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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6 22:53
93.
르날은 아직도 뎨고를 처음 만나던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음. 그 날은 일레르가 발작을 일으킨 날이었음. 평상시라면 저택에서도 대응을 했을텐데. 그럴 정도가 아닌 발작이었음. 같이 산책하던 어머니가 쓰러지자 르날은 멍한 상태였음. 병원에 갔다 온 칼뱅이 새빨개진 눈을 하고 르날을 향해 애써 웃어보이면서 말했음.

“에르베, 오늘 기사랑 잠깐 드라이브 갔다 올래? 멀리까지 갔다와도 돼. 너무 멀리 갔다오면 자고 와도 괜찮아.”

르날은 고개를 끄덕였음. 칼뱅이 고맙다고 거칠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음. 하지만 두 부자는 결코 일레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음. 말조차 꺼내면 무언가 금간 유리처럼 파삭하고 깨져버릴까봐.

94.
차 안은 조용했음. 기사조차도 말이 없었음. 르날은 멍하니 차창 밖으로 슉슉 넘어가는 풍경을 바라봤음. 얼마나 달렸을까? 점점 풍경은 건물이 낡고 낮아졌고 심지어 거리에는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더러웠음. 기사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보았음.

“도련님, 죄송합니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괜찮아, 어디 특별하게 갈데가 있는덴 아니니까.”

르날의 말에 기사가 한숨을 쉬며 차를 후진했음. 르날이 그냥 그렇게 풍경이 움직이는걸 봤음. 그때였음. 한 낡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음. 붉은색 벽돌로 된 건물로 보였는데 담쟁이 덩쿨이 잔뜩 외벽에 붙어 있어서 확신할 수 없었음. 그나마 이 거리에 있는 것 중에는 제일 높은 건물을 보며 르날이 말했음.

“나 저기 가보고 싶어.”
“네, 도련님.”

기사가 핸들을 돌려 차를 몰았음.

95.
“페루초 도서관?”
“공공 도서관인가 봅니다. 많이 낡았네요. 하기사 시에서 공공 도서관 지원금을 삭감한지 꽤 되었으니까요.”
“나 여기 들어가볼래.”
“도련님.”

기사가 약간 초조한 기색으로 말했음.

“여기, 주차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차를 두고 제가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럼 차 안에 있어. 나혼자만 갔다올게.”
“위험합니다.”
“괜찮아.”

르날이 가슴을 피고 당당하게 말했음.

“난 르나르 집안 사람이야. 내 몸 하나는 충분히 지킬 수 있어. 그리고 여기에 사람이 전혀 없는거 같은데? 사람이 아예 없으면 더 안전하지.”
“하지만…….”

기사는 여러가지 이유로 르날을 말렸지만 르날은 고집을 부렸음. 결국 체념한 기사가 르날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며 신신당부를 했음.

“도련님, 잊지 마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이 호루라기를 부세요. 이 에바, 무슨 일이 있어도 도련님을 구하러 가겠습니다.”
“걱정도 팔자네.”

96.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르날이 문을 열며 들어섰음. 확실히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지 않은지 안은 먼지 투성이였고 일하는 사람도 없는 듯 보였음. 심지어 전기도 나갔는지 안은 어두컴컴했음. 르날이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크게 냈음.

“아무도 없어요?”

없어요-없어요-없어요-하는 목소리가 안을 울렸음. 정말 아무도 없는거 같았음. 르날은 갑자기 신이 났음. 마치 인디아나 존스처럼 이 안을 자기가 탐험하는거 같았음. 르날은 문을 닫고 깔린 러그 위를 걸었음. 러그도 러그이거니와 위에 쌓인 먼지가 어찌나 두터운지 발걸음가 나지 않았음.

97.
“쟤, 바보인가?”

이 도서관의 유일한 이용자인 뎨고는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황급하게 몸을 숙였음. 처음에는 아버지인줄 알았거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목소리가 좀 어린거 같았단 말이야. 그래서 살금살금 숨어서 지켜봤는데 정말 어린애야. 자기랑 비슷한. 게다가 얼핏 봐도 부티가 좔좔 흐르는 어린애. 그런 애가 왜 여기에 왔지? 뎨고는 고개를 갸웃했음. 에이, 몰라. 여기저기 들쑤시다가 길 잃고 엉엉 울고 있겠지. 그때 나타나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유도해줘야겠다. 여긴 진짜 낡은 책 밖에 없으니까. 뎨고는 이내 신경을 끄고 자기가 아지트로 꾸민 열람실로 향했음. 유일하게 햇빛이 잘 들어오고 깨끗하게 청소한 자기만의 아지트에.

98.
르날은 이제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음. 르나르 저택은 넓었음. 아주 넓었음. 그래서 얕봤단말야, 여긴 별채 정도의 사이즈니까. 문제는 르나르 저택은 넓었지만 그만큼 고용인이 많았고, 청소도 깨끗이 되어 있고, 불도 들어오고,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는거였음. 이 도서관은 다 어두컴컴하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다 똑같아 보였음. 심지어 되돌아가고 싶어도 어디인지 몰라 되돌아갈 수 없었음. 호루라기를 불까도 생각했지만 에바가 들어오다가 되려 길을 잃을거 같았음. 길을 잃는건 나 뿐이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르날이 콧물을 훌쩍일때였음.

“너 진짜 바보구나?”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음.

99.
“나 바보 아냐.”
“바보가 아니면 왜 여기에 들어왔는데?”
“그냥 궁금해서 들어왔는데…….”
“그러니까 왜 여기가 궁금하냐구. 너 같이 부자들은 이거보다 더 좋은거 많이 볼거 아냐?”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넌 내가 부자인줄 어떻게 알았어?”
“바보. 보면 몰라? 네 옷이며 냄새며 다 부잣집 도련님이잖아.”
“나 냄새나?”
“음……. 냄새라기 보다는 향기지만. 어쨋거나 나 따라와. 나가는 길을 알려줄게. 그리고 두번다시 오지 마. 여긴 내 아지트야.”
“네 아지트?”

르날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음.

“멋지다! 그럼 여기가 너네 건물이야?”
“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너희 아빠꺼야?”
“그건 아니고.”
“대단하다! 나도 건물은 하나도 없어. 아버지가 좀 더 크면 주시겠다고 했거든.”
“……좋겠네. 그럼 빨리 따라와. 나가게 해줄테니까.”
“나 여기 더 보고 싶어.”

르날이 졸랐음.

“네가 여기 주인이라며. 그러면 안내 좀 해주면 안돼?”

100.
음. 뎨고가 어둠 속에서 고민했음. 저 불청객을 빨리 내보내고 싶은데. 그런데 또 뎨고도 어린 마음에 자기가 꾸민 아지트를 자랑하고 싶다는 것도 있었고, 사실 또래 아이와 이렇게 오래 말한 적이 없어서 재밌기도 했음. 망설이던 뎨고가 말했음.

“따라와.”

101.
르날은 조심스럽게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주인을 쫓아갔음.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르날의 발이 관리가 잘 안된 복도에 걸리거나 그랬지만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주인은 그래도 르날을 기다려주었음. 얼마나 걸었는지 체감이 되지 않았지만 저 멀리에서 빛이 보였음. 그리고 이제까지 어둠 속에서 움직이던 주인이 그 빛을 받으면서 서서 말했음.

“이리 와.”

102.
뭐지? 르날은 눈을 비볐음. 내가 헛걸 보나? 아니, 그럴리가 없는데.

103.
저게…… 사람이라고?

104.
믿을 수 없었음. 저렇게 예쁜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 본 르날이었음.

105.
햇빛을 받아서 까만 머리카락에 윤기가 흘렀음. 마치 빛으로 된 베일을 쓴 것처럼 얼굴에 빛이 쏟아졌음. 초콜릿 색 눈동자가 미소를 지어서 사르르 감겼음.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반짝거리는 하얀 이가 보이는 미소를 지었음.

106.
마치…… 천사 같았음.

107.
천사가 다시 말했음.

“이쪽이야.”
“뭐?”
“이쪽으로 오라고. 너 진짜 바보야?”
“나, 나 바보 아냐.”
“그럼 빨리 와.”

천사는 빛 속으로 사라졌고 르날은 헐레벌떡 뒤를 쫓았음.

108.
어느새 어둠에 적응한 눈이 환한 빛을 어색해했음. 르날이 양손으로 빛을 가리자 뎨고는 잠깐 빛에 르날이 적응하길 기다렸음. 이윽고 르날이 손을 내리자.

“짜잔.”

뎨고가 팔을 활짝 벌리면서 말했음.

“여기가 내 아지트야!”

109.
르날은 아직까지도 비밀로 하고 있지만, 사실 그 날 르날은 뎨고의 아지트의 첫 인상을 기억하지 못함.

110.
그날 르날이 기억하는건 오로지 뎨고의 얼굴이었음. 그 자신만만하고 환한 미소. 자랑스러워 하는 목소리. 그러면서도 약간 불안함에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하지만 그걸 숨기고 싶어하는 행동.

111.
그 모든게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서 르날은 다른 건 모조리 잊어버렸음.

112.
그리고 르날은 다짐했음. 아, 이거구나. 아버지가 말씀하신게 이거였구나. 이런 느낌이었구나.

113.
나는 이곳에서 나의 여왕님을 찾았다. 꼭꼭 숨겨두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여왕님을.

114.
“이상해?”

뎨고가 르날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작아드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음. 자신만만하게 팔을 펄쳐보일때는 언제고 어느새 팔을 움츠리고 꼼지락거리면서 르날의 눈치를 연신 살폈음. 그런 뎨고를 바라보며 르날이 활짝 웃었음.

“아니야.”

진짜로.

“최고야.”

아름다워.

“나, 여기 또 와도 돼?”

내 심장을 가져갈 이여.

“음…… 특별히 봐줄게.”
“고마워.”

115.
넌 내꺼야.


사우루루
르날뎨고
#뎨고는임신튀가하고싶어

*집착의 스위치가 올라간 날
2023.05.17 23: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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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 내센세 ㅠㅠㅠㅠㅠ 센세 사랑해 ㅠㅠㅠㅠㅠ
[Code: 92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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