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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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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에 일어나서 숲 속 온천탕에서 아침 안개 속에 잠긴 채로 목욕을 하며 시작하는 아침은 아주 상쾌했다. 도심의 아침 안개는 미세먼지로 가득해서 답답한 느낌일 뿐이지만 깨끗하고 청량한 공기가 가득한 숲을 감싸는 아침 안개는 그저 신비로운 느낌을 더해주는 근사한 장치일 뿐이었다. 물안개가 가득해도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이라 몸만 따뜻한 물에 담그고 머리는 시원한 기분이 좋기도 했고. 게다가 숲으로 둘러싸인 온천에 앉아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세상 따위 줘도 안 가질 거지만. 

아침 목욕 후에는 나란히 앉아서 간식을 기다리는 고양이 세 마리와 개 세 마리에게 츄르도 하나씩 먹여줬다. 여관주인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간식을 먹인 적은 없다는데 어디서 교육을 받았는지 다른 고양이나 개가 츄르를 받아먹을 때 탐내지 않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게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사진과 영상도 잔뜩 찍었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들을 맘껏 예뻐해주고 나면 여관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고양이와 개들의 호위를 받으며 숲을 빠져나왔다. 개와 고양이들은 절대로 여관 안까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혼자 여관 안으로 들어가면 2인분의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던 여관주인이 마치다를 맞이했다. 

아침식사는 첫날처럼 주먹밥일 때도 있었고, 싱싱한 해산물의 감칠맛이 나는 죽일 때도, 생선구이와 계란말이, 된장국과 밥이 나올 때도 있었고, 빵과 소시지, 계란요리들로 가득한 서양식일 때도 있었다. 덮밥이나 카레, 오무라이스를 아침으로 내 준 적도 있고. 오믈렛과 수프도 맛있었다. 특히 단호박과 고구마를 찌고 루를 섞어서 만들었다는 단호박수프는 너무 맛있어서 솥의 바닥까지 긁어먹고 다음에 또 끓여준다는 약속까지 받아낼 정도로. 전부 맛있었다. 여관주인과 마주보고 앉아서 먹는 식사 자리는 처음에나 조금 어색했고 지금은 여관에 머물며 읽었던 소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여관의 고양이와 개들의 이야기를 하며 식사 시간마다 수다를 떨곤 했다. 

밥을 먹고 나면 로비에 있는 책장에서 책을 뽑아서 족욕장에 가서 읽었다. 이미 아르히온의 소년 시리즈는 다 독파했고, 너무 재미있어서 내용을 따라가느라 놓친 부분을 찾아가며 재독까지 마쳤다. 파라솔이 달린 테이블에 앉아서 족욕장에 발을 담그고 책을 읽고 있으면 소라나 노보루, 아마미야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식빵을 구우며 마치다를 구경하곤 했다.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친 고양이들의 반짝반짝하는 눈빛이 너무 예뻐서 심장이 멎을 뻔한 날도 많았다. 

점심으로 샌드위치나 우동, 소바, 덮밥이나 주먹밥 등 간단하게 먹을 수 있고, 아침보다는 좀 더 든든한 메뉴들이 주로 등장했다. 물론 맛있다. 점심을 먹고 나면 개들을 이끌고 숲으로 산책을 갔다. 고양이들은 산책을 싫어하는지 소라와 아마미야, 노보루는 아무리 불러도 산책할 것 같으면 다가오지 않았다. 개들은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아몬까지 포함해서 항상 신나서 산책에 동참하는데. 숲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한 시간 정도 산책을 즐기고 나서 여관으로 돌아오면 여관주인이 식재료를 다듬고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아몬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지만 류세이와 야마토는 식사 시간에 가끔 만났다. 류세이는 식사 시간이 되면 늘 주방에 있다가 식사를 갖다 주기도 하는 걸 보면 정말로 주방보조인 듯하고, 류세이보다 훨씬 더 서글서글한 인상의 야마토도 만났다. 주먹밥은 야마토 전문이란 말이 맞았는지 메뉴가 주먹밥일 때는 야마토가 가져다주는 일이 많았다.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지 묻기도 했고, 늘 주먹밥이 커다랗길래 손이 커서 그런가하고 그냥 얌전히 먹었는데 어느 날은 한 입에 쏙 넣을 수 있는 동글동글한 주먹밥들을 잔뜩 만들어서 가지런하게 내놓은 적도 있었다.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여관주인하고 같이 먹었는데도 배가 빵빵했지만 한 입 크기라서인지 정말 끝도 없이 들어갔다. 

그러나 식재료를 준비할 때는 다른 직원들은 전혀 보이지 않아서 늘 여관주인이 혼자서 채소를 다듬는 광경은 흔했다. 마치다는 그런 광경이 보이면 도와줬다. 여관주인은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빨래도 맡기고 있고, 삼시세끼 잘 먹고, 하루에 세 번 온천도 즐기고 있어서 마치다 나름대로의 밥값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온천을 즐기고, 점심 후에 산책을 하고 책을 읽거나, 여관주인의 식재료 준비를 좀 도와주고 난 뒤에 여관주인이 식사를 준비하러 가면 마치다는 4층 노천탕에 가서 가볍게 온천을 즐겼다. 바다 위로 해가 지는 광경을 온천탕 안에서 바라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저녁놀이 지는 시간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아침에 숲 온천탕에서 목욕을 할 때와 달리 저녁 온천은 건물 안에 있는 노천탕에서 하다 보니 고양이과 개들이 옆에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혼자 있는 외로움까지 충분히 감수할 정도로 바다 위로 내려앉는 저녁놀은 찬란하고 장엄했다. 바라보고 있으면 어째서인지 서글픈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름답다는 건 분명했다. 

그렇게 저녁 온천을 즐기고 나면 저녁 식사로는 첫날처럼 생선회나 해물전골이 나오기도 하고, 바비큐를 해 주기도 했다. 해산물 바비큐를 할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촛불을 은은하게 밝혀놓고 스테이크아 와인을 내줘서 당황하기도 했다. 항상 여관주인과 둘이 같이 밥을 먹는데 마주보고 앉아서 촛불을 켜놓고 와인과 스테이크는 좀 그렇지 않나. 그러나 여관주인은 눈치는 어디 팔아먹었는지 스테이크감이 너무 좋은 고기가 들어왔길래 스테이크로 내 왔다며 웃기만 했다. 

그래, 뭐 맛있으면 됐지. 

그리고 자기 전에 옥상 노천탕에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자신의 삶에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는 게, 이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몽글몽글한 기분이 돼서 잠들기 전부터 꿈꾸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백수처럼 (사실 백수다) 지내다 어느 날 오전에 숲을 벗어나서 여관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 보자 텃밭이라고 하기엔 너무 넓은 밭에서 여관주인이 혼자서 김을 매고 있는 게 보였다. 

"혼자 하세요?"

여관주인은 무념무상으로 잡초를 뽑고 있었는지 흠칫 놀라더니 마치다를 보고 늘 그렇듯 그림으로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네, 금방 해요."
"다른 분들은요?"
"아몬이 가끔 도와주는데 다른 정ㄹ... 직원들은 밭일 담당은 아니라서."

그러니까 저 정ㄹ은 뭘까... 처음에야 그냥 말실수겠거니 했는데 몇 번이나 똑같은 말실수를 하는 걸 보니 없던 호기심도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라서 마치다는 '정ㄹ'은 못 들은 척하고 밭으로 다가갔다. 

"장갑이랑 장화 남는 거 없습니까?"
"네? 왜요?"
"저 이래 봬도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어요."

2년밖에 안 살았고, 그 2년이 8살에서 10살 사이였기 때문에 실제로 해 본 일은 할머니가 밭을 갈고 밭에서 김을 맬 때 밭두렁에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할머니를 위한 재롱을 부린 것뿐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마치다는 노래를 잘 못하는 편이었는데 할머니는 손자가 밭두렁에서 엉덩이를 실룩거리면서 음정이 하나도 맞지 않는 노래를 불러도 귀엽고 기특하다고 좋아하셨었다. 지금은 물론 여관주인 앞에서 춤추고 노래해 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여관주인은 목장갑과 장화, 작업복과 토시를 내 줬고 마치다는 씩씩하게 밭에 들어갔다. 여관주인은 양배추를 수확해야 한다고 했고, 칼로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위험하니까 양배추를 잘라내는 건 자기가 할 테니 건네주는 양배추를 망에 담아달라고 했다. 양배추를 받아서 망에 하나씩 담는 게 얼마나 힘들까 싶었지만. 

몇 시간이 지나자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눈 앞이 팽팽 돌았다. 평생 먹고 사는 데 바빠서 운동도 제대로 안 해 봤던 마치다는 요 몇 주간 산책한 것만으로는 보통 사람의 체력에도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몇 시간 밭일을 한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지만, 시골에서 살았던 역사까지 들먹이며 돕겠다고 한 자존심이 있어서 힘들다고는 못했다.

점심으로 류세이가 만들어 준 소고기덮밥을 잔뜩 먹고 오후에는 고구마를 캤다. 호미로 뿌리 주위를 살살 파헤치며 캐면 고구마가 상처가 나지 않지만, 혹시나 상처가 나도 파는 게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그러니까 본인이 다치지만 않게 조심해 달라는 말을 듣고 호기롭게 밭에 쪼그리고 앉았다. 

몇 시간 동안 여관주인과 함께 고구마도 무사히 다 캐 낸 마치다는 4층 노천탕의 온천에 앉았지만 오늘은 저녁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혹사당한 허리와 다리, 어깨, 등이 계속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뜨거운 온천물로도 여기저기 아픈 몸과 피로가 금방 다 풀어지진 않았지만 뜨끈뜨끈한 물 속에 앉아 있으니 조금 낫기는 해서 목욕을 마친 마치다가 아픈 다리를 조심스럽게 움직여가며 허리를 짚고 식당으로 내려가자, 바비큐그릴에 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해 놓은 여관주인이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늘 너무 힘드셨죠?"
"네."

진짜로 너무 힘들었고 몸이 너무 아파서 아니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다가 뚱한 얼굴로 앉으면서 말하자, 여관주인은 웃겨죽겠단 얼굴을 하고도 애써 웃음을 참고 시원한 보리차부터 내밀었다. 

"고구마는 내일 캐도 됐는데, 매일 혼자 밭일하다 누가 같이 해 주니까 신나서요.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투정을 부릴 수도 없어서 마치다는 뚱한 얼굴로 물을 마시고 여관주인이 그릴 위로 올리는 고기를 바라봤다. 마치다가 온천에서 피로를 푸는 동안 서둘러 마을에 나가 정육점에서 제일 좋은 고기를 사 왔다더니 고기는 정말로 맛있었다. 여관주인과 류세이가 잘 굽기도 했고. 같이 구운 고구마와 단호박, 버섯도 맛있었고, 양배추를 채썰어서 내놓은 샐러드는 오늘따라 더 맛있었다. 

"이 양배추 오늘 제가 뽑은 건가요?"
"네."
"고구마도?"
"네. 마치다 상이 캐 주신 겁니다."
"맛있네요. 노동한 보람이 있어."

여관주인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또 웃음을 꾹 참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즘 이 여관주인은 마치다가 뭐라고 말만 하면 웃겨죽겠단 얼굴을 하고 있거나, 눈을 마주치고 있기 민망할 정도로 말랑말랑한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나 혼자 일했냐고 사장님도 드시라고 고기를 밀어주자 여관주인이 또 말랑말랑한 눈빛으로 바라봐서 마치다는 모르는 척 눈을 피하며 류세이에게도 앉아서 같이 먹자고 권했다. 류세이는 고기를 굽기만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자 여관주인은 좀 뚱한 얼굴이 됐지만 류세이는 신나서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고기를 넉넉히 사 왔는지 셋이 실컷 먹을 수 있었고,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했기 때문인지 어쩐지 마치다의 입도 가벼워져서 술도 안 마셨는데 나불나불 말도 잘 나왔다. 

"그럼 아몬이라는 분 빼고는 다 여관 관리나 서비스 담당인가 봐요?"
"네?"
"밭일은 아몬이란 분만 도와준다면서요. 류세이 상은 주방보조고."

정식으로 소개도 안 했는데도 이름을 부르는 건 사람보다 고양이와 강아지의 이름을 먼저 소개받았기 때문이었다. 류세이도 마치다가 이름을 불러도 개의치 않았고. 류세이는 부지런히 고기를 먹고 있었고, 여관주인이 보리차를 마시면서 애매한 얼굴을 했다. 

"야마토도 밭일을 돕기는 해요. 씨 뿌릴 때나 모종 심을 때는 돕는데 요즘은 못 돕고 있죠."
"아, 다른 바쁜 일이 있나 봐요."
"그런가 봅니다."

그런가 봅니다? 자기가 사장이잖아. 그래도 남의 여관인데 경영을 왜 그따위로 하느냐고는 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보리차만 마시고 있자, 다시 여관주인의 말이 들렸다.

"소라는 온천 관리를 맡고 있고요."
"아... 그래서 제가 오션뷰 온천을 골랐을 때 소라가 저를 좋아하... 아니지? 그건 고양이 소라잖아?"
"..."
"그냥 온천을 좋아한다고 한 게 아니고 내가 오션뷰 온천을 좋아해서 소라가 나를 좋아한다고 그랬...는데? 아니, 그건 고양이 소라고... 사람 소라가 온천 관리를 맡는 거랑 관계없잖아. 엥?"

피곤해서인지 말이 뇌를 안 거치고 바로 입 밖으로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뭐라고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는 기분. 마치다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여관주인과 류세이를 눈치채고 얼른 머리를 저어 정신을 좀 차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소라 상이 온천 관리라고요?"
"네."
"노보루 상은 무슨 일 하세요?"
"청소 담당인데, 왜요?"
"류세이 상이랑 야마토 상 말고 본 사람이 노보루 상밖에 없거든요."
"노보루를 봤습니까?"

마치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에 책을 읽다가 책을 잘못 골라서 우울한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에 기분 전환을 할 겸 숲으로 산책을 간 적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산책이었기 때문에 매일 하는 점심 직후 산책 때와 달리 개들도 따라오지 않았는데, 숲 속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자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나무 아래서 한 팔을 들고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가 싱긋 상냥하게 웃었다. 

- 안녕하세요, 마치다 상?

처음 보는 남자였기 때문에 마치다가 눈을 깜박이다가 조심스럽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남자는 다시 상냥하게 웃었다. 

- 오늘 바람이 좋죠?
- 네, 시원하고 상쾌하네요.

남자는 바람을 느끼고 있었던 건지 손을 살랑살랑 조금 흔들다가 팔을 내리며 웃었다. 

- 노보루에게 간식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 혹시 노보루 상?
- 네. 처음 뵙네요.
- 어떻게 저를 알아보셨어요?
- 지금 여관에 손님이 한 분뿐이니까. 

사실 노보루를 본 순간 여관주인이 했던 말 '아직 제 정ㄹ... 직원들을 못 보셔서 그러신데, 직접 보면 왜 그렇게 지었는지 아실 거예요. 진짜 자기랑 이미지가 똑같은 애들을 데려왔거든요'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알았다. 류세이와 야마토도 자기들이 데려온 강아지와 좀 닮은 느낌이었는데 인간 노보루는 정말로 고양이 노보루를 닮았다. 윤기가 흐르는 까맣고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고양이 노보루의 녹색 눈과 달리 인간 노보루는 까만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지만 눈빛 속에 담긴 상냥함과 다정함은 매우 닮아 있었다. 언제나 '냐앙'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우는 고양이 노보루처럼 인간 노보루도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했고. 그렇게 둘이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며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아직 소라는 못 보셨습니까?"
"네, 매일 온천을 이용하는데 온천 청소 시간과 이용 시간이 달라서 그런가 봐요."
"네. 소라를 보시면 놀라실 거예요. 정말 닮았거든요."

마치다는 여관주인을 처음 만난 날 이 사람이 자기를 소라로 착각했던 걸 떠올리고 대충 고개를 끄덕이다가 늘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정ㄹ은 뭐예요?"
"... 네?"
"자주 그러시잖아요. 제 정ㄹ... 직원들, 우리 정ㄹ... 우리 직원들, 이런 식으로."
"...제... 제가요?"
"네."

당황하는 걸 보면 물어보면 안 되는 건가? 평소라면 상대가 머뭇거리며 답하기 싫어하면 마치다도 바로 흥미를 접었겠지만 몸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정신도 몽롱한 상태라 여전히 혀가 통제가 안 되고 있었다. 잠이 와서 자꾸 눈이 감겼지만 먹성 좋은 류세이가 아직도 고기를 먹고 있었다. 마치다가 류세이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청했는데 먼저 일어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다는 자리를 못 뜨고 아무 말이나 하고 있었다.

마치다는 턱을 괸 채로 반쯤 졸면서 중얼거렸다. 

"정리. 정략, 정력, 정립... 아, 아니, 처음부터 다시다시."
"..."
"정락, 정략, 정럭, 정력, 정록, 정룍, 정룩, 정륙, 정륵, 정릭."

이것저것 다 붙여 봤지만 딱 이것다 싶은 건 없었다. 뭘까. 그냥 진짜 아무것도 아닌 말실수인가. 류세이는 언제까지 고기를 먹을까. 류세이도 배가 많이 고팠나. 너무 잠이 와서 눈을 뜨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오기로 ㅇ으로 넘어갔다. 

"정랑, 정량, 정렁, 정령, 정롱, 정룡, 아... 아니, 정령? 정령?"

여관주인의 눈이 동그래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결국 마치다는 식탁에 턱을 괸 채로 잠들어 버렸다. 





눈을 뜨자 낯선 방이었다. 숲 속에 온 듯한 청량한 향이 풍기는 건 마찬가지였고 가구 구성도 마치다가 묵고 있는 방과 같았지만 마치다의 짐이 보이지 않았고, 어딘가 확실히 낯선 느낌이었다. 자다가 누군가 방에 들어오려고 해서 공포에 질려서 잠에서 깬 게 한두 번이 아닌데도 낯선 방에서 눈을 떴는데도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치다가 묵고 있는 객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방이 어딘지 알 것 같았으니까. 

아니나다를까 마치다가 침대에서 내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자 로비 풍경이 보였다. 여관주인은 로비 오른쪽의 방을 자기 방으로 소개하면서 새벽에 일이 있으면 그쪽으로 와서 문을 두드리면 된다고 했었다. 식당에서 잠들어 버려서 방에 데려다주지 못하고 자기 방에 재운 모양이었다. 어차피 여관 주인이니까 여분의 열쇠가 있을 텐데 청소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손님 방에 불쑥불쑥 들어가기는 곤란해서 자기 방에 데려다눕힌 모양이지.

마치다에게 방을 빼앗긴 방 주인은 로비에 있는 소파에 긴 몸을 구겨넣고 불편하게 잠들어 있었다. 수시로 마치다를 어떻게 해 보기 위해서 마치다의 방에 몰래 들어오려고 하던 수많은 쓰레기들을 떠올리면서 소파에서 불쌍하게 잠들어 있는 남자를 보자 마음이 묘하게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깨워서 방에 들여보내야 하지 않나 싶었지만 어젯밤에 피곤함과 졸음에 취해서 추태를 부린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라서 남자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해진 마치다는 조용히 한숨을 쉬고 발치까지 미끄러진 이불을 들어서 조심스럽게 남자의 몸 위로 덮어 주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어제 무리해서 피곤했기 때문에 늦게 일어날 줄 알았는데 저녁을 먹자마자 잠들었기 때문인지 일찍 깬 모양이었다. 여기 와서는 계속 4시 반쯤 일어났으니까 몸이 익숙해진 것도 같았고. 마치다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대신 그대로 숲 속 온천탕으로 향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소라가 곧 온천 청소를 끝낼 테니까. 

그렇게 숲 속 온천탕으로 가자 역시 소라가 아직 청소 중인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푸른색 가디건을 걸친 남자가 온천 옆 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물 속에 손을 넣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작업복도 아니고 연한 색의 면바지를 입고 저렇게 앉아 있으면 바지가 젖고 더러워질 거라는 걱정이 돼서 마치다는 다가가면서 남자를 불렀다. 

"소라 상? 제가 너무 일찍 왔나 보..."

그리고 마치다는 똑똑히 봤다. 

물 속에 담그고 있는 소라의 손에서 물결이 퍼져 나가면서 수면에 떨어져 있던 나뭇잎이나 나뭇가지같은 것들이 전부 물에 녹아 버리듯이 사라져 버리고 물이 맑아지고 있었다.

어???

마치다가 더 제대로 보기 위해서 발걸음을 빠르게 하면서 소라의 손을 빤히 바라보자, 소라가 당황했는지 물 속에서 손을 팍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소라의 손에서 맑고 깨끗한, 어딘가 신성한 느낌마저 드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물줄기가 기포로 변해서 아침 안개 속으로 빠르게 녹아들었다. 

"물... 물이 왜..."
"냐아!"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있던 남자가 푸른 눈을 가진 흰고양이로 변해 버렸다. 




#노부마치    #등대여관노부마치    
2023.03.26 04:49
ㅇㅇ
모바일
센세왔다ㅠㅠㅠ
[Code: 6eaa]
2023.03.26 04:58
ㅇㅇ
모바일
내 센세 오셨어요ㅠㅠ
[Code: 3a29]
2023.03.26 07:04
ㅇㅇ
즈그 케이 잠드니까 노부는 로비 소파에서 자고 즈그 케이는 자기 방에서 자게한 노부 진짜 개벤츠 ㅠㅠㅠㅠ
[Code: a44e]
2023.03.26 07:09
ㅇㅇ
모바일
헐 눈앞에서 냥이로 변했어ㅋㅋㅋㅋㅋ 어떡해ㅠㅠㅠㅠㅠ
[Code: 82ef]
2023.03.26 07:09
ㅇㅇ
모바일
센세ㅠㅠㅠㅠ 억나더ㅠㅠㅠ
[Code: 82ef]
2023.03.26 07:36
ㅇㅇ
모바일
성실수인 내센세 사랑해
[Code: d596]
2023.03.26 07:44
ㅇㅇ
모바일
정령인거 다 들켰다 노부야 느그 케이 다 알게됐어 설명 준비하고 있어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15a]
2023.03.26 08:03
ㅇㅇ
모바일
센세 장미칼수인인가봐 여기서 끊기면 케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서 센세 올때까지 부케비 이제 암것도 못해요 센세
[Code: 7b72]
2023.03.26 08:11
ㅇㅇ
모바일
소라도 엄청 당황했나보다 어쩌냐 쌍방 당황 ㅠㅠ
[Code: 5b6a]
2023.03.26 08: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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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자기 겁탈 하려는 사람들만 보다가 소파 구겨져서 자고 있는 노부 봤으니까 이제 노부한테 반하지 않을까ㅋㅋㅋㅋ
[Code: 6c44]
2023.03.26 08:40
ㅇㅇ
모바일
소라가 고양이로 변하고 물뿜는 모습 봤다고 여기 이상하다고 나간다고 하지말고 노부랑 여기서 지내자ㅠㅠㅠ
[Code: 6c44]
2023.03.26 08:52
ㅇㅇ
매일 혼자 밭일하다가 누가 같이 해주니까 신났다니...노부도 너무 외로운 삶을 산 것 같아서 마음이 쓰여..놉맟 둘이 절대 떨어지지말고 행복하게 꽁냥거려
[Code: 50a8]
2023.03.26 09: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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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센세 어떻게 매일 오는데 매일 이렇게 최고지? 센세 천재야? 부케비는 센세가 억나더로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469]
2023.03.26 09: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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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들 귀엽게만 생각했는데 나 부케비 생각보다 정령들 능력이 엄청 신기하다 그와중에 류세이 은근 뻔뻔한거 왜 웃기지ㅋㅋㅋ 노부가 밥 안주냐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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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6 10: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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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세마리 개 세마리 앉아서 간식 기다리는거 존나 커여운데ㅋㅋ 정령 들킨걸로 좀 난리날 것 같아서 저런 풍경 한동안 못보게 되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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