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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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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유키와 68년 동안 양배추도 뽑고, 고구마도 캐기로 했지만 노부유키는 조업을 다녀온 이후에 마치다에게 딱히 일을 시키지는 않았다. 온천 관리는 그날 아침에 마치다가 봤던 대로 소라가 정령의 힘으로 하고 있었고, 객실 청소는 노보루가 맡고 있다고는 하는데 손님이 마치다 뿐이라 마치다가 자기 객실을 정리해 두면 노보루가 들어와서 창을 열고 바람의 힘으로 먼지를 다 날려 보내고 소라가 객실 테라스 노천탕을 정화해 주는 걸로 끝이었다. 밭은 따로 비료를 주지 않아도 흙의 정령의 힘으로 쑥쑥 잘 자라기 때문에 그냥 뒀다가 뽑기만 하면 되는데 지금은 이미 수확할 건 다 수확해서 수확할 것도 없다고. 

그래서 놀았다. 

노부유키에게 손님이 없을 때 뭘하고 지내냐고 했더니 자기도 그냥 논다고 해서 같이 숲에서 산책도 하고 족욕탕에서 발을 담그고 노닥거리면서 같이 책을 보기도 했다. 마치다는 SNS도 하지 않고 커뮤 활동 같은 것도 하지 않지만 기록의 의미로 도서 리뷰 블로그를 하나 운영하고 있었는데 장기간 꾸준히 리뷰를 올린 덕분인지 방문자가 꽤 많은 편이었다. 그래도 마치다는 도서 리뷰만 올릴 뿐 댓글도 보지 않지만. 마치다가 리뷰를 쓸 때 옆에서 그 블로그를 본 노부유키는 네인 시리즈의 리뷰를 무척 흥미롭게 읽더니 마치다가 옆에서 책을 보는 동안 마치다가 쓴 리뷰들을 흥미진진하게 살폈다. 그 중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있다고 직접 구입하기도 했다. 

한편, 마치다는 드디어 아몬을 만났다. 소라의 인간형은 그날 새벽에 잠깐 봤을 뿐이고 아마미야는 조업을 하고 온 날 같이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보게 됐기 때문에 봐서 모두의 인간형을 봤는데 아몬은 여전히 매일 늑대로 나타나서 츄르를 얻어먹으면서도 인간형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인간 형태인 아몬을 보게 된 건 어느 날의 산책 때였다. 매일 산책을 즐기던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늑대들도 없이 혼자 산책하고 있을 때, 숲에서 눈을 감은 채 나무에 손을 대고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정령들 중 지금까지 인간형을 보여주지 않은 정령이 아몬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아몬이란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보다 보는 순간 숲의 정령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부유키가 정령들은 '소통한다'고 했던 게 무슨 말인지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노보루가 바람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그때는 정령이란 걸 몰랐기 때문에 분위기가 독특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몬을 봤을 때는 달랐다. 아몬은 그저 눈을 감은 채 고요하게 나무에 손을 대고 서 있을 뿐이었지만 아몬이 손을 대고 있는 나무의 나뭇가지들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쳐 소근거리는 듯한 소리가 예쁘게 울리고 숲 전체가 들떠 있는 듯 발랄하게 살랑거리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숲이 행복하게 들떠 있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아몬을 바라보고 있자 마치다조차 숲의 정령인 된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아몬이 나무에서 손을 떼고 눈을 떴을 때 아몬과 눈이 마주쳤다. 

"아몬."
"마치다 상."
"숲이랑 소통한 거야?"

무표정하던 아몬의 얼굴에 살짝 놀란 기색이 지나갔다. 

"노부유키가 이야기해 줬어. 정령은 자연과 소통한다고."

아몬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숲이 되게 기뻐 보이던데 무슨 애기했어?"

아몬은 좀 고민하다가 좀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비밀입니다."
"... 어?"

어이없어서 입을 벌리고 바라보고 있자 아몬이 고개를 기울이면서 망설이다가 다시 말했다. 

"입 다물 것을 부탁받아서요."

마치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몬을 바라봤다. 정령들이 뭘 준비하고 있나? 아니면 노부유키가? 궁금했지만 노부유키나 정령들이 마치다에게 해를 끼칠 리가 없으니 아마도 뭔가 즐겁거나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았어."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정말로 나쁜 의도는 없을 테니까. 어째서인지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노부유키와 정령들을 믿어버리고 산책을 끝냈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객실 테라스 노천탕에서 저녁놀을 보며 온천을 즐기고 나서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가자, 노부유키가 저녁도 차려놓지 않고 마치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고 책을 좀 보다가 옥상에서 밤하늘을 보며 온천을 하다 자는, 아주 알찬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옷을 얇게 입고 내려온 마치다를 꼼꼼히 보더니 제 방에서 두꺼운 겉옷을 한 벌 꺼내와서 마치다의 어깨에 걸쳤다. 

"왜요? 저녁 밖에서 먹어요?"
"아니요. 저녁 먹기 전에 잠깐 갈 데가 있어요."

딱히 배가 너무 고픈 건 아니었지만 밥도 안 먹고 갑자기 어딜 가나 했는데 노부유키가 마치다를 이끈 곳은 숲 쪽이었다. 산책로가 가꿔져 있는 곳은 숲의 일부였는지 노부유키는 숲의 경계를 따라 세워진 울타리에 달린 문을 열고 마치다를 숲 깊은 곳으로 데리고 나갔다. 

"여기도 여관에 딸린 숲이에요?"
"네. 다 여관 땅이에요."
"그런데 왜 울타리를 쳐 놨어요?"
"너무 넓어서 산책로가 있어도 길을 잃을 위험도 있고, 아무래도 사람들이 오가면 숲의 정령이 숲을 지키기도 힘드니까."
"그냥 아몬이라고 해요."

노부유키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마치다를 바라봤다가 간질간질한 표정으로 웃었다. 

"벌써 알았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며칠 전에 숲에서 산책하다 봤어요. 정령이 자연이랑 소통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아몬이 눈 감고 나무에 손만 대고 있었는데 숲이 막 들떠서 신나하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오호."
"그런데 숲이랑 무슨 이야기했는지는 비밀이라고 안 알려주던데."

혹시 네가 시켰냐? 그런 의미를 담아서 노부유키를 슬쩍 바라보자, 노부유키는 의뭉스럽게 웃기만 했다. 그렇게 숲을 좀 더 걸어간 다음에 노부유키는 어깨에 매고 있던 에코백에서 스카프를 하나 꺼내서 보여 줬다. 

"이거 마치다 상 눈에 잠깐 감아도 될까요?"
"스카프를? 내 눈을 가린다고요?"
"네, 보여줄 게 있어요."

만약에 누구 다른 사람이 스카프 같은 걸 주면서 '이걸 네 눈에 감을래'라고 말했으면 당장 다리 사이를 걷어차고 튀었을 것이었다. 분명히.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노부유키가 스카프를 건네면서 눈에 감아도 되겠냐고 묻는 걸 볼 때는 그 스카프로 노부유키의 목을 졸라버리거나 다리 사이를 빡 걷어차고 달아나 버릴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숲이 신비하고 아름답기 때문인지. 
정령을 볼 수 있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마치다와 단 둘이 서로의 유일한 이해자가 될 사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이 사람이 너무나 좋은 사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스즈키 노부유키가 좋아서. 

마치다가 담담하게 스카프를 받아서 눈을 가리며 묶자, 노부유키는 꽉 묶여서 아프지 않도록 살짝 느슨하게 풀어주고 눈 앞이 안 보이는지 확인한 다음 마치다의 손을 잡았다. 마치다의 손보다 커다랗고 따뜻한 손이 마치다의 손을 잡은 채 숲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맞잡은 손으로 노부유키의 체온 말고도 설렘과 기쁨, 기대와 즐거움 같은 감정들까지 전해지는 기분이라 마치다도 저절로 들떴다. 

그리고 방향을 꺾어서 조금 걸어간 뒤, 노부유키는 마치다의 뒤로 와서 섰다. 

"풀어 드릴게요. 앞을 보세요."

어딘가에서 작게 물소리가 들리고... 숲의 향기가 느껴지고, 마치다를 스치고 가는 시원한 밤바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스카프가 완전히 풀리고 난 후, 마치다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숲 안을 흐르는 작은 개울을 따라서 작은 빛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아니, 반딧불이가 잔뜩 날아다니고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빛들이 개울 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은 마치 하늘의 별들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다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감탄해서 멍하게 반딧불이들을 바라보고 있자 노부유키가 옆에 와서 서는지 따뜻한 체온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너무 예뻐요."
"그렇죠?"
"나 반딧불이 처음 봐요."
"도시엔 잘 없으니까요."
"진짜, 진짜 너무 예쁘다. 별들이... 아니, 별의 조각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한참 넋을 놓고 보고 있자 노부유키가 마치다의 눈을 가렸었던 스카프를 마치다의 목에 따뜻하게 감아줬다. 

"한 1-2주 정도는 더 보일 거니까 오늘은 그만 돌아가요."

마치다는 그 말에 노부유키를 돌아보고 눈을 깜박거렸다. 노부유키는 마치다가 잔뜩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너무 오래 보고 있어서 반딧불이의 잔상이 남았을까 걱정하는지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나 마치다는 눈 앞에 빛의 잔상이 떠다녀서 눈을 깜박인 게 아니었다. 

흔들다리 효과라는 게 있다고 한다. 위기상황에서 공포나 불안 등으로 아드레날린이 치솟으면 호감으로 착각을 한다든가 어쩐다든가. 그건 혹시 불안과 공포 같은 감정이 아니라 흥분과 경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걸까. 너무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흥분해서 내가 내 감정을 착각하고 있는 걸까. 

노부유키는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상냥했는데 마치다는 걱정스럽게 스카프를 잘 여며주는 노부유키를 보며 생각했다. 

이건 흔들다리 효과, 아니 반딧불이 효과일 뿐인가. 

아니면 나는 사랑에 빠진 것인가. 





이 숲은 원래도 반딧불이를 잘 볼 수 있는 숲이지만 아몬이 숲과 소통해서 반딧불이들이 좀 더 모여 있게 해 주었다고 했다. 노부유키가 부탁했다고. 그래서 마치다는 저녁마다 노부유키와 숲으로 산책을 가서 반딧불이들을 보곤 했다. 소라나 아마미야, 노보루를 품에 안고 같이 갈 때도 있었고, 늑대들을 줄줄이 데리고 같이 가기도 했다. 저녁마다 봐도 볼 때마다 새롭게 아름다웠다. 사랑에 빠진 건지 반딧불이 숲을 본 흥분이 계속 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치다는 계속 들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신남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로케 파티를 열기도 했다. 

드디어 인간형을 보게 된 아몬을 포함해서 모두 다 모여서 같이 고로케를 만드는 건 무척 즐거웠다. 소라가 받아온 싱싱한 새우들도 넣고, 감자도 넣고, 고구마도 넣고, 옥수수도 넣고. 어릴 때 할머니를 도와드리던 때보다 더 많은 사람(=정령)들이 함께 모여서 떠들석하게 만드니까 들떠서 지나치게 많이 만든 기분이었지만 노부유키와 정령들은 맛있다며 신나게 먹었다. 음식 재료의 맛을 느끼는 게 아니라 음식에 담긴 마음의 맛을 느낀다는 정령들이 정말 맛있다고 계속 호들갑을 떨었던 걸 보면 고로케에 담긴 마치다와 노부유키, 정령들의 마음이 모두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몇날 며칠이고 놀고 있던 중에 어느 날 노부유키가 함께 마을에 있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쌀을 사러 가야 한다고. 다시 역 앞 여관주인 같은 몹쓸 놈들을 마주칠 걸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긴 했지만 노부유키가 마을 사람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몰라서 같이 따라가기로 했다. 쌀을 사야 된다는 노부유키가 트럭을 몰고 가자고 했기 때문에 등대여관에 올 때 탔던 트럭에 함께 올라탄 뒤였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그 여관주인은 왜 온 거예요?"
"그 사람을 압니까?"
"거기서 하루 잤어요."
"하루만 자고 나온 거예요? 별로였어요?"
"완전 별로였죠. 등대여관이랑 비교도 안 돼. 등대여관이 있는 줄 알았으면 그런 데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밝히고 싶지는 않았지만 원한은 아직 생생했기 때문에 심술궂게 말하자 노부유키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여관에 고양이가 있냐고 물어 봤습니다."
"있으면 어쩔 거고, 없으면 어쩔 거야. 할일도 없나. 진짜 못났다."

그 인간은 고양이한테 관심도 없을 거다. 그날 밤 자신의 무단침입 시도를 찍은 영상을 갖고 있다는 마치다가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게 불안해서 트집을 잡고 싶었던 거겠지. 진짜 확 신고해 버려? 속으로만 궁시렁거리고 있던 마치다가 고개를 돌려서 운전 중인 노부유키의 표정을 빤히 살펴보자 노부유키는 시선을 느꼈는지 마치다를 슬쩍 바라보고 눈썹을 까딱 올렸다. 

"왜 보세요? 뭐 살 것 있으세요?"
"그 사람이랑 원래 알았어요? 그 여관주인이랑?"

노부유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릴 때 여기에 왔을 때부터 알았습니다."

노부유키는 마치다를 돌아보며 살짝 웃었지만 마치다는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걸 알아채고 속으로 혀를 찼다. 노부유키가 정령을 본다고 나쁜 말을 들었던 적도 있다더니 그놈한테 욕이라도 먹은 거 아냐? 그래서 마치다는 노부유키가 쌀과 고기를 사고, 맥주와 와인을 사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누가 또 나쁜 말을 하지 않는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노부유키에게 별다른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별일 없이 좀 지치고 안심한 상태로 트럭에 올라타자 노부유키는 마트에서 산 컵 아이스크림을 마치다에게 들려줬다. 

"여기 오실 때 기차타고 오셨어요?"
"네."
"이 지역에 기차역을 유치해 준 사람이 제 할아버지입니다."
"네?"

아이스크림을 막 한 입 떠넣은 마치다는 멍하니 노부유키를 바라보다가 입 안이 너무 차가워져서 황급히 입 안의 아이스크림을 삼켰다. 기차역을 유치해 줬다는 게 무슨 말이야?

"관광지도 아니고 그냥 어촌이라서 원래는 기차역이 없었거든요. 예전에는 차로 2시간 이상 걸리는 지역에서 기차를 내려서 들어와야 했는데, 처음에는 그 지역과 이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를 닦아줬고, 몇 년 전에는 아예 기차역을 유치해 줬어요."

어릴 때 2년 말고는 계속 대도시에서만 살았던 마치다는 기차역이 어떤 과정으로 생기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면서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이야기를 왜 하지? 자랑하나? 할아버지가 돈 많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마치다가 생각에 잠긴 채 아이스크림만 먹고 있자 부드럽게 웃으면서 마치다를 바라보고 있던 노부유키가 다시 툭 말을 뱉었다. 

"그러니까 마을 주민들을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들 제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마을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제가 이상한 놈 같아도 절대로 손대지 않으니까요."

아마 노부유키는 장 보는 내내 노부유키의 옆에 붙어서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마치다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전혀 이상한 놈 아닌데요."
"..."
"그리고 별로 경계하지도 않았어요."

마치다가 괜히 심술궂게 말하자 노부유키는 또 웃었다. 

"마치다 상한테도 등대여관의 손님인 한 아무 짓 못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마치다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노부유키는 두 사람이 먹은 아이스크림 컵을 버리고 트럭을 출발시켰다. 그렇게 출발한 트럭이 다리에 막 올라섰을 때, 마치다는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걸 내뱉았다. 

"마을 사람들이 당신을 괴롭혀서 할아버지가 도로를 닦아준 거예요?"
"네. 자기 집안에 나 같은 놈이 나왔다는 걸 세상에서 감추고 싶어서 날 여기에 숨겨놨는데, 마을에 이런저런 소문이 돌고 사람들이 나를 내쫓으려고 하고 그러니까 성가셨나 보더라고요."

8살에 가족들과 헤어졌다더니 정령을 본다고 애를 시골에 가둬 놓은 건가. 정말 뭐하는 인간들이야? 애잖아. 8살이라고! 8살에 부모를 잃었던 마치다는 할머니가 계셨는데도 엄마아빠 없이 남겨졌을 때 정막 막막했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은 그 막막함을 잘 알기 때문에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래도 마치다에겐 할머니라도 있었지만 노부유키는 8살 때부터 가족들이 같이 살지 않았다니까. 덕분에 또 인간혐오가 치솟은 마치다는 차갑게 말했다. 

"당신같은 사람이 어때서요. 착하고 귀엽고 다정하고 성실한데. 노부유키같은 아들, 손자가 나오면 좋아해야지."
"저 귀엽나요? 감사합니다."

노부유키가 실실 웃는 걸 보면서 마치다는 빠르게 후회했다. 귀엽다는 말은 왜 한 거니, 나야? 말하기 전에 생각을 해! 민망했기 때문에 말투는 더 차가워졌다. 

"사과 품종 엉뚱하게 가르쳐 줬다고 할 때부터 그럴 줄 알았어. 가만히 잘 있는 사람 괴롭히다가 돈 주니까 입 다물고. 쯧. 원래 인간이란 건 다 자기밖에 모르고 제 기분에 따라서 남들에게 못된 짓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존재들이라니까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도와질 생각대신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입을 막았다니 다행이긴 하네요. 혹시 아직도 복수하고 싶으면 말해요. 나한테 복수할 수단이 하나 있으니까."
"복수할 수단이요?"
"좀 귀찮긴 한데. 역 앞 여관주인한테는 복수할 수 있어요. 그놈도 하는 짓도 그렇고 입 놀리는 것도 그렇고 쓰레기던데 당신한테도 나쁜 말했죠? 노보루한테도 못된 소리 하더라고."
"당신한테도요?"
"네, 뭐."
"뭐라고 했어요?"
"노보루한테 고양이 새끼라고 욕했어요!"
"... 그랬군요. 그 사람이 마치다 상한테는 뭐라-"
"어, 잠깐만요. 차 좀 세워 보세요."

등대여관과 등대가 있는 곳은 마을과 바로 붙어 있다고 할 정도로 가까이 있지만 그래도 어쨌든 섬이기 때문에 마을과 등대여관을 잇는 다리는 아주 길었다. 걸어가려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긴 하지만 웬만큼 체력이 넘치는 사람도 끝까지 걸어가려면 제법 힘들 거리였는데, 그 다리 중간도 못 가서 어떤 사람이 다리 난간 옆에 커다란 가방을 두고 주저앉아 있었다. 마치다가 차에서 내려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자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젊은 남자가 헐떡거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고개를 든 남자는 젊다는 말보다 어리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앳된 얼굴이었다. 

"네, 좀 어지러워서요. 괜찮아요."
"어디 가세요? 이 다리 건너가면 등대밖에 없는데요."

마치다의 말을 들은 남자의 창백한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 여관 없나요? 등대여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여관 홍보에 관심이 없다더니 아예 홍보를 안 한 건 아닌가? 마치다가 트럭을 돌아보자 노부유키도 트럭에서 내려와서 다가오고 있었다. 

"등대여관 있어요. 예약하셨어요?"
"아니요. 아는 분이 여기 여관이 정말 좋았다고 소개해 주셨는데 그 분이 명함을 잃어 버렸다고 하시고 전화번호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봐도 안 나와서."

홍보를 안 한 건 사실이군. 지금까지 몇 없었다던 손님 중 하나가 소개해 준 모양이라 마치다는 노부유키가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소개받고 오신 손님이래요."

그리고 남자를 보며 노부유키 쪽을 가리켰다. 

"여기 이 분이 등대여관 사장님이세요."

그러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남자가 여전히 핼쑥한 얼굴로 난간을 짚고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타니 료헤이 형사님이 여기 등대여관이 좋다고 하셔서... 예약을 못했는데 묵을 수 있나요?"
"아, 타니 형사님."

확실히 아는 사람인지 노부유키의 표정이 밝았다. 남자의 안색이 너무 핼쑥한 데다 난간을 짚고 서 있는데도 휘청거리고 있어서 마치다가 남자를 부축해 주며 다시 노부유키를 바라보자 노부유키는 남자가 아닌 마치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을까요?"
"뭐가요?"
"이 분이 투숙하셔도."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여관사장이잖니. 게다가 이 친구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타니 료? 그 형사님은 잘 아세요?"
"타니 료헤이 형사님은 몇 년 전에 다른 형사님이랑 둘이 같이 투숙하셨던 손님이에요. 우리 여관을 좋게 기억해 주셨나 보네요. 타니 형사님이랑 타카노 형사님 두 분 다 좋은 분들이었어요."
"이 분 투숙하셔도 되지 않아요? 방 많잖아요."
"그러죠."

마치다는 불안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조심스럽게 듣고 있던 청년을 돌아봤다. 

"저희 차로 같이 가세요. 걸어가기엔 좀 멀어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4인용 픽업 트럭이라서 3명이서 탈 수 있기 때문에 마치다가 남자의 가방을 들고 남자를 부축해주자, 노부유키가 마치다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갔다. 그렇게 마치다가 남자를 뒷좌석에 앉혀 주고 조수석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 앞쪽을 빙 돌아가자 가방만 짐칸에 실어주고 아직 차에 타지 않은 노부유키가 마치다를 보고 있었다. 

"왜요?"
"원래 인간이란 건 다 자기밖에 모르고 제 기분에 따라서 남들에게 못된 짓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존재라면서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도와질 생각대신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고."
"네, 맞아요."
"아닌 것 같은데."

노부유키는 요즘 마치다를 볼 때마다 짓고 있는 표정 두 개를 모두 다 보여주고 있었다. 웃겨죽겠다는 표정과 보는 마치다의 마음을 깃털로 간지럽히는 것처럼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그런 표정. 노부유키는 그런 표정으로 마치다를 바라보다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뭐야, 왜 저래. 아니긴 뭐가 아니야. 





새로 온 손님은 트럭을 타고 오는 동안 자기 이름이 가루베 다이키치라고 소개했다. 노부유키는 가루베에게도 옥상 노천탕과 숲 노천탕을 소개해 주었고, 객실도 안내해 주었다. 손님은 오션뷰 대신 2층의 포레스트뷰를 선택했고 너무 지쳐 보여서 권한 온천은 거절했다. 다른 손님이 왔기 때문인지 정령들은 다 모습을 감추고 있어서 좀 쓸쓸한 기분이 든 마치다는 가루베에게 족욕을 권했다. 

"여기 족욕탕도 좋거든요. 걸어 오시느라고 힘드셨을 텐데 족욕이라도 하세요."

가루베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마른 사람인데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많이 걸었던 게 꽤 힘든 모양이었다. 마치다가 가루베와 나란히 앉아서 족욕을 하고 있자, 노부유키가 다가왔다. 

"커피 좀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마치다가 냉큼 커피를 주문했지만 가루베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커피 안 드시면 차로 드릴까요? 홍차도 있고, 녹차도 있는데요."
"아니, 카페인은..."

가루베는 침울한 얼굴로 작게 덧붙였다. 

"제가 임신해서요..."




#노부마치    #등대여관노부마치    
2023.03.30 05: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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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리!
[Code: e29a]
2023.03.30 05: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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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집에서 노는 놉맟 완전 신혼 그자체ㅋㅋㅋㅋ 뉴페이스 가루베는 뭔사연이길래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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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06: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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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진심으로 900나더 있었으면 좋겠어요......부케비는 성실수인 내센세 때문에 매일 즐거워 사랑해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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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06: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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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ㅠㅠ
[Code: 281c]
2023.03.30 07:08
ㅇㅇ
노보루한테 고양이 새끼라고 욕했대ㅋㅋ 노부는 즈그 케이 걱정중인데 케이 대답 커여워ㅋㅋㅋ
[Code: 431b]
2023.03.30 07:08
ㅇㅇ
가루베는 설마 임신튀야???ㅠㅠㅠ
[Code: 431b]
2023.03.30 07: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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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네 가족 개쓰레기 아님? 8살짜리 애를 시골에 가둬놓다니 미쳤나 그래도 좋은 할아버지랑 정령들이랑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은 즈그 케이도 있으니까 더 다행
[Code: 1e49]
2023.03.30 07: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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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놉맟 너무 달아서 부케비 녹았어.... 억나더로 책임져줘....
[Code: 1493]
2023.03.30 08: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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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베 애아빠는 어디가고 임신한 몸으로 혼자 저길 찾아왔어 놉맟이 발견 못했으면 어쩔뻔했어ㅠㅠㅠㅠ
[Code: 0ae2]
2023.03.30 08: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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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 존나 로맨틱해 크으으 반딧불이 모아놓고 즈그 케이 위한 서프라이즈 그 결과는 고로케 파티ㅋㅋㅋㅋㅋㅋㅋ 가루베는 누구 애 임신했니ㅠㅠㅠㅠㅠ
[Code: f1a2]
2023.03.30 09: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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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효과 아니야 사랑에 빠진 거라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a9f3]
2023.03.30 09: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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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루한테 고양이 새끼라고 욕했어요! ... 그랬군요.
케이는 노부한테 노보루 욕 먹은거 고자질 하는데 ㅋㅋㅋㅋ 노부는 지금 ㅋㅋㅋ 노보루가 먹은 욕은 관심 없고 즈그 케이한테만 관심이 있는거 존웃 ㅋㅋㅋㅋ
[Code: 76ae]
2023.03.30 09: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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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가루베ㅠㅠㅠㅠㅠㅠ놉맟이 잘 챙겨주겠지ㅠㅠㅠㅠㅠ가루베도 여기서 적응하고 노부네 여관에 커플 여행 왔던 것 같은 타카노타니도 하루 불러서 다같이 북적북적하게 파티 해도 재밌겠다
[Code: 197f]
2023.03.30 10: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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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 좋아서 그런것도 맞고 사랑에 빠진게 맞다맞다ㅋㅋㅋㅋ 드디어 마치다 자기 마음 알게된 느낌이고 노부야 넌 어때ㅋㅋㅋ
[Code: 4ebb]
2023.03.30 10: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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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베 임신??센세가 억나더 주실건가봐 존좋 억나더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f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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