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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3 23:55
#버질에게해감받는매브

   中上 
 

bgm. F.P. Schubert, 'Der Erlkonig' x  'Game Of Thrones' theme (중간 첨부)

 





***





 
버질은 안심하고 수술실에 입성했고, 그의 시신경을 누르고 있던 거대한 종양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제거했다. 그러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던 종양이었던 만큼... 버질은 좀처럼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피트는 버질의 곁을 지키며 아주 많이 불안해했다. 
 

늘 자신이 사랑한 존재들은 일찍 제 곁을 떠나갔다면서, 자신이 버질을 사랑해서 그가 못 일어나게 된다면 자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거라 말하며 고개를 숙였고, 톰은 그저 묵묵하게 피트의 곁을 지켰다. 이틀이면 깨어날 것이라 말했던 의사들과 달리 이주가 넘도록 버질은 전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곧 시즌이 시작하는 만큼 두 사람은 이제 병실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좀처럼 떠나지 못하는 피트를 강제로 떼어내 훈련소까지 끌고 오는 건 톰의 몫이었다. 집중을 못하는 것은 결국 훈련에도 영향을 미쳤고, 갑자기 등장한 피트를 안 좋게 바라보던 훈련생들은 피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그를 더 맹목적으로 공격했다. 위험한 간격으로 점프를 시도하기도 하고, 주어 없이 비아냥거리며 마치 버질이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 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힘겹게 버티고 있는 순간 그가 무너지는 것을 하늘이 봐야겠다고 작정했는지... 피트의 어머니가 급사하셨다. 조용해야 할 장례식장은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한순간도 진정할 틈을 주지 않았다. 톰이 그들을 밀어내도 그들은 괴기스러운 표정으로 피트에게 달려들어 심경을 물었고, 피트가 처연하게 무너질수록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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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버질도 나 때문에 못 깨어나는 걸까...?"

"아냐. 버질은 좀 쉬고 있을 뿐이야. 그런 생각 하지 마."

"..."

 

 

톰이 아무리 확신을 가지라고 얘기해도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 피트는 안 좋은 상상과 우울에 갇힌 시간을 보냈다. 어두움 감정이 가중될 수록 피트의 연기는 이전과 색을 달리했다. 대중이 원하는 매버릭의 '캐릭터'는 이렇게 음울하고 강박적인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언론은 그를 불안과 우울을 슬럼프와 태도 불량으로 이야기하며 과거의 귀엽고 밝았던 모습을 강요했다. 

강요해서 되는 일이라면 이렇게 변하지도 않았으리라. 금메달, 은메달을 목에 걸던 피트가 동메달만 겨우 목에 걸며 포디움 상위에서 밀려나는 지경까지 이르자 언론은 피트를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놓쳐 추락한 기사'라고 묘사했다. 피트를 아프게 하는 것은 동료와 언론의 비난보다 깨어나지 않는 버질이었다. 

 

 

"지금 네 연기대로면 기존 프로그램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젠장!! 시즌이 코앞인데 어떡하려고!"

"프로그램 교체할 때도 됐죠... 솔직히 지금 이 정신으로는 맑고 순수한 왕자님 못합니다."

"사람들이 '매버릭'이라 불러주니 네 멋대로 해도 된다고 여기는 거냐?"

 

 

마땅한 대답도 없이 고개 숙이고 있는 피트에게 코치의 원색적인 비난이 이어졌다. 코치는 감독이 말리는 손짓에 겨우 자신이 선을 넘었음을 감지하고 얼버무리듯 사과했고, 마지막이라고 강조에 강조를 하며 새로운 안무가를 소개해줬다. 

안무가는 매버릭에게 매우 불친절했고 매브가 소화해내기 어려운 수준의 구성으로 연출로 그를 압박했다. 이 고난을 자신에게 주는 벌이라 여긴 매브는 불 속에 날아드는 나방처럼 제 한 몸 불태우며 새 프로그램을 익혔다. 훈련 인터뷰 등 갖은 매체를 통해 '매버릭'이 아슬아슬한 곡예 같은 삶이 비치자 사람들은 다시 그의 이레귤러적인 면모에 열광했다.

 

 

"톰, 나 잘하고 있어?"

"미첼 너만큼 훌륭하게 얼음 위를 그려내는 선수는 또 없을 거야."

 

 

한 계절이 지나자 어느새 우리의 입에서 버질의 이름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육체적 관계의 절정에 달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해바라기는 그렇게 백야에 갇혀, 가물어버린 땅과 함께 말라가고 있었다. 어느덧 피겨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날이 다가왔고, 그 개막 전날 지나친 긴장과 혹사당한 몸이 점점 균형을 잃어 종일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는 미첼을 본 아이스가 결국 패배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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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에게 네 연기를 들려달라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어. 네가 이렇게 망가진 걸 안다면 형이 안 깨어날 리 없으니까."

 

일장연설로 늘어놓은 이야기 속 '옳지 못한 것'에는 톰 아이스맨 카잔스키가 빠지지 않았다. 버질을 대신하여 그 자리를 차지해보자 하여도 흉내는 흉내일 뿐 진짜가 되지 못한다. 피트는 감정적으로 아주 몰아붙여졌어도 울지 않았다. 세상과 격리된 듯 그는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채 대회를 맞이했고 정신이 들고 보니 날의 커버를 벗기고 경기장 안에 들어서고 있었다. 

 

 

'내가 언제 여기에...?'

"... Representing U.S.A Pete Mitchell"

 

- 그간 슬럼프로 저조한 성적을 보였던 피트 미첼, '매버릭'의 순서... 그가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요? 오늘 그의 쇼트프로그램 음악은 '마왕'입니다.

 

차가운 얼음 위에 올라서자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안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텅 비어버린 머리로 2분 40초 동안 얼음판 위에 서 있다가 퇴장하게 될까 웃음이 터지려 할 때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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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너를 보여줘.'

"버질..."

 

어느새 피트의 주변에서는 얼음호수 내음이 풍겼다.



 

 





 

음악이 시작되고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피트 미첼의 상징적인 활주로 시작하는 오프닝, 조금 음이 높아진 순간 가장 높고 멀리 날아올랐다. 

 

-활주와 스텝, 굉장히 숨 가쁜 스타트입니다.

- 첫 점프는 쿼드러플 살코! 너무 빠른 속도로 들어간 탓일까요? 착지가 조금 불안했지만 잘 버텨줬습니다. 

'너 같이 제멋대로인 녀석은 팀에 필요 없어!'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놓쳐 추락한 기사' 

'난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온 거지...?'

- 이어지는 컴비네이션... 쿼드러플 토룹, 트리플 토룹 가볍게 랜딩합니다! 

'날 좀 내버려 둬.'

'날 따라오지 마.'

'도망치고 싶어.'

- 플라잉 카멜 스핀, 트리플 악셀!! 

- 모든 점프가 아주 굉장한 속도로 성공했습니다.

'피트 네가 원한다면 쉬어가도 괜찮아.'

'버질...'

고뇌에 빠져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어 하는 피트의 눈은 환상 속의 버질을 쫓았다. 

 

- 전혀 속도가 떨어지지 않고 있어요. 비거리가 굉장하기에 자칫 벽에 부딪힐까 아슬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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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는 죽음이 맴돌아. 너도 죽게 될 거야.' 

- 싯 스핀에서 이어지는 스텝 시퀀스, 굉장한 엣지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가 있는 곳에 내가 갈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너를 만나러 내가 갈게'

'버질, 네가 내게 오기 전에 죽음이 네게 먼저 닿으면 어떡하지?'

- 도대체 그는 무엇으로부터 이렇게 도망가고 싶어 하는 걸까요.  

'제발 죽지 마, 내 곁에 있어 줘.'

- 마지막 체인지 풋 컴비네이션 스핀...!

'사랑해, 피트'

"사랑해, 버질..."

 

- 경기장에 인형과 꽃이 쏟아집니다! 굉장히 인상적인 연기였어요. 

- 속도와 비거리가 월등했고 롱 엣지 판정도 없었기 때문에 가산점을 쓸어 담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 레벨 4의 스텝 시퀀스 파트의 트위즐 스타트에 들어간 이 아프고 간절한 표정 연기는 연기를 관람하고 있는 관중들의 마음을 찢어놓고 있습니다. 

- 귀여운 왕자님으로 데뷔한 매버릭군에게서 이런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 아! 지금 점수가 나온 것 같습니다! 시즌 베스트, 개인 베스트 갱신 와!! 1위로 올라섭니다!!

- 피트 미첼 군의 개인 최고 점수는 102.97점, 그리고 지금... 111.27점!! 108.31점의 B 선수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섭니다!

 

 

좋은 점수가 나오고 감독과 코치 모두 피트를 껴안고 환호했지만 피트는 지금, 이 순간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다시 혼자라는 것을 깨닫는 지금 보다 죽음이 쫓아오고, 환청으로라도 버질의 목소리를 들었던 순간이 그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대표하여 자리한 만큼 입꼬리를 올렸고,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와 축하의 말에 허리를 숙였다.

 

 

"미첼!"

"톰... 돌아간 거 아니었어?"

"내가 널 두고 어디를 가. 아직 우리 팀 시즌도 아닌 걸. 그리고... 굉장히 아름다웠대."

 

조금 이상한 문장 끝맺음이었다. 아이스가 이렇게 말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었나?

 

"고마워...?"

"그리고 누가 널 울렸냐던데? 그건 네가 직접 얘기해."

 

톰이 등 뒤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피트에게 건넸고, 피트의 품 안 가득 안고 있던 인형들은 그대로 바닥에 쏟아졌다. 

 

"여보세요...?"

- 왜 그렇게 울었던 거야. 

"너, 너어...! 무슨 잠을 그렇게 오래 자!"

- 내가 울린 거야...?

"..."

- 울지마. 난 네가 웃는 게 좋은데 응?

"언제 깨어난 거야...?"

- 오늘 새벽에 잠깐 의식이 들었는데, 바로 앞에 네 경기소리에 완전히 일어났어. 피트 네가 울고 있었으니까.

"보고 싶었어..."

- 나도 아주 많이 보고 싶었어.

"나 진짜 너무 힘들었는데... 너무너무 힘들었, 는데...!"

- 곧 만나러 갈게. 피트,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내가 늦어서 미안해. 너 미안하단 소리 듣는 거 안 좋아하는데... 사과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네.

"사, 과 말고 할 말 없어!? 진짜?"

- 사랑해. 경기 마지막에... 나한테 말한 거 맞지?

"이제 잘 보여?"

- 응,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 피트.

 

 

매브는 그제야 웃었고, 긴장이 풀렸는지 인형들 사이에 풀썩 주저앉아 한참 동안 버질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톰은 자신의 곁에서 말라가던 피트에게 단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뒤로 물러나야 하는 순간을 실감했다. 자신은 피트에게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해줄 수 없었다. 통화가 끝나고 피트는 옷소매로 자신의 얼굴을 거칠게 닦으며 톰에게 이야기했다.

 

 

"넌 정말 모르는 게 없네. 네 말대로 다 이뤄졌어."

"알면 잘해. 버질이 왔을 때도 제대로 보여줘야지."

"응...!"

 

 

가물은 땅이 푹 젖도록 단비를 맞고, 이슬을 머금은 꽃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톰은 이 모습만큼은 자신만이 아는 미첼의 얼굴이라고 위안하며 여유로운 척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숙소로 돌아가자. 내일 프리도 남았잖아."

"금메달, 딸 거야."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어쭈 넌 금메달 많다고 여유롭다?"

"아무래도 그게 사실이니까?"

 

 

복도에 까르륵 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미 두사람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누군가 이야기했다. 동화 속 왕자님이 돌아왔다고.

 

 




 

1. 바로 연결하기엔 부자연스러워서 쇼트 프로그램 추가, 쇼트 무대 구성은 하ㄴ, 네2선, 주놘차 셋 구성 보고 참고.

2. 아이스 본인 연습 성실하게 하고있다. 팀은 저조한 때가 있었으나 개인성적으로는 포디움을 놓친적 없는 수석이다.

3. 피트는 버질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어버린다.' 라는 징크스가 깨진 것에 제일 기뻐했다.



매버릭텀
버질매브
아이스매브
아이스맨매버릭
2022.12.03 23: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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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내센세 입갤....... 설리먼저 단다
[Code: ae32]
2022.12.04 00: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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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버릭 정신적으로 몰려서 휘청이는거 너무 안쓰러운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미친 곡이랑 피겨하는 피트 머릿속 상념들 교차되는부분 진짜 너무 좋아서 계속 읽게 된다
[Code: 64b3]
2022.12.04 00:05
ㅇㅇ
모바일
버질 한마디에 매브는 겨울 다 녹아버리고 봄 왔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근데 왜 괜히 불안하지....
[Code: 64b3]
2022.12.04 00:07
ㅇㅇ
모바일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미쳤어 ㅠㅠㅠㅠㅠㅠ왜 자꾸눈물이 나오냐 ㅠㅠㅠ
[Code: 9978]
2022.12.04 00: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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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어머니도 떠났는데 버질마저 떠나면 안된다고 ㅠㅠㅠㅠㅠ 깨어나서 다행이다 ㅠㅠㅠㅠㅠ 난 피트가 힘들때 버질이 위로해주던거 때문에 버질파였는데 이젠 아이스가 그 자리를 함께 나눠 갖는걸 보니까 그냥 셋이서 같이 사는거도 좋을 것 같아..ㅎㅎ
[Code: e5f9]
2022.12.04 00: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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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매브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ㅠㅠㅠㅠㅠㅠ
[Code: 77e6]
2022.12.04 00: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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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센세 왔다 ㅠㅠ 버질 깨어나서 다행이다
[Code: 7305]
2022.12.04 01: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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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이 항상 매브 곁에 있어줘야한다 그런데 아이스도 매브 곁에 있고싶어하겠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6cc]
2022.12.04 01:25
ㅇㅇ
버질 수술은 모두 성공적이었겠지? 이제 해감된 피트랑 행복해라

그리고 꼭 포디움 정상에 서길
[Code: f030]
2022.12.22 15: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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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센세 내 두 눈으류 연기를 보고있는 것 같아 휘몰아치는 감정 무슨일이야 센세
[Code: 1f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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