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https://hygall.com/519789814




4.
해변에서의 한바탕 공놀이가 끝나고 일찍이 해산을 명받은 덕분에 미라클 미션 멤버들 전부 하드덱으로 향한 참이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살짝 느슨해진 멤버들은 맥주병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 속에서 혼자 소다컵을 들고 선 밥은 집요한 피닉스와 루스터의 추궁에 시달리고 있었다. 프리츠가 애 잡겠다면서 적당히 하라고 했지만 이미 기분이 업 된 그들은 들은 체도 않았다. 


"말해봐. 밥. 그래서 어떤 스타일 좋아해?"

너무 마음에 든다며 피닉스가 자기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시작된 질문이었다. 밥은 이미 잔뜩 곤란했지만 이런 질문을 받은 게 한 두번은 아니었기에 그저 웃으며 괜찮다, 생각 없다를 연발했지만 이 둘에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말해주기 전까지는 도저히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한숨을 내쉰 로버트는 입을 열었다.


"나는....그냥 다정한 사람이 좋아."

"아, 진짜. 너 이럴래? 그게 다야?"

"그러게. 롭. 그건 좀 너무 전형적인데."

"뭐, 뭐가 더 있어야 해?"


당황해서 안경을 만지작 거리는 밥을 보고 루스터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피닉스도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로버트. 너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

"저, 저기 루스터. 내 덩치가 이만한데 귀엽다니......"

"이걸 진짜 내 동생 삼을 수도 없고."

"헤이 루스터."


또 귀신같이 그 말을 들었는지 멀찍이서 당구를 치던 프리츠가 손가락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시늉을 했다. 루스터는 대충 프리츠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고서는 밥의 머리통을 잡아 먹을듯 입을 벌리는 시늉을 했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헤일로는 그래서 잡아 먹을 수 있겠냐면서 더 크게 벌려야 한다고 루스터를 부추겼다. 치대오는 루스터 때문에 소다컵을 거의 떨어트릴뻔한 밥이 제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아, 정말. 루스터. 하지 말래도. 쏟았잖아."


기어코 소다를 엎지른 탓에 밥이 입을 삐쭉거리며 루스터의 마수에서 빠져나와 휴지를 찾았다. 두리번거리는 걸 본 코요테가 가져다주겠다며 바로 향한 사이, 그보다 먼저 냅킨을 밥의 손에 쥐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어, 고마ㅇ....."

"얼른 닦아. 다 젖겠다."

"행맨."



훈련 전 대화를 나눈 이후로 따로 말을 걸지 않았던 행맨이었다. 로버트는 밀려오는 어색함에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이고는 대충 손에 잡힌 냅킨으로 젖은 곳을 닦아나가기 시작했다. 프리츠나 루스터 혹은 피닉스가 자신을 꺼내가주기를 바랐지만 셋 다 어느 샌가 비어퐁 테이블로 옮겨간 상태였다. 하필 타이밍 좋게 예일이 던진 공이 반대 편에 선 하버드의 컵에 정확하게 안착하는 걸 보고 다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눈으로 흘끔대며 그 모습을 살피던 밥은 도움을 구하길 포기하고 대충 닦은 휴지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정신없네."

"응. 그러게."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재미 없나봐."

"아,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설마 베이비, 나 찾았어?"


곧바로 생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물어오는 말에 밥은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이제 좀 제가 알던 행맨 같았다.


"찾긴. 나 WSO야. 상황 파악이랑 주변 읽는 건 일도 아니라고."

"아, 섭섭하게. 베이비. 이럴 땐 그냥 찾았다고 해주면 안 돼?"

"넌 참 이상한데서 떼를 쓰더라. 나보고 베이비라더니 너야말로 진짜 애 같아."



코요테가 이미 행맨이 냅킨을 준걸 봤는지 눈이 마주치자 더 필요하냐고 물었지만 밥은 살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마저도 비어퐁 테이블로 합류하자 행맨과 밥쪽엔 약간의 공간이 생겼다. 아무래도 하버드와 예일이 비어퐁을 두고 어마어마한 내기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싫어?"

"어?"

"내가 말거는 것도, 다가오는 것도 피하잖아."



로버트는 제이크의 말에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이내 시선이 닿자마자 어딘가에 붙들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제가 술을 마신 상태였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한 밥은 애꿎은 빈 소다컵만 만지작거렸다. 잠시 맞았던 눈을 빠르게 밥이 돌리자 김이 빠진 행맨은 그대로 한숨을 내쉬었다. 밥이 컵을 만지작거리던 것을 흘끔 보고 마실 것 좀 가지고 오겠다며 바로 몸을 돌렸다. 로버트는 그런 제이크의 등 뒤에 외쳤다.









"나 너 안 싫어해."

"뭐?"

"가끔 정말 짜증난다 생각하지만 싫어한 적은 없어. 짜증나는 정도가 좀. 뭐랄까. 과해서 그렇지. 한 이정도?"



손을 들어 크게 원을 그린 밥이 알겠냐는 듯 눈짓하자 제이크는 한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은 그는 얼굴에서 손을 떼어 내면서 밥에게 말했다.











"베이비. 너 정말 귀엽고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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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놀리는 거냐고 하려던 밥은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제이크의 얼굴이 너무나 따사로운 빛을 띠고 있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행맨은 하드덱에서 대화가 있고난 후부터 조금 달랐다. 꼬박꼬박 베이비라고 부르며 장난을 쳐오는 것은 여전했지만 훈련이 끝나고 함께 남아 복기를 도와준다거나, 생각지 못한 포인트에서 자신을 챙겨주거나 하는 부분이 있었다. 로버트는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제 손에 무언가를 쥐어준 행맨의 태도에 의문점을 느끼는 중이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손에 쥐어진 걸 살피니 오렌지 사탕이었다.


“행맨, 나 사탕 안 먹는-”

“먹어. 예민하다고 밥부터 굶는 건 누가 가르친 습관인지 모르겠네. 그거라도 지금 입에 넣고 얼른 가서 뭐라도 먹으라고 주는 거야.”




실제로 밥은 최종 미션이 일주일이나 앞당겨져 정말로 며칠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작은 소리에도 굉장히 예민해져 남들과 대화하는 일조차 줄어들었고 미약한 불면증마저 있는 판국에 식사를 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제가 신경 쓸 일이 많으면 밥부터 굶는다는 걸 아는 프리츠가 아침에 바나나를 쥐어주고 갔지만 그건 프리츠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행맨은 정말 의외였다. 


"......."

로버트는 이런 류의 관심을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정의내리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었다. 미션 일은 불과 일주일 뒤였고 큰 탈이 없다면 저와 피닉스가 미션에 나가게 될 것이었다. 기적이 2번이나 필요하다는 '미라클 미션'. 때문에 밥은 많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오면 그때 생각해볼 일이었다. 그래도 손에 쥐어진 사탕의 무게감이 사라지지는 않았기에 밥은 조용히 껍질을 까서 입안에 사탕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달달한 맛이 입안을 맴돌기 시작할 때쯤, 이 사탕이 조금 더 오래 남아있기를 바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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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루스터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었다. 이전 미션에서도 번번이 루스터와 부딪혔거나 경쟁해야하는 구도에 있었기에 한껏 예민해진 제이크였다. 오죽하면 둘의 반대되는 성향 때문에 해군에 행맨과 루스터를 적당히 반반 섞은 파일럿이 있었다면 불세출의 영웅이 됐을 거란 말도 있었다. 말로는 루스터를 몇 번이고 놀려대곤 했지만 그것도 다 그의 실력을 알기 때문에 한 소리였다. 루스터는 너무 신중해 가끔 결정이 느릴 뿐 좋은 실력에 기반을 둔 특유의 리더쉽이 있었다.

그의 리더쉽은 말 그대로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강력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피아노를 치며 금세 주변에 사람을 끌어 모으는 루스터는 제가 보기에도 대단했으니까. 행맨은 씁쓸해진 마음에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피아노 주위로 모여든 인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발견한 게 그였다. 로버트 플로이드. 다른 인물들은 이전에 다른 곳에서 안면을 튼 사이였는데 로버트만 초면이었다. 스텔스 파일럿 아니냐는 제 농담에 정확히는 무기 관제사야 라고 말해오던 동글동글한 얼굴.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어쩜 저렇게 생긴 거랑 한치도 다르지 않은 인물이 있을 수 있는지. 정말 전형적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은 제이크였다. 










그 후로도 제이크가 밥을 마주한 것은 번번이 루스터의 근처였다. 루스터가 밥을 마치 동생처럼 여기며 데리고 다닌 탓도 있었지만 밥도 루스터 곁을 은근하게 따라다녔다. 제가 스텔스 파일럿이라고 놀리긴 했지만 정말 티도 안 나게 주변을 맴도는 탓에, 제이크는 밥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면 저도 모르게 루스터 주변부터 훑는 게 버릇이 됐다. 몇 번 이런 일의 반복이 있자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로버트 플로이드는 브래들리 브래드쇼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고. 밥의 성적 지향성을 아는 것도 아니었고 대놓고 루스터를 좋아한다는 티를 낸 것도 아니었지만 제이크는 그냥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뭐랄까, 파일럿의 감 같은 거였다.

어김없이 루스터를 따라서 체력단련실에 들어온 로버트를 뒤따라 나섰던 것은 그래서였다. 제 감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말이다.








*













로버트 플로이드는 남자를 좋아한다. 
로버트 플로이드는 브래들리 브래드쇼에게 관심이 있다. 


로버트는 아니라고 했지만 제이크는 그날의 대화에서 제 두 가지 가정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침착하게 답해오긴 했지만 그건 다른 사람한테나 통할 대답이었지 자신은 아니었다. 사관학교 출신이랬으니 저처럼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 익숙한 걸까. 여기 오기 직전에 대위로 진급 했다고 하던데. 진짜 베이비 그 자체네. 장난삼아 베이비 온 보드라고 하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맞는 말을 한 것 아닌가 싶었다.





“.......하, 뭐하냐. 제이크 세러신.”


미션에 100퍼센트 몰두해도 모자를 판에 이런 것에 연연하는 스스로 한심했지만 제이크는 어째서인지 루스터가 좋다는 저 막내 대위에게서 관심을 뗄 수 없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 황당하기도 했다. 플로이드는 정말이지 평소라면 제이크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타입이었다. 애초에 남자였고, 그를 떠나서도 제 타입이 아니었고, 일을 잘하긴 하지만 밥 자체가 말 그대로 눈에 띠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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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귀엽긴 하지.”



앞자리에 앉아 매번 뭘 그렇게 열심히 쓰는지 매버릭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노트위로 떨어지던 얼굴이 눈앞에 스쳤다. 제 파트너라고 꼬박꼬박 피닉스를 챙기던 모습도 함께였다. 분명 자려고 누운 것이었는데 또 다시 생각이 새어나갔다. 중증도 이런 중증이 없었다. 제이크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마저 멈출 수 없는 생각에 깊게 한 숨을 내쉬었다. 더 큰 문제는 제 하루에 가득 찬 로버트 플로이드가 그다지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











버드 스트라이크.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관련해서 훈련도 많이 받았지만 현실로 맞는 건 또 다른 기분이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안전하게 탈출한 덕에 간단한 검사와 함께 수액을 처방받았다. 로버트는 제가 항상 목숨을 하늘 위에 놓고 산다는 것을 알았지만 새삼 실감했다. 괜히 울적해지는 기분에 집으로 전화를 거려 평소에 잘 부리지 않는 어리광을 부렸다. 무슨 일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기민하게 아들의 상태를 눈치 챈 어머니는 오늘 꼭 자기 전에 기도드리고 자라면서 로버트를 다독였다. 독실한 집에서 태어난 것과 다르게 7살 이후로 신이라곤 믿어본 적 없는 밥이었지만 대답은 착실하게 했다. 한편으론 미션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머니 말씀처럼 기도라도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필요할 때만 찾는 신인데 과연 그런 제 기도도 들어주시려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쯤, 프리츠가 찾아왔다.

프리츠는 찾아오자마자 밥에게 무언가를 잡아 던졌다. 놀라서 냉큼 잡긴 했지만 뭔가 해서 멀뚱히 쳐다봤다. 그 사이 침대 옆에 의자를 끌어 앉은 프리츠는 밥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나 멀쩡해. 오늘 쉬고 바로 퇴원이야. 근데 이게 뭐야?”



무언가의 얼굴 같기도 하고 문양 같기도 한 나무로 된 팬던트였다. 약간 기괴한 것도 같아 빤히 쳐다보고 있자 프리츠가 말했다.



“예전 내 동기가 준 건데 그게 무운을 바라는 부두교 토템 같은 거래. 목걸이로 차고 다녀. 내 부적이야.”

“빌리, 부두교 같은 거 믿어?”

“믿는 건 아니지만 효과는 좋아.”

“그게 뭐야. 믿어야 효과가 있는 거지.”

“시끄럽고 그냥 차고 다녀. 너 때문에 이미 오늘 십년 치 놀랄 거 다 놀랐으니까.”


더 대꾸하려던 밥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이렇게 해도 프리츠가 얼마나 놀랐을지는 제가 더 잘 알았다. 마냥 같이 일하게 되어서 좋았는데 역으로 생각해보니 안 좋은 점도 많았다. 



“또 쓰잘데기 없는 생각하지 말고. 빨리 자.”

“아, 진짜. 나 애 아냐. 빌리. 너도 얼른 가서 쉬어.”

“어쭈 이게 대위 달더니 이제 막 기어오르네.”




프리츠는 장난스럽게 밥의 여기저기를 쥐어박는 시늉을 하고 그걸 또 막는다고 발버둥 쳤다. 실수로 벽을 쿵 치자 뜨억한 로버트가 멈췄다. 어디라도 다친 건가 싶어 왜 그러냐고 묻자 밥이 조용히 말했다.


“아 옆방에 피닉스 있어서.”


프리츠가 손가락으로 침대 옆 벽을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인 로버트였다. 


“헤이 피닉스.”

-헤이. 프리츠.

“몸은 좀 어때.”

-좋지.

“다행이네. 내일 봐.”

-OK.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대화하는 둘에 밥은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굴렸다. 뭐 어떠냐는 식으로 프리츠가 어깨를 으쓱했다.


“옆방인데 그 정도 얘기는 그냥 가서 물어봐도 되지 않아?”

-오지마라.

“들었지?”



둘 다 똑같다면서 밥은 고개를 내젓고 프리츠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프리츠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들리는 노크소리에 밥은 뭔가 두고 간 건가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네 하는 대답소리가 차마 입에서 나오기도 전에 문을 열고 들어선 건 행맨이었다.



“어......”


찾아올 것 같다고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벌어지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이 나오지 않아 로버트는 손끝으로 애꿎은 이불을 당겼다.




“몸은 괜찮아?”

“어, 응. 괜찮아.”


딱히 밥의 의사를 묻지 않고 프리츠가 앉았던 의자에 몸을 걸터앉은 행맨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조금 더 지나면 어색함을 참지 못할 것 같아서 먼저 입을 열려던 밥은 제 손등을 덮어오는 손에 고개를 들었다. 미약하게 떨리는 손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가 왜 여기 왔는지 말해주고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행맨. 너-”

“나 너 좋아해.”



간접 등 하나만 켜놓고 있었던지라 빛이 미약한 공간에서 그 말을 하는 행맨의 얼굴이 어떤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밥은 자신감 있게 고백을 내뱉은 사람치고 그의 얼굴이 겁에 질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와서 그런 건지, 자칫하면 절 잃을 뻔 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어느 쪽이든 믿기지 않는 건 제이크 ‘행맨’ 세러신이 밥 플로이드 때문에 겁에 질렸다는 사실이었다.






“제이크.”

“지금 받아달라거나, 대답해달라거나 그런 거 아냐. 그냥 오늘 일 겪고 나니까 눈앞이 새하얘지더라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러고 나니까 너한테 그 말이 하고 싶었어.”

“......”

“너도 알잖아. 나, 나만 생각하고 가끔 정말 좆같이 구는 사람인 거.”

“.......”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혹시 마음에 안 들어도 그런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

“.......”

“하, 시발. 진짜. 너무 좆같은 하루였어.”




제이크는 여기까지 말하고 밥의 손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사이 로버트는 뭐라고 답해야할지 말을 고르느라 바빴다. 잘 안 보여서 답답하긴 하지만 불이 꺼져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면 새빨갛게 달아오른 제 얼굴을 행맨이 그대로 직관했어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귀 끝까지 달아오른 체온이 느껴져서 괜히 귓바퀴를 만지려 제이크에게 잡힌 손을 잡아 빼려는데 꽉 잡아챈 손이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덮은 걸로 모자라 그대로 깍지를 껴버린 제이크였다. 



“끌어안고 싶은데 못해서 그런 거니까 이건 봐줘.”



밥은 아직 받아준다 혹은 나도 네가 좋다 등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맡겨둔 것처럼 당당하게 구는 태도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그 웃음을 눈치 챘는지 눈에 올렸던 손을 내린 제이크가 샐쭉하게 밥을 바라봤다.



“왜 웃어.”

“아니, 그냥. 너 지금 너무 너다워서.”

“참나.”

“너 생각보다 되게 귀엽다. 행맨.”

“......베이비는 정말 솔직해서 탈이야.”




제 칭찬에 머쓱해졌는지 괜히 딴청을 부리는 행맨에 밥은 꽉 잡힌 손의 엄지로 행맨의 손등을 살살 쓸었다. 그 움직임에 밥의 손가락으로 시선을 내렸던 행맨과 밥의 시선이 맞아들었다. 밥은 어두운 가운데 행맨의 녹안이 올 곧게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제가 섣불리 정의하지 않으려던 그 감정이,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정형화되는 것 같았다. 왜인지 모르게 맞잡은 손이 약간 간질거리는 것도 같았다.





“생각은 미션 끝나면 할게.”

“.......그래.”

“고마워. 말해줘서.”



행맨은 고맙다는 말에 밥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던 것 같았지만 하지는 않았다. 그 뒤로 딱히 이어지는 대화가 없어 침묵이 둘을 맴도는 사이, 침대 옆 벽에서 누가 봐도 벽을 쳐서 낸 것 같은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로버트는 그제야 아차했다는 얼굴로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뭐야. 베이비. 왜?”

“그게.....제이크-”


- 어이. 백맨. 화끈한 고백 잘 들었다. 그래서, 내 WSO를 넘본다고?



벽을 넘어 오는 피닉스의 목소리에 행맨이 이게 뭐냐는 표정으로 밥을 쳐다봤고 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 벽이 정말 얇더라.”










-
쓰다가 뭔가 탑건 영화 타임라인에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대충 다크스타의 힘으로 처리함....이해해죠....


사진은 전부 햎줍




행맨밥 파워풀먼
#기억잃고업보쌓는행맨
2023.01.18 12:44
ㅇㅇ
밥도 밥인데.. 행맨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빨리 기억이 돌아오던가 밥이랑 대화를 해야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513]
2023.01.18 13:13
ㅇㅇ
"베이비. 너 정말 귀엽고 이상하다.“
또 놀리는 거냐고 하려던 밥은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제이크의 얼굴이 너무나 따사로운 빛을 띠고 있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 진짜 먼저 꼬셔놓고 이러기 있냐고.............
[Code: 9872]
2023.01.18 14:04
ㅇㅇ
좋아하는 것도 먼저.. 고백도 먼저했잖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결혼까지 해놓고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 지금 밥한테 이혼서류가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이럴수가 있냐 ㅠㅠㅠㅠㅠㅠㅠ
[Code: a80a]
2023.01.18 16:22
ㅇㅇ
모바일
제이크 자기가 쫓아다녀놓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떡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20b]
2023.12.13 17:34
ㅇㅇ
모바일
아존나좋아 ㅠ
[Code: 47b5]
2023.12.15 18:48
ㅇㅇ
모바일
좋다고 고백해놓고 ㅜㅜ
[Code: 2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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