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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0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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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는 18살 생일이 지나가고 찾아온 할아버지 비서에게 그렇게 말했다. 

- 이제 찾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할아버지의 비서는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전해 드리겠다고 했고 정말로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본가와의 인연이 완전히 끊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뒤 시장이 마을의 유지들을 데리고 섬을 찾아왔다. 덕분에 기차역을 유치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마을의 유지들은 노부를 마을에서 내쫓고 싶어하던 여관 주인을 비롯한 몇 명에게 확실히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때도 본가에선 아무런 연락도 없었고 비서를 보내 생색을 내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의 비서가 다시 찾아온 건 케이와의 아이가 태어나고 5년이 지났을 때였다.

두 사람의 아기는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그 아이가 눈물나게 사랑스러운 건 노부만이 아니어서 케이는 물론이고 정령들도 늘 아이 곁에서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아이는 늘 케이나 노부에게 안겨 있었고 아이가 잠든 방에는 늘 류세이의 불이 따뜻하게 타고 있었다. 아이가 잠에서 깨면 아이의 눈을 아프게 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을 정도의 아마미야의 빛이 반짝거리며 이제 막 시각이 발달하는 아아의 시선을 잡아끌었고 노보루는 아이의 침대 위에 매달아 둔 모빌을 흔들어주며 아이와 놀아주었다. 노부나 케이가 아이를 씻겨주는 아기용 욕조에는 늘 소라가 정성들여서 채워준 물이 가득했다. 그렇게 노부와 케이와 정령들이 온 정성을 다해서 아이를 돌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가가 생후 반 년쯤 됐을 때.

류세이가 정령체의 형태로 아이의 침대 위에서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아이가 긴 낮잠에서 눈을 떴다. 이제 이유식도 시작했기 때문에 류세이와 야마토가 온갖 정성을 다해서 만든 미음을 가지러 가려고 류세이가 침대 위를 분주하게 날아갈 때였다. 

"아우-"

침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노부와 케이, 날아가던 류세이가 모두 멈췄다. 아기는 류세이를 향해 손과 발을 뻗은 채로 웃고 있었다. 

"아우웅"

류세이가 조심스럽게 옆으로 움직이자 아기의 눈과 손이 류세이의 방향으로 따라왔다. 

"... 어? 우리 아가, 류세이가 보이니?"

케이의 목소리에는 기쁨과 놀람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류세이와 노부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리고 케이가 불러모은 정령들이 모두 모여서 침대 근처에서 하나씩 뾱뾱 나올 때마다 아가가 귀여운 탄성을 내지르며 조그마한 손을 뻗었다. 한참을 그렇게 정령들과 놀던 아가가 배가 고프다고 울기 시작하자 야마토와 류세이가 서둘러 주방으로 날아가서 소고기를 넣고 아주아주 곱게 간 미음을 가지고 왔다. 아기가 작은 배가 빵빵해질 정도로 미음을 먹고 나서 다시 잠들자 정령들은 아기를 깨우지 않도록 방갈로 밖으로 나가서 축제를 벌였다. 말 그대로 축제였다. 방갈로의 창 밖으로 불꽃이 펑펑 날리고 커다란 물방울들이 날아다니는 광경이 보였다. 예쁜 빛이 반짝반짝거리고 방갈로의 마당에 심어 둔 나무들의 나뭇잎이 살랑살랑 기쁘게 흔들리는 것도 보였다. 산책을 하던 고토가 보고 놀라서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달려와 묻는 것도 보였고 정령들이 고토를 보고 뭐라고 신나서 설명을 하는 것도 보였다. 노부와 케이의 아기가 정령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이겠지.

그런데, 모르겠다. 노부는 계속 멍했다. 

당연히 노부에겐 1살도 안 됐을 때의 기억은 없고 아주 어릴 때라고 해도 5-6살쯤에 노보루와 놀았던 기억이 노부가 기억하는 생애 첫 기억이었다. 하지만 노부도 노부와 케이의 아기처럼 눈이 트이면서부터 정령들을 보고 감각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모든 정령을 다 느낄 수 있었겠지. 그래서 어린 시절의 노부는... 

"우리 아가도 우리처럼 사랑스러운 정령들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갈 건가 봐요."

케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케이가 활짝 웃으며 노부를 끌어안았다. 

"잘 됐다, 그쵸?"

노부는 케이의 말을 들으며 정령들이 옳았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멍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 축제를 벌여야 할 때다. 케이의 말처럼 노부와 케이의 아가는 노부와 케이가 그렇듯 아주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살아갈 테니까. 

"그러게요. 귀엽고 든든한 친구들도 많고."
"우리 아기 더 많이 사랑받겠네. 좋다."

케이의 말대로 정령들은 원래도 두 사람의 아기를 정말로 예뻐했지만 자신들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더 정성을 다했다. 야마토와 류세이, 아몬, 소라가 함께 힘을 합쳐서 진흙을 직접 구워 아기용 욕조를 만들어오자 아마미야가 욕조 위에 고운 빛을 입혀서 반짝반짝하게 만들어놨다. 그리고 그 욕조에서 케이나 노부가 아기를 씻겨주는 동안 정령들이 고무오리 대신 아기의 시선을 잡아끌며 아기와 놀아주었다. 아무리 정령들이 아기에게 지극정성이라도 기본적으로 육아의 대부분은 노부와 케이가 맡고 있었지만 단 하나, 이유식만은 노부와 케이가 손을 댈 틈이 없었다. 류세이와 야마토를 필두로 해서 평소에는 주방에 거의 안 들어가던 노보루나 아몬까지 주방에 복작복작 모여서 노부와 케이 아가의 이유식을 만들었기 때문에 노부와 케이는 그저 아기의 식단을 짜 주는 것밖에 해 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어느 날 야마토가 노부에게 와서 텃밭을 넓힐 것을 요구했다. 

"브로콜리와 단호박을 심어야 됩니다."
"브로콜리랑 단호박? 사 올게."

마침 정령들이 쇠고기도 좋은 걸로 사 오라고 해서 (노부나 케이에게 먹이고 싶은 게 아니다. 아가의 이유식용이다) 마트에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사 오겠다고 하자 야마토는 고개를 저었다. 

"텃밭을 더 만들려고 합니다. 저와 아몬, 소라의 힘이 담긴 신선한 재료를 써야 되니까 브로콜리와 단호박을 심겠습니다."

아기는 금방 자란다. 이유식의 주 재료도 계속 달라질 텐데 그때마다 다 심자고 할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케이가 실컷 자고 일어나자마자 이유식을 냠냠 먹고 기분이 좋아진 아기를 품에 안았다. 노부가 얼른 아기띠를 매고 아가를 받아안아주자 케이는 노부의 겉옷을 입혀주며 야마토를 달랬다.

"일단 마트 닫기 전에 다녀와야 되니까 텃밭 건은 갔다 와서 이야기하자. 소고기랑 닭가슴살 말고 또 뭐 사 와야 돼?"
"브로콜리랑 단호박, 바나나가 필요합니다."
"알았어. 그럼 우리 다녀올 테니까 그동안 다들 좀 쉬고 있어. 요즘 우리 아가 돌봐준다고 다들 너무 못 놀고 있잖아."

케이는 푹 쉬고 있으라고 야마토의 어깨를 두드렸지만 노부와 케이가 아기를 데리고 장을 보고 오는 한두 시간 동안 아기를 못 볼 생각에 야마토는 벌써 시무룩해졌다. 그건 다른 정령들도 마찬가지라서 차를 타러 가는 그 짧은 길에 정령들은 계속 따라붙으며 아기띠에 폭 싸여서 노부의 가슴에 달라붙어 있는 아기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며 놀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정령들을 겨우 달래놓은 노부가 베이비 카시트에 아기를 앉히고 잘 고정해 준 다음 아기의 옆자리에 앉자 운전석에 앉은 케이가 웃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브로콜리랑 단호박 키우는 걸로 만족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될지도 몰라."
"네?"
"그래도 소나 닭을 키우자고 하지는 않잖아요."

소고기가 필요할 때마다 일일이 소를 잡을 수는 없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싶지만 지금 정령들의 열정을 생각하면 아예 상상도 못할 이야기는 아니라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눈을 뜨고 있을 때마다 정령들이 놀아주는 데 익숙해진 아기가 심심하지 않도록 노부가 열심히 딸랑이를 흔들어주고 있자, 케이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바나나 키우자고 할지도 몰라. 그건 진짜로 가능성있다."
"설마요."
"소나 닭을 키우자고 하지는 않겠지만 과일들은 위험해. 우리 숲 과수원 될지도."

정말로 가능한 이야기라서 노부는 또 웃음을 터뜨리며 딸랑이를 딸랑딸랑 흔들어 주었다. 

"우리 아가 과일 좋아할 거니? 네가 과일을 좋아하면 정말로 우리 과수원 일구게 될지도 모르는데?"

물론 아직 생후 1년도 안 된 아기는 아빠가 딸랑이를 흔들며 놀아주는 게 좋아서 꺄르륵 웃을 뿐이었다. 

"이러다 나는 평생 우리 아가한테 밥 한 번 못해 줄지도 몰라요. 류세이한테 셰프를 물려준 건 불만이 없지만 나도 우리 아가한테 맛있는 거 먹이고 싶은데요."

마침 마트 주차장에 도착하자 케이는 차를 세우고 고개를 돌려서 노부의 손을 잡았다. 

"노부가 손이 한 요만했으려나."

케이는 노부의 손바닥을 펼치고 손가락을 뺀 손바닥의 반 정도 되는 원을 그리며 웃었다. 

"노부 손이 요만했을 8살 때 어린이 노부가 정령들이 아프거나 죽을까 봐 하루 종일 주먹밥만 만들고 그 주먹밥을 정령들에게 먹이려 애썼을 때 정령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동했겠어. 그래서 정령들도 노부한테 받았던 마음을 우리 아가에게 돌려주고 싶은 걸 거예요. 어린 아가정령들이 노부한테 배운 사랑이 그거니까 노부한테 배우고 노부한테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주려고. 노부가 정령들을 아끼고 사랑했으니까 정령들도 우리 아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거죠."

케이는 잡고 있던 노부의 손을 들어서 손에 상냥하게 입을 맞춰주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도 우리 아가 밥은 직접 해 먹여보고 싶으니까 틈 봐서 우리도 열심히 끼어서 밥해 주자. 그래도 몇 번은 우리한테도 기회가 오겠지."
"그래요. 틈 봐서 끼어들어요."

우리 아가한테 밥 한 번 못해 먹이겠다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케이와 노부만큼 아가를 사랑해주는 정령들이 고맙고 예뻤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정령들에게 선물을 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그날 밤 노부는 아직 아기가 태어나기 전 아기를 기다리며 아기가 물고 빨아도 위험하지 않은 봉제인형 장난감을 만들어주기 위해 익힌 바느질 솜씨를 발휘해서 정령들을 위한 작은 쿠션과 이불 세트를 만들었다. 어린 노부가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정령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어린 아이의 솜씨로 바느질을 잘해 낼 수가 없어서 만들 수 없었던 쿠션과 이불 세트였다. 그 쿠션과 이불들이 이제 정령들이 유일한 가족이 아니게 됐지만, 옆에 노부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케이와 아기가 있고 케이와 아가를 통해 사랑을 주는 법과 받는 법을 제대로 익혀서 정령들을 더욱 아끼게 된 어른 노부의 손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케이는 노부가 커다란 손을 솜씨좋게 움직여서 바느질을 하는 걸 보더니 종이를 꺼내서 각 정령들의 특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의 정령 소라
물처럼 맑고 깨끗한 파란색의 정령. 
목소리는 물방울이 톡톡 터지는 것처럼 상쾌하고 맑은 느낌
꼼꼼하고 섬세하지만 용감하며 귀엽고 상냥하고 매우 마음이 넓음


소라부터 시작해서 
 

불의 정령 류세이
불처럼 뜨겁고 화려한 붉은색의 정령
목소리는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화려하고 강렬한 느낌
애교 많고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럽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충만하고 마음이 따뜻함


류세이까지 정령들의 특징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전에 고토가 그려 준 정령들의 초상화(?)들과 정령들이 고양이나 늑대일 때의 초상화, 그리고 고토가 노부, 케이와 인간형의 정령들을 함께 그려준 초상화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건 왜요? 뭐하려고요?"
"얼마 전에 고토가 보여준 사이트에 보니까 오르골도 태엽식 같은 거 말고 수동식으로 감아주면서 연주하는 식으로 종이악보 넣는 게 있더라고."
"디스크나 실린더식이 아니고 종이 악보?"
"응, 볼래요?"

케이가 열어준 사이트를 보니 안에 종이악보를 연주할 수 있는 무브번트가 들어 있고 옆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는 나무상자들이 있었다. 같이 보내주는 빈 악보에 악보를 그리고 펀칭해서 넣으면 오르골이 연주되는 모양이었다. 

"노래는 어떻게 하려고요?"
"시시오 형한테 각 정령에 맞는 테마곡을 짧게짧게 만들어달라고 의뢰하려고. 고토 임신하고 초기에 호르몬 때문에 기분 오락가락할 때 내가 잘 돌봐줘서 고맙다고 나한테 원하는 거 말해주면 선물해 준다고 했거든요. 고토 좀 돌봐 준 걸로 노래를 6곡이나 달라고 하는 건 너무 비양심적인가?"

글쎄다. 케이와 아기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노부만큼 시시오도 고토와 고토의 뱃속에서 커가고 있는 아기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서 몇 곡이라도 써 줄 것 같은데. 케이는 보육원에서 달아날 당시 시시오가 선뜻 챙겨준 돈이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됐는지 여러 번 말했다. 그래서 고토와 시시오를 등대여관에서 살게 하면서 자신이 받았던 퇴직금을 고토와 시시오의 숙박비로 전부 노부에게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시시오가 당시에 준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정말 큰 마음의 빚이었으니까 살면서 갚고 싶다고. 그러나 노부는 18살이 됐을 때 10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겨주셨으나 노부가 미성년자라 쭉 신탁에서 관리해 오던 유산을 한 번에 받았기 때문에 케이의 돈은 케이가 가지고 있게 했다.

노부의 예상대로 시시오는 정령들을 위한 짧은 노래 6곡을 부탁하자 흔쾌히 정말로 정령들을 실제로 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각 정령에 너무나 딱 맞는 느낌의 오르골용 테마곡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노부와 케이가 마음을 담아서 그려내고 정성스럽게 구멍을 뽕뽕 뚫은 종이악보를 끼운 오르골을 선물해주자 정령들은 잔뜩 흥분해서 또 뿔꽃을 뿜뿜, 물방울을 톡톡, 모래를 사박사박, 바람을 살랑살랑, 나뭇잎을 흔들흔들, 빛을 반짝반짝하며 축제를 벌여서 등대여관이 반짝거리게 만들었다. 

정령들과 이 섬에서 살아온 20여 년 동안 노부와 정령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돌봐주면서 도란도란 살아왔지만 정령들과 함께하는 매일매일은 잔잔했었다. 그러나 케이가 등대여관에서 지내게 되면서 정령들이 신나서 축제를 벌이는 날은 수시로 찾아왔다. 모두가 행복에 겨워서 어쩔 줄 모르는 날이 그만큼 많았으니까. 케이가 소라부터 류세이까지 하나하나 오르골을 연주해주자 정령들은 신나서 노부에게 달려들어 안겼다가 케이에게 안겼다가 고토나 시시오에게도 안겨가며 어쩔 줄 몰라했다. 시시오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고토가 옆에서 정령들의 고마움을 잘 전해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정령들은 케이가 츄르를 먹여줄 때 그랬던 것처럼 하나씩 순서대로 아가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서 자기들의 테마곡을 하나씩 연주해 주었다. 

아무래도 음악적 재능을 타고 난 것이 틀림없는 우리 아가는 정령들이 각자의 음악을 연주해 줄 때마다 작은 손으로 짝짝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기가 5살이 됐을 때, 십여 년만에 할아버지의 비서가 다시 찾아왔다. 

"도련님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네, 5년 전에 태어났죠."
"회장님께서 보고 싶어하십니다."
"저를 다시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 하신 말씀을 철회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기를 한 번 보고 싶으시다고."

노부는 헛웃음을 지었다. 노부도 달라지고 정령들도 달라지고 케이도 달라졌는데, 달라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곤타도 저와 같은 세상을 봅니다."
"네?"
"우리 곤타도 저와 케이처럼 예쁘고 귀여운 정령들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봅니다. 그래도 곤타를 보고 싶으시면 직접 오시라고 하세요. 어차피 여기는 할아버지 땅이니까요."

케이와 곤타에게 이 사람을 만나게 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이 사람 역시 정령이 보인다는 노부를 거짓말쟁이라고 여길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케이와 곤타가 정령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비서를 데리고 갔다.정령들은 정령체로 있는 것이 가장 편한지 아니면 곤타에게 제일 예쁘고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인지 요즘은 거의 항상 정령체로 있기 때문에 비서의 눈에는 혼자 꺄르륵 웃으며 뛰어다니는 곤타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노부의 눈에는 곤타의 손을 잡고 날아다니는 류세이와 노보루가 훤히 보였다. 혹시나 곤타가 넘어질까봐 곤타를 둘러싸듯 보호하며 날아다니는 다른 정령들도. 비서는 정령들이 보이지 않아도 꺄르륵 꺄르륵 웃고 있는 곤타의 눈에 뭔가 보인다는 건 알았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돌아갔다. 그리고 보름 후에 다시 돌아왔다. 

"곤타를 데리고 뵈러 갈 준비를 할까요?"

할아버지가 정령을 본다는 곤타를 만나고 싶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덤덤하게 묻자 할아버지의 비서는 딱딱한 얼굴로 서류를 내밀었다. 

"회장님께서 이 섬을 도련님에게 증여하셨습니다. 세금 문제는 저희가 다 해결했으니 따로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 섬을요?"
"회장님께서 도련님을 지켜주지 못했던 가족 대신 이 섬과 케이타 상과 곤타 군이 도련님을 지켜주길 바라신다고."
"..."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노부와 노부의 가족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사과는 예상하지도 못했고, 사과의 의미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 대답 없이 비서를 바라보자, 지금껏 전혀 관심이 없었던 비서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수트, 검은 타이, 검은 구두. 

"도련님과 케이타 상, 곤타군은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알아챈 노부가 울컥했던 것도 잠시. 장례식에는 오지도 말란 말에 울컥 차오르던 가슴이 다시 차갑게 식었다. 끝까지 자기 좋을 대로만 하는 사람이었다. 질린 노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비서는 말없이 떠나갔지만 노부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때 등 뒤로 따뜻한 체온이 감겨 왔다. 시선을 내리자 노부의 허리를 감은 손이 보였다. 

"케이."
"응. 혼자 무슨 생각해요?"
"케이랑 우리 곤타 생각."
"혼자 있을 때도 가족 생각밖에 없는 내 남자."

노부가 처음 속했던 가족은 남보다 못했지만 언제나 노부의 옆에 있어줬던 정령들과 노부가 직접 선택한 아름다운 이와 이룬 가족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했으니까 하루 24시간 생각해도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노부가 돌아서서 케이를 품에 안자 케이는 노부를 끌어안고 눈을 맞추며 빤히 바라보더니 웃었다. 

"왜요?"
"내 남자 매일매일 몇 년째 보고 있는데 왜 봐도봐도 잘 생겼나 신기해서."

노부가 우울해 보이니까 맘 풀어주려고 하는 게 훤히 보여서 노부는 상냥한 말만 하는 케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케이 맘이 떠나지 않게 매일 정령들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관리하고 있어서?"

케이는 웃으며 노부의 뺨을 쓰다듬었다.

"내 맘이 어떻게 떠나. 이렇게 좋은 남자가 내 건데 옆에 꼭 붙어 있어야지."
"관리한 보람이 있네요."

케이는 노부의 넉살 좋은 말에 키득키득 웃더니 가볍게 입을 맞추고 노부를 꼭 끌어안은 채로 눈을 맞추고 물었다.

"내 남자, 행복해?"

할아버지와 노부는 한 번도 서로를 이해한 적이 없었고 결국 이해도 화해도 하지 못한 채로 영원한 이별을 했지만 할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이 섬과 케이와 곤타 그리고 정령들은 노부를 지켜주고 노부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이 섬과 등대여관은 앞으로도 노부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가족과 정령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할 것이고, 이젠 휴가만 생기면 당연한 듯 등대여관을 찾아오는 츠지무라, 가루베와 이치로, 쿠로사와, 그리고 타카노, 타니 커플이나 그 아이들이 조만간 찾아와서 한바탕 또 시끄럽게 웃으며 놀다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노부의 생애는 케이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아팠던 시간만큼 두 배로 행복한 시간들이 계속 펼쳐질 것이다. 분명히.

"아빠, 류세이가 이거 만들어줬어!"

곤타가 류세이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종이 비행기를 든 채로 노부와 케이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옆에는 늘 그렇듯 곤타에게서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는 다른 정령들도 함께였다. 노부는 그런 정령들과 곤타 그리고 품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케이를 보며 조용히, 그러나 진심과 확신을 담아 말했다. 

"행복해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ㄹㅇ 끝! 읽어줘서 ㅋㅁㅋㅁ
#노부마치     #등대여관노부마치     
2023.04.20 04: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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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ㅠㅠㅠㅠ
[Code: a03e]
2023.04.20 04:53
ㅇㅇ
모바일
놉맟 출차순했어ㅠㅠㅠㅠ 정령들이랑 매일 축제하면서 지내는 놉맟네ㅠㅠㅠㅠ 센세 사랑해 영원히 놉맟해줘ㅠㅠㅠㅠㅠ
[Code: a03e]
2023.04.20 04: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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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센세 가지마ㅠㅠㅠㅠㅠㅠㅠ 센세 없이 부케비 못살아ㅠㅠㅠㅠㅠㅠ
[Code: 8412]
2023.04.20 06: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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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왜 영원히 놉맟 같이하자는 얘기가 없는거에요 센세가 부케비들 놓고 어디가면 안되는데ㅠㅠ 센세 본편끝일때 영원히 같이 놉맟하자는 마음 그대로인거 맞지 외전까지 다 끝났다고 이제 안하는거 아니지 센세 어디가지말고 영원히 부케비들하고 놉맟하자ㅠㅠㅠ 센세가 같이 놉맟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부케비할거야ㅠㅠㅠ 사랑해ㅠㅠㅠ
[Code: baae]
2023.04.20 06: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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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라니 안돼 우선 선설리ㅠㅠㅠㅠㅠ
[Code: 416e]
2023.04.20 06: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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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는 어려서 정령을 본다는 이유만으로 정령들하고만 커야했는데 곤타는 정령들 본다고 놉맟이랑 정령들도 좋아해주고 놉맟 사랑도 받고 정령들 사랑도 받는거 존좋ㅠㅠㅠㅠ 갓벽하다ㅠㅠㅠㅠㅠ
[Code: 416e]
2023.04.20 06: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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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맟 앞으로도 정령들하고 곤타하고 휴가때마다 등대여관 놀러오는 커플들하고 행복하게 지낼거 생각하면 부케비도 행복한데 앞으로 센세 못볼거 생각하면 부케비 안행복해 이거 어떻게 해야해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84b]
2023.04.20 07: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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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나 부케비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진짜로 센세랑 만나는 매일 아침이 너무 행복하고 설렜고 센세가 부케비인게 지금도 감동이에요 이런 명작 매일 들고와주던 센세는 부케비의 한줄기 빛이었어 이 마음 꼭 알아줘 사랑한다는것도 알아줘 앞으로도 우리 영원히 부케비하자 센세 꼭
[Code: 6646]
2023.04.20 07: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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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센세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실수있지...너무 아름다워서 눈물나ㅠㅠ진짜 센세 못보내겠는데 어떡하냐....부케비 책임지라고 센세한테 매달리고싶다...
[Code: 8ad8]
2023.04.20 07: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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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타는 정령들의 유난스러움으로 완전 왕자님처럼 크는구나ㅋㅋㅋㅋ텃밭 넓히라는거 어나더 유난ㅋㅋㅋ 정령들 존커야ㅋㅋㅋㅋ아기정령들이 어린이 노부한테 받은 사랑 돌려주려고 그러는 거라는 케이말은 너무 감동ㅠㅠㅠ노부랑 정령들의 끈끈한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케이ㅠㅠㅠㅠㅠ놉맟 행복해진거 너무좋아ㅠㅠㅠㅠ
[Code: 19aa]
2023.04.20 08: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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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케이가 노부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즈그 케이 만난 노부가 오랜 외로움에서 벗어난게 너무 다행임ㅠㅠ
[Code: d66a]
2023.04.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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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진짜진짜 사랑해요
[Code: 6e4b]
2023.04.2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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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들도 노부랑만 조용히 지내다가 자기들 봐주고 예뻐해주는 케이 와서 엄청 행복했을거고 여러 사람들 방문해서 시끌벅적해지고 고토 사랑 받는걸로도 행복했을건데 놉맟네 아들인 곤타까지 자기들 봐주니까 얼마나 행복할까ㅠㅠㅠ 정령들 축제하는거 예뻐 근데 곤타가 정령보는거 알고 노부 멍한건 맘아프고.. 그거 바로 캐치해주는 케이랑 즈그 케이 말에 동의해서 좋은생각 노부 그저 천생연분
[Code: 6c8c]
2023.04.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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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귀여운 정령들이 있어서 더 아름다운 세상을 본 놉맟 ㅠㅠㅠ 부케비도 센세가 있어서 정령들과 놉맟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봤어요 센세는 신이 분명하다 ㅠㅠㅠ
[Code: ee73]
2023.04.2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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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완벽하다 놉맟 서로 구원해주고 출차순하고 즈그 케이 닮은 곤타 태어났는데 곤타도 정령들 보고 다 같이 등대여관에서 행복한거 너무 완벽해 미쳤다 센세는 미쳤어
[Code: e65d]
2023.04.2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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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ㅠㅠㅠㅠ 외전까지 매일매일 달려와줘서 고맙고 사랑해ㅠㅠㅠㅠㅠㅠ 부케비는 센세가 매일 와줘서 매일 행복했는데 센세도 부케비들이랑 같이 달리면서 행복했었으면 좋겠다ㅠㅠㅠㅠㅠ 센세 우리 같이 영원히 노부마치하자!
[Code: 922b]
2023.04.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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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맟은 행복한데 부케비는 왜케 눙물이 ㅠㅠㅠㅠㅠ 정령들이랑 노부만 살던 저곳에 이제는 노부의 새로운 가족인 즈그 케이랑 곤타까지 ㅠㅠㅠㅠ이건 센세의 놉맟사랑이 느껴지는 판타지 문학이다 센세 부케비 앞으로도 계속 복습할게.....센세랑 진심으로 헤어지기 싫다 센세 계속 놉맟하고 부케비해주세요 ㅠㅠㅠ
[Code: e03c]
2023.04.23 08:13
ㅇㅇ
아침이면 센세의 어나더 봐야하는데.. 센세 사랑해 보고싶어
[Code: 8b25]
2023.04.24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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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가 그리운 아침ㅠㅠㅠㅠㅠㅠ
[Code: d825]
2023.04.27 09: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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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노부마치 하면서 잘있는거죠ㅠㅠ놉맟이랑 정령들도 잘있는거지 아침인데 센세 없는게 아직도 어색해 보고싶은 내센세ㅠㅠ
[Code: 194a]
2023.05.10 09: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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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보고싶어서 아침에 센세왔다고 생각하면서 복습 센세 우리 영원히 놉맟해요
[Code: 9362]
2023.05.18 10: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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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센세
[Code: de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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