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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ㅈㅇ
과거 회상







2-3(1)







“표정이 왜 그래?”


남자가 물었다. 빗방울이 점점이 흩날리는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바비는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긴장을 놓지 않으려 애썼건만, 피곤에 지칠대로 지친 몸이 저도 모르게 잠시 넋을 놓아버리고 만 것이었다.


“아니, 그냥…비가 오길래요.”


바비가 황급히 답하며 얼른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남자는 이미 심기가 뒤틀린 후였다. 끼익, 중간차선을 달리던 차가 방향을 틀어 끝차선까지 내달리더니 우뚝 멈춰섰다. 바비의 몸이 한껏 앞으로 쏠렸다 좌석 등받이로 부딪히며 돌아왔다. 예고없는 차선변경과 급정거에 뒷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그들을 아슬하게 비껴갔다. 경악한 바비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안전벨트를 붙든 채 남자를 돌아보았다.


“넌 내가 우스워?”

“사장님, 그럴리가요. 그게 아니라…윽!”


남자의 커다란 손이 피할 새도 없이 바비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아찔한 통증에 눈을 질끈 감은 채, 바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또 무언가에 버튼이 눌린 모양이었다.


남자, 그러니까 작은 주인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본인 내킬 때 와서 바라지도 않은 애정을 쏟아붓다가, 조금만 심기가 뒤틀리면 이렇게 돌변해 사람 피를 말리곤 했다. 화를 내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었다. 주인의 지시로 새로운 거래처 CEO에게 접대를 해서, 알파인 부하직원과 웃으며 잡담-실제론 웃지도 않았는데-을 해서, 자신의 앞에서 웃지 않아서, 또는 억지인 티가 나게 웃어서, 순종적으로 굴지 않아서, 또는 네, 네 하며 재미없게 굴어서…


사실상 아무 기준도 없었다. 똑같은 행동에 똑같은 결과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었다. 주로 남자의 그 날 기분에 달려있었으나 그 기분이라는 것도 하루에 몇 번이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탓에 바비는 늘 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남자와 만나는 날엔 하루종일 그의 눈치를 살폈지만, 성공률이 그닥 높지는 않았다.


그래도 예전, 몇 년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멍청하고 제멋대로인 데다 아집투성이긴 했어도, 이렇게 죽끓듯 변덕을 부리진 않았었는데. 적어도 바비와 단 둘이 있을 때 만큼은, 처음 마주쳤던 날의 어린 소년같은 표정을 짓곤 했었는데. 그러나 전역 후 마주한 남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고 포악해져 있었다. 아마도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시작된 아버지의 구박과, 원치않는 결혼과, 쟁쟁한 처가의 위세 때문일 터였다. 흠집이 나 버린 그 알량한 자존심을, 가장 만만한 상대를 짓밟음으로써 회복하려 하는 것이다.


“너도 날 무시하는 거지? 어? 이 시건방진 오메가년아.”


남자는 머리채를 쥔 손을 흔들며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생일인 게 유세냐, 선물 갖다 바치니까 내가 호구로 보이냐, 너 같이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년한테 시간쓰고 돈 쓰는 내가 등신이다, 하여간 오메가들이란 조금만 잘해주면 끝도 모르고 기어오른다….


울컥 솟은 억울함이 숨을 턱 막아왔다. 남자의 말대로 오늘은 바비의 생일이었다. 중요하다고도, 특별해야 한다고도 생각해본 적 없는 날이었다. 다만 더도 덜도 말고 딱 평범하게만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랐다. 원래 계획대로 동생, 그리고 동생이 만든 서툰 케이크와 함께였다면 호화 파티도 부럽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남자는 그 소박한 바람을 당연하다는 듯 박살내버렸다. 약속도 없이 불쑥 나타나, 새벽부터 출근해 일한 사람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필요도 없는 새 옷들과 구두를 강제로 떠안겼다. 이미 저녁을 먹었다는 걸 알면서도 레스토랑으로 끌고가 억지로 기름진 음식을 먹게하더니, 묻지도 않고 예약해두었다는 호텔로 차를 몰았다. 그러더니 결국 이런 끝이었다. 빳빳한 새 옷과 새 구두에 갇힌 채, 머리카락을 붙들리고 갖은 모욕을 당하는 것. 고작, 잠시 무표정했었다는 이유로.


“이젠 대답도 안한다 이거지?”


남자가 바비의 머리를 창문으로 밀어붙였다. 쿵, 소리와 함께 옆통수로 아찔한 충격이 느껴졌다. 바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저녁 내내 그랬듯, 비굴한 미소를 지은 채 남자의 심기가 풀릴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알랑거리는 것이었다. 남자의 기분은 내려가는 것만큼 올라오는 것도 금방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애를 쓰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왠일인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그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바비는 뻑뻑하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눈을 파르르 깜빡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자의 손에 흔들렸다. 발작하듯 화를 내던 남자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그러다 바비를 차에서 끌어내 바닥에 내던질 때까지.


미친년, 독한년-남자는 비웅덩이 위로 엎어진 바비에게 욕설과 두 어번의 발길질을 퍼붓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차체가 낮은 스포츠카의 뒷꽁무니가 멀어졌다. 요란한 배기음이 희미하게 멀어진 후에야 바비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택시조차 잡을 수 없고 인적도 드문 고가교 한가운데였다.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이따금씩 스쳐지나갔다. 바비는 도로와 좁은 인도 사이의 경계석을 붙들고 참았던 속을 게워냈다. 그러면서도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오늘 밤, 남자의 앞에서 다리를 벌린 채 쾌락을 연기하진 않아도 될 테니까.









바비는 한참을 걸었다. 꺼지지 않는 뉴욕의 야경을 향해,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헤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비에 젖은 옷 때문인지, 컨디션 때문인지 이가 딱딱 부딪힐만큼 몸이 떨렸다. 발 뒷꿈치는 따끔하다 못해 쓰라렸다. 발을 딱 맞게 문 새 구두 때문이었다. 바비는 바로 몇 시간 전 보았던 구두의 가격표를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명품도 별 거 없네. 그러면서도 바비는 구두를 꺾어신지는 못했다. 나중에, 남자가 이 구두를 선물했다는 걸 잊어버렸을 때쯤 중고로 팔아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절 직전까지 걷다가 겨우 택시를 잡아탄 바비는 12시를 넘기고서야 집으로 들어섰다. 구두를 벗어보니 발등이며 뒷꿈치가 온통 까져있었다. 식은땀이 날만큼 아팠지만 바비는 윽, 소리를 꾹 참아냈다. 자고 있을 동생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정확히는, 엉망인 몰골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의 동생은 제 형만큼이나 잠귀가 밝은 편이었다.


“형 왔어…? 오늘 안 들어온다더니…”


방문을 열고 나온 코너가 까치집 머리를 한 채 눈을 비비며 거실을 내다보았다. 어둠속에서 조심조심 옷을 벗고 있던 바비가 깜짝놀라 돌아보자, 코너의 눈도 번쩍 떠졌다.


“형, 뭐야. 비 맞았어? 꼴이 왜 그래?”
“어?”
“다 젖었잖아. 잠깐, 형 다쳤어?”


코너가 허둥지둥 달려와 바비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아냐. 괜찮아.”
“아니긴 뭐가 아냐. 뭔데, 무슨 일인데? 가만, 이 옷은 또 뭐구.”
“아, 좀. 아니라니까.”


코너가 흙탕물 묻은 자켓을 붙들자, 바비는 괜히 성질을 내며 그 손을 뿌리쳐버렸다. 멈칫한 코너가 곧 상처받은 얼굴로, 그 동그랗고 선량한 눈매로 바비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바비의 마음을 늘 약하게 만들곤하는 표정이었다.


“야, 또 왜 울려고 그래.” 

“그냥 괜찮냐고 묻는 거잖아, 걱정돼서. 왜 또 화를 내는데.”
“화 내는 게 아니라…”


바비는 어후, 하며 자신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리곤 코너의 손을 다시 조심스럽게 잡아 흔들었다.


“아무 일도 아닌데 네가 놀라니까 그렇지. 그냥, 좀…오다가 넘어진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
“진짜야?”
“그럼, 진짜지.”
“한 번 봐봐. 다치진 않았어?”
“아, 됐어, 됐어. 내가 아까 봤는데 까지지도 않았더라.”
“그치만…”
“씻고, 어? 형 얼른 씻고 싶다. 넌 들어가서 빨리 다시 누워. 내일 회사가야 될 거 아냐.”


바비는 계속 그를 살피려는 코너를 살살 달래 겨우 방으로 밀어넣었다. 문을 닫기 직전, 코너가 다시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근데, 형…형 케이크 해야하는데.”


바비는 피식 웃었다.


“됐어, 열두시 지났는데 뭐.”
“그래도, 형 생일인데.”
“그럼 내일 해, 내일. 내일 먹자.”


코너는 잠시 시무룩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꼭 하는 거다?”
“그래, 빨리 자.”
“알았어…생일 축하해, 형.”


배시시 웃어보인 코너가 돌아서 침대로 향했다. 바비는 잠시 울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문꼬리를 꾹 잡았다가, 곧 천천히 방문을 닫았다.


그는 한참을 어둠 속에서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날 아침, 바비는 코너의 케이크를 먹지 못했다. 회사에 일이 터져 새벽 일찍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루종일 불려다니며 일을 수습한 후엔 다시 작은 주인에게로 끌려갔다. 전날 감히 뻗댄 대가를 치를 시간이었다. 남자가 코너를 운운한 순간 바비는 바로 무릎을 꿇었다. 남자는 바비의 머리를 구둣발로 짓밞은 후에야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발가벗겨진 채 남자의 몸 아래서 꾸며진 소리를 내뱉으며, 바비는 물끄러미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호화스러운 조명이 눈 앞에서 어지럽게 흔들렸다. 바로 그 때, 딱히 뜨겁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미지근한 결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 시궁창같은 삶에서, 이젠 벗어나야겠다고.













#브랫바비 #슼탘
2023.09.28 22:50
ㅇㅇ
작은주인새끼 원래 바비한테 진심인건 맞았나본데 그래도 바비 옆에 브랫 있으니까 포기하고 꺼져주세요...
[Code: 6fa7]
2023.09.28 23:00
ㅇㅇ
모바일
아니 근데 큰 주인은 미성년자던 바비 학대한걸로도 모자라서 다른 업체 씨이오들한테 접대까지 시켰어???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d6c1]
2023.09.28 23:53
ㅇㅇ
모바일
바비 과거 나올 때마다 브랫 생각 간절해짐 ㅠㅠㅠㅠㅠㅠ 추석이라 센세도 보고 행복 ㅠㅠㅠㅠㅠㅠ
[Code: adb8]
2023.09.29 00:02
ㅇㅇ
모바일
바비 ㅠㅠㅠㅠㅠ 살려고 발버둥 치려면 이기적으로 보일만큼 예민해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독하지 못해서 하나남은 가족 버리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버텼냐고 ㅠㅠㅠㅠㅠ 코너야 형한테 잘해라 ㅠㅠㅠㅠㅠ
[Code: c265]
2023.09.29 02:13
ㅇㅇ
모바일
바비가 조용히 작은주인한테 폭행당하는 장면에서 눈 파르르 떠는 거 존나 심장아리다 브랫이 좋아하고 약해지던 바비 표정 아니었냐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치보는거나 사소한 습관, 표정부터 식생활에 가치관까지 바비에게 남은 흔적들이 너무 찌통이다 브랫은 아직도 반도 짐작 못했는데 어떡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ce2]
2023.09.29 02:30
ㅇㅇ
모바일
진짜 구렁텅이었네 바비가 있던곳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지금 함께있는 브랫의 보금자리가 바비한텐 얼마나 소중한 보금자리인지 보인다ㅠㅠㅠㅠㅠ바비한테 브랫뺏어가면 안됨ㅠㅠㅠㅠㅠㅠㅠ
[Code: db6a]
2023.09.29 04:02
ㅇㅇ
브랫이랑 동거하는 지금이 바비 인생에서 처음으로 행복이란걸 느껴본 순간이었을거같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1516]
2023.09.29 09:11
ㅇㅇ
모바일
브랫 노동테라피로 많이 밝아져서 다행이야 바비 ㅜㅜㅜㅜㅜ 작은주인때문에 불안하지만 브랫이 알아서 해결해줄거라 믿고요
[Code: 650a]
2023.09.29 15:30
ㅇㅇ
모바일
바비 저렇게 살다가 몇년을 준비해온 탈출이 물거품 됐을 때 어땠을까ㅠㅠㅠ 지금도 브랫이랑 함께이긴 하지만 아직 바비가 둘 사이 뭐라고 정의내릴 수 없을테고 임시로 머무는 거라고 생각할텐데 아직도 넘나 불안할거 같아 물론 브랫이 케어해주면서 조금씩 안정 되찾아 가고 있지만ㅠㅠㅠ
[Code: 2f73]
2023.09.29 15:31
ㅇㅇ
모바일
바비가 주인들이랑 어떻게 지냈는지 그 구체적인 과거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찌통일 줄이야ㅜㅜ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f73]
2023.09.29 17:31
ㅇㅇ
모바일
브랫이 이 모든걸 아는 날이 오겠지? 내가 다 쫄림 ㅠㅠㅠㅠㅠ 아 다음편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목빠져요 ㅠㅠㅠㅠㅠ
[Code: 2f9e]
2023.09.30 22:40
ㅇㅇ
날마다 센세를 기다려요...
[Code: 54eb]
2023.10.01 18:28
ㅇㅇ
모바일
이 넓은 세상에 바비가 힘든거 알아주는 사람 단 한명 없이 살아왔는데 이제는 브랫이 알아주자ㅜㅜㅜㅠㅠㅠㅠㅠㅜ
[Code: 0edb]
2023.10.02 03: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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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ㅜ 너무 맘아파....
[Code: 1a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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