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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3 02:03
내 나이 서른 하나, 남편 위그는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 시아버지 로타르 5세의 상속자는 그의 형인 이태리 왕 루도비쿠스였는데 딸 뿐이 없는 그 왕은 3년 뒤 손윗누이인 이멘가르드의 장남에게 두 왕위를 모두 양위했다. 형제 모두에게 적자 사내가 없었기 때문이다. 왕이 된 더치인 리지나르는 실로 끔직한 자였다. 추악한 성품으로 일찍이 파문을 당하고 즉위한 지 3년 만에 죄를 받아 질병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타링기아와 이탈리아는 평화롭지 못했다. 왕위를 이어받은 리지나르의 동생 리치힌 또한 그 괴물보다 더 사악한 자였으므로. 7년이 더 흐르고, 이태리의 봉신들은 자신을 프리시아 왕이라 칭하는 배교자 리치윈과 그의 대립교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분노한 그들은 리치윈의 군대를 이태리에서 몰아내고 내 남편을 새 왕으로 추대했다. 그들이 기억하는 좋은 왕가에 남은 사내는 내 남편뿐이었다.

내 영지에선 늘 욕심 없는 듯 굴던 남편은 왕위에 오르자 미친듯이 입지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온 땅을 뒤집어 영지를 정비하고, 공작령을 분할하고, 봉신을 가두고, 봉지를 빼앗았다. 기존의 공작위는 부수고 새 공작위를 뿌려 제 사람을 만들었다. 남편의 정치력은 놀라웠다. 섭정 숙부와 늘 사이가 좋지 못하더라니, 깊은 속에 야심을 숨겨두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아직 내 영지에 숨겨져 있는 나의 어린 아들이 언젠가 이탈리아의 왕으로서 불려가게 될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서프랑크의 루이 3세에게 정중히 약혼을 청했다. 그의 뒤를 잇고, 그의 아내 머시아 여왕의 뒤를 이을 당신 장녀 쥴리엔느 공주에게 앞으로 이탈리아의 왕이 될 내 아들을 주고 싶노라. 두 사람 사이의 아이는 앞으로도 계속 카롤링거일 것이며, 위대한 샤를마뉴의 5대손이 서로 만나는 이 결합은 신성할 것이라. 약혼은 성사되었다. 남편 위그 카롤링거의 아이들은 비록 이국 변방의 데 그랑빌이었으나, 남편의 뒤를 이을 자손은 그를 대신하여 다시 카롤링거 왕가의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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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셋, 내 아들은 열세 살에 이탈리아의 왕이되었다. 발진티푸스를 심하게 앓고 몸이 쇠했던 남편이 허약하여 이르게 죽었다. 아들은 동갑내기 서프랑크 여왕과 조혼을 치루고 즉위식을 올리러 먼 길을 떠났다. 두 개의 공작령을 분할 받은 나의 둘째 아들도 함께 갔다. 작은 위그는 겨우 여덟 살인데, 그 애도 쥴리엔느 여왕의 동생 스테파니 공주에게 벌써 모계 장가를 들었다. 황혼이 저무는 나의 궁에는 또 다시 여인 뿐이다. 나와 내 딸, 내 동생과 내 동생의 두 딸.... 간절히 바라옵건대, 그저 신께서 모든 아이들을 돌보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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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 아에단, 이태리 왕인 아에단 2세가 십자군에 참전하여 큰 영예를 안았다. 수혜자는 브르타뉴 왕가의 외손과 혼인한 내 동생의 둘째 딸로, 스무 살의 알루윗은 남작 부인에서 퀠른의 공작으로 신분이 상승하여 로타링기아의 십자군 왕을 모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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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을 배반하고 제 첩보관 따위와 놀아난 부정한 여왕 쥴리엔느가 고작 십구 세의 나이에 매독으로 사망했다. 그녀와 몽페르트 남작의 두 살배기 딸이 서프랑크의 왕위를 이었고, 갓 태어난 이태리의 공주가 어펄 브르타뉴를 상속 받았다. 공작이 된 공주는 태어난지 다섯 달 만에 어미를 잃어 세례도 받지 못했다. 물려 받은 영지가 나와 가까워 얼마나 다행인지. 내 사는 모든 날에 너를 지켜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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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태리 왕 아에단 2세에게 여왕 쥴리엔느의 사촌 엠마 카롤링거와 재혼하는게 어떠하냐 편지를 보냈다. 루이 2세의 삼남, 쟝 카롤링거가 상속 받은 부르군디 왕위를 독일인 루트비히의 자식에게 빼앗긴지 오래이나, 엠마는 부르군디의 공주로서 세례를 받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편지의 말미에 더 중요한 것을 덧붙였다. 너는 카롤링거다. 너는 카롤링거와 혼인해야 한다. 너는 네 아비의 원대로 카롤링거의 혈통을 이어야 한다. 너는 카롤링거다. 아들은 조용히 뜻에 따랐다. 하지만 불행히도, 엠마는 병을 앓는 것을 숨기고 있었다. 내 아들과 성혼한 엠마는 피렌체 궁에 든 후 석 달 내내 질병만 앓다 죽었다. 아들은 넉 달 만에 또다시 두 번 째 부인을 보냈다. 나는 다시 카롤링거의 공주를 찾았다. 둘째 아들 베로나 공작 위그와 스테파니 공주가 혼인하기 전 고민하였던 후보가 남아있었다. 부르군디를 빼앗은 동프랑크의 왕, 그리고 바바리아의 왕이자 이제는 아키텐의 왕이기도 한 아놀드의 둘째 딸이었다. 그 공주는 아직 성년이 되지 않았다. 다시 아들에게 권했다. 아들은 접경국의 왕에게 조용히 청혼서를 써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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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작 Aeluit이 50세에 숨을 거뒀습니다. 그녀는 자연사했습니다. 불세출의 천재로 태어난 Aeluit은 날카롭로 눈부신 두뇌로 유명했습니다. 항상 문제를 찾아 해결하고 여러 위업을 일궈냈습니다.

여백작 Hawis가 31세의 나이로 재위에 올랐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그녀는 전설을 써내려갈 통치자 입니다. 여백작 Hawis 만세!

Hawis de Granville이 금고에 성 요한의 손가락과 왕의 거울을 추가했습니다. 이교도로부터 가스코뉴를 방어하는 전쟁에서 획득한 보물이거나, 백작 Aeluit이 14세의 어린 나이부터 써 내려간 위대한 저술서입니다. 어머니와 딸의 대화 형식으로, 외교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2024.02.08 13: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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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크킹 검색하다가 이제야 이걸 봤네.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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