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잃고업보쌓는행맨

 


27.


병원으로 이송된 제이크는 단순 심신 불안정이라는 판정을 들었다. 기억을 잃은 데다가 회복도 되지 않은 판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 같다는 말이었다. 밥은 절대 안정이 필수라는 말에 목구멍이 말라붙는 경험을 했다. 생각해보니 기억을 잃고 달라진 제이크를 받아들이느라 그가 몸이 성치 않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냐던 제이크의 말이 로버트를 훑고 지났다. 정말이지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



"로버트?"



잠시 물을 뜨러 나간 사이 정신이 들었는지 제이크가 문 가에 선 로버트를 불렀다. 착잡해진 얼굴을 금세 감추어 넣은 로버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눈썹을 까닥였다.


"일어났어? 어디 다른데 아픈 건 아니지?"

"......내가 쓰러졌어?"

"어. 나랑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으로 데리고 온 참이야. 기억 안나?"

"......너랑 이야기 중이었다고? 무슨 얘기?"


묘한 얼굴을 하는 제이크에 밥은 기시감을 느끼고 입을 꾹 다물었다. 로버트는 제이크의 이 얼굴을 기억했다. 그가 기억을 잃고 병원에서 깨어나던 그 날.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대하듯 하던 그날과 동일했다.


"......"

설마하는 마음이 들어 로버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체념했다. 기억이 돌아왔다면 저를 부르는 호칭부터 달랐을 것이었다.


"어디까지 기억나? 행맨."

".......너희 집 주소를 B 대위한테 얻어낸 것까진 기억 나는데."



일주일 전. 행맨이 집으로 들어오기 전의 시점이었다. 밥은 그 이후로 몇까지 행맨에게 더 물어 확인을 한 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억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근의 일들이 잘려나간 것이 분명했다. 밥은 심경이 복잡해지는 것을 애써 다스렸다.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의 당사자 앞에서 이를 드러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좀 쉬는 게 좋겠다며 행맨을 다독인 후 밥은 의료진을 호출했다.




*





착잡한 밥의 마음과 다르게 의사는 담담했다. 기억을 잃은 환자들이 흔히 겪는 일이라 했다. 앞으로도 종종 발생할 수 있으니, 심신의 안정을 유지하라면서 말이다. 기억을 찾으려고 애쓰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도 덤으로 받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고새 연락이 온 세러신 가에서는 병원비는 이쪽에서 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병원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두라고 했다. 이번엔 저를 탓하지 않는 걸로 봐서 제이크가 집을 벗어나면서 한 소리 한 모양이었다. 


졸지에 병원에 머무르게 된 행맨은 당장이라도 집으로 가자고 할 줄 알았으나 의외로 덤덤했다. 혼자 있어도 되겠냐고 물었지만, 갑자기 또 제가 아프거나 쓰러지면 어쩔 거냐며 우기는 통에 로버트도 곁에 남았다. 뻔한 수를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또 쓰러지기라도 할지 걱정이 된 건 사실이어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밥은 그렇게 병원에서 지낸지 삼일 만에, 살면서 행맨으로부터 가장 많은 질문을 들었다.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 같은 단순한 질문부터 학창 시절, 해사 시절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물어대는 탓에 밥은 백기를 들었다. 



"난 네가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인 줄 몰랐어."


그 말을 들은 행맨의 표정이 대번에 불퉁해진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밥. 넌 그러면 나한테 궁금한 게 이만큼도 없어?"

"음......그런가."


저도 5년 동안 행맨에게 이렇게나 많은 질문을 했었나 기억을 더듬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제이크가 조용히 내뱉은 말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인데, 궁금한 게 많은 건 당연하잖아."

"......"



당황해서 큰 눈만 꿈뻑거리던 밥은 물을 떠오겠다는 핑계로 일어섰다. 행맨은 그런 밥의 손목을 낚아채고 눈을 맞춰왔다.


"넌 아냐?"

".......뭐가?"

"넌 아니냐고. 나에 대해 뭐 궁금한 거 없어?"



당당하게 낚아챈 것 치고는 혹시나 제말을 부정할까 긴장한 얼굴이 보였다. 말이 궁금하 게 있냐는 물음이지 대놓고 너도 나 좋아하는 거 맞지 않냐고 묻는 거나 다름 없었다. 당황해서 잠시 말을 잃었던 밥은 살풋 웃으며 제이크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제이크. 너랑 함께 한 세월이 벌써 5년이야. 어쩌면 내가 너보다 널 잘 알 수도 있을 걸."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곧장 표정이 스르륵 풀렸다. 항상 여유가 가득하던 제 연인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들에 밥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제가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아서 뚝딱거리던 초창기의 행맨의 모습과 비슷한 것도 같았다. 그때의 제이크도 제 뒤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감추려고 노력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그의 말대로 제이크는 기억만 없다 뿐이지 자신이 알던 제이크와 동일한 것 같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





어느덧 병원에서 지낸지도 일주일이 다 되어갔다. 한동안 잠잠하던 행맨은 드디어 병원 생활이 좀이 쑤신 건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리를 넌지시 내뱉었다. 밥은 그에 사실 네가 나와 결혼을 상태고, 그동안 우리집에서 지내고 있었다가 내가 꺼낸 이혼 소식에 네가 쓰러진 거라는 말을 들려줘야할지 고민했다. 도무지 머리를 굴려봐도 좋은 결말이 나오지 않아 그저 모르는 척 입을 닫고 있었다. 


유독 성에 차지 않는 메뉴가 나온 저녁 식사에 둘은 간만에 의견이 일치했다. 내일은 간만에 속세의 맛을 먹어줘야한다면서 의지를 불태우는 행맨에게 밥 역시도 혈중 햄버거 농도가 떨어진다는 실없는 농담을 건넸다.



"넌 그 햄버거 좋아하는 버릇 좀 고쳐."

"햄버거가 뭐 어때서?"

"기름지고 신선하지 못한 야채에, 자극적인 소스까지. 딱 봐도 건강에 안 좋게 생겼어."

"......너, 생각보다 햄버거가 얼마나 균형잡힌-"

"오, 베이비. 진짜 인정하자. 어쨋든 그게 네 입맛을 망치고 있는 건 맞잖아."



제가 베이비 소리에 약한 건 어찌 알았는지 병원에서 지내는 내내 예전처럼 저를 베이비로 불러재끼는 행맨이었다. 짜증난다고 한 소리 더할까말까 하다가 입을 꾹 다 물고 안경테를 들어올린 밥이었다. 그걸 항복 신호로 읽었는지 행맨은 제가 이겼다며 주먹을 쥐고 작게 쾌재를 불렀다. 아주 얄밉기가 그지 없었다.

'좋아하면 져주고 싶고 그렇다는데, 저런 거 보면 쟤는 진짜 날 좋아하는게 맞나?' 밥은 소소한 의문을 품으며 고개를 내젓고 손에 쥔 핸드폰 화면을 두들겨 깨웠다. 연락이 꽤 여러통 와 있었다. 대체로 탑건 멤버들이었다. 루스터와 피닉스에게서는 부재중 전화도 남겨져 있었다. 차례로 답을 돌리고 아직도 행맨은 재수 없냐는 프리츠의 문자에도 답장을 남겼다.

여전하다는 문자를 넘기자마자 [안타깝네] 하는 답장이 돌아왔다. 텍스트로는 덤덤하게 들렸지만 프리츠는 지난 저와의 대화 이후 무언가를 감지한듯 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종종 자주 문자를 남겨 제게 안부를 묻곤 했다. 아마 빌리는 자신이 행맨에게 이혼 서류를 건넨 것도 예상했을 것이었다. 준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니 불안해져서 계속 확인하려는 거겠지.

밥은 그게 참 빌리답다고 생각했다. 이러다가 진짜 이혼 서류가 수리라도 되어 우리 둘이 헤어지게 되면 빌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진짜 헤어지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던 그 발언처럼 프리츠도 본인의 행동을 후회하게 되려나. 탑건 멤버들과도 서먹해지게 될지도 몰랐다. 저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사이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으니 말이다. 상상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프리츠는 정말 제가 행맨과 이혼하지 않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반응을 보였구나."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행맨이 무슨 일이냐며 고개를 돌렸다. 밥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대충 밀린 연락을 정리한 듯 싶어 핸드폰을 닫는데 행맨 역시도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지 표정이 심각했다. 



"넌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별 건 아니고. 매버릭."

"매버릭? 무슨 일 생겼대?"

"언제쯤 복귀 가능하냐고 물어보시네. 테스터 파일럿 자리가 다시 공석이 났나봐."

"아......."






밥은 이 모든 일의 발단이나 다름 없는 그 자리의 얘기에 혀가 굳었다. 행맨이 다친 이후로 일종의 금기어 같은 거였다.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것만 같아서 밥은 바짓단을 잘게 말아쥐었다. 그런 밥의 굳음을 눈치 챈 행맨이 왜 그런가 싶어 머리를 굴리다 도달한 결말에 자신의 무심함을 탓했다. 자신이야 기억이 없어 단순히 업무 얘기일 수 있으나 밥에게는 트라우마의 트리거가 될 수도 있었다. 




"미안. 네 앞에서 얘기할 건 아니었는데."

"......아니야. 괜찮아."

"혹시나해서 하는 얘긴데 난 저 자리 돌아갈 생각 없어. 내가 고민한 건 군 복귀 때문이지 저건 아냐."

".......정말?"




밥은 당장이라도 전처럼 승락을 할 줄 알았던 행맨의 입에서 다른 얘기가 나오자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런 밥에게 제이크는 도리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중령도 달았대고, 테스트 파일럿도 해봤대고. 뭐, 해볼만치 다 해봤다는 얘기 아니겠어? 내 성격 상 앉아서 서류작업 하기 싫고 조종간 더 오래 잡으려고 갔을 것 같긴 한데, 그걸로 이렇게 다치고 그 얘기만 나와도 네가 이렇게 벌벌 떠는데. 내가 저길 돌아가서 뭐 하겠어."

"......."

"나도 이참에 제대나 할까봐. 어떻게 생각해. 베이비?"




미소와 함께 저를 바라보는 행맨의 말에 밥은 저도 모르게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
짧지만 새해 전에 오려면 이게 최선이었다...흑흑ㅠㅠ
새해 복 많이 받아 맨밥들아!!!! 해피뉴이어
2023.12.31 08:06
ㅇㅇ
모바일
와 내 센세오심!
[Code: e9de]
2023.12.31 08:19
ㅇㅇ
모바일
행맨 기억이 돌아오는게 아니라 아예 최근 기억 일주일치가 또 날라갔구나ㅠㅠㅠㅠ 근데 오히려 더 둥글둥글하고 밥이 처음으로 기억을 잃은 제이크도 제이크맞네 하고 느끼는거 같아서 좋고ㅠㅠ 나쁜 방식이 아니라 좀 더 좋은 방법으로 사실 너랑 나랑 결혼한 사이야 라고 말해줄수 있으면 좋겠다아
[Code: e9de]
2023.12.31 08:21
ㅇㅇ
모바일
"좋아하는 사람인데, 궁금한 게 많은 건 당연하잖아."

너 뭐냐? 다시 썸타냐 엉?ㅋㅋㅋㅋ 행맨이 이랬다고 밥이 더 부끄러워서 자리 피하려는거 귀야워죽겠넼ㅋㅋㅋㅋㅋ 어찌됐든 두사람 한 병실에 붙어서 얘기도 많이 하고 가까워져서 좋다 이제 행맨은 다시 이 사건의 발단이 된 군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대얘기까지 하는거보면 뭔가를 결심한거같기도 하고
[Code: e9de]
2023.12.31 08:12
ㅇㅇ
모바일
🌟센세 강림🌟 센세가 나의 새해 복이야ㅠ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오
[Code: ad17]
2023.12.31 08:15
ㅇㅇ
모바일
행맨밥 분위기가 조금 동글동글해져서 다행이긴한데
행맨이 진짜 중간기억?을 잃은건지 이혼하기 싫어서 기억 잃은척하는건지 궁금해 어쨌거나 2024년에는 밥이 절대 행복해야만한다ㅠㅠㅠㅠㅠㅠㅠㅠㅜㅠㅠㅠ
[Code: ad17]
2023.12.31 08:49
ㅇㅇ
모바일
일주일치 기억이 또 다시 ㅠㅠㅠㅠ 밥 어쩌냐 당사자는 어쩌고 ㅠㅠㅠ
[Code: 73af]
2023.12.31 09:05
ㅇㅇ
모바일
내 센세가 돌아왔어 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c8bd]
2023.12.31 09:34
ㅇㅇ
모바일
센세오셨다!!!!!!!!!!
[Code: 0118]
2023.12.31 10:19
ㅇㅇ
모바일
센세!!!!
[Code: bbd2]
2023.12.31 11:21
ㅇㅇ
모바일
센세..?
[Code: f59b]
2023.12.31 11:24
ㅇㅇ
모바일
햎 들어오자마자 센세글을 보다니!!!!!!!!!!!
[Code: ec38]
2023.12.31 14:48
ㅇㅇ
모바일
센세 새해 복 많이받아!!! 기억 또 잃어버려서 어떻게 될지 ㅠㅠㅠㅠㅠ
[Code: 394f]
2023.12.31 19:01
ㅇㅇ
모바일
센세!!!!!!!!!!!!!!!!!!!!!!!!!!!!!!진짜 최고의 연말선물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0ec]
2023.12.31 21:30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1c2]
2023.12.31 23:32
ㅇㅇ
모바일
센세도 해피뉴이어💚💙
[Code: 8eac]
2024.01.01 00:39
ㅇㅇ
이제 잘 풀려가려나 싶으면서도 기억을 또 잃은게 불안하기도 하고ㅠㅠㅠㅠㅠㅠㅠ 일부러 그러는건가ㅠㅠㅠㅠㅠ 센세가 와주시다니 너무 행복하다ㅠㅠㅠㅠㅠㅠ 센세도 새해 복 많이 받아
[Code: 37d5]
2024.01.01 01:40
ㅇㅇ
모바일
둘이 헤어지지마ㅜ밥아 좀더 꽉잡아봐
[Code: 481a]
2024.01.01 04:05
ㅇㅇ
모바일
센세왔다ㅠㅠㅠㅠㅠ
[Code: c418]
2024.01.01 04:06
ㅇㅇ
모바일
행맹 기억 없는거맞아? 왜이렇게 불안하지 폭풍전야의 고요함같아
[Code: c418]
2024.01.23 09:11
ㅇㅇ
모바일
센세 해피뉴이어
[Code: 996b]
2024.01.31 22:37
ㅇㅇ
모바일
센세 새해 복 많이 받아! 설 잘 쉬어!!💚💙
[Code: e5f6]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성인글은 제외된 검색 결과입니다.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