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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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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는 머리가 핑 도는 기분에 잠깐 멍하게 있다가 고양이와 강아지들, 아니 늑대들이 츄르 먹을 차례가 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게 귀여워서 찍었던 영상과 사진을 찾아서 들여다봤다. 그리고 핸드폰을 스즈키에게 보여줬다. 

"봐요, 나 사진도 찍었어요. 영상도 찍었고요. 잘 보이는데요."

스즈키는 핸드폰을 받아서 마치다의 폰 앨범 속 사진들을 한 장씩 넘겨봤다. 

"사진을 잘 찍으시네요. 다들 실제보다 더 귀엽게 나온 것 같네."
"진짜로 귀여우니까요. 그런데 정말 사장님이랑 나한테만 보여요?"
"제가 아는 한은 그래요."
"와..."

정령이라는 걸 알았을 때보다 솔직히 지금이 더 놀라운 것 같았다. 정령이 실제로 있는 것도 놀랍지만 그 귀여운 정령들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니. 그런데 마치다가 그 중 한 사람이라니! 할머니까지 돌아가신 이후로는 늘 불운만이 가득한 삶을 사는 것 같았는데. 지금까지의 그 모든 불운이 사실은 이렇게 다가올 기적같은 행운을 위한 빌드업이었나. 정령을 보기 위해서 행운 포인트를 쓰지 않고 계속 쌓아놨어야 했던 건가. 

"왜 나한테는 보이지."

스즈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마치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은 그러면 지금까지 혼자서 정령들을 봐 왔던 걸까? 정령을 보는 스즈키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스즈, 사장님은 언제부터 보셨는데요?"
"저는 그냥 원래부터 보였습니다. 아기 때 기억은 안 나지만 기억나는 때부터는 항상 보였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가 노보루와 놀았던 기억이니까."
"이 장소가 정령이 잘 보이는 그런 장소인 건 아니고요? 무슨 심령 스폿 그런 것처럼?"

스즈키는 잠깐 뭔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말을 꺼내놨다.

"저는 소라, 노보루, 아마미야, 류세이, 야마토, 아몬 말고 다른 정령들을 본 적은 없고, 제가 처음 정령을 본 곳은 여기가 아니었습니다. 본가에 있을 때도 이 정령들은 저와 함께 있었어요. 제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도 저와 함께 온 제 정령들 말고 다른 정령들은 없었고요. 어딘가에 정령이 또 있을지도 모르지만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럼 장소 탓은 아닌가 보네요..."
"네, 그렇겠죠."
"스...사장님이랑 같이 있어서 보이는 건가? 사장님은 원래 보였으니까?"
"8살 때까지는 가족들과 같이 살았는데 제 가족들은 아무도 정령을 못 봤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옆에 있다고 보이는 건 아닐 겁니다."

8살까지? 8살 이후로는...? 그러나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물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스즈키는 무덤덤한 척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얼굴 위로 드리우는 그늘을 눈치챈 마치다는 언제 저 얼굴에서 저 비슷한 표정을 봤던가 떠올리다가 야마토, 아몬, 류세이라는 직원들이 야마토, 아몬, 류세이라는 개를 데리고 온 거냐고 물었을 때, 마치다에게 못 믿겠냐고 물었던 때라는 걸 떠올렸다. 가족들은 정령이 보인다는 어린 노부유키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던 걸까. 마치다는 그 얼굴의 그늘을 지우기 위해 다른 가설을 급히 내뱉았다. 

"내가 착하게 살아서 그런가?"

그러자 거짓말처럼 스즈키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조금 굳어 있던 스즈키의 입가가 예쁘게 올라가는 걸 보고 있자, 스즈키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그럴지도는 무슨 그럴지도야. 마치다가 스즈키를 노려봤는데도 스즈키는 웃기만 했다. 

"그런 이유일 리는 없고, 착하게 살지도 않았으니까 그건 말도 안 되고요. 내가 스...사장님처럼 정령이 보이는 체질? 같은 건가?"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저 말고 정령을 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저도 제가 왜 정령을 볼 수 있는지 사실 모르니까."

마치다는 여전히 웃고 있는 스즈키를 빤히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좋은데?"
"네?"
"이유야 모르겠지만 정령을 볼 수 있다니 너무 좋잖아요. 저렇게 귀엽고 예쁜데."
"그렇죠. 행운이죠."

아마도 어린 스즈키 노부유키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이유로 많은 배척을 당했을 것이다. 8살에 가족과 헤어진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지쳐갔겠지. 거짓말쟁이로 낙인이 찍혔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머리가 이상한 애로 취급받든가. 그런데도 정령을 볼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말하는 얼굴에는 한 점의 거짓이나 우울도 보이지 않았다. 외로웠을 삶에 정령이 온기가 되어준 걸까. 

"스, 사장님은 여기서 언제부터 여관을 하셨어요?"
"여관을 한 건 6년 정도... 여기서 살기 시작한 건 20년 정도 됐어요."
"와, 아까워. 20년 손해봤어."
"손해요?"

10살에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천애고아가 됐을 때 보육원으로 가지 말고 여기로 왔으면 좋았을걸. 13살에 보육원에서 형이 준 돈을 가지고 도망쳐 나왔을 때 덜덜 떨면서 길거리를 헤매거나 골목에 숨어서 숨죽이고 있지 말고 형이 준 돈으로 기차표 사서 여기로 와 버렸으면 좋았을걸. 

"내가 그때 여기로 왔으면."
"그때요?"
"슺, 사장님 나랑 나이 비슷해 보이시는데, 몇 살이세요?"
"30살입니다."
"비슷하네. 나 32살이거든요. 10살 때나 13살 때 여기로 왔으면, 아, 나 10살에 여기로 왔으면 그때는 슺, 사장님 없었으려나."
"제가 여기 온 게 8살 때니까 그때도 있었을 겁니다. 노부유키라고 이름을 부르셔도 됩니다."

자꾸 스즈키라고 부를 뻔한 거 들킨 모양이었다. 마치다가 정ㄹ, 정ㄹ 타령하던 스즈키 탓할 때가 아니었다. 같이 정령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묘하게 거리감이 줄어들고 친근하게 느껴져서인지 자꾸 이름이 헛나왔다. 그냥 사장님이라고 불러, 사장님이라고 부르라고! 마치다는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큼큼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여기에 왔으면 그래서 어제처럼 같이 고구마도 뽑고 양배추도 뽑고 그렇게 밥값도 열심히 하면서 같이 정령들이랑 놀고 그랬으면 좋았을 것 같아서요. 이런 생각하기엔 이미 늦었지만."

스즈키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마치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에 드러난 감정은 아쉬움 같기도 하고, 희열이나 안도 같기도 했다. 거기에 도저히 뭔지 모를 감정까지 섞여서 일렁거리고 있는 눈동자는 너무 예뻐서 저렇게 눈이 예뻐서 정령이 보인 건가 싶을 정도였다. 

"아직 안 늦었습니다. 100세 시대니까요. 앞으로 70년간 여기서 같이 지내면 되죠."

마치다가 되도 않는 100세 시대 드립에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자, 스즈키 노부유키는 마치다의 눈치를 보더니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68년..."

처음엔 '웃어'라는 명령어가 입력된 로봇처럼 내내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더니 이제는 제법 농담도 하고 있는 스즈키를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요. 그럼 쫓아낼 때까지 들러붙어 있지 뭐. 밥값은 할 테니까 걱정 말아요. 오늘은 뭐 뽑나요? 감자? 무?"
"어떻게 매일매일 일을 시키겠습니까? 어제도 많이 힘드셨을 텐데."

솔직히 힘들긴 힘들었다. 아직까지 허리와 다리가 아픈 건 사실이기도 했고. 그래도 둘이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면서 양배추를 뽑고 고구마를 캐는 건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누군가와 아무말이나 떠들어대면서 함께 뭔가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의 경험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좀 신나기도 했었다. 

"그럼 오늘 하루는 좀 쉬운 일로?"

스즈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일 뭘 할 거냐고 물어보려고 하고 있을 때, 류세이가 아침을 준비하러 오는 건지 종종 보던 빨간색 조리복과 조리모를 착용하고 들어오다가 스즈키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마치다를 보더니 흠칫 놀라서 멈춰섰다. 

"안녕, 류세이."

소라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더니 정말로 비밀을 지켰는지 류세이는 정령이라는 걸 들킨 걸 몰랐던 모양이었다. 계속 존대말을 하던 마치다가 손을 살랑 흔들며 인사를 하자 눈이 커다래졌다. 스즈키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뒤를 돌아봤다. 

"전복 갖다둔 거 있으니까 전복죽으로 준비해 줘."
"어... 저기... 마치다 상?"
"응. 류세이."
"하..."

류세이는 그제야 들켰다는 걸 알고 당황했는지 눈이 다시 빨개지더니 후다닥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마치다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스즈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소라도 인간형일 때 눈색이 파란색이 되나요? 원래는?"
"분노하거나 기뻐 날뛸 때나 감정이 격렬해지면 본래 눈색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저렇게 아무때나 눈색깔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는 건 류세이밖에 없어요. 야마토도 까만 눈이었잖아요. 노보루도 그렇지 않았나요?"
"그렇긴 했는데 왜 류세이만요? 성격 때문에? 덤벙거리는 성격이라든가?"
"아무래도 인간형을 갖출 수 있게 된 게 제일 늦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 나이가 어려서?"
"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고 들었는데... 인간형을 갖출 수 있게 된 건 류세이가 제일 늦었어요. 소라가 제일 빨랐고, 아몬, 아마미야도 빨랐죠."
"야마토랑 노보루는요?"
"둘은 비슷한 시기에 인간형을 갖췄습니다. 류세이가 제일 늦었고."

놀라긴 했지만 정말로 신기한 이야기이긴 해서 마치다는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 있다가 손을 반짝 들었다. 

"고양이랑 늑대의 형태를 취했다고 하셨으니까 그럼 원래는 다른 모습인 거예요?"
"네."
"슺, 보셨어요?"
"네, 슺이는 봤습니다."

스즈키는 노부유키라고 불러달라는 걸 안 들어주고 또 말실수한 게 재미있는지 그냥 안 넘어가주고 굳이 말꼬리를 잡으며 놀려댔다. 마치다가 노려보자 양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씩 웃는 걸로 무마하려는 게 더 어이없었지만 귀여워서 봐 줬다. 마치다가 피식 웃자, 스즈키는 손을 내리며 웃었다. 

"보여달라고 해 보세요. 마치다 상한테는 다들 보여줄 겁니다."





마치다는 아침에 죽을 먹고 객실에서 두 시간 정도 더 자고 난 후 객실 노천탕에서 잠깐 몸을 담근 뒤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다리 위로 산책을 나갔다. 늘 숲의 산책로를 이용했는데 소라 상이 소라로 변하는 걸 보고 났더니 노부유키를 처음 만난 날 노부유키가 마치다를 인간 소라로 오해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리 위로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다가 처음 이 다리에 올라섰던 날처럼. 바람이 시원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문득 혹시 이 바람이 바람의 정령이 만든 바람인가하고 고개를 내렸더니 정말로 까만고양이가 녹색 눈을 반짝거리며 마차디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노보루."

녹색눈이 정말 예쁜 까만고양이는 눈을 한 번 깜박하더니 총총 다가왔다. 마치다가 손을 내밀어주자 마치다의 손에 조그만 머리를 부빗부빗하는 모습은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는 광경이었다. 노보루가 머리를 부빌 때마다 기분 좋은 상쾌함을 전해주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어, 내가 등대여관에 가기 전에 나 봤어? 나 여기 있을 때?"

노보루는 다시 눈을 깜박였다. 

"어쩐지 바람이 정말 시원하다 했더니 정령이 만들어 낸 바람이라 그랬구나."

노보루는 소라한테 들었든 노부유키한테 들었든 마치다가 자기 정체를 알았다는 걸 이미 듣고 왔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마치다의 손을 핱아 줬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바다는 아예 잊어버리고 노보루와 놀아주고 있자, 그물을 어깨에 걸치고 가던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서 호통을 쳤다. 

"고양이 새끼한테 먹이 주지 마!"

갑작스러운 호통에 마치다가 반사적으로 노보루를 끌어안으며 그쪽을 바라보자, 마치다가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마치다의 방에 몰래 들어와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파렴치한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쪽은 멋대로 먹이 뿌리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저 자식들이 새끼치고 온 동네방네 시끄럽게 울고 다니는 건 누가 책임질 거야? 어?"

기가 막혀서. 마치다는 얼른 노보루를 품에 더 꼭 끌어안은 후 노보루가 나쁜 말을 듣지 않도록 귀여운 귀를 한 쪽은 가슴에 꾹 누르고 손으로 반대쪽 귀를 눌러서 막아준 후에 파렴치한을 노려봤다. 마치다가 자기가 한 짓을 마을 사람들한테 알릴까 봐 겁나기라도 하는지 지레 찔려서 먼저 호통을 치는 비겁한 놈.

"길냥이 아닙니다."
"아니긴! 그쪽 혼자 이 마을에 온 거 내가 뻔히 아는데!"
"등대여관 고양이입니다."

남자도 등대여관은 당연히 알 테니 흠칫했지만 그 고양이가 정말로 그 여관 고양이인지 그쪽이 길고양이 밥 주다가 들키니까 거짓말하는 건지 어떻게 아냐며 헛소리를 늘어놨다. 

"왜요. 내가 마을을 안 떠나고 계속 있으니까 그쪽이 손님 방에 몰래 들어와서 나쁜 짓하려고 했다고 소문낼까 봐 무섭습니까?"
"... 뭐.. 뭐... 무슨 헛소리야!"

마치다는 노보루를 품에 숨기듯 더 꼭 끌어안고 피식 웃었다. 

"혼자 낯선 지역 낯선 여관 방에서 묵으면서 아무 대처도 안 했을까요? 내가 왜 다음 날 바로 그쪽 여관을 나왔겠습니까? 요즘 영상기기가 얼마나 잘 나오는지 압니까? 그날 밤에 그쪽이 몰래 방에 들어오려고 했던 영상 들고 경찰서 가 볼까요? 이쪽에도 경찰서는 있을 텐데? 인터넷에 올려서 전국에 소문나게 해 줘? 전 국민한테 욕 먹고 경찰서 끌려가고 싶어? 교도소 보내줘?"

남자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나도 댁같은 인간이랑 얽히기 싫으니까 조용히 있는 사람 건드리지 말고 꺼져. 한 번만 더 귀찮게 굴면 진짜 바로 경찰서 갈 거니까."

남자는 젊은 새끼가 버릇이 없다느니 못돼 처먹었다느니 어쩌느니 저쩌느니 궁시렁거리면서 돌아섰지만 그 와중에도 마을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다가와 물을까 봐 큰소리도 내지 못했다. 찌질하긴. 마치다는 남자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노려보다가 노보루의 귀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고 노보루를 안은 채로 등대여관으로 발을 옮기며 작게 속삭였다. 

"저런 말 듣지 마."
"냐앙-"
"여관 예쁜데 안에서 산책할걸 괜히 밖에 나왔다가 이상한 놈 만났네. 등대에나 올라가보게 해 달라고 할걸."
"냐앙~"

마치다의 손을 핥아주며 애교를 부리는 노보루를 안고 여관 부지 안으로 다시 들어온 마치다는 족욕장의 테이블 위에 노보루를 앉혀 놓고 눈을 빤히 바라봤다. 

"노부유키한테 들었는데 원래 모습이 고양이 아니라면서."
"냐앙."
"원래 모습 보여줄 수 있어? 나는 원래 모습까지는 못 봐?"

노보루는 식빵을 굽고 있었는데 벌떡 일어나서 몸을 뒤로 빼며 다리를 쭉 뻗더니 뭔가 펑! 하는 느낌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눈 앞에 나타난 건 파란색 같기도 하고 녹색 같기도 한 반투명한 형체였다. 고양이일 때처럼 선명한 녹색 눈이 굉장히 예뻤다. 크기는 신생아 정도 되려나? 신생아를 본 적은 없지만 마치다의 상상 속 신생아 정도의 크기에 날개 같은 것도 없는데 공중에 둥둥 뜬 채로 바라보는 노보루는 온몸이 녹색처럼 보이는 반투명한 상태고, 작다는 것 말고는 인간 노보루일 때와 비슷한 것 같았다. 여전히 상냥하고 여전히 다정한 눈빛을 마주보던 마치다는 조그만 녹색 정령의 손을 잡으며 저도 모르게 웃었다. 

"정말 예쁘다."

그러자 요정 같은 바람의 정령이 마치다의 품으로 쏙 날아들었다. 바람의 정령이라서인지 원래 정령들은 이런 건지 생각보다 서늘한데도 차가워서 기분 나쁘다기보다 상쾌한 느낌의 몽실몽실한 정령을 폭 안고 있자 마음이 포근포근 말랑말랑해졌다. 그렇게 한참 마치다와 놀아주던 노보루는 갑자기 '누가 와요' 하고 속삭이더니 다시 녹색 눈을 가진 사랑스러운 고양이로 돌아왔다. 노보루가 테이블 위로 떨어진다고 해도, 정령이고 고양이니까 다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몰라서 얼른 품에 받아안고 고개를 돌려보자, 등대여관 입구 쪽에서 누군가 몰래 다가오는지 소리를 죽인 발자국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마치다는 품 안의 고양이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며 물었다. 

"누구야?"

정령의 원래 형체일 때 노보루의 목소리는 예뻤지만 어딘가 바람소리 같았다. 바람의 정령이기 때문일까. 귀에 바로 와 닿지 않고 몸을 살짝 감싸고 가는 듯한 그런 아련한 느낌이 있었는데 고양이일 때는 역시 말을 못하는지 노보루는 아까 둘이 만났던 다리 쪽을 슬쩍 바라보기만 했다. 

"아까 그놈?"

마치다가 소리 죽여서 묻자 노보루는 눈을 한 번 깜빡했다. 귀여워. 그나저나 그놈은 염탐이라도 하러 왔나. 마치다가 일어서려고 할 때, 어떻게 알았는지 여관 안에서 노부유키가 나와서 여관부지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느냐는 소리가 작게 들리고, 그놈이 뭐라고 뭐라고 하는 소리가 웅웅 알아들을 수 없게 들리고 몇 마디 대화가 오가더니 노부유키가 다시 돌아서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쫓아낸 모양이었다. 

"어, 잠깐만. 노부유키가 너희는 다른 사람들도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해야 볼 수 있다던데, 아까 그놈은 어떻게 널 봤어?"

그러자 놀랍게도 사람일 때의 노보루보다 훨씬 귀여운 목소리가 고양이의 작은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여관 밖으로 나갈 때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다 진짜 고양이처럼 보이게 하고 나가요. 아니면 아예 사람 모습으로 나가거나. 그래야 노부유키가 우리를 보고 말을 걸어도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노부유키가 미친놈 취급받을까 봐 눈에 보이는 모습을 취하고 다닌다는 말에 마치다는 저도 모르게 노보루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아까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도 그놈한테 마치다가 혼자 목소리를 바꿔 가며 고양이랑 대화하기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한 모양이었다. 

"배려심이 아주 좋은 정령이네."

마치다가 노보루의 머리를 막 쓰다듬어주자 노보루는 마치다의 손에 머리를 부빗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마치다는 노보루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다가 조용히 물었다. 

"노부유키가 사람들한테 나쁜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정령을 본다고 나쁜 말을 듣거나 미친놈 취급을 받았냐고 묻는 건 노보루에게 너무 상처가 될 것 같아서 돌려 물었는데도 똑똑한 정령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마치다의 손가락을 깨물깨물하며 장난을 치던 노보루는 고개를 들고 마치다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대답은 없었지만 노부유키가 정령을 본다는 이유로 정말로 미친놈 취급을 받았던 때도, 나쁜 말을 들었던 때도 많았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가족에게서도. 그리고 노보루가 그것 때문에 노부유키에게 미안해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것도. 마치다는 노보루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품에 안고 부드러운 털을 살살 쓰다듬었다. 

"노부유키는 너희가 함께 있어줘서, 너희를 볼 수 있어서 기쁠 거야."
"... 냐앙..."
"진짜로. 이렇게 사랑스러운걸."
"...냐앙"
"나도 너희를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뻐. 나한테 이런 행운이 왔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아."

노보루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마치다와 눈을 마주쳤다. 마치다가 언젠가 고양이 집사인 동료에게 들었던 대로 천천히 눈을 깜박인 다음 노보루와 눈을 마주치자 노보루가 벌떡 일어나서 마치다의 뺨을 핥았다. 손을 핥아준 적은 있지만 얼굴을 핥아준 건 처음이라서 눈을 깜박이던 마치다는 노보루를 꽉 끌어안고 싶은 걸 참고 동그랗고 작은 머리에 입을 맞췄다. 

"고마워."
"냐앙!"
"노부유키는 정말 좋겠다. 너희랑 계속 같이 살아서."

노보루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마치다는 머리만 톡톡 쓰다듬어줬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정령이라고 해도 돈 떨어지면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하기에는 구질구질해서 노보루의 머리를 만지며 장난만 쳤다. 노부유키는 68년간 머물라고 했지만...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노부마치    #등대여관노부마치
2023.03.28 05: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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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Code: 9eda]
2023.03.28 06: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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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센세ㅠㅠㅠㅠ
[Code: 38ec]
2023.03.28 06: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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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을 본다는 이유로 노부 지금까지 나쁜말도 듣고 외롭게 컸다니 부케비 운다ㅠㅠㅠㅠㅠㅠ
[Code: a1af]
2023.03.28 07: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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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리 받아 센세
[Code: eb06]
2023.03.28 07: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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슺이는 봤습니다.ㅋㅋㅋㅋㅋㅋ 노부 즈그 케이 떠날까봐 걱정한 것 같더니 이제 긴장 좀 풀렸어??ㅋㅋㅋㅋ 이제 노부 직진해보자
[Code: eb06]
2023.03.28 07:23
ㅇㅇ
너희랑 계속 같이 살아서 노부는 정말 좋겠다는 저 말 노부가 들었으면 너무 좋아할것같아.. 노부는 지금까지 정령들 때문에 많이 배척당했지만 정령들이랑 사는 시간도 소중했을텐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난거니까ㅠㅠㅠ
[Code: 6dd3]
2023.03.28 07:53
ㅇㅇ
아 아닌가 난 앞으로 같이 못사는데 노부는 앞으로도 같이 살아서 좋겠다는 말인가 그럼 안돼ㅠㅠㅠ
[Code: 6dd3]
2023.03.28 07: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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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면 센세가 있는 부케비의 행복한 하루 센세 사랑해
[Code: 67c9]
2023.03.28 07: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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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떨어져도 어디 가지말고 그냥 발뻗어ㅠㅠㅠㅠㅠ노부랑 결혼해서 살아ㅠㅠㅠㅠㅠㅠ
[Code: 6cff]
2023.03.28 08: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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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가 앞으로 68년 동안 같이 살자고 한거 즈그 케이한테 프로포즈 한거잖아 도망갈 생각 하지말고 놉맟 평생 같이 살아라 ㅠㅠㅠㅠ
[Code: c6b7]
2023.03.28 08: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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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유키라고 부르래ㅋㅋㅋㅋㅋ놉맟 이제 노부 케이 하게 되겠다ㅋㅋㅋㅋ
[Code: 2899]
2023.03.28 08:33
ㅇㅇ
하....... 정령들 존나 귀여워........ 저런 정령들이랑 너무 따뜻한 노부 두고 케이는 어떻게 떠날생각을 할수이써....
[Code: f0b7]
2023.03.28 09: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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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맟도 착한데 정령들 너무 착해 노보루가 노부한테 미안해하고 슬퍼하는거ㅠㅠㅠㅠ
[Code: dceb]
2023.03.28 09: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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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따땃하고 다한다 즈그 케이가 정령들 이상하게 생각 안해주고 오히려 노부가 겪었을 일들 더 생각해주고 이해해주고 노부랑 같이 있어주고 노부 진짜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노부도 마치다한테 68년간 같이 지내자고 하는거겠지ㅠㅠㅠㅠㅠ 70년이라고 했다가 눈치보고 68년이라고 바꾸는 노부 존커ㅋㅋㅋㅋ 노보루가 나쁜말 들을까봐 귀막아주는거 너무 좋고 정령들 이뻐해주고 정령들도 마치다 좋아해주고 지금까지 마치다도 혼자였는데 여기서 가족의 사랑 느끼는것 같음ㅠㅠㅠㅠ 근데 류세이는 인간화가 가장 늦어서 저렇게 귀엽나ㅋㅋㅋㅋ
[Code: 6fc6]
2023.03.28 09: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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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ㅠㅠㅠ 200편 더주세요ㅠㅠㅠㅠㅠㅠ
[Code: 6f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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