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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8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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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기적 같았다. 매일 아침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누운 침대에서 잠을 깨는 순간부터 완벽했다. 일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 일들은 하나같이 즐겁고 유쾌해서 일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노부와 함께 소라를 데리고 해산물을 받으러 갈 때는 뱃놀이 같았고 텃밭을 가꾸는 일은 텃밭 응원단 덕분에 정령들의 재롱을 보는 기분으로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노는 것과 마찬가지인 그런 소소한 일조차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일할 때보다 놀 때가 더 많았다. 노부와 숲을 돌아다니며 탐방을 하거나 해변가에서 산책을 하기도 했고, 족욕장에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노부의 다리를 베고 누워서 시원한 노보루의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생활을 하다 보면 문득문득 꿈인가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지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 기적처럼 나타나 사과파이를 만들어주겠다던 남자 하나가 마치다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 정령들을 만나고 마치다만 바라보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마치다의 인생을 함께하게 됐고, 등대여관은 노부가 말했던 것처럼 마치다의 삶과 세상을 넓혀 주었다. 그리고 그 넓어진 세상에는 거짓말 같은 기쁨만 가득했다. 

그리고 연말이 오자 등대여관이 복작복작해지면서 그 꿈 같은 현실은 더 즐거워졌다. 노부와 마치다의 방갈로, 고토와 시시오의 방갈로를 빼고 방갈로를 3개 정도 두면 충분히 여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세 개의 방갈로가 다 차 있었다. 이제 배가 제법 부른 가루베와 츠지무라에겐 츠지무라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 하던 가루베를 위해 특별히 2층에서 바다가 잘 보이는 방갈로를 내 줬더니 츠지무라보다 가루베가 더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전히 사이가 좋은 모양이었다. 쿠로사와는 이렇게 예쁜 펜션 시설은 처음 본다며 감탄하더니 나무 사이에 해먹을 걸 수 있다고 하자마자 해먹을 걸었다. 해먹에 누우려나 했는데 이치로를 억지로 눕히고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대는 게 엄청나게 신나 보여서 보는 사람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봄까지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던 형사님들도 방갈로 영상을 보고는 참지 못했는지 어렵게 휴가를 냈다며 또 같이 찾아왔다. 모든 방갈로의 테라스가 다 다른 방향으로 나 있고 테라스 쪽으로는 산책로가 연결돼 있지 않아서 완벽하게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면서도 숲 노천탕과 마찬가지로 숲 한가운데에 있는 비밀의 노천탕에서 온천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로 만들어진 테라스의 노천탕을 본 타카노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아직도 온천 예약 노트는 운영하고 있지만 방갈로의 테라스 노천탕을 보며 눈을 빛내던 타카노를 보면 숲 노천탕의 이용도는 높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가루베는 말할 것도 없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쿠로사와도 고양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기 때문에 고양이가 된 정령들은 저마다 츄르를 먹여주고 싶어하고 놀아주고 싶어하는 손님들 사이에서 행복함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어다녔다. 다행히 날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은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진짜로 또 날아다니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늑대형의 정령들이 삐지지 않도록 숲 깊은 곳에서 따로 츄르를 먹여주면서 놀아주고 온 마치다와 노부가 돌아왔을 때는 고양이들이 손님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한껏 예쁨을 받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가득 찾아와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풍경에 마치다도 어쩌면 마음이 너무 들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고양이들은 진짜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라는 쿠로사와의 칭찬에 말실수를 하고 만 건 마치다도 너무 신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쵸? 진짜 우리 정ㄹ..."
"정ㄹ?"

쿠로사와가 눈을 깜박이는 걸 보면서 마치다는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정... 정... 급하게 노부를 바라봤지만 노부는 마치다 앞에서 수차례 '정ㄹ'이라고 하면서 말실수를 거듭하는 동안 한 번도 수습에 성공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마치다는 혀를 차곤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 

"저-어엉말 예쁘죠. 진짜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예쁜 고양이들은 없다니까요."
"정ㄹ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쿠로사와는 눈썰미만 좋은 줄 알았더니 귀도 밝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치다가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며 '네? 아닌데요'라고 하자 잘못 들었나 하고 아마미야에게 주먹을 내밀며 주먹꿍을 시도하고 있었다. 옆에서 노부가 소리죽여 웃고 있어서 옆구리를 쿡 찌르자 노부는 한쪽 눈을 깜박이며 윙크를 하곤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귀여워서 봐 준다, 진짜. 

타니와 타카노는 지난 번에 왔을 때는 등대까지 올라가며 알차게 이 섬을 즐기고 간 것과 달리 이번에는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방갈로에서 아예 나오지 않았다. 숲 노천탕에 안 가도 숲 속 노천탕 기분을 낼 수 있으니 방갈로 테라스 노천탕에서 자유롭게 과격한 키스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노보루의 힘을 빌어 방갈로마다 소리를 차단하는 바람을 둘러났으니 알아서 즐기라지. 

형사님들이 자기 방갈로에서 틀어박혀 있는 동안 다른 손님들은 고양이들과 놀아주거나 숲에서 산책을 하거나 족욕장에서 발을 담그고 수다를 떨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노부와 마치다가 아몬을 설득해서 숲 안에 만든 작은 공원에서 시시오의 작은 연주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동안 마치다와 노부는 뭘 했느냐면 손님들과 어울려서 신나게 노는 틈틈이 이제 코 앞으로 다가온 등대여관 메인셰프 선발을 위한 정월요리 콘테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둘다 오세치 요리니 설 떡국이니 하는 것들을 먹어 본 적 없어서 (마치다는 어릴 때 먹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손님들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츠지무라와 쿠로사와 말고 다른 사람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시시오도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서 보육원에 들어오기 전에도 정월 요리를 먹어본 적은 없다고 하고, 고토는 워낙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마치다와 같은 보육원에서 자랐으니 가족과 함께하는 정월 요리의 기억이 없을 만했는데 알고 보니 가루베와 이치로도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오세치 요리 같은 건 전문식당이나 백화점에서 다 사서 먹는 추세라고 해서 백화점에서 판다는 요리의 구성을 봤는데 딱히 끌리는 구성은 아니었다. 마치다는 방갈로 거실의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화면에 가득 떠 있는 오세치 요리 사진들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예쁘긴 예쁜데, 맛있을진 모르겠네.

"노부, 이거 보니까 다 장수나 부, 건강, 다산 이런 걸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 건가 봐요."
"음. 새해맞이 요리니까 그런가 보네요."
"우리는 뭐 건강 기원 안 해도 정령들의 축복에 싸여서 사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 거잖아요. 딱히 기원하지 않아도 우리가 정령들을 계속 예뻐해주면 정령들도 우리를 계속 예뻐해 주지 않을까?"
"정령들을 예뻐해주지 않아도 우리 정령들은 케이를 계속 사랑할 거예요."

마치다가 쑥스러워서 헤헤 웃으려고 할 때였다. 

"나도 케이를 계속 사랑할 거고요."
"그런 말은 그렇게 갑자기 막 하면 안 돼요."
"왜요?"
"내가 부끄러우니까."

마치다가 웅얼거리자 노부가 마치다를 끌어안으며 이마에 입을 맞춘 채로 작게 속삭였다. 

"그치만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어요. 내가 케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하고 싶은 걸 참을 수 없을 때."

말한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듣는 사람이 부끄러워져서 귀만 빨갛게 불태우고 있자 노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런 말 하지 말아요? 베개에 대고 혼자 속삭일까요?"
"왜 내가 있는데 베개에 대고 속삭여? 그냥 나한테 말해요."

꿍얼거리자 노부가 웃으며 고개를 숙여서 입을 맞췄다. 그리고 길게 이어진 키스 끝에 노부의 입술이 턱으로 목으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노부가 마치다의 쇄골을 살짝 깨무는 순간 척추를 타고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오늘 내로 요리대회 어떻게 할지 정하려고 했는데. 결심을 다시 되새겨봤지만 노부의 손이 마치다의 옷자락 속으로 들어와 등을 쓸어내리는 걸 느끼며 마치다는 노부를 끌어안고 귓볼을 깨물었다. 

"침실로... 가요."

요리대회... 뭐, 내일 정하자. 





결국 정월요리는 요리대회를 취소하고 다 함께 만드는 걸로 바꿨다. 준비해야 할 요리가 너무 많아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 함께 만들어도 번잡스러울 것 같은데 요리대회까지 하면 우당탕탕 엉망진창이 돼 버려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대낮부터 노부의 유혹에 넘어가서 침대로 뛰어드는 바람에 하루를 통으로 날려버려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월요리는 찬합을 16개 산 다음 정령들과 손님들이 좋아하는 요리들을 담기로 했다. 오세치에 원래 들어간다는 새우는 예뻤기 때문에 장식 겸 포인트로 넣어주기로 하고 정령들과 손님들에게 원하는 요리를 리퀘스트하라고 하자 온갖 요리가 나왔다. 정령들은 주먹밥과 고로케를 원했고, 노부는 마치다가 얼마 전에 만들었던 고구마경단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구마경단을 넣자고 했다. 이번엔 카스텔라가루 말고 다른 가루들도 준비해 줘야지. 마치다는 노부가 먹고 싶다고 했었던 밤조림을, 가루베는 주먹밥이 이미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계란말이를 넣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두의 바람을 취합하다 보니 장수나 부, 건강, 다산을 기원한다는 오세치의 의미는 이미 사라지고 그냥 원하는 음식들만 가득한 찬합이 되게 생겼지만 그래서 더 유쾌했다.

몇 가지 요리들은 류세이와 야마토, 노부가 같이 주방에서 만들었지만 고로케와 주먹밥, 고구마경단, 어묵은 야외테이블에서 정령들과 모여서 함께 만들었는데 지나가던 손님들이 재미있어 보인다며 끼어들어서 다 함께 복작복작 요리를 준비했다. 그 화목한 분위기가 흐트러진 것은 떡을 만들 때였다. 임신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겠다고 빠진 가루베와 귀찮다는 이유로 빠진 타니만 빼고 모두가 떡메를 휘두르며 힘자랑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늘 점잖아 보이던 츠지무라나 이치로까지 끼어들어서 힘자랑을 한 것도 웃겼는데 힘자랑 같은 데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던 쿠로사와까지 씩씩거리며 끼어들어서 웃음을 자아냈다. 그래도 노부가 가장 먼저 요령을 익혀서 힘을 별로 들이지 않고 능숙하게 떡메를 휘두르는 걸 보고 모두가 이런 건 역시 힘이 아니라 요령이라며 화기애애해지려 했을 때, 아몬이 등장해서 아무런 요령 없이 오직 힘만으로 노부보다도 더 떡을 잘 치는 걸 보고 모두가 입을 다문 건 웃지 못할 일이었지만. 

"인간계에선 노부가 제일 잘 했어요."

마치다가 노부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이자 노부가 짧게 입을 맞추며 웃었다. 

찬합에는 새우찜, 주먹밥과 고로케, 밤조림, 고구마경단, 계란말이, 찹스테이크, 닭고기조림, 표고조림, 계란말이, 소라찜, 전복찜, 어묵, 생선구이가 빼곡하게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류세이가 정성들여 끓여낸 떡국과 팥죽까지 먹고 나니 모두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지금까지 중 가장 행복한 새해맞이라고 입을 모았다. 맛있는 요리와 좋은 사람들, 그리고 신나는 명절 준비까지 모든 것이 등대여관을 더욱 반짝거리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자 지금 옆에 함께 있어서 가장 행복하고 고마운 사람과 함께 각자의 방갈로로 흩어진 후, 마치다는 정령들을 모아두고 미리 준비해 둔 빨간색의 조리모를 꺼냈다. 류세이는 원래도 요리를 할 때 빨간 조리복과 색을 맞춘 조리모를 착용했지만 이번에 마치다가 노부와 함께 골라서 준비한 조리모는 두건 스타일에 가까운 지금의 조리모와 달리 높이가 꽤 높은 전통적 스타일의 조리모였다. 

"생각해 봤는데 우리 등대여관의 셰프는 누가 뭐라해도 류세이야."
"셰프요? 제가요?"
"응. 사실 이번 정월요리 준비도 거의 류세이가 다 총괄했잖아. 떡국이랑 팥죽을 끓인 것도 류세이고 각종 찜이랑 밥도 다 류세이가 했고. 류세이 없었으면 이렇게 정월요리를 잔뜩 만들지도 못했지. 류세이가 명실상부한 우리 등대여관의 셰프야."

마치다와 노부는 방갈로를 만들 때도 그랬고 여관을 운영할 때도 여러 모로 모든 정령들로부터 다양한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늘 고맙다고 표현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류세이한테도 자주 칭찬하고 늘 고맙다고 하는데도 맨날 주방보조라는 말만 듣다가 셰프 인정을 받은 게 기쁜지 새 조리모를 선물받은 류세이는 온몸에서 불꽃을 마구 피워내고 있었다. 이럴 것 같아서 손님들을 먼저 방갈로로 들여보냈던 마치다도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을 정도로 불꽃들이 터져 나왔다. 류세이는 마치다와 노부가 준비해 준 조리모를 쓰고 불꽃을 마구 뿜어내면서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제가 최고죠?"

당당하게 웃는 모습이 마치다가 등대여관에 오고 처음 맞은 아침에 류세이에게 셰프냐고 물었을 때 의기양양하게 '네!'라고 대답했던 모습과 겹쳐져서 너무 귀여웠던 마치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류세이가 최고야."

덕분에 류세이는 신이 났지만 마치다는 죽어나야 했다. 안 그래도 등대여관에 온 이후 매일매일이 즐거웠는데 세상에 혼자 남겨지고 20여년을 살아오는 동안은 망상 속에서도 꿈도 꿔 보지 못했을 정도로 즐겁게 새해를 맞이한 덕분에 너무 신났기 때문이었다. 마치다가 방갈로로 돌아온 이후에도 내내 오늘 너무 재미있었고 류세이 너무 귀여웠다고 조잘대자 심통이 난 노부가 밤새도록 마치다를 못살게 했다. 처음에야 좋았다. 마치다도 신나 있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고 마치다에게 매달리는 게 기분 나쁠 리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이지. 창밖이 뿌옇게 보이는 게 날이 밝고 있기 때문인지 체력이 바닥나서인지 알 수도 없었다. 한껏 벌어진 다리는 숫제 경련하듯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고 혹사당한 허리에는 감각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노부, 이제 그만."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도 탄탄한 배와 가슴을 아무리 밀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똑같이 밤새 뒹굴고 있는데 왜 마치다만 너덜너덜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노부는 여전히 마치다에게 밀려나지도 않을 정도로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좋아요, 케이?"
"힘들어. 노부, 제발."
"안 좋아요? 정말?"

좋기야 좋았다. 노부는 마치다의 성감대도 빠르게 파악했기 때문에 노부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눈 앞이 번쩍번쩍하고 척추를 타고 찌릿찌릿한 전율이 흐를 정도로 온몸에 쾌감이 흐르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정도가 있잖아. 

마치다는 덜덜 떨리는 팔을 억지로 들어서 노부의 뺨을 잡고 입을 맞췄다. 자꾸 눈이 감겨서 키스하는 것도 힘들 정도였지만 질투에 눈이 돌아가 버린 짐승을 달래기 위해서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뺨을 토닥였다. 

"노부."
"..."
"우린 70년 동안 함께 살 거잖아. 우리에게 70년이 남았든 700년이 남았든 이 세상에서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노부일 거야. 알지?"

흉포하게 번들거리던 노부의 눈빛이 조금 순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순간 더 이상 못 참고 눈이 감겼다. 잠결에 노부가 마치다를 테라스 노천탕에 데려가는 게 느껴지고 곧 따뜻한 물과 노부의 든든한 팔이 피부를 감싸는 게 느껴졌다. 그 다음부터는 비몽사몽이었다. 내가 정령들을 먼저 만난 것도 아니고 노부가 있었기 때문에 정령들과도 만날 수 있었고 마치다의 세상의 중심이 노부라는 건 벌써 몇 번이나 말해줬는데 류세이 좀 예뻐했다고 이렇게 날 괴롭히면 되겠냐 안 되겠냐 하면서 열심히 따진 것 같은데 따지는 와중에도 정신이 자꾸 까무룩 가라앉아서 말이 몇 번이나 끊어졌고 목이 너무 쉬어 있었기 때문에 잔소리가 노부에게 들렸을지는 모르겠다. 잘했어요? 잘못했어요? 하고 따졌을 때 잘못했다는 대답을 들은 것도 같은데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 여전히 노천탕이었다. 아니, 분명히 중간에 침대로 옮겨져서 이불을 폭 덮고 노부의 품에서 잠들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노부가 일어나자마자 소라의 힘을 기대하고 다시 탕으로 데려온 모양이었다. 

"잘했어요, 잘못했어요?"

전날은 진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정신이 들자마자 다시 따졌지만 목소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위엄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노부는 마치다가 화가 났다는 걸 느꼈는지 다리 위에 올려앉히고 있던 마치다를 꼭 안아주며 속삭였다. 

"잘못했어요."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기 때문에 돌아보자 표정도 목소리 못지 않게 시무룩해진 게 보였다. 마치다는 노부에게 기대 앉은 채로 뺨을 토닥였다. 

"류세이한테 셰프 뺏겨서 그렇게 속상했어요?"

노부는 피식 웃기만 했다. 하긴 그것 때문에 그럴 리가 없지. 사실 마치다도 어제 노부가 질투에 사로잡힌 게 정령들 때문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정령들은 마치다와 노부에겐 정말 아이같고, 동생같은 가족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손님들은 엄밀히 말해 남이었고 노부는 손님들이 오는 걸 싫어하진 않았지만 마치다가 손님들과 신나서 어울리면 불안해지는 모양이었다. 형사님들이야 마치다와 접점이 거의 없었지만 가루베는 다리를 다 못 건너고 주저앉아 있을 때 다가와 주고 등대여관에 머무는 내내 신경 써 주고 챙겨준 마치다를 좋아했다. 쿠로사와와 고토는 말할 것도 없이 마치다를 좋아했고. 게다가 어제는 아침부터 다 같이 모여서 웃고 떠들며 정월요리를 만들고 떡을 만들고 새해맞이 만찬을 하면서 하루 종일 손님들과 떠들석하게 놀았으니 남들과 하하호호 신나게 노는 모습이 노부의 불안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내가 힘들 때 시시오 형과 쿠로사와 상이 날 많이 도와준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내가 주저앉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맞고. 시시오 형과 고토, 쿠로사와 상과 이치로 상에게 정말 고마워하는 것도 사실이고."
"네."
"그래도 나한테 가장 소중하고 가장 좋은 사람은 노부야. 사람 일 모르는 거라고 하지만 난 내가 죽을 때까지 노부보다 더 좋은 사람 또 만날 수 없을 거라고 믿어요. 노부는 안 그래요?"
"나한테 케이보다 좋은 사람은 있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나도 그래. 노부는 그러면서 왜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케이를 못 믿는 게 아니에요. 케이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냥 불안해?"
"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좋아하니까 집착하고 질투하고 불안하고 그런 거지. 내가 누구랑 하하호호하든 노부가 '케이가 기분이 좋군 하하' 하고 있으면 오히려 기분이 좀 그럴 것 같은데?"
"정말요?"
"응. 그리고 나도 노부가 막 나보다 다른 사람하고 더 친한 것 같으면 속상할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전에도 그랬잖아요. 노부한테 좋은 사람 많이 생기면 좋겠지만 그래도 날 제일 좋아해야 한다고."
"... 네."
"그러니까 불안한 건 괜찮아요. 하지만 꾹꾹 눌러놓고 있다가 이렇게 터뜨리지 말고 불안해지고 질투가 나면 바로 말해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게 노부라는 걸 언제든 확인시켜 줄 수 있으니까."

연말을 맞아 손님들이 몰려온 이후 노부가 평소보다 더 자주 마치다에게 붙어있으려고 하고 더 자주 침대로 데려간 것이 노부도 손님들이 많이 와서 들떴기 때문인가 했는데 불안했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마치다에게는 맞는 말이었다. 마치다는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후 내내 사람들한테 상처받고 세상에 다쳐오다가 노부와 정령들을 만났기 때문에 마음의 생채기를 치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부는 달랐다. 아직 어릴 때 정령들과 함께 섬에 고립된 이후 내내 세상이나 사람들과 접촉할 일조차 드물었으니 설렘이나 불안, 기대나 질투도 전부 이제야 배워가는 감정들일 것이고, 모든 감정이 낯설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 됐는데. 

마치다는 노부의 입술에 쪽쪽 입을 맞춰주며 속삭였다. 

"불안한 거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노부. 그리고 진짜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요."
"알아요. 나도 케이를 제일 좋아해요. 미안해요."
"내가 힘들다고 했는데도 말 안 들어준 건 밉지만."

마치다가 노부의 뺨을 꼬집으며 엄한 표정을 짓자 노부가 미안한 얼굴로 웃었다. 

"잘 들어 봐요. 노부."
"네."
"내가 힘들다고 좀 투정 부릴 때는 좀 더 해도 괜찮아요. 물론 조금만!"
"네."
"하지만 내가 막 눈에 초점 없어지고 정신이 막 오락가락하는 것 같고 막 그러면 자게 해 줘야 돼! 더 하면 안 돼요!"
"안 돼요?"
"당연히 안 되지!"

마치다가 노려보자 노부는 홀랑 벗고 있는 마치다를 품에 더 꼭 끌어당겨 안고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면서 애교를 부렸다. 알았어요. 기억할게요. 정말로 기억할지는 모르겠다만. 이 등대여관의 문제점은 정령들의 힘이 가득한 곳이라서 침대에서 웬만큼 무리해도 몇 시간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크게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나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노부도 욕심껏 하려 할 때가 많고. 좋은데 안 좋아. 에고, 팔자야. 

"우리 정령들이 손님들한테 너무 인기가 많아서 손님들 있을 동안은 어차피 노부한테 고양이들 츄르를 줄 기회가 오지도 않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겠죠."
"손님들 가면 한동안 츄르 담당은 노부예요. 음, 1주일? 아니, 열흘. 열흘 동안 츄르 먹여주고 놀아주면서 열심히 소라랑 정령들한테 보은해요."
"그럴게요."

아침은 못 먹었지만 점심은 손님들이랑 같이 먹어야 할 테니까 나가기 위해서 노천탕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마치다는 다시 노부의 다리 위에 앉으며 노부의 목에 팔을 감고 촉 입을 맞췄다. 

"새해가 밝았으니까 이제 정식으로 우리가 함께 하기로 한 70년의 1년째가 시작됐네요."
"아..."
"70년 동안 잘 부탁해요. 노부."

노부는 눈을 깜박거리다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마치다의 심장을 녹아내리게 하는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해요, 케이. 70년간 늘 지금처럼 사랑할게요."





#노부마치     #등대여관노부마치     
2023.04.18 04:32
ㅇㅇ
모바일
센세가 외전을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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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8 05:39
ㅇㅇ
모바일
헐 센세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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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8 05:45
ㅇㅇ
모바일
외전ㅠㅠㅠ 센세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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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8 05:52
ㅇㅇ
모바일
외전에 끝이 붙어있지 않다는건 센세가 외전 어나더를 들고오시겠다는 건가보다ㅠㅠㅠㅠㅠㅠ
[Code: 7821]
2023.04.18 06:34
ㅇㅇ
센세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a035]
2023.04.18 06:46
ㅇㅇ
모바일
놉맟 염병천병을 다시 보다니 센세 부케비 지금 행복해ㅠㅠㅠ
[Code: 48bb]
2023.04.18 06:56
ㅇㅇ
사랑해요, 센세. 70년간 부케비는 센세를 사랑할거니까 센세도 70년동안 외전 어나더주세요
[Code: d73d]
2023.04.18 07: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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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부케비 일어났더니 센세 있는거 실화냐 존나좋아
[Code: 455f]
2023.04.18 07:29
ㅇㅇ
노부 질투심에 즈그 케이 밀어붙이는거 존꼴ㅌㅌㅌㅌ
[Code: 97d1]
2023.04.18 07:30
ㅇㅇ
노부가 밀어붙여서 너덜너덜 해졌는데도 노부가 불안해하는 부분을 케이가 다 알고 노부한테 사랑한다고 해주는거 감동이다ㅠㅠㅠㅠ
[Code: 97d1]
2023.04.18 07: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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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ㄹ ㅋㅋㅋㅋㅋㅋ 노부가 했던 실수 그대로 하는 케이ㅋㅋㅋㅋㅋㅋㅋ 놉맟 실수도 똑같이 하는걸 보니 쀼 다됐다ㅋㅋㅋㅋㅋㅋㅋ
[Code: a627]
2023.04.18 07: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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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ㅠㅠㅠㅠ
[Code: 8e89]
2023.04.18 07: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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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세이 이제 놉맟한테 삐진건 다 풀렸어?ㅋㅋㅋ 류세이는 영원히 철들지않고 귀여웠으면 좋겠다ㅋㅋㅋㅋ 통나무집 북적북적한거 진짜 좋은데 그냥 저기서 다같이 살면안돼?ㅠㅠㅠㅠ
[Code: 8e89]
2023.04.18 08:20
ㅇㅇ
노부는 어려서부터 세상하고 단절된 상태로 정령들이랑만 지냈으니까 사람사이의 감정들이 낯설다는걸 케이가 바로 알아주는거 너무좋음ㅠㅠㅠㅠㅠㅠ 놉맟 못만났으면 어쩔뻔ㅠㅠㅠㅠㅠ 노부는 설렘 불안 기대 질투 이런걸 이제야 배워가는 단계인데 그걸 즈그 케이를 통해 배운다는것도 존좋ㅠㅠㅠㅠㅠ
[Code: 5178]
2023.04.18 08: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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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가 영원히 놉맟 하자고 했던거 잊지않고 있었어요ㅠㅠㅠ센세가 외전들고 와줘서 놉맟 꽁냥꽁냥 하는거도 보고 센세가 계속 놉맟하고 있는걸 알게 되니까 좋다 우리 영원히 놉맟해 센세ㅠㅠㅠ
[Code: 1a42]
2023.04.18 09: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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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들 신난것도 존커고 제가 최고죠?ㅋㅋㅋㅋㅋㅋ 류세이랑 노부는 번갈아가면서 질투하는거 존커ㅠㅠ 노부야 느그 케이는 노부를 가장 사랑하니까 불안하고 질투나면 바로 느그 케이한테 투정부리자 놉맟 같이 성장해나가면 된다
[Code: b241]
2023.04.18 22: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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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센세 외전으로 돌아오셨다ㅠㅠㅠ 센세 내일아침에도 와주세요ㅠㅠㅠ
[Code: 39c7]
2023.04.19 07: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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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가 외전 끝이라고 하신적 없으시니까 외전 어나더가 없을리없어... 내일은 센세가 와계셔주셨으면 좋겠다 센세 사랑해ㅠㅠㅠㅠ
[Code: 9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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