라는 말을 꺼냈다. 태섭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같이 있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 출장이 없을만한 곳으로 이직할 거라고 이어진 말에는 저도 모르게 화색을 내비쳤다. 대만은 그리 좋냐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자기 얼굴이 더 좋아보이는 건 모르는 모양이다.
남편이 직장을 옮기든 어쨌든 태섭은 오늘 하루의 일정을 정해놓았으므로 대만이 나가고 현관문이 닫힌 뒤 베란다로 뛰어갔다. 건물에서 나와 주차장에서 차에 올라탄 대만의 모습을 확인 한뒤 부랴부랴 겉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을 대비해 맞은 편의 카페 사장님이 타는 스쿠터도 빌려놓았다.

대만이 도착한 곳은 어느 낡은 건물이었다. 이렇다할 간판조차 없는 그곳으로 남편이 익숙하게 들어가 2층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태섭은 근처에 스쿠터를 세워두고 건물로 다가갔다. 긴장한 탓인지 건물 안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2층의 창문은 시트지를 붙여놓아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불이 켜져있기는 한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맞은편의 카페에 누군가 앉아 가게와 태섭을 감시했던 사실을 상기한 태섭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 건물에 작은 저가형 카페가 있는 것을 발견함과 동시에 건물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태섭은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 옆 건물로 뛰어갔다.

"이달재 이 개새끼가 너 씨발 죽여달라고 시위하냐?"

친구의 이름을 거론하며 큰 보폭으로 바쁘게 건물을 나오는 사람은 다름아닌 남편 정대만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낯선 목소리로 낯선 단어를 폭력적으로 배설하는 모습에 태섭은 큰 충격을 받았다.

"태섭이가 연락이 왜 안 되냐고! 어디갔는지 모르는 게 말이 되냐고 이 씨발새끼야!"

태섭은 주머니에 넣어둔 폰을 꺼냈다. 달재에게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열 통이 넘었다. 왜 연락이 되지 않는지 걱정하는 메세지도 많았다.

"네가 할 일이 태섭이 지켜보고 경호하는 건데 넌 씨발 그거 하나를 제대로 못 하냐? 또 그 좆같은 빡빡이 새끼들한테 납치당한 거면 니새끼 눈깔 파내고 사지를 찢어버릴줄 알아! 끊어! 이 개새끼야."

태섭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참으며 떨리는 손가락을 움직여 달재에게 영화를 보느라 몰랐다는 답장을 보냈다. 한 글자씩 힘주어 치느라 보내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전송버튼을 누르고 잠시 뒤에 폰이 진동을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아닌 방금 밖에서 그렇게 욕지거리를 쏟아내던 대만이었다. 태섭은 떨리는 손대신 폰을 꽉 쥐었다. 심호흡과 함께 힘을 천천히 풀고는 한참을 머뭇대다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입은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태섭아? 태섭이 너 맞지?]
".....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가 왜 그래."
[아냐 아무 것도. 오늘 외근이라 일찍 퇴근할 거 같거든. 우리 저녁에 치맥이라도 할까?]

대만은 태섭이 알고 있는 그대로 무척 다정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까와는 분위가 너무 딴판이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좋아요. 오랜만에 옛날통닭 먹고싶다."
[내가 또 기가막히게 맛있는 델 알지. 퇴근하면서 포장해갈게.]
"응. 내가 맥주 사놓을게요."
[그래~ 사랑한다~]
"나도 사랑해요."

전화를 끊은 태섭은 카페 밖으로 나가려다 대만이 카페로 걸어오는 곳을 보고는 황급히 몸을 돌려 직원에게 화장실이 있냐고 물었다. 카운터 안에서 의자에 앉아 심드렁하게 폰을 보던 직원은 여전히 시선은 아래의 폰에 둔 채로 손가락으로 가게 안쪽을 가리켰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회의감이 들면서도 이 건물을 비롯한 거리가 영 찝찝하고 섬짓한 느낌도 들어서 선뜻 나가서 대만을 대면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연으로 마주칠만한 길목도 아니고 그럴만한 동네도 아니었다. 마치 치안이 좋지 않은 슬럼가라고 해야하나. 이대로 나갔다가는 분명 여기에 왜 있냔 소리를 들을테다.

가게가 워낙 작다보니 화장실에서 문을 아주 조금만 열고 틈으로 밖을 보아도 가게 밖에 서있는 대만의 얼굴이 뚜렷하게 잘 보였다. 타성에 젖은 목소리로 주문을 받는 직원의 말도 또렷하게 들렸다. 그리고 폰을 보며 익숙한 듯 음료를 주문하는 남편의 옆으로 친근하게 말걸며 다가오는 덩치 큰 남자도 말이다. 머리가 저렇게 빨개서야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어어, 백호야. 뭐 마실래?"
"나 큐브라떼."
"그건 또 뭐람... 요즘 애들은 희한한 걸 먹는단 말이야."
"대만군 그렇게 아저씨같이 굴면 남편이 싫어할 걸~ 그 사람 꽃집한댔지? 꽤 귀엽고 세련됐던데."
"시끄러 임마."

대만은 나머지 사람들은 아메리카노로 통일이라고 말하며 음료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료들이 제조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백호라 불린 빨간머리 남자와 대만은 대화를 이어나갔는데 업무와 관련된 얘기인지 엿듣고 있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자동그라인더와 에스프레소머신이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더 그렇기도 했다.
기계와 사람의 소리가 뒤엉켜 웅웅대는 와중에도 자기 얘기는 귀신같이 잘 들리는 것이다. 남자가 대만을 향해 그 이후로 꽃집에 온 적이 있냐고 물었다. 생략된 주어가 누굴 얘기하는 것인지는 뻔했다.

"또 근처 어슬렁대나 생각날 때마다 폰으로 cctv 확인하는데 아직까진 안 와. 뱀같은 새끼들....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아까도 이달재 그 새끼가 태섭이가 연락이 안 된대서 가게에 있나 봤더니 없더라고."

하마터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소리를 낼 뻔했다. 태섭은 손으로 입을 막고 눈을 크게 떴다. 왜 놀랄 수 밖에 없었냐면 분명 남편은 cctv가 녹화기능만 있어서 실시간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커피를 양 손에 든 두 남자가 사라지고 태섭은 화장실에서 직원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나왔다. 머쓱하게 카운터로 간 태섭은 메뉴판을 둘러보고 직원에게 제일 번거롭지 않으면서 비싼 메뉴가 뭔지 물어보고 그것을 주문했다. 잠시 머뭇대던 태섭은 음료를 만드는 직원에게 아까 있던 남자들이 조폭이냐고 넌지시 물었다.

"보면 알잖아요."

직원의 말투는 친절한 듯 퉁명스러웠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가게 너머의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아마 그 붉은 벽돌 외벽의 낡은 건물을 말하는 것이리라.

"얼마 전에도 쟤들한테 당해서 전재산 날린 사람이 찾아와서 난동부렸다가 실려갔는지 죽었는지 뭐..."

질색하는 얼굴로 혀를 찬 직원이 완성된 음료를 태섭에게 내밀었다. 그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고객에게 보이는 친절함인가 순진한 사람에게 보내는 연민인 것인가.

"여기 처음이죠? 근처로는 안 오는 게 좋을 걸요. 손님처럼 길 잘못 들어서 어슬렁거리다 죽는 사람도 여럿 봤어요."

태섭의 떨떠름한 반응을 확인한 직원은 손가락으로 가게 바로 앞을 가리키며 자기 눈 앞에서 칼 맞아 죽은 사람도 봤다고 힘주어 말했다.

태섭은 가벼운 목례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스쿠터를 주차해놓은 곳으로 갔다. 스쿠터의 위치가 바뀌어있었다. 분명히 벽에 가까이 붙여서 세워놓았는데 불과 몇 m차이지만 골목길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스쿠터를 옮긴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그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름이 다가옴에도 정장에 넥타이까지 차려입고는 덥지도 않은지 아주 멀끔하게 서있던 그 남자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태섭을 발견하고 마치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 동네에서 못 보던 게 있길래."

남자는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버려 구두로 비벼 불을 껐다. 바닥에 버려진지 얼마 되지 않아보이는 꽁초가 이미 몇 개비가 있었으니 서서 줄담배를 피운 것이 분명했다. 태섭이 무어라 말하려 움찔거리자 남자는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대만이한테는 말 안 할테니 조용히 돌아가세요. 이 동네엔 두 번 다시 오지 말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한 남자는 이내 태섭을 투명인간처럼 취급하며 스쳐지나가 대만이 들어간 낡은 건물로 들어갔다. 일부러 신체는 닿지 않으면서도 옷은 스치도록 지나갔는데 그가 지나갈 때 지독한 담배냄새가 훅 끼쳐왔다. 카페에서 산 커피는 지독하게 맛이 없어서 반도 마시지 못하고 버렸다.


-


대만은 통화했던 대로 옛날통닭을 사들고 일찍 들어왔다. 조금만 더 일찍 들어왔으면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는 걸 깜빡해 허둥지둥 나가는 태섭과 마주쳤을 것이다. 그는 급하게 집으로 뛰어들어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는 태섭이 헉헉대는 것을 보며 의아해했다. 태섭은 낮에 공포영화를 봤더니 작은 거에도 놀라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식탁에 마주앉아 통닭을 먹고 있으니 여느 때와 다름이 없어 태섭의 긴장은 금방 풀렸다. 낮에 본 광경들이 다 환상이고 꿈같이 느껴졌다. 오늘 하루 무얼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얘기하는 일상이 어김없이 이어지는데 내가 괜히 벌집을 들쑤시는 게 아닐까?

"나 이직하면 이사갈까."
"갑자기 왜요?"

닭다리를 태섭의 손에 쥐어준 뒤 몸통의 살을 발라내느라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냥. 여기 아파트 너무 낡았잖아. 네 가게에서도 멀고. 거기랑 가까운데로 가자."
"거기 집값 엄청 비싼데....."
"그럼 가게도 옮길까?"
"그렇게 돈이 많아요? 비상금을 나 몰래 얼마나 숨겨둔 거야."
"뭐 어떻게든..."
"나 걱정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 때 그 일 때문에? 괜찮다니까요.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면 어차피 잡힐텐데 뭐."
"미안. 신고 못 해."
"네?"
"내가 실수로 영상 지웠거든."

태섭은 그럼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고 그에 대한 화제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았다.

'대만이한테는 말 안 할테니 조용히 돌아가세요. 이 동네엔 두 번 다시 오지 말고.'

그 말이 머릿 속에서 메아리처럼 끊임없이 울렸다.


-


남편이 깊이 잠들었음을 몇 번이나 확인한 태섭은 협탁에 올려둔 폰을 챙겨 안방에서 나왔다. 아직 밤공기는 차가워서 깊이 들이마시니 머리와 가슴이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폰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주소록을 뒤져 제일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을 울려도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어쩐지 낮에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에 새삼 미안함을 느꼈다. 얼마나 걱정하고 놀랐을지...

이어진 두 번의 시도에서도 통화에 실패했다. 밤이라 깊이 잠들었겠거니 짐작했다. 다만 아까부터 밖에서 누가 담배를 피는지 여기까지 냄새가 올라와 기분이 안 좋았다. 태섭은 베란다 밖으로 몸을 내밀어 아래를 둘러보았다.
단지랄 것도 없는, 건물 하나만 달랑 서있는 복도식의 낡은 아파트 입구 가까이에 있는 가로등 밑에서 어느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색에 잠긴듯 허공을 응시하던 남자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망원경을 꺼내 위쪽을 쳐다보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가로등 바로 아래에 서있어서 그의 행동이 아주 잘 보였다. 남자는 손가락을 튕겨 담배꽁초를 버리고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듯 했다.

♪♬

태섭의 전화가 울렸다. 가슴에서 무언가 쿵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달재. 달재가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회신을 준 것이겠지. 화면을 보니 저장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였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베란다 너머로 가로등 아래에 서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가 똑바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 여보세요....?"
[정대만 제법 귀여운 거 달고 사네?]




슬램덩크 대만태섭
2024.03.07 23:19
ㅇㅇ
모바일
미친 내 센세가 와줬어 사랑해
[Code: 3711]
2024.03.07 23:33
ㅇㅇ
모바일
와 센세다.. 완전 몰입해서 나도모르게 마지막에 숨도 참고 읽었어
[Code: e780]
2024.03.07 23:46
ㅇㅇ
모바일
아 세상에 마지막 대사에 심장 떨어질 뻔.... 허어어어......
[Code: 6fc9]
2024.03.08 07:56
ㅇㅇ
모바일
순식간에 읽고왔다 몰입도 무엇... 마지막 대사땜에 미치겠다 너무 궁금해요 센세 ㅠㅠㅠㅠ
[Code: 0034]
2024.03.08 09:13
ㅇㅇ
모바일
으아....센세 와줬구나 기다렸어ㅠㅠ
[Code: f37f]
2024.03.08 12:28
ㅇㅇ
모바일
와 존잼 이런 작품을 내가 그냥 봐도 되는걸까 센세ㅜㅜㅜㅜㅜㅜ 다음편 기다리고 있을게요ㅜㅜㅜㅜㅜ
[Code: 50c2]
2024.03.09 00:00
ㅇㅇ
모바일
뭐야뭐야 어나더라니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 분위기 진짜 스릴러같고 존잼
[Code: 9f1d]
2024.04.21 10:00
ㅇㅇ
모바일
와 몰입감 뭐야 미쳤다
[Code: d4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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