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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9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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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와 물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설거지를 하고 온 마치다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펴놓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우린 언제부터 사귄 것일까? 여관에는 이제 정령들과 노부, 마치다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숲이나 옥상의 노천탕에서 거사를 치르기에는 아무래도 좀 그랬기 때문에 객실로 초대할까? 어떻게 초대해야 할까? 언제쯤이 좋을까? 콩콩거리는 가슴으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보는 사람도 없고 누가 본다고 해도 마치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가 없는데 괜히 민망해서 볼이 홧홧해졌다. 하지만 열심히 고민해 봐도 연애가 처음이다 보니 진도를 어떻게 나가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얼마쯤이 적당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튀었다.

우리 사귄 지 얼마나 됐지? 그러니까... 음... 우리 언제부터 사귄 거지? 

노부가 68년간 같이 살자는 말을 했었고, 마치다를 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다는 말은 했었다. 그때부터 사귄 건가? 그건 아니지 않나? 그때는 확실히 사귀자는 말도 안 했는데. 서로 마음을 확인하기는 했는데. 그때인가?
반딧불이들을 보러 갔다가 첫키스를 했을 때는 확실히 사귀고 있었다고 봐야 하는 거겠지? 그때부터 시작인 건가? 
아니, 우리는 사귀자는 말도 안 하고 은근슬쩍 사귀고 있었던 건가? 그럼 기념일은 어떻게 세지?

"무슨 생각해요?"

마치다가 소라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빨래를 널었던 노부가 찻잔을 올린 쟁반을 들고 다가와서 앉았다. 

"우리 100일이 며칠일까요?"

그럼 우리 기념일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노부의 답도 툭 튀어나왔다. 

"x월 xx일이요."
"... 네?"

기준이 언제인데요? 우리 언제부터 사귄 건데요?

노부는 또 웃겨죽겠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가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케이는 우리가 언제부터 사귀었는지 몰라요?"
"... 어. 아니... 그....."

x월 xx일을 기준으로 100일 전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세자, 다행히 금방 날짜가 나왔다. 계속 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다고 한 날이네.

"알죠. o월 oo일."

마치다도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당당하게 대답하자 노부는 말없이 계속 장난스럽게 마치다를 노려봤지만 마치다는 최선을 다해서 당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노부가 결국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맞췄다. 

"프로포즈를 할 때는 헷갈리지 않고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할게요."
"나중에 프로포즈도 할 거예요?"
"네, 케이가 거절할 생각도 들지 않도록, 케이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정령들을 총동원해서 68년 동안 계속 함께해 달라고 하려고요."
"내가 왜 노부보다 정령들을 더 좋아해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마치다가 일부러 주변을 티나게 확확 둘러보며 정령들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척하고 아무도 없으니까 안심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처럼 '그럼요, 세상에서 노부를 제일 좋아하죠.'라고 말하자, 노부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안 되겠어. 나중에 정령들 앞에서 물어봐야지."
"그래요, 난 자신 있어! 누구 앞에서든 말할 수 있어!"

그렇게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마치다의 핸드폰 액정에 낯선 번호가 떠올랐다. 도쿄를 떠나오면서 이전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전화번호는 쿠로사와의 번호만 빼고 전부 차단해 버려서 전화 올 곳이 없었기 때문에 잠시 의아해했던 마치다가 전화를 받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다 케이타 상의 전화인가요?]
"네, 누구시죠?"
[형, 저 고토예요. 고토 타다오미. 기억하시려나.]
"고토? 진짜 고토야?"
[네, 기억하시는구나. 다행이다.]
"안 그래도 요새 너랑 시시오 형 생각 자주 했었거든. 찾아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찾아야 될지 모르겠... 어?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어?"

고토는 약 20년 전의 꼬마애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귀여운 느낌이 남은 목소리로 웃었다. 

[독서 리뷰 보는 걸 좋아해서 자주 방문하는 블로그가 있거든요.]
"어?"
[그게 형 블로그인 줄 몰랐는데 알고 보니 형 블로그였더라고요.]
"진짜? 신기한 우연이네."

요즘 고토 생각이 자주 났다는 건 사실이었다. 매일 '노부시~'해 줄 때마다 어릴 때 그 귀엽던 꼬마가 종종 떠올랐으니까. 그래서 같이 웃던 마치다는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서 내 전화번호를 봤다고?"
[네, 며칠 전에 올라온 글에서 전화번호 봤어요. 되게 귀여운 고양이 영상이랑 같이 올리셨던데요.]
"그걸 봤어? 읽었어?"
[네. 형이 올린 거 아니에요?]
"맞아, 맞는데. 그 종이에 써 놓은 거 다 봤어?"
[네, 안 그래도 댓글에서 다 왜 흰 종이만 올렸냐는 게 많던데. 지금 블로그 열어놨거든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친구를 원하십니까? 당신의 친구를 만나러 오세요. 이 아이를 만나고 싶으십니까? 이런 글이랑 형 전화번호가 있는데, 다들 안 보이는 척하더라고요. 무슨 이벤트 같은 거 하는 거예요?]
"이벤트 아니야. 아닌데. 소라도 봤어?"
[소라?]
"고양이."
[네, 하얀 고양이. 너무 예쁘더라.]
"세상에... 그걸 봐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길 바라긴 했지만 솔직히 기대 안 했는데, 진짜로 봤어.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토 네가 봤어. 세상에."
[보면 안 되는 거예요?]
"안 되긴! 보면 좋지. 네가 봐서 너무 좋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형.]
"전화로 말하긴 좀 길고, 여기 오면 알게 될 거야. 시간 되면 한 번 와라. 형이랑 같이. 참, 시시오 형은 잘 지내지?"
[네, 형도 마치다 형 얘기 가끔 해요. 그렇게 보내서 미안했다고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고.]
"미안하긴. 시시오 형한테 얼마나 고마운데. 시시오 형이랑 같이 여기 한 번 올래?"
[거기가 어딘데요?]
"xx 현이야. 주소는 내가 보내줄게. 기차 타고 오면 우리가 역까지 마중 나갈 수 있어."
[거기 가면 형이랑 소라를 볼 수 있어요?]
"나랑 소라도 보고, 다른 친구들도 많이 볼 수 있어. 사장님도 되게 멋있고 좋은 분이야."
[가고 싶어요. 우리 형도 마침 얼마 전에 바쁜 일 끝났으니까 형이랑 얘기해서 갈게요.]
"그래. 꼭 와. 기다릴게."

전화를 끊은 마치다는 노부를 휙 돌아봤다. 

"말할 게 두 가지 있어요."
"네."
"전에 고토 이야기했었잖아요."
"네. 케이가 귀여워했던 동생."

마치다는 그때 그 시절을 제대로 다시 이야기했다. 이전에도 정말 고맙고 따뜻했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지만 고마운 일을 더 고맙게, 기쁜 일을 더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지금은 기억의 느낌도 다르게 떠올랐다. 그래서 그때 시시오 형이 마치다가 원장의 마수를 벗어나게 해 주고, 동생을 위해 열심히 모으고 있던 돈을 마치다에게 서슴없이 내 줬던 일, 그래서 거리를 떠돌던 시절에도 마음 한켠이 따뜻하고 든든했던 이야기를 하자, 노부는 말없이 들으면서 마치다의 손을 내내 토닥거려주고 있었다. 

그 긴 이야기를 마친 마치다는 노부가 따라준 차로 목을 축이고 나서 핸드폰을 들어서 자신의 블로그로 들어가 가장 최근에 올린 글을 보여줬다. 

"전에 아마미야랑 흰 종이를 펴 놓고 뭘 하고 있나 했더니..."
"봤어요?"
"종이를 펴 놓고 있던 것만 봤어요. 뭘 하고 있는지는 못 봤고."
"정령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등대여관을 방문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설마..."
"네."
"설마 고토라는 그 사람이 이걸 볼 수 있었어요?"
"네, 봤대요. 아마미야가 뿌려 놓은 빛도 봤고, 이 영상에 나온 소라도 봤대요. 이때 소라는 보통 사람들한테는 안 보이는 모습이었거든요."

노부는 하얀 종이 위에 가지런하게 정렬돼 있는 아마미야의 빛이 만들어낸 글자들과 소라가 냐아~하고 있는 영상을 보다가 폰을 내려놓고 마치다를 빤히 바라봤다. 

"왜요? 고토 오는 거 별로예요?"
"아니에요. 좋아요."
"그런데 왜요?"

노부는 마치다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만지다가 뺨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노부는 좋은 가족을 만나지 못했지만, 노부를 좋아하는 정령들이 항상 옆에 있었고, 이제 나도 있잖아요."
"네."
"정령들도 그럴 테고, 나도 항상 노부 옆에 있을 거지만, 그래도 노부의 옆에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했어요."
"..."
"물론 형사님들도 좋은 사람들이었고 가루베 상은 말할 것도 없고, 츠지무라 상도 좋은 사람 같았지만. 정령을 볼 수 있는 친구들이 더 생기면 좋을 것 같아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노부한테 좋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생기고, 정령들을 볼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이많이 생겨도 날 제일 좋아해 줄 거죠?"

장난처럼 덧붙이자 노부는 한숨처럼 웃고 마치다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네."

안 그럴 것처럼 생겨서 오글거리는 낯간지러운 말도 잘 하는 사람이라서 이 세상에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100명 있다면 그 중 한 명이 나고, 이 세상에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면 그게 바로 나고,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내가 이 세상에 없다는 말, 이런 수준의 오글거리는 말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네'한 마디로 끝나는 짧은 대답에 오히려 가슴이 쿵 울렸다. 

그 탓인지 가슴이 너무 벅차서 노부를 끌어안자 마치다를 꽉 끌어안은 노부가 잠시 후에 귓가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케이가 좋은 사람을 많이 알게 돼도, 내가 케이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할게요."

그래,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 잘 한다니까. 기분이 좋아서 '나도요!'라고 대답하고 키득키득 웃고 있자, 다시 노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정령들 데리고 홍보글 같은 거 올려볼걸. 케이를 더 일찍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마치다는 책을 주문할 때와 리뷰를 쓸 때 말고는 인터넷에 잘 접속하지도 않았으니까 아마 홍보글을 여기저기에 걸어놨어도 못 봤을 확률이 높았다. 인터넷 서점에 배너 광고를 걸었다면 또 모를까 그랬을 리는 없으니까. 그래도 함께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는 마음은 기꺼워서 마치다는 언젠가 노부에게 들었던 말을 되돌려 주었다. 

"괜찮아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70년간 같이 지낼 거니까."
"70년간 같이 지내줄 거예요?"
"노부가 100살 될 때까지 내가 2년 더 힘내 줄게요."
"고마워요, 역시 내 케이."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이 68년일지 70년일지, 아니면 그보다 짧을지 길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둘이 함께하는 이 시간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는 것. 





등대여관의 주소를 보내줬더니 고토는 바로 이틀 뒤에 도착한다고 연락해 왔다. 그때 고토가 한 말에 따르면 시시오와 고토 두 사람 다 프리랜서인데 마침 두 사람 다 여유로울 때라고. 고토가 보내 준 기차의 도착 시간을 확인한 마치다는 활짝 웃었다. 설마 도착 시간을 노린 건가.

이틀 뒤, 두 사람이 기차에서 내려 대합실로 나왔을 때, 마중나가 있던 마치다는 10살도 안 됐었던 어린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훌쩍 자란 어른이 됐지만 아직 그때의 얼굴이 남아 있는 고토에게로 곧바로 다가가서 고토를 끌어안았다. 

"고토시~"

5시 5분, 이제는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어린아이는 19년 만에 만난 이가 다정하게 일깨운 추억에 그만, 이제는 키가 비슷해진 다정한 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노부마치    #등대여관노부마치    
2023.04.09 05: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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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ㅠㅠㅠ
[Code: c932]
2023.04.09 06: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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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운다ㅠㅠㅠㅠㅠㅠㅠ 고토 놉맟한테 사랑받으면서 잘 쉬다가 가ㅠㅠㅠㅠㅠㅠ
[Code: ddfc]
2023.04.09 07: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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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케비에게 공기같은 내 센세 사랑해
[Code: 0613]
2023.04.09 07: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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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시ㅠㅠㅠㅠㅠ
[Code: 0574]
2023.04.09 07: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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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정령들ㅋㅋㅋ노부도 즈그 케이가 정령들 엄청 좋아하는거 느끼고 있었네ㅋㅋㅋㅋ은근히 질투하는 노부 ㄱㅇㅇㅋㅋㅋ
[Code: c1b1]
2023.04.09 08:10
ㅇㅇ
진짜 정령들 앞에서도 세상에서 노부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할 자신 있어?????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41e2]
2023.04.09 08:10
ㅇㅇ
나 부케비는 노부가 정령들 앞에서 즈그 케이한테 저거 꼭 물어보는걸 봐야겠는데 억나더 센세ㅠㅠㅠㅠㅠ
[Code: 41e2]
2023.04.09 08: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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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 형이 시시오ㅠㅠ정령들이 고토랑 시시오랑 케이 다시 만나게 해준거야ㅠㅠㅠ
[Code: 14d1]
2023.04.09 08:2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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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에서 2년 늘어서 70년된거 좋아 센세도 부케비가 70년동안 웰치스랑 군만두 줄게 70년동안 와주세요ㅠㅠㅠㅠ
[Code: 1055]
2023.04.09 08: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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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에게 정령을 볼수있는 친구들이 더 생겼으면 좋겠다는 케이 마음 너무 이쁘고 케이에게 가장 좋은 사람 될수있게 노력하겠다는 노부 존멋...
[Code: af18]
2023.04.09 09: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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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도 놉맟도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놉맟에 대한 센세의 사랑도 느껴지고 센세 기다리고 센세 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센세가 부케비라 넘좋아
[Code: 285f]
2023.04.09 09: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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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시간 5시5분으로 예약한 고토랑 고토 보자마자 고토시~해주는 마치다 보는데 왜 부케비가 눈물나냐ㅠㅠㅠㅠㅠㅠㅠㅠ 근데 시시오시~는 왜안해줘 시시오시~도 해주라 케이야ㅋㅋㅋㅋㅋㅋㅋ
[Code: f275]
2023.04.09 09: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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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다녀가셨다
[Code: 2fff]
2023.04.09 09: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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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맟 서로 자기를 더 좋아해달라는 염병천병 존좋 ㅠㅠㅠ염병천병하는 놉맟 오래 보고싶어요 센세 사랑해 어나더ㅠㅠㅠ
[Code: 2fff]
2023.04.09 10: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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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노부 몰래 정령들이랑 흰종이에 뭐 하고있던게 저거였구나 ㅋㅋㅋ 블로그에 올라온 흰종이 보고도 그게 그거일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ㅠㅠ 노부가 말 안했으면 흰종이로 뭐한건지 계속 궁금할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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