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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5 00:13
29.
르날이 퇴근하자마자 향한 곳은 바로 부부 침실이었음. 그리고 침대 위에 불룩 튀어나와 있는 이불 산을 끌어안고 다정하게 말했음.

“많이 속상했어?”

이불 산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음. 르날이 이불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음.

“디에고, 말해줘. 말하지 않으면 난 몰라.”

계속 말이 없자 르날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음.

“안되겠다. 가서 일레인부터 혼내야겠어. 엄마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한다고?”

르날이 몸을 일으키자 이불 속에서 손이 쓱 나와 르날의 팔을 잡았음. 뎨고였음. 빼꼼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민 뎨고가 말했음.

“그러지 마.”
“하지만 네가 속상했잖아.”
“그렇게 많이는 아니었어.”

하지만 뎨고의 초콜릿색 눈동자에 잔뜩 물기가 서려 있었기에 르날은 얼굴을 찌푸렸음. 가장 친한 소꿉친구이자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영혼의 주인님의 이마에 르날은 제 이마를 가져다대며 길게 한숨을 쉬었음.

“그래도 속상했잖아. 일레인은 혼나야 해.”
“일레인 때문이 아냐. 그냥…… 옛날 생각 나서 그랬어.”

뎨고가 르날의 품에 파고들며 말했음.

“옛날에, 날 팔아넘기던 아버지 생각이 나서…….”

어떤 상처는 아주 오래되서도 낫는 법이 없었음. 뎨고에게는 2주 간의 일은 영원한 흉터였음. 비록 그 일로 르나르 집안에 들어가 르날과 친구로 자랐고, 선대 보스에게 귀여움을 받았으며, 결국 르날과 결혼까지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낳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뎨고에게 큰 상처라는건 변함이 없었음.

“그래도 우리 딸, 너랑 완전 똑같았어.”

뎨고가 애써 밝게 말했음.

“위르겐을 지키는게 마치 너 같더라. 기억나? 원로들이 싫어하는데도 그 앞에 서서 당당하게 너의 의사를 밝히면서 아버님 설득한거. 그때 말은 안했지만 너 정말 멋있었어.”
“그럼 그때 나한테 반한거야?”

르날이 키득거리면서 뎨고와 눈을 맞췄음. 뎨고가 시선을 피하자 쫓아가면서 계속 물었음.

“응? 그 때 반했냐니깐?”
“아 몰라. 굳이 물어봐야해?”
“궁금하니까 그렇지. 응? 여보, 자기야, 내 사랑?”
“그렇게 궁금해?”

뎨고가 싱긋 웃으면서 르날의 입을 양손으로 꾹 누르며 밀어냈음. 그러면서 속삭였음.

“그럼 일레인 좀 보고 와. 그 다음에 말해줄게.”
“이런, 르나르 부인.”

르날이 뎨고의 손목을 잡고 조심스럽게 떼어냈음. 그리고 일부러 목소리를 깔며 말했음.

“저 같이 유능한 해결사를 맨 입으로 이용하시려고요? 선금은 주셔야겠습니다요.”
“세상에, 전 아무것도 없는걸요.”
“없긴 뭐가 없나요. 이렇게 아름다운 입술이 있는데.”

르날이 뎨고에게 키스했음. 입술이 떨어지자 뎨고가 르날의 가슴을 아프지 않게 밀며 말했음.

“빨리 가. 이러다가 애 잠들겠어.”
“한번만, 응? 한번만. 아침에도 막내 때문에 못했잖아.”
“내가 못 참아서 안돼. 빨리 다녀와. 응?”

뎨고의 말에 결연하게 르날이 고개를 끄덕였음.

“빨리 올게.”

30.
르날이 일레인의 방을 똑똑 노크하고 들어갔음. 누가 부모자식 사이 아니랄까봐 일레인의 침대 위에는 마찬가지로 좀 작긴 하지만 이불 산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음. 르날이 다가가 침대에 앉으면서 물었음.

“우리 딸, 많이 속상했어?”

이불 속에서는 아무 말 없었음. 그러자 르날이 차갑게 말했음.

“일레인 허니 르나르. 보스가 물을때는 어떻게 답변하라고 했지?”
“똑바로 육하원칙에 따라서 답변해야해요…….”
“그래, 지금 나는 네 아버지가 아니라 보스로서 물어보는거야. 대답해.”
“많이 속상했어요…….”
“어째서?”
“위르겐을 못 구해주니까…….”
“위르겐이 그렇게 좋아?”

이불 안에서 일레인이 고개를 끄덕이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음. 르날이 한숨을 쉬곤 말했음.

“아빠가 우리 집으로 데려올까?”
“정말?”

일레인이 확 이불을 걷고 나왔음. 뎨고를 닮은 초콜릿 색 눈동자가 잔뜩 기쁨에 차 반짝였음. 일레인이 르날에게 꼭 안기며 말했음.

“아빠 최고! 아빠 짱! 아빠 사랑해!”
“그런데 그럴려면 아빠가 한 가지는 알아야 해.”
“응응, 뭔데?”

일레인이 르날을 올려다보면서 말했음. 르날은 처음에는 일레인의 외모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음. 자기랑 너무 똑같이 생겼으니까. 눈 빼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음. 자기를 판박은 얼굴에 눈만 딱 뎨고니까 일레인의 얼굴은 세상 어디에 내려다놔도 자기랑 뎨고랑 맺어졌다는 일종의 증표처럼 보였음. 게다가 일레인의 얼굴을 보고있자면 마치 뎨고가 언제나 자신의 품안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자신과 뎨고는 함께고 결코 뎨고를 놓아줄 수 없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켰음. 그 사실이 퍽 르날은 마음에 들었음. 일레인의 눈가를 어루만지며 르날이 말했음.

“일레인은 위르겐을 그냥 친구라고 생각해? 아니면 특별한 친구라고 생각해?”

31.
“친구도 다 달라?”

일레인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음.

“친구는 다 친구잖아.”
“음 일레인, 엄밀하게 말해서 친구도 다 달라.”

르날이 가볍게 일레인을 품에 안아들며 말했음.

“그냥 친구는 헤어져도 상관 없는 친구야.”
“헤어져도 상관 없는 친구?”
“그래. 지금은 친하게 지날 수 있지. 학교나 학원을 같이 다니거나, 아니면 같이 노는게 재밌을 수 있고…… 하지만 언젠가 학교가 달라지고, 같이 노는게 재미 없어지고 그렇게 되면 헤어질 수 있고 헤어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친구인거야.”
“그럼 특별한 친구는?”

일레인이 묻자 르날의 목소리가 은밀해졌음. 르날이 속삭였음.

“헤어지는 걸 생각만 해도 괴로운 친구야.”
“으음, 모르겠어.”

일레인이 제 아빠를 올려다보면서 말했음.

“헤어지는건 다 속상한거 아니야?”
“음, 그건 아니야.”

르날이 고개를 저었음.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일레인에게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음.

“엄마한테는 비밀 지켜줄 수 있어?”

32.
비밀은 아이에게 정말 매력적인 이야기였음. 일레인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음. 그러자 르날이 말을 이었음.

“사람은 언제나 이별을 해. 최근에 에드거가 퇴직하고 우리 저택을 떠났잖아.”
“응, 맞아. 농사 지으러 간댔어. 에드거 아저씨 사과 맛있어.”
“그 때 기분이 어땠어?”
“약간 섭섭하긴 했는데, 에드거 아저씨가 그게 더 좋다니까…… 그리고 우리 집에 있을때보다 에드거 아저씨는 더 자주 웃는거 같아. 사진 보면 그래. 그래서 좋아.”
“그럼 아나이스는?”

아나이스는 일레인이 아주아주아주아주 아끼는 토끼인형이었음. 하지만 지금은 쌍둥이를 거쳐 막내의 아기침대에 들어가 있었음. 이상하게도 아기들이 그 토끼인형을 옆에 두고 자는걸 좋아했기 때문이었음. 일레인은 아나이스를 양보하기 싫어했지만 결국 언니/누나이자 차기 보스로서 아끼는걸 나누는걸 배워야한다는 뎨고의 강력한 의사에 어쩔 수 없이 인형을 양보해야 했음. 아나이스의 말이 나오자 일레인의 눈이 그렁그렁해졌음.

“속상해. 여기가-일레인은 제 가슴을 짚었음-찢어지는거 같아.”
“지금도?”
“응, 지금도 많이 속상해. 슬퍼. 찾아올 수 있으면 다시 찾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 걔들은 너무 인형을 함부로 대해.”
“만약 아나이스가 동생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갔어도 그랬을까? 너보다 더 관리도 잘하고 아나이스도 예쁘게 꾸며주고 아나이스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한테로 말야.”
“아빠.”

일레인이 단호하게 말했음.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야. 세상 그 누구도 나보다 아나이스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 아나이스는 누가 뭐래도 내 꺼야.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사실이야.”
“아나이스가 떠나고 싶어해도? 다른 사람 곁에 있는게 행복하다고 해도?”
“그럴리 없어.”

일레인이 도리질 했음.

“그건 아나이스가 잘못 안 거야. 그러면 오히려 더 옆에 붙어 있어야지. 내가 아나이스한테 ‘진짜 행복’에 대해서 알려줄거니까.”
“그렇구나.”

르날이 고개를 끄덕였음. 그리고 다시 물었음.

“일레인, 그럼 다시 생각해보자. 위르겐은 어느 쪽이야? 아나이스야, 아니면 에드거 아저씨야?”

33.
일레인은 곰곰히 생각에 잠겼음. 생각을 마친 일레인이 아빠를 보면서 말했음.

“아나이스.”
“그래?”
“응, 위르겐이 에드거 아저씨처럼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찢어져. 위르겐이 계속 내 곁에만 있으면 좋겠어. 나랑만 같이 놀면 좋겠어. 나랑만 같이 지냈으면 좋겠어. 아나이스처럼 내가 ‘진짜 행복’을 알려주고 싶어, 아빠.”
“그렇구나.”

르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레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음.

“그럼 지금 당장은 못 구해주겠다.”

34.
“왜???”

일레인이 아빠한테 흔들면서-물론 르날은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지만-물었음.

“아빠, 왜? 왜? 아빠, 왜?”
“일레인, 잘 들으렴.”

르날이 단호하게 말했음.

“사람을 붙잡는데 가장 효과적인게 뭔지 아니?”
“잘해주는거. 그런데 맨날 잘해주는건 아니고, 나쁘게도 하다가 잘해줘야해.”
“옳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단다.”

일레인의 눈을 내려다보면서 르날이 부드럽게 그녀의 눈가를 쓸었음. 자신이 사랑해마지 않는 그 초콜릿 색 눈을.

“그 사람이 힘들때…… 아니, 단순하게 힘들때가 아니라. 끔찍한 순간에 구해주는거야.”
“끔찍한 순간?”
“그래.”

르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야. 그래서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지. 어쩔때는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일수도 있지만 어쩔때는 감정일 때도 있고 어쩔때는 의식적으로 지워버리는 기억도 있지. 하지만 그 어떤 방법을 써도 잊어버릴 수 없는게 하나 있어. 바로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순간 내려온 한순간의 빛, 도움, 그런 것들은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단다.”
“아빠가 어떻게 그걸 알아?”

일레인의 물음에 르날이 환하게 웃었음. 아, 내 딸아. 어느새 네가 이렇게 컸구나. 르날도 어렸을때 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이렇게 물었음. 아버지는 어떻게 그런걸 다 아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답변해주셨더랬지.

35.
“그건 말이야, 아가.”

36.
르날이 일레인의 머리카락을 귀 뒤에 넘겨주면서 귓가에 속삭였음.

37.
“아빠가 그렇게 엄마와 결혼했기 때문이란다.”









*애한테 좋은거 가르친다....

#뎨고는임신튀가하고싶어
사우루루
르날뎨고
2023.04.15 00:42
ㅇㅇ
모바일
센세 넘 오랜만이야!!!! 와줘서 코맙
[Code: 0844]
2023.04.17 02:23
ㅇㅇ
모바일
미친 센세 와줘서 고마워 진짜 ㅠㅠㅠㅠㅠ 오랜만에 본편 다시 복습하고왔는데 마침 외전 너무 달다.. 사랑해 진짜
[Code: 40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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