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기억잃고업보쌓는행맨





17.


밥이 전역하게 된 계기는 유쾌하지 못했다. 

행맨과 밥이 결혼하게 되면서 당연하게도 군내에 한바탕 소문이 돌았다. 결혼식을 거창하게 연 것도 아니었고 모든 것이 비공개에 가까웠고 바뀐 거라곤 서류상으로 이루어진 몇 가지 변경뿐이었다. 근데도 어디서부터 퍼져나갔는지 여전히 플로이드의 성을 유지하고 있는 밥이 지나갈 때면 미세스 세러신 아니냐면서 비아냥대는 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제 사생활이 까발려져 돌아다니는 게 좋지 않았던 밥이었지만 그다지 신날 일이 없는 군에서 이 정도 잡음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무시했다. 

소령으로 진급한 행맨은 빠르게 다음 진급을 밟고 싶다며 온갖 임무에 나가느라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알지 못한 채였다.


그러다 행맨의 귀에 들어가데 된 계기는 프리츠가 밥을 만나러 오고 나서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나가는 밥에게 야유와 함께 세러신 부인 납셨다면서 놀리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밥 혼자 들었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문제는 프리츠가 그 복도 끝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프리츠는 방금 제가 무슨 소리를 들었냐는 얼굴로 반쯤 선글라스를 내렸다. 그리고 킬킬대던 무리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삐딱하게 고개를 꺾었다.


“헤이 밥. 쟤네가 지금 뭐라고 한 거냐.”


밥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그제야 아차하는 얼굴을 했다. 프리츠가 기다린다고 해서 바깥에 있을 줄 알았지 건물 안에 있을 줄은 몰랐다. 큰일 났다는 생각에 뒤를 흘끔 돌아봤는데 눈치 없는 무리들은 여전히 킬킬거리며 그 자리에 선 채였다. 그냥 무시하라는 말과 함께 프리츠의 팔을 잡는데 프리츠는 밥의 손길이 닿기도 전에 팔을 올려 막았다. 손대지 말라는 제스쳐였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밥은 눈을 질끈 감았다. 

프리츠는 선글라스를 곱게 벗어 포켓에 걸고는 무리로 향했다. 프리츠가 서자 모여 있던 세 명의 시선이 자연스레 계급장으로 향했다. 프리츠 역시 상대의 계급장을 확인한 뒤였다. 대위 둘에 중위 하나. 밥과 다른 비행대대에 속한 자들이었다. 하긴, 밥과 같은 비행대대면 제이크 세러신이 얼마나 지랄 같은 사람인지 소문으로 들었을 테니 저렇게 굴 리가 없었다. 잠시 상관인줄 알고 굳었던 셋은 프리츠의 계급이 대위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대충 눈인사를 건네는 형태로 바꼈다. 물론 프리츠는 그에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방금 잘못 들었나?”



그 중 대위 둘은 그 와중에 아발론이라고 적힌 프리츠의 이름표를 봤는지 잠시 후 곧장 표정이 굳었다. 프리츠의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들어본 모양이었다. 프리츠는 한쪽 눈썹만 치켜든 채로 말해보라는 듯 대답을 종용했다. 그러나 나머지 둘과 달리 제일 사려야할 중위 하나가 여전히 빳빳함을 고수했다. 덕분에 프리츠의 시선이 그의 가슴팍 이름에 닿았다. ‘칼튼.’ 프리츠는 어쩐지 익숙한 이름에 얼굴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내 아래 기수에 칼튼가 막내아들이 있다더니. 그게 너냐?”

“.......”

“아니지. 혼외자라 막내로는 안 치나?”



사교계에 미국 전역에 체인점을 가지고 유통업계를 주름잡기로 유명한 칼튼 회장이 혼외자를 뒀다는 소문은 유구했다. 소문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다가 혼외자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칼튼가의 숨겨진 이면을 폭로하겠다며 나타나면서 떠올랐는데, 단독 인터뷰를 딴다만다 하다가 그 아들을 칼튼가에서 거두고 보상금으로 얼마를 지불하겠다는 말과 함께 다시 가라앉았다. 프리츠는 그때 특종을 놓쳤다며 분하다고 울부짖던 제 누나 엔젤의 포효를 기억했다. 그 아들내미를 군대로 밀어 넣었다더니 의외로 자질이 있어 칼튼 회장이 흡족해한다는 얘기도 들었던 것 같았다.


‘아, 믿는 구석이 있으시겠다?’


먼저 도발하긴 했지만, 프리츠는 계급이 깡패인 군대에서도 대위인 자신에게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듯이 살기를 숨기지 않는 모습을 보며 턱을 쓸었다. 이런 타입들은 뻔했다. 밥보다 기수는 높고 진급은 늦어 괜한 자격지심에 덤비는 타입들. 밥이 세러신과 결혼한 게 아니라 다른 이유였어도 꼬투리잡고 늘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프리츠는 제가 혹시나 무슨 사고라도 칠까 전전긍긍하며 바라보고 있는 밥을 쳐다봤다. 

하늘 위에선 냉철하고 단호하기 짝이 없는 주제에 땅에만 닿으면 동글동글하고 분란을 싫어해 이리저리 도망만 다니니 타겟이 되기에 이보다 더 쉬울 수 없었다. 보나마나 이번이 처음이 아닐 것이었다. 프리츠는 칼튼 중위를 피해 옆에 선 나머지 대위 둘의 이름 역시 눈여겨 봐뒀다. 평소라면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이름들이었건만 단숨에 외워버린 프리츠였다. 예일과 하버드는 종종 이런식의 건수를 놓치지 않는 프리츠를 향해 제발 성격 좀 죽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건 멀찍이서 보고 있던 밥도 마찬가지였는지 분위기가 험해질 것 같자 곧바로 달려와 제 팔뚝을 잡아 끌었다. 프리츠는 성격 같아서는 한 마디 더 날리고 싶었는데 밥이 제발 그냥 넘어가자는 얼굴로 말을 하는 바람에 돌아섰다.











밥은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프리츠에게 잔소리를 날렸다. 그냥 무시하면 될 걸 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는 것이었다. 프리츠는 제가 언제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래봐야 의미 없을 걸 알아 그냥 그러고 싶었다 는 말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역시 온갖 이유나 그런 거 아니라는 말보다 이게 임팩트가 강했는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은 밥은 우뚝 멈춰섰다. 프리츠는 먼저 걸어가며 등 뒤에 선 밥에게 말했다.


"너 빨리 안 오면 행맨한테 다 얘기한다."

"......."

"걔는 나보다 더 할텐데 그거야 말로 재밌겠다. 아 루스터랑 피닉스한테도 말해볼까나-"



그제야 쿵쿵거리며 발을 구르며 다가온 밥이 프리츠를 밀치고 앞장서서 걸었다. 짜증나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텐데 진짜로 제가 말할까봐 아무런 말도 못하는 게 웃겼다. '저거 진짜 귀여워서 어쩌지.' 뒷통수만봐도 나 짜증났음이라고 쓰인 것 같은 밥을 바라보며 프리츠는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





밥이 프리츠의 비위를 맞추며 숨긴 것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행맨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칼튼이 속한 비행대대와 스크리밍 이글스가 함께 지상 훈련을 받던 도중 시비가 걸려 시작된 대거리가 징계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큰 징계거리는 아니어서 쉬쉬하고 넘어갈 수 있었으나 이게 행맨의 귀에 든 것은 밥에게 처분이 과분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찌됐건 계급이 있어 칼튼이 명령불복종에 하극상으로 취급되어 칼튼만 처벌 받았어야 했으나 밥도 같이 징계를 받았다.

행맨은 상황을 듣자마자 어이가 없어 따지려 들었으나 징계를 내린 대령이 대놓고 말은 안 해도 호모포빅함을 드러낸 사람이라 밥이 말렸다. 네가 말해도 그럴 사람이라며 굳이 긁을 필요 없다면서 말이다. 행맨은 밥의 말도 이해했지만 그래도 속이 상했다.


"너 이런 적 또 있지? 저 새끼 하는 꼬라지 보니까 한 두 번이 아닐 것 같은데."

"제이크. 원래 이런 데야. 우리 모르고 저지른 거 아니잖아."

"......뭐? 너 진짜 나한테 말 한 거 더 있구나."


일그러지는 행맨의 얼굴에 밥은 한숨을 내쉬고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괴롭힘이라고 하기엔 뭐하고 그냥 사람 속 긁는 정도의 불링이니 네가 신경 쓸 것 없다면서 말이다.


"베이비. 이게 어떻게 별 게 아냐. 너 대위야. 장교라고. 어디가서 무시받을 그런 위치 아니잖아."

"알아. 근데 어쩌겠어. 사병들도 아니잖아. 우리 처음부터 이럴 거 예상했잖아. 난 상관 없어. 그러니까 너도 걱정하지 마. 저러다 사그라 들겠지."

".......하, 그래서 언제부터 그랬는데?"

"그게 중요해?"



행맨이 그럼 안 중요하냐고 따지려는데 밥이 베시시 웃으면서 행맨의 목에 매달려왔다. 내일 모레면 또 미션 나가서 못 볼텐데 이런 걸로 힘 낭비하지 말자면서 말이다. 행맨은 이렇게 넘어갈 거 아니라고 말하려 했지만 제 셔츠 안 쪽으로 들어오는 손에 결국 항복했다.



"어디서 이런 못 된 버릇만 배워왔어. 누가 이런 걸로 말 돌리래."

"......누가 가르쳐줬더라........흐음-"

".......진짜 베이비. 내가 너 때문에 제 명에 못 살 거야."






*




그리고 행맨은 긴급 호출에 달려가면서 그때 밥의 말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미션을 나간 사이 항모에 탔던 밥이 사고가 났다며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훈련을 나갔던 밥이 지난 번 문제가 있었던 무리와 부딪혀 또 시비에 얽혔고 항모 내에서 싸움으로 번졌다. 그때와 다르게 더 문제가 커진 것은 성추행이 얽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건을 전해 듣던 제이크는 그 자리에서 듣자마자 눈이 넘어갈 뻔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보인 밥의 얼굴에 정말로 참지 못하고 그대로 상대에게 달려들 뻔 했다.


성추행에 일방적으로 장정 서넛에게 얻어맞았다는데 그런 사람을 같은 방에서 얼굴 보게 둔 것부터가 맘에 들지 않은 행맨이었다. 다만 장소가 사건을 처리하는 대령의 사무실이었기 때문에 행맨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무슨 얘기를 한 건지 부러진 안경테를 대충 테이프로 감은 채로 쓰고 입가가 다 터지고 오른쪽 볼 근처에 커다란 멍과 생채기를 단 밥은 왼손에 붕대까지 감은 채 한껏 움츠리고 있는 상태였다. 주먹이 터질듯이 세게 쥔 행맨은 어금니에 힘을 준채로 감정을 다스리려 애썼다.



"왔나. 세러신 소령."

"......예."

"길게 말할 것도 없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보는 눈이 많아서 아예 덮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묻고 가는 걸로 하지."



행맨은 대령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그 자리에서 하극상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것을 참느라 눈에 핏발이 섰다. 다행히 일말의 이성이 남아 특유의 유들유들한 말투로 가려낸 행맨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데 왜 그래야하는 지 모르겠다면서 말을 끊었다. 대령은 행맨의 대답을 듣자마자 혀부터 찼다. 


“쯧. 나라는 못 지킬망정 사내놈들끼리 연애질이나 하고 있으니 기강이 해이해지지. 저러고도 해군이라고.”

“sir.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발끈해서 튀어나가려는 행맨을 일어난 밥이 오른손으로 꾹 붙들었다. 행맨은 잡힌 제 어깨를 확인하고 일어난 밥을 보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밥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입만 열지 않았을 뿐이지 전해져왔다. 밥은 흥분한 행맨을 뒤로하고 대령의 앞에 서서 말씀하신대로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령님 그래도 이 사건은 플로이드 대위가-”

“아닙니다. 그러면 그렇게 된 걸로 알고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대령님. 모쪼록 너그럽게 이해 부탁드립니다.”



칼튼 무리 쪽은 쳐다도 보지 않은 밥이 대령에게 고개를 꾸벅이자 대령이 이만 나가보라며 턱짓을 했다. 밥은 뒤돌아 여전히 기가 찬 얼굴을 한 행맨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시죠. 세러신 소령님.”

“........”


행맨은 밥의 채근에 일어섰지만 표정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 해사 반지가 끼워진 오른 손을 꾹꾹 누르며 화를 억누르려 노력했다. 사무실을 나가면서도 끝끝내 뒤돌아서 가해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은 행맨이었다. 








밥은 나오자마자 빠르게 걸어서 건물을 벗어나려 했다. 그 뒤를 쫓던 행맨은 밥이 제게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빠르게 걷는 걸 보고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밥은 행맨의 부름에도 뒤를 한 번 돌지 않았다. 마침내 건물을 벗어나고 주차장 쪽으로 몸을 틀었을 때, 행맨이 밥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데 그 전에 먼저 품에 안겨오는 체온이 있었다.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려는데 제 가슴팍에 이마를 가져다 댄 밥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행맨은 그제야 미세하게 떨려오는 제 배우자의 몸을 눈치 챘다. 꼿꼿하게 앉아있어 몰랐는데 그 안에서 긴장한 상태로 오래 있었던 모양이었다. 온몸을 가득 채우던 분노의 자리에 아릿하게 통증이 번져나갔다.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을까. 행맨은 몸을 떼어내 얼굴을 확인하려던 것을 멈추고 그대로 밥을 끌어안았다. 뒤통수를 감싸 안고 품으로 끌어당기자 힘없이 스르륵 딸려오는 몸이 평소보다 체온이 높았다.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긴장하자 곧장 열이 오른 모양이었다.




“베이비......미안해.”

“........”

“이제 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집에 갈래. 사람들 보는 거 싫어.”

“그래.......하, 집에 가자.”




군사 재판에 넘겨 달라고 해도 모자를 판에 꾹꾹 참고 나와서 연인에게 위로조차 편히 받지 못하고 집에 가고 싶다 말하는 밥이었다. 행맨은 밥이 말하던, 밥이 겁내던 것들이 이런 것일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게 네가 알던 곳이고, 내가 발을 담갔다가 놀라 도망칠까 걱정하던 그 세상인걸까. 너는 얼마나 오래 이런 세상에서 혼자 길을 잃고 헤맨 것일까. 혹시, 아직도 내가 너를 두고 언제든 이 곳을 벗어나고 싶어할까봐 걱정할까.’



행맨은 제 배우자가 성추행과 폭행에 시달리고도 손가락질 받는 다는 것에도 화가 치밀었지만 그 대우에 익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에 더 마음이 아팠다. 누가 명치를 내리치기라고 한 것처럼 숨이 콱콱 막히는 고통이었다. 단언컨대, 행맨은 이런 모습을 기대하고 청혼한 것이 아니었다. 어설프게 땅 위에 안착한 홀씨에게 단단한 대지를 제공해 제게 뿌리를 내리고 안온한 모습으로 개화하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로버트 밥 플로이드는 그럴 자격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






아니나 다를까 집에 오자마자 열이 잔뜩 오른 밥은 쓰러지기 전 행맨에게 제발 이대로 마무리되게 놔두라면서 신신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집으로 세러신가 주치의를 불러 스트레스성 발열인 것을 확인받은 행맨은 수액이 제대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밥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아까는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안경을 쓴 채로 맞은 건지 안경테가 닿는 부분에 생채기가 나있었다. 시력이 얼마나 파일럿에게 중요한 건데 안경 낀 애를 그대로 때렸다니, 의도가 다분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히며 흘끔 봤던 몸은 어땠던가. 골반 부근과 옆구리 쪽, 허벅지 쪽으로 타박상과 막 올라오기 시작한 멍울들이 있었다. 붕대를 감고 있던 왼손은 네 번째 손가락은 골절 새끼손가락은 탈골이라고 했다. 일상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겠지만 아무는 것에 따라 관절 불거져 나와 보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제 손도 아닌데 제가 다 아픈 기분이 들어 행맨은 밥의 붕대 위를 살살 쓸었다. 



평소에 곧게 뻗은 밥의 손을 참 좋아하던 행맨이었다. 장난삼아 왼손 약지에 제 이름과 밥의 이름이 담긴 반지를 끼워주던 날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할 정도였다. 오버하지 말라면서 등짝을 두드리는 밥에게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날 행맨은 집요하게 밥의 손을 노렸었다. 반지가 끼워진 손을 입으로 가져가 하나하나 핥아 내린 행맨은 나중엔 밥이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으니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 손가락 구석구석을 핥아댔었다. 그 말에도 꿈쩍않고 옴폭하게 파인 손가락 홈에 혀를 넣고 진득하게 자극하자 기어코 그만해달라며 애원하기 시작한 밥 때문에 이 기이한 행위는 끝이 났다. 

손에서 시작한 정사가 끝나고 나서 오늘 대체 변태처럼 왜 그랬냐고 묻는 밥에게 행맨은 깍지를 껴오며 그랬다. 반지 하나만으로도 내꺼라는 족쇄를 채운 것 같았다고 말이다. 밥은 그런 페티시가 있는 줄 몰랐다며 고개를 내저었고 행맨은 그런 밥의 손을 끌어올려 손등에 입 맞췄었다. 


「절대 빼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진짜 변태 같아.
그래서 뺀다고?
-아까 그런 짓만 안 했어도 지금 당장 그러겠다고 했을 거야. 좀 고려해봐야겠어.
정말?
-아이익!! 왜 또 입에 넣어. 미쳤나봐. 진짜 변태아저씨.
베이비가 대답 안 해주면 별 수 없지. 몸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아, 알았어. 그만해. 진짜. 너나 빼지마.
내가? 당연한 소릴. 난 이렇게 핥아줄 변태 같은 베이비가 없어서 뺄 생각도 안 드는데.
-.......제이크. 이제 와서 묻는 건데, 너 진짜 혹시 이상한 취향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지?」






행맨은 그 언젠가 반지를 끼워주던 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제 손안에 든 밥의 반지를 바라봤다. 밥과 친한 부대원의 말에 따르면 밥이 끼고 다니는 결혼반지로 시작한 빈정거림이었다고 했다. 평소에도 은은하게 밥에게 시비를 걸곤 했지만 반지로 시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했다. 죽을 듯이 온갖 파병은 다 나가서 진급하더니 고작 그 반지 하나 얻고 세러신 집안에 부인으로 들어앉으려고 했냐면서 말이다. 어차피 그럴 거였으면 굳이 힘들게 왜 항모타면서 고생하느냐 제이크 세러신이나 올라타서 허리나 흔들면 될 것을 하는 음담패설도 함께였다. 당연히 밥은 무시를 했고, 다른 부대원들도 본 것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아마 그 후에 혼자 항모 내에서 돌아다니다가 그 무리와 또 한 번 부딪혔고 그러면서 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다.


행맨은 뒷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자꾸만 펼쳐지는 장면들을 걷어내려 머리를 흔들었다. 제가 매번 베이비라고 부르며 손대면 부스러질 것 같이 대하긴 하지만 밥 역시 해사를 졸업하고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꽤나 듬직한 체격의 군인이었다. 그런 밥이어도 같은 체격 혹은 더 한 체격의 군인 장정 서넛이 덤비면 별 수 없었을 것이었다. 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이런 것에 있었다. 무력에 의해 짓눌려본 사람은 한 번 느꼈던 그 공포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거기에 성추행이라니 말 다했다. 행맨은 밥이 당한 것에 성추행이라 붙이는 것조차 싫었다. 이런 경우 대다수 정말로 성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우위를 점령하기 위한 수컷들의 힘겨루기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다른 종류의 폭행일 뿐이었다. 



행맨은 다시 가라앉았던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이렇게 물리적, 정신적으로 폭행을 당한 애한테 뭐라고 했더라. 그냥 넘어가라고 했던가. 행맨은 기도 안 찬다는 생각이 들어 뻐근한 턱을 돌렸다. 밥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제 콜사인이 무엇이던가. Hangman. 피닉스는 제가 항상 윙맨을 도와주지 않고 버리고 가는 것에 걸맞은 콜사인이라 했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은 하나였다. 교수형 집행자. 목에 올가미를 걸어 당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것이 제 연인을 건드린 사람이라면 일은 더 쉬웠다. 게다가 이 베이비는 유난떠는 유사 부모들-물론 그게 항상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이 저 말고도 많았다. 









[헤이. 프리츠. 러셀 대령에 대해 아는 것 좀 있어?]


행맨이 메시지를 보내기가 무섭게 답장이 도착했다.



[그 호모포비아에 대해서 네가 왜 궁금해?]
[설마 밥? 시발.]



그리고 곧장 전화기가 울려댔다. 행맨은 아직도 잠들어있는 밥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받기 버튼을 눌렀다.










-
아니 ㅁㅊ 벌써 17편이면 안 되는데...;;
편수 길어지는 것 같아서 붙여서 오려고 했는데 그러면 너무 오래걸릴 것 같아서 그냥 자름.
다음 편까지는 아마 과거얘기일듯ㅇㅇ...



+) 짤은 그냥...내가 풀먼이 손꾸락 좋아하는 개변태여서 넣었음
와라랄라랄 하고 싶다...진짜...저기에 반지 껴있다고 생각하면 진짜 고자극
재생다운로드풀먼이손꾸락.gif

재생다운로드D9ED4227-BC87-4FC7-AF34-2228EDBD1C50.gif

재생다운로드ac850ee483783b9ca0e0165b139f081a.gif
 
2023.03.06 11:16
ㅇㅇ
이렇게 서로가 절절하고 애틋하고 모든 걸 함께 한 사이인데, 제이크가 기억을 잃은 거라서 더 찌통임 지금.. ㅠㅠㅠㅠ 그래서 밥이 더 버티기 힘들어했던 거 같기도 하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16e8]
2023.03.06 11:24
ㅇㅇ
모바일
교수형 집행자. 목에 올가미를 걸어 당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것이 제 연인을 건드린 사람이라면 일은 더 쉬웠다.

크아아아아 띠발 조져보자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c32b]
2023.03.06 11:25
ㅇㅇ
모바일
세러신 가보자고 내편일 때 가장 든든한 우리집 개새끼 힘내라!!!!
[Code: 24a9]
2023.03.06 11:55
ㅇㅇ
모바일
이것때문에 반지 못끼게 된 거구나ㅠㅠㅠㅠㅠㅠㅠㅠ 저런 일이 여러번 일어나서 원치않는 전역을 하게 된 것 같고ㅠㅠㅠㅠㅠㅠ 매번 행맨이나 밥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해결하는 걸 밥이 가만히 두고볼수가 없었을테니까ㅠㅠㅠㅠㅠ 밥한테는 정말 제이크만 남은 거였네ㅠㅠㅠㅠㅠㅠ
[Code: c104]
2023.03.06 12:29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얘네 둘이 사랑하게 해줘 그냥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 사랑해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ae17]
2023.03.06 12:47
ㅇㅇ
모바일
센세ㅠㅠㅠㅠㅠ
[Code: cde4]
2023.03.06 13:52
ㅇㅇ
하ㅠㅠㅠㅠㅠㅠㅠㅠ 둘이 이렇게 힘들게 지켜온 사랑인데ㅠㅠㅠㅠㅠㅠ 밥이 지금 왜 전역해있는지 알게되니까 더 맘아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277]
2023.03.06 13:54
ㅇㅇ
‘이게 네가 알던 곳이고, 내가 발을 담갔다가 놀라 도망칠까 걱정하던 그 세상인걸까. 너는 얼마나 오래 이런 세상에서 혼자 길을 잃고 헤맨 것일까. 혹시, 아직도 내가 너를 두고 언제든 이 곳을 벗어나고 싶어할까봐 걱정할까.’

이렇게 밥 마음 헤아려주던 행맨인데 지금 현재의 밥이 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프리츠 피닉스 루스터처럼 좋은 사람도 곁에 있지만 그래도 저 집단안에서 좋은 말만 듣기는 힘들었겠지 그 이상의 부당한 대우도 받고ㅠㅠㅠ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맨을 선택한건데ㅠㅠㅠㅠ 프리츠가 처음에 밥한테는 행맨 너하나밖에 없게 만들어놓고 기억 잃으면 어떡하냐고 했던거 생각난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277]
2023.03.06 14:47
ㅇㅇ
모바일
밥이 끝까지 잃고싶지 않았던 것. 제이크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 지금은 둘 다 그걸 잃은 채로구나.. 어떻게든 돌이켜봐ㅠㅜㅜ 되찾고 지켜내봐 둘 다ㅠㅠㅠㅠㅠㅠ
[Code: c44e]
2023.03.06 14:59
ㅇㅇ
모바일
잘못은 대령이랑 가해자새끼들이 했는데 결과는 밥의 전역이라는게 너무 씁쓸하다
행맨이 그 쓰레기 불러들을 재기불가상태로 조져버린다고한들 밥이 당한 일들이 사라지는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행맨역시 감당해야할 문제들이 있었을테니까 군대라는 집단 특성상 저런 상황에 정상적인 대처를 기대하기도 힘들다보니 밥에겐 정말 진퇴양난이었을듯
행맨이 밥을 보호하려고 싸움을 자처하는것처럼 밥도 행맨을 보호하려고 군을 포기한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힘들게 서로를 위해온 사이였는데 어떻게 그걸 잊을수가 있어 제이크 이놈아ㅠ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908]
2023.03.07 01:20
ㅇㅇ
모바일
둘이 꼭 행복해ㅜㅜ
[Code: ab7b]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성인글은 제외된 검색 결과입니다.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