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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ㅈㅇ
다소 강압적인 관계 묘사 ㅈㅇ
과거회상
아주조금 하퍼바비..
분량조절 실패로 본편은 삼분할 예정








2-9(2)






하퍼 중령의 연설은 물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졌다. 가벼운 농담과 행사 참석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해 미국이 수호하는 자유와 정의라는 가치를 간결하게 논하더니, 이어 그 가치를 수호하고 돌아왔음에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PTSD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존재함을 알렸다.


정작 본인 역시 한 때 군인이었으면서도 바비는 퇴역군인들이 3명 당 1명 꼴로 PTSD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전역 전 군에서 제공해주었던 심리 상담을 '아무런 이상이 없다'라는 일관된 답변으로 성의없이 넘겨버린 데다 전우회니 퇴역군인회니 하는 모임 따위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기에, 바비는 자신만이 그런 증상들-갑자기 눈물을 흘리거나 악몽 때문에 수시로 깨어나거나 큰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거나-을 겪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연해진 사이, 중령은 자선행사의 기부금이 그런 퇴역군인들의 심리치료와 사회 정착을 돕는 데 쓰일 것이며, 참석해주신 여러분의 따뜻한 온정-기부금-에 감사하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


청중들 사이에서 고상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함께 박수를 치면서도 바비는 내심 연설의 내용을 비웃었다. 심리 치료? 나약하고 한가한 소리였다. 그런 건 푹신한 상담실 의자에 앉아 남의 인생을 간편하게 논하며 아무 도움도 안 될 조언이나 이래라 저래라 배설해대는 덜떨어진 의사들의 상술에 불과했다. 바비에게 정신과 의사들이란 수면제를 처방해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치들이었다. 차라리 모인 돈을 그대로 그 군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도움일 거라고, 그는 가식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 생각했다.


내용에 대한 감상과는 별개로 중령의 연설은 여러모로 훌륭했다. 듣기 좋은 낮은 음성에는 부드러움과 함께 진중한 힘이 담겨 있었고, 어휘의 선택과 발음은 고상하고도 매끄러웠다. 단 한번도 당황하거나 할 말을 잊거나 버벅거리지 않았고, 분명 정해진 대본을 읽는 것일 텐데도 알 수 없는 진솔함이 느껴졌다. 정치계의 러브콜에도 본인은 그저 무식하고 투박한 군인일 뿐이라며 수차례 거절했다고 들었는데…과한 겸손이었던 듯 했다.


아니면, 그저 저의 과대평가일 수도 있다. 바비는 자신이 저런 류의 알파들, 그러니까 강인하면서도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연상의 알파들에게 미묘하게 끌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마이크 윈 중사나…브래들리 콜버트 병장같은. 바비는 오랜만에 떠오른 이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별 생각을 다해, 라고 생각하면서도 바비는 하퍼 중령이 콜버트 병장과 비슷한 인상-이목구비나 파란 눈 같은 것들이-이란 걸 깨달았다. 어쩐지, 첫 눈에 마음에 들더라니…


단상에서 내려온 하퍼 중령은 이곳 저곳을 돌며 주요 인사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작은 주인 역시 그런 주요 인사 중 한 명이었기에 바비는 잠시지만 그를 가까이서 마주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작은 주인과 판에 박인 인사와 짤막한 이야기를 나눈 중령이 그 옆을 보좌하고 선 바비에게로 돌아섰다. 가까이서보니 무슨 연예인인가 싶은 외모였다. 눈가에 살짝 잡힌 잔주름이 깎아낸듯한 이목구비에 중후함을 더하고 있었다. 바비는 평소보다 살짝 더 긴장한 상태로 자신을 소개하며 중령이 내민 손을 가볍게 잡아 악수했다.


“이런, 손이 차가우시네요.”


하퍼는 빙긋 웃으며 잡은 손을 살짝 흔든 후 그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또 다른 참석자를 향해 자리를 떴다. 바비는 손끝으로 전해진 찰나의 온기를 잡아보듯 손을 한번 꽉 쥐었다 폈다. 코 끝에 중령의 체향인지 향수인지 모를 서늘하고도 묵직한 향기가 맴돌았다.


그러나 멍해있는 것도 잠시였다. 작은 주인이 느닷없이 그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놓았기 때문었다. 화들짝 놀라 주변부터 확인한 바비가 남자를 돌아보자, 남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비의 팔을 끌어당기더니 그의 귓가에 심술궂게 속삭였다.


“발정이라도 났어? 정신 차려.”













별관으로 끌려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밝았던 하늘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하게 조경된 정원 곳곳에는 이미 은은한 조명등이 켜진 상태였다. 바비는 대리석 계단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며 목을 꽉 조이고 있던 보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손에는 생수병 하나를 달랑달랑 든 채였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질 않아 답답했다. 중령과 조금 길게 얘기를 나누어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추가적인 기회가 오질 않았다. 중령이 워낙 바빠보였을 뿐더러 작은 주인이 자꾸만 시비를 걸며 귀찮게 하는 통에 뭘 시도해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허울뿐인 직책이라도 본인이 사장인데, 작은 주인은 오늘따라 비즈니스가 아니라 바비를 괴롭히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굴 만나서 뭘 하셔야된다 몇 번을 권유해도 듣기는 커녕, 바비의 옆에 딱 붙어 짜증과 변덕을 쏟아내기만 했다.


별 소득없이 스트레스만 받기 한참, 그나마 회장의 친우이자 타 기업의 중역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에 대해 얘기하자며 작은 주인을 따로 불러낸 덕에 바비는 잠시 자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중령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않았다. 아닌 척 여기저기를 서성이던 바비는 결국 중령을 찾길 포기하고 바람을 쐬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밀폐된 공기가 답답했던 데다, 아까부터 자꾸만 입 안에 남은 것처럼 느껴지는 텁텁한 맛에 속이 뒤집어지기 직전이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오늘도 한나절 내내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입에 넣은 거라곤 미친 발정난 개새끼의 역겨운 정액과, 퉁퉁 부은 목에 독약을 뿌리는 듯한 톡 쏘는 샴페인 뿐이었다. 바비는 눈에 띄지 않을만한 으슥한 곳을 찾았다. 그리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청승맞게 쪼그려 앉아 셔츠 제일 윗 단추를 푼 채 생수로 입 안을 여러번 헹궈냈다. 보글보글, 퉤. 보글보글, 퉤.


옆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려온 건 생수를 네 번째쯤 머금었을 때였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허무하게도 내내 찾아다녔던 이가 눈을 휘둥그레하게 뜬 채 서 있었다. 하퍼 중령이었다. 보타이를 풀어 헤쳐 목에 걸고, 셔츠 단추 또한 두 개 정도 푼 모습이었다. 당황한 바비는 머금은 물을 저도 모르게 꿀꺽 삼켜버렸고, 덜컥 사레까지 들려 요란한 기침을 터뜨리고 말았다.


입을 콱 틀어막은 채 쿨럭, 쿨럭 기침하는 바비에게 중령이 조용히 다가섰다. 땅에 떨어진 시선의 끝에 중령의 날렵하고 깨끗한 구두코가 나타났다. 바비는 들썩이는 가슴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눈 앞에 손수건이 내밀어져 있었다.


“괜찮습니까?”


얼결에 손수건을 받아든 바비는 목을 큼큼 대며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린 다리를 참으며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하도 답답해서 도망나왔는데, 먼저 온 분이 계셨군요.”


중령은 빈틈없어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어딘가 소탈하게 느껴지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둘 중 누구도 자리를 피하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에 서서 얼마간 대화를 이어가게 됐다. 바비야 목적이 있다지만 하퍼 중령은 왜 자리를 뜨지 않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 넓다란 정원에 몸을 숨기고 쉴 만한 곳이야 무수히 많을 텐데. 어쨌든 바비에겐 잘 된 일이었다. 거의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 아니 중령인 셈이었다.


선입견과 달리 하퍼 중령은 대화하기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예의와 함께 부담스럽지 않은 유머-묘하게 아저씨스럽긴 했지만-를 가지고 있었고, 상대로 하여금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화법을 사용했다. 게다가 그는 아까 전 아주 잠깐 인사를 나눴을 뿐인데도 바비의 이름과 직급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조금 서늘한 날씨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최근 바비의 회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함정 장착용 신무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갔다. 중령은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자세한 스펙과 견적 등을 물었고, 바비 역시 그에 맞춰 거의 영업을 하는 수준으로 상세한 내용들을 설명했다. 동생 남편감 확인하겠다고 나온 자리에 난데없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하퍼 중령의 태도가 매우 진지했기 때문에 성의있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치나 경영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무기니 전술이니 하는 것들에만 집착하는 외골수라더니 그 소문이 맞는 모양이었다. 그런 면모까지도 이전에 알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 바비는 말하다 말고 머리를 슬쩍 휘저었다. 그걸 어떤 시그널로 받아들였는지 중령이 화들짝 놀라며 사과했다.


“이런, 정말 죄송합니다. 쉬러 나오신 걸 텐데 제가 눈치없이 지루한 얘기를 계속 꺼냈네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 일인데요. 괜찮습니다, 뭐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중령은 밝아진 얼굴로 또 다시 하던 얘기를 이어갔다. 바비는 그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을 해주면서도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고, 또 한편으론 조금 즐거웠다. 사실 환경이 좆같아서 그렇지 바비는 회사일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수집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 기획을 몇 톤의 기능적 철덩어리로 구현해서 마침내 수백만달러의 숫자로 전환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주는 순수한 만족감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하퍼 중령은 바비의 말을 정말로 ‘듣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회사의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관장하는데도, 이런 자리에 나오면 바비를 그저 윗사람을 따라온 수행비서로 오해하거나, 직책이 꽤 높다는 걸 알더라도 관상용일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이들에게 전문적인 얘기를 하다보면 보통 반응은 두 가지였다. 되도않게 아는 척을 하며 바비의 지식 수준을 시험하려 들거나,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눈동자가 초록색이시네요.’ 따위의 수준낮은 플러팅을 날리거나.


놀랍게도 하퍼 중령은 그 어느쪽도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비의 말을 경청하고, 이따금씩 감탄을 하거나 질문을 던질 따름이었다. 그의 그런 반응은, 사실은 조금 으스대길 좋아하는 바비의 내밀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다. 매일 짓밟히느라 고개 들 일이 없던 자신감이 작게나마 기지개를 폈다. 어쩐지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바비는 저도 모르게 필요 이상으로 많이 주절거렸고, 그러다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얘기 도중 자신 역시 해병이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만 것이었다.


“해병이었다고요?”


중령이 놀라며 되물었다. 바비는 그 즉시 후회했다. 평소 그는 자신이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주변에 거의 말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일 얘기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반응만 돌아올 뿐이었니까. 특히 보병장교로 파병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면, ‘알파들 틈바구니에서 뭘 했을까’ 따위의 시선을 받기 십상이었다.


바비는 최대한 말을 얼버무리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해병대가 해군 산하에 있는 만큼, 중령은 바비가 근무한 시기와 부대 이름을 듣자마자 알려주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모조리 유추해냈다. 그러나 또 다시 놀랍게도 중령은 의외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지나치게 아는 척을 하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대신, 눈에 띄게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훈련이나 생활, 함정 근무 경험 등을 물어보며 대화를 이어간 것이었다. 마치 정말로 같은 ‘군인’을 만난 것처럼.


바비는 어느 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중령과의 대화에 빠져들었고, 그러다 습관적으로 손목 시계를 보고 나서야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는 걸 알아차렸다. 작은 주인이 저를 찾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벌써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바비가 중얼거리자 중령이 ‘끙’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계속 느꼈지만, 냉하게 생겨서는 생각보다 표정도 풍부하고 굉장히 다정다감한 남자였다. 바로 그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낯도 가리고 부끄러움이 많은 코너를 잘 감싸줄 것 같았다.


“이런 말하기 민망하지만 정말 들어가기 싫네요.” 중령이 홀 쪽으로 장난스럽게 고갯짓을 해보였다. “사실 이런 일에 별로 익숙하지 않거든요.”


아, 바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비가 조사한 바 하퍼 중령이 이런 류의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는 집안에서 수없이 요구했던 정치 입문도, 결혼 중매도 싸그리 무시하고 일년의 300일쯤은 바다에만 나가 살았다고 들었다. 그러다 그가 타던 함정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고, 휘하 부사관 몇명이 억울하게 옷을 벗을 위기에 처했으며,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하퍼 중령은 평생 손 벌린 적 없던 집안에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그게 바로 하퍼 중령이 고집을 꺾고 그동안 거부해왔던 정치입문과 정략결혼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큰 불행일 것이나 바비에게는 감사한 기회였다. 하퍼 중령은 집안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평범한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고 했다. 재벌가나 정치가와는 사적으로 얽히지 않겠다는 청렴한 욕심이겠지만 하퍼 가는 의견이 다를 터였다. 애초에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들에게 콩고물 없는 결혼은 무의미했다.


바비는 하퍼 중령의 마지막 자존심과 하퍼 가의 필요, 그 미묘한 경계선에 코너를 찔러넣을 자신이 있었다. 몇 가지 손만 쓰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자면 출신 세탁. 그는 트레일러에서 약에 취해 비루하게 죽어간 아버지에게 꽤 그럴듯한 옷가지들을 입혀줄 생각이었다. 회장이 고아 형제를 자식처럼 거두어 후원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그 고아 형제의 정확한 출신은 대외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었으니까. 회장의 도움만 받는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이미 바비는 회장에게 그 약속을 받아낸 상태였다.


물론 리스크는 있었다. 특히 바비가 도주에 성공한다면 회장은 바로 그 거짓말부터 협박의 패로 들고 나올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코너가 하퍼가 되기만 하면, 더 나아가 하퍼 가의 핏줄을 한 명이라도 낳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코너가 완전히 정착해 하퍼 가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나면 회장은 절대 경거망동할 수 없을 테니까. 코너가 아기를 낳기 전까진 자신 역시 계속 회장에게 묶여있겠지만 상관 없었다. 십 년을 넘게 견뎠는데 그 정도쯤이야.


경쟁자들을 처리하는 일도 서둘러 준비해야 할 것이다. 나이가 많아 그나마 안심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본 하퍼 중령은 지나치게 매력적인 알파였다. 더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고 나면 경쟁자들이 부나방처럼 달려들 게 뻔했다. 특효약은 아무래도 ‘소문’이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상류층의 결혼시장은 여전히 보수적이었다. 지저분한 추문들을 경쟁자들의 발목에 달아 물 밑으로 싹 다 가라앉혀 버릴 생각이었다.


바비는 자신을 향해 선량한 미소를 짓는 중령에게 마주 웃어보이며 그런 생각들을 했다.


“잘 시간에 깨있으니 어색하시겠어요.”
“역시, 잘 아시는군요.”


바비의 말에 밝은 표정으로 응수한 중령이 이내 “바다에는 어둠이 빨리 오죠.”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중령은 잠시 말이 없었다. 바비는 상대의 표정에서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씁쓸함을 읽었다. 곧 전역을 앞두고 있다는 건 이미 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가 다시 바다로 돌아갈 일은…이제 아마 없을 것이었다.


바비는 다시 한 번 시계를 보았다. 작은 주인은 아마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그래도 목적을 이뤘으니 아쉬울 건 없었다.


“들어가실 건가요?”


중령이 물었다. 바비는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상사랑 같이 와서요.”
“아, 맞네요.”


중령이 알았다는 듯 두 손바닥을 바비에게 들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안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들었다. 원래는 담배를 피러나온 모양이었다. 흡연을 한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바비는 의아했지만 곧 그러려니 했다. 길게 군생활을 한 사람이 흡연을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다만 코너와 결혼한 후에는 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한 대만….” 중령이 머쓱하게 웃었다.
“네, 그럼 저는 먼저.”
“혹시 담배 피시면 한 대만 피고 같이 들어가시죠.”


중령이 담배 한 개비가 삐죽 나온 담배갑을 내밀었다. 바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주 가끔, 진짜 끔찍한 하루였거나 할 때 코너 몰래 조금 필 때가 있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중령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중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픽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영화를 즐겨 보진 않지만, 꼭 영화 속 한장면 같았다.


왠지 모르게 자리를 뜨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한 대만 피면 입 안에 남은 역겨운 맛도 사라질 것 같은데. 하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었다. 바비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중령이 어, 소리를 내며 몸을 숙였다. 이내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중령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바비의 구두끈에 손을 댄 것이었다. 놀라서 물러나려는 바비의 뒷꿈치를 중령이 부드럽게 잡았다.


“잠깐만요. 풀려서요.”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바비가 허둥대자 중령이 담배를 문 채 그를 올려다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은은한 정원등이 중령의 파란 눈동자를 오묘한 붉은색으로 비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사십대라곤 믿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바비는 귀가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괜찮아요. 간단한 건데요.”


중령은 순식간에 바비의 구두끈을 솜씨좋게 매듭짓고 일어섰다. 흙이 묻은 무릎을 툭툭 털고 입에 문 담배를 그 손으로 옮겨 잡더니, 다른 손을 불쑥 내밀었다. 잠시 벙쪄있던 바비는 아, 하며 얼른 손을 마주잡아 악수했다.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아, 네. 네. 저도요.”


중령이 잠시 잡은 손을 내려다보며 음-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의아함에 슬쩍 올려다보자 곧은 시선이 바비에게로 뻗어져왔다.


“제가, 원래는 이러지 않는데.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지금까지와 달리 조금 어물어물 이어진 중령의 말은 미처 끝맺어지지 못했다. 바비, 바비! 작은 주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퍼진 때문이었다. 바비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중령이 손을 놓아주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겠죠?”


중령이 물었다. 바비는 머뭇대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또 뵙겠습니다.”


바비! 작은 주인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메아리쳤다. 풀숲을 헤치는 부스럭 소리도 함께였다. 바비는 서둘러 돌아섰다. 그러자 뒤에서 칙! 담뱃불붙이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왠지 간지러워, 바비는 발걸음을 옮기며 스스로의 귀를 한 번 아프게 문질렀다.











남자는 바비가 내내 하퍼 중령과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실수로 가져와버린 중령의 손수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집요한 추궁에 바비는 그저 우연히 마주쳐 일 얘기를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애초에 그런 이성적인 얘기가 그에게 통할 리 없었다. 남자는 바비를 호텔로 끌고 갔고, 씻을 시간조차 주지 않고 침대로 내동댕이쳤다.


남자는 검사를 해야 한다며 바비를 발가벗겨 몸 곳곳을 살피더니 이내 최소한의 애무도 없이 하체를 붙여왔다. 엎드린 바비의 얼굴을 침대에 내리 누른 채, 젖지도 않은 곳에 커다란 성기를 막무가내로 밀어넣었다. 끔찍한 고통이었지만 바비는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남자가 바비의 입에 바로 그 손수건을 물려놓았기 때문이었다. 평소보다 더한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네까짓게 주제를 알아야지. 엉덩이만 가벼워서는, 너 같은 년은 그런 인간한텐 가지고 놀 거리도 안돼, 알아?”


퍽, 퍽, 사납게 치댈때마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남자는 바비가 하퍼 중령을 유혹하려 들었다는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다. 바비는 변명을 포기했다. 대신 이를 악문 채 다른 생각을 했다. 그동안 세워 온 계획들을 다시 한 번 되짚고 되새겼다. 이 일이 끝난 다음엔, 그 다음 일, 그 다음 일이 끝난 다음엔, 그 다다음 일…


그렇게 하나씩 타고 가다보면 결국 도달하는 곳이 있었다. 바다였다. 해병 시절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그런 바다가 아니라, 에메랄드빛의 파랗고 아름다운 바다. 평온한 파도가 부서지고,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고, 갈매기가 높게 울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는 그런 휴양지의 바다. 그런 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하, 또 젖었네?”


헉헉대던 남자가 불쑥 귓가에 속삭여왔다. 어느새 밑에선 철퍽철퍽 질척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자극받은 몸이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한줌의 쾌감을 퍼올린 것이었다. 머릿속 바다가 먼지처럼 부서졌다. 바비가 무너지는 순간은 늘 이런 때였다. 바비는 울컥 터져나온 눈물을 침대보에 문질렀다.


치받아오는 몸짓은 점점 더 거세졌다. 넌 절대 날 못 벗어나. 남자는 미친사람처럼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리다 바비의 귀를 잔인하게 짓씹었다. 뜨끔한 통증에도 정신이 점차 흐려졌다. 네가 어딜 가든, 어떤 새끼를 만나든 내가 따라갈 거거든. 그리고 알려줄 거거든. 네가 얼마나 너덜너덜한 걸레인지. 네가 얼마나 지저분하게 굴러먹었는지. 알아들어? 그 새끼한테 다 알려줄 거라고.


이내, 남자의 중얼거림도 페이드 아웃으로 멀어져갔다.








#브랫바비 #슼탘
2023.11.12 07:37
ㅇㅇ
모바일
바비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b69]
2023.11.12 07:38
ㅇㅇ
모바일
하퍼도 호감이 있는거같은데ㅠㅠㅠㅠㅠㅠㅠㅠ코너랑 어떻게 만났을지 궁금하다
[Code: eb69]
2023.11.12 11:08
ㅇㅇ
바비 항상 자신보단 코너가 우선인거ㅠㅠㅠㅠㅠㅠ 출신세탁도 시키고 여러모로 노력해서 성사시킨 결혼인데 코너는 그래서 더 싫어했을 거 같다
[Code: 9c62]
2023.11.12 11:42
ㅇㅇ
모바일
바비야ㅠㅠㅠㅠㅠㅠㅠ
[Code: 6246]
2023.11.12 12: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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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실패 계속해줘요🧡
[Code: a60c]
2023.11.12 13: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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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귀던 애인하고도 헤어지게하고 하퍼랑 결혼할수밖에 없게 만들어서 코너한테 원망들은걸까ㅠㅠㅠㅠㅠㅠㅠ그리고 바비 도망갈 생각이라 코너한테 더 매정하게 군걸까ㅠㅠㅠㅠㅠㅠㅠ바비 왤케ㅠㅠㅠㅠㅠㅠ착하냐ㅠㅠㅠㅠㅠㅠ코너 나중에 다 알게될지 아니면 바비가 원하는대로 끝까지 모르고 살지ㅠㅠㅠㅠㅠㅠㅠ뒤가 넘 궁금ㅠㅠㅠㅠㅠㅠ
[Code: 8600]
2023.11.12 13: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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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자체는 원래 좋은 사람이다보니 괜찮은 알파들한테 호감을 사긴했는데 상황이 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브랫 만나서 넘 다행이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600]
2023.11.12 23: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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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아임크롸잉 ༼;´༎ຶ ۝ ༎ຶ༽ 내바비 행복하자
[Code: 8d7a]
2023.11.13 00:04
ㅇㅇ
브랫바비 바다에서 행복하게 사는거 내가 봤다
[Code: 892e]
2023.11.13 01: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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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하퍼 코너 잘 지내고 있을까ㅠㅜㅜ 하퍼는 시간이 른 지금 바비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궁금하고ㅠㅜㅜㅜㅜ
[Code: 5343]
2023.11.14 20:29
ㅇㅇ
센세가 올 때까지... 이 글을 읽고... 또 읽고.... 또 읽는다......... 존나 좋아........
[Code: 1229]
2023.11.14 22: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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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 바비야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바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7210]
2023.11.18 18: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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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작은주인 삐뚤어진 집착 저거 어떡하냐 ㅠㅠㅠㅠㅠㅠㅠ 네가 어떤 새끼를 만나든 네가 어떤앤지 다 알려줄거라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저 말이 심상찮게 들린다 왠지 브랫이랑 지내는 바비 어떻게든 찾아낼 것 같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브랫 바비랑 지내는 동안 퍼즐 맞추듯이 한조각 한조각 소중하게 끼워서 바비 과거 짐작하듯이 어렴풋이 맞췄는데 저랬던 바비 과거 알고 나면 어떤 반응일까 ㅠㅠㅠㅠㅠㅠㅠ 브랫은 그저 바비 자체가 좋은거라 과거가 어떻든 단단하게 품어줄 것 같은데 바비가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아서 벌써부터 가슴 찢어져 ㅠㅠㅠㅠㅠㅠ 바비가 그리는 미래처럼 평온한 바다에서 브랫이랑 손잡고 지내면 좋겠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ecc]
2023.11.18 18: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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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하퍼 보면서 자기 취향 떠올리고 자연스럽게 거니에 브랫까지 떠올리는거봐 ㅋㅋㅋㅋㅋ 바비 취향도 올곧다 ㅋㅋㅋㅋㅋㅋ 링컨도 그렇고 하퍼도 그렇고 바비 인생에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비 스스로 자기는 그런걸 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마음 한켠 내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서 또 마음 아프고 ㅠㅠㅠㅠㅠㅠ 근데 꽁꽁 두른 철갑같은 바비 마음 하나씩 풀고 들어가서 말랑한 속살 내보이게 만든 사람이 브랫이라는게... 또 막 벅차오름 바비와와랑 행복해야한다 진짜 ㅠㅠㅠㅠㅠ 하퍼바비 과거 보니까 하퍼코너는 또 어떻게 살고 있을지 뒷이야기도 너무 궁금하다 ㅠㅠㅠㅠ 센세 사랑해요
[Code: f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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