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상실이라고 했다. 처음 듣자마자 프리츠가 한 생각은 ‘정말 행맨답네.’였다. 가뜩이나 인생에 드라마 있는 걸 좋아하더니 아주 그 꿈을 여러 번 이루기까지 한다며 잔뜩 비꼬기까지 한 참이었다. 소식을 전해온 당사자는 프리츠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내었으나 정작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답답해서 또 속이 끓는 프리츠였다.

 

 

“그래서. 걔가 널 기억 못 한다고?”

 

“.......응.”

 

 

마음 같아서는 욕설을 한바탕 쏟아내고 싶은 프리츠였지만 이미 울적해 보이는 얼굴에 말을 아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친분으로 인해 왕래가 잦았던지라 로버트는 프리츠에게 막냇동생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이래서 내가 저 새끼 만나지 말라고 한 건데.’

 

 

행맨이 밥을 노릴 때부터 악착같이 반대해온 프리츠는 이 참에 확 헤어져버리게 만들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심히 밥을 품에 안았다. 움츠리고 있던 어깨가 프리츠쪽으로 훅 무너지며 안겨 들어왔다. 그리 작은 체형도 아닌데 이상하게 밥은 항상 작게만 느껴졌다. 너무 어릴 때부터 봐서 그런가.

 

큰 소리도 못 내고 얼굴을 묻은 채 눈물만 뚝뚝 흘리는 밥의 등을 토닥이면서 프리츠는 제 핸드폰에 코요테 번호가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

 

 

 

 

밥은 그저 기억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했지만 프리츠는 안 봐도 행맨이 어떻게 굴었을지 뻔히 보였다. 행맨이 잃어버린 기억은 최근 5년 정도. 딱 미라클 미션을 행하기 전이었다. 그때의 행맨이 어땠더라. 프리츠는 제 아무리 본인이 프리츠지만 가장 같이 비행하기 싫어하는 게 비질란테 출신들이었다. ‘Fight Ugly.’ 모토부터가 글러먹은 곳이었다. 그 중에서 최고봉인 행맨? 굳이 말 안 해줘도 알만했다. 실제로 처음 미션에서 만나고 한 생각이 ‘아, 나보다 더한 새끼.’ 였다.

 

 

관사로 찾아와서 진지한 얼굴로 애원할 때는 언제고, 이젠 딱 그 애를 만나기 전까지만 기억하는 상태로 돌아갔다니. 프리츠는 그래도 환자인데 만나자마자 주먹을 날려도 되는지 잠시 고민했다.

 

 

 

 

“프리츠?”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행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프리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굴렸다.

 

 

“넌 병문안 온 사람한테 인사가 그따위냐?”

 

“요즘 군병원은 계급장만 달면 다 통과시켜 주나? 아무나 다 들어오네.”

 

신경질 적으로 몸에 감싸진 이불을 풀썩거린 행맨은 프리츠가 들어오든 말든 몸을 움직여 눕는 자세를 취했다. 꺼지라는 말을 에둘러서 내비치는 태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발치에 선 프리츠는 누군가 가져다 둔 듯한 액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애석하게도 너랑 저 미션 수행할 때 탑건에 같이 있었던지라, 난 아무나가 아니거든.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지. 그리고 나도 용건 있는 거 아니었으면 오지도 않았어.”

 

 

적대감으로 가득 찬 눈빛에 프리츠는 입 안쪽 살을 짓씹었다. 아는 얼굴인 저를 대하는 태도도 이따윈데 아예 모르는 사람일 밥에게 어떻게 했을지 뻔했다. 게다가 연인이었다고 했다면.

 

 

‘퍽이나 믿었겠다. 이 새끼가.’

 

 

이상한 호모새끼라고 욕하면서 당장 꺼지라고 하지 않았다면 다행이었다.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 훤히 보였으니 말이다. 프리츠는 아까 본 환하게 웃는 행맨의 사진 역시 아마도 밥이 찍어준 것일 거라 장담했다. 당사자는 기억도 못하는데 혹여나 기억이 돌아오는데 도움이라도 될까 몰래 두고 갔겠지. 그게 아니었으면 행맨의 병실에 저 액자가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디까지 기억을 못 한다고?”

 

“너도 와서 이 얘기를 한다고? 젠장. 대체 무슨 짓을 하면서 산거야! 5년 동안.”

 

“당연히 와야지. 살다보니 이런 날이 다 있잖아. 천하의 행맨이 베이비를 다 잊었다는데.”

 

“.......베이비? 누가 베이비야.”

 

 

행맨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눕혔던 몸을 반쯤 일으켰다.

 

 

 

“설마 너도 그 사람 말하는 거냐? 플로이드라던가. 웬 미친놈이 내 애인이라고 하던데.”

 

 

낯선 사람인양 나오는 이름에 이번엔 프리츠의 눈이 금세 날카로워졌다.

 

 

“......너 설마 그 말을 믿는 건 아니지? 내가 그 범생이 남자새끼랑.....하, 프리츠 감 많이 죽었네.”

 

 

「믿기지 않겠지만, 나 정말 진심이야. 네가 가족처럼 그 애를 아낀다는 거 잘 알아. 그래서 말 하는 거야. 우리 응원해달라고.」

 

 

“내가 기억을 잃었지 멍청이가 된 건 아니거든.”

 

 

「이런 부탁해서 미안해. 하지만 베이비가 이 일로 가족을 다 등지게 된다면 남은 건 너 하나잖아. 프리츠.」

 

 

 

프리츠는 거기까지 듣고 아무런 말없이 행맨을 가만히 바라봤다. 오버랩 되던 과거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얼굴이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너 진짜 괜찮다고?”

 

“보시다시피? 너무 괜찮은 게 탈이라면 탈이지.”

 

“......재밌네.”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설마 이게 용건?”

 

 

사람 열 올리는 데는 아주 최고인 미소를 지어보이는 행맨이었다. 프리츠는 마주보고 활짝 웃어줬다. 그리고 때마침,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밥이었다. 아마 코요테한테 자신이 행맨을 만나러 간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프리츠. 병문안 갔다는 얘긴 들었어.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와. 나 괜찮아.]

 

 

 

 

괜찮기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어제 펑펑 울더니 열이 잔뜩 올라 해열제까지 먹이고 재워놓고 온 참이었다. 누구는 어떤 새끼 때문에 이젠 돌봐줄 가족조차 없는데 정작 그렇게 만든 새끼는 이딴 소리나 늘어놓고 있다니. 프리츠는 과거에 제가 사람을 봐도 한참 잘못 봤다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우겨넣었다.

 

 

 

 

“난 원래 두 번은 안 물어 보는데, 넌 분명히 후회할 테니까 한 번만 더 물을게. 베이비 없이 너 정말 괜찮겠어?”

 

 

 

행맨은 프리츠 입에서 또 튀어나오는 베이비란 애칭에 정말 진절머리 난다는 얼굴을 했다. 자신이 눈을 뜬 이후로 다들 제게 찾아대는 ‘베이비’탓에 결혼해서 애라도 낳은 줄 알았다. 근데 정작 베이비의 정체는 저와 같은 군인 신분이었던 남자. 그때부터 행맨의 머릿속은 복잡함 그 자체였다. 도대체 그 베이비가 뭐길래. 제가 진짜 저 남자한테 미쳐서 요란스러운 연애라도 했단 말인가? 애칭을 베이비라고 불러가면서? 천하의 행맨 사전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 괜찮으면 네가 어쩔거냐, 베이비고 나발이고 나랑 하나도 상관없으니까 짜증나게 하지 말고 제발 좀 꺼져!’ 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프리츠는 혼란스러워 하는 행맨의 눈빛을 읽었는지 코웃음을 쳤다.

 

 

 

“왜. 기억을 잃은 너라도 그건 아닌 것 같냐?”

 

“.......”

 

“그래. 그거라도 느껴서 다행이네.”

 

“......시비 걸지 말고 꺼져. 프리츠.”

 

행맨은 갑자기 지끈거려오는 머리에 다급히 이마를 짚었다. 사고 이후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몰려오는 증상이었다.

 

 

“내가 그랬잖아. 다 좋은데, 혹여나 필요 없어지면 제자리에 곱게 돌려놓으라고. 그거 하나 부탁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

 

 

“애초에 필요한 적 없었나보지.”

 

「그럴 일 없어. 걘 이제 내 삶 그 자체야.」

 

 

프리츠는 행맨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아득히 저 기억 너머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누군가의 목소리를 전부 묻어버렸다. 더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미련 없이 기대 있던 침대에서 손을 뗀 프리츠는 병실 문 앞에 서서 나가려다 말고 행맨을 향해 말했다.

 

 

 

“이거 하나만 확실하게 해두자.”

 

“뭐?”

 

“기억을 잃은 사람이 모두 너처럼 굴지는 않아. 대부분 최소한의 노력은 하지. 예를 들면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라도 한다던가. 넌 근데 그 최소한의 것도 하지 않은 거야. 그런 너를 내가 어떻게 믿겠어?”

 

“.......”

 

 

“내 신뢰를 무너트린 값은 결코 값싸지 않아. 행맨. 넌 분명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 거야.”

 

 

 

미련 없이 마지막 말을 끝낸 프리츠는 병실을 나섰다. 행맨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털어내며 프리츠의 말 역시도 털어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생각을 덜어내려 하면 할수록 마음 한 구석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같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뭐 이런 걸로 기억 잃었는데 지랄 맞아서 자기 손으로 업보스택 착실하게 쌓고 성공적인 사랑을 망한 사랑으로 급선회하는...행맨...보고싶다...
아 프리츠랑 밥은 성애적 사랑 아님 걍 ㄹㅇ 유사가족 같은거라고 보면 됨....

*행맨 병실에 있던 사진은 이거


Screenshot_20220903-233313_Instagram.jpg


행맨밥 파워풀먼 
#기억잃고업보쌓는행맨

2023.01.13 22:52
ㅇㅇ
모바일
센세.. 이대로 가시는거 아니죠…? 어나더가 무조건 있어야만합니다..아니면 나 맨밥은 죽소..
[Code: 8f4b]
2023.01.16 03:29
ㅇㅇ
모바일
프리츠 오진다
[Code: 78a1]
2023.01.31 00:48
ㅇㅇ
모바일
아 찌통스멜,, 센서 정주행 갑니다
[Code: 2093]
2023.06.08 07:20
ㅇㅇ
모바일
센세오셨으니 정주행 다시 해야지 진짜 처음부터 행맨업보 무슨일;;
[Code: 9e68]
2023.12.12 13:35
ㅇㅇ
센세 오셨으니 정주행.. 다시봐도 행맨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39d]
2023.12.13 17:11
ㅇㅇ
모바일
센세 나이걸왜지금봤을까.. 너무재밌아요ㅠㅠ
[Code: 47b5]
2023.12.15 17:32
ㅇㅇ
모바일
센세 ㅜㅜ 대작 감사합니다.
[Code: 0cf4]
2024.01.31 12:42
ㅇㅇ
모바일
센세... 정주행 박아요
[Code: 78f1]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성인글은 제외된 검색 결과입니다.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