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체 ㅈㅇ



 에반 '벅' 버클리는 일종의 위험을 불러 모으는 토템과도 같았다. 위험한 곳을 스스로 찾아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그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벅은 그 위험한 현장 속에서도 스스로 또 다른 위험 거리를 찾아 그 속에 뛰어들고는 했다.




벅의 빌어먹을 정도로 뛰어난 희생정신은 다급한 상황에서 빛을 발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뛰어난 희생정신은 언제나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위험을 감수하고 나면 업보 식으로 사고를 마주하게 됐다. 다행인 점은 벅은 다른 소방관과 비교해 봤을 때 비해 월등히 많은 사고를 마주하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씩씩하게 118반으로 돌아왔다는 것일 테고, 불행인 점은 씩씩하게 돌아와 다시 불나방처럼 위험 속에 뛰어든다는 점일 거다. 사실 이는 벅의 타고난 성정 탓이었다. 부모님의 말을 인용하자면 벅은 태어나기를 남을 배려하며 돕기위해 태어났다고 했다. 벅은 실제 그 말이 사실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돕기 위해 안달내고 있었다.






평소는 운이 좋아 큰 사고를 비껴나갔다지만, 운명의 여신은 벅의 편만 들어줄 정도로 그를 편애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조울증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조울증이 맞았다. 기분 좋은 날에는 사람들을 친절히 대해주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인도에서 잘 걷고 있는 사람을 차에 깔리게 만들거나 심지어는 갓태어난 어린아이에게까지 심술을 부려 첫숨도 내뱉지 못하고, 부모와의 첫만남을 제대로 가지지도 못한 상태로 떠나 보내게 만들기도 했다.





벅이 만약 오늘 그녀의 기분이 잔뜩 바닥을 기어 다니는 상태였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호수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버스를 향해 뛰어들었을까? 알 수 없지만, 알 수 있다. 벅은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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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ck!!"

벅은 상스러운 욕을 잔뜩 내지르며 깨어났다. 호수 저 아래로 가라앉는 노란 스쿨 버스를 보자마자 앞뒤 가릴 거 없이 줄도 매달지 않고 무작정 호수로 뛰어들었다. 호수의 온도는 저녁 바람에 의해 잔뜩 떨어져 있었다.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운전사를 구해야만 했다. 아래로 아래로 계속 내려가다 보니 노란 스쿨 버스가 바닥에 처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버스 안에 갇힌 운전사가 정신을 잃고 운전석 부근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탈출하기 위해 안전벨트를 풀러, 그는 천장과 의자에 부딪히며 떠다니고 있었다-. 벅은 버스에 붙어 창문을 깨기 위해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손전등으로 수차례 내리쳤다. 조금씩 금이 가던 창문은 기어코 손전등을 산산조각 내버렸고, 벅은 자신의 손에 들린 고물을 대충 뒤로 버리고는 주먹으로 마구 창문을 두드렸다.





손전등으로 내리친 부분을 몇차례고 계속 내리치자 놀랍게도 창문은 희미하게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더욱 커다란 금을 만들어냈다. 주먹이 욱씬거리고 뼈가 울부짖을 정도로 두드렸다. 벅은 폐가 산소를 격렬하게 원하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구조를 멈추면, 호수에 가라앉기 직전까지 아이들을 구출했던 위대한 운전 기사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것이고, 벅은 자신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거였다. 벅은 마지막 있는 힘껏 창문을 내리쳤다. 손등은 이미 피로 흥건했고 주먹은 퉁퉁 부어올라 분명히 뼈에 금이 갔거나 최악의 경우 부러졌겠지만, 창문이 깨지는 모습은 그런 고통도 잊게 할만큼 희망적이었다. 






벅은 헤엄치며 버스 기사를 수면 위로 끌고 올라갔다. 버스가 호수 아래까지 가라앉아 있어 올라가는데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벅은 수면에 아른 거리는 소방차 불빛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벅이 마지막 힘을 다해 운전 기사를 수면 위로 올려보냈다. 컥-하는 소리와 함께 벅의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벅의 폐가 산소를 원했다. 벅은 발버둥치며 호수 아래로 점점 가라앉았다. 저 멀리 멀어지는 소방차 불빛이 애틋했다. 그때 벅의 눈에 형광 물질이라도 발라뒀나 싶을 정도로 빛을 내뿜는 작은 거울 하나가 들어왔다.

'이 아래는 빛도 안 들어오는데 되게 밝네.'

벅의 눈이 스르륵 감기기 시작했고, 벅은 코와 입을 통해 들어오는 물이 뜨겁다는 생각을 했다. 호수의 물살에 밀려 작은 거울이 벅의 검지 손가락에 닿았다. 거울이 전보다 더 강한 빛을 내뿜었다. 벅은 이제 완전히 정신을 잃었고, 거울은 여전히 세찬 빛을 내뿜으며 너울거리는 물결을 온 몸으로 반기고 있었다. 






 벅은 자신이 병원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사후세계가 고작 병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찬 실망을 했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라던지 지옥, 아니면 연옥 같은 곳이 이런 모습이었다면 과연 누가 신을 믿으려 할까. 종교인들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동안 신에게 군말 없이 바쳤던 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일텐데. 어쩌면 시위까지 할 수도? 이건 상당히 재밌는 광경이겠네. 벅이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있을 때 병실문이 열렸다. 흰 가운에 안경. 목에 건 청진기, 손에 들린 차트까지. 저건 그냥 의사잖아! 벅은 사후세계의 모습에 굉장히 실망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일어났군요."

"...되게, 진짜 사람 같네요. 하데스가 직접 왔을 리는 없으니까 그 직원인가? 부하라고 해야하나."






의사는, 아, 아니. 저승주식회사 직원은 벅의 말을 듣고 요란스레 차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벅은 여상스럽게 그 모습을 바라봤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이리 진짜 의사같냐. 메뉴얼이라도 보고 있나? <망자가 일어나자마자 이곳이 저승인 것을 알아냈을 때 대처법>이라던지, <협조적인듯 아닌듯 애매한 망자 구분법> 같은거.' 벅은 여전히 쓸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차트를 들여다보던 의사는 벅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차트를 정리해 한쪽 옆구리에 대충 꼈다. 

"성함이 에반 버클리 맞으시죠? 퇴원하시기 전 MRI 검사 한 번 더 진행하겠습니다. 보호자는 병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들어오라고 할까요?"

"그래요 뭐. 누가 들어오려나."

"네, 그럼. 보호자분 모시고 오겠습니다."





의사는 바쁜 걸음으로 병실 밖으로 나가 뭐라 떠들어댔다. 아무래도 자신의 보호자라고 주장하는 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성 싶었다. 벅은 저승의 느리고 지지부진한 일처리 방식에 118 팀원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살렸던 버스 기사가 골든타임은 놓치지 않았는지, 주말에 크리스토퍼와 함께 보기로 했던 히어로 영화를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과, 크리스토퍼가 자신을 약속도 안 지키는 못난 삼촌으로 생각할까 걱정되는 마음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계속 미루고 미루다 이번 주말에 겨우 시간 맞췄던 건데, 크리스토퍼가 기대하고 있을 텐데. 상념에 잠겨 있던 벅을 깨운 것은 다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흰 가운의 의사와 자신의 부모님이었다. '잠깐, 부모님? 설마 나 또 무슨 코마 상태인건가?' 벅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부모님 뒤를 따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따라 들어오는 매디를 쳐다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부모님과 매디가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벅에게 다가왔다. 매디가 말했다.

"벅, 괜찮아? 이유도 없이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졌다길래 걱정 많이 했어. 아직 어린 애들이지만 911 신고는 할 줄 알아서 망정이지. 다니엘이 그러는데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는데 과로랑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며. 진짜 괜찮은거 맞지??"





매디가 벅의 손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제야 시야에 들어오는 연하늘색 셔츠와 잘 빠진 짙은 청색 진. 매디의 말에 따르면 아무래도 자신은 교사...인 듯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복장 역시 초등학교 교사나 입을 법한 옷들이었고. 분명 호수에 있을 때 까지만 했어도 작업복 차림이었는데. 벅은 매디에게 잡힌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볼을 꼬집었다. 벅은 자신이 최소 코마상태거나, 혹은 최악의 경우 사후세계에서 망자를 상태로 깜짝 카메라라도 찍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없어야만 했다.




벅이 입만 떡 벌리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셔츠와 바지만 내려다보고 있으니 매디가 부드럽게 벅의 볼을 잡아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매디의 걱정스러운 표정 뒤로 보이는, 서로의 손을 구원의 밧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여잡고 있는 부모님. 벅이 매디에게 말했다.

"부모님이 혹시 우리랑 같은 동네 사시거나 뭐... 누나가 말한 다니엘이 내 형이라던가 그런건 아니겠지?"

그 말을 끝으로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적이 찾아왔다. 부모님이 한걸음에 그에게로 다가와 이마에 손을 대보며 열을 재기도 했다. 벅은 그제서야 인정했다. 지금 이 빌어먹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짐작할 수는 없어도, 아무래도 코마 때 잠시나마 존재했던 그 세상 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그리고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질감이라던지 시간에 쫓기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벅은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오 제발 제가 머릿속 코마 세계가 진짜 현실이 되어버린 현실에 놓인게 아니라고 해주세요.' 허나 여타 모든 인간들에게 그러하듯 신은 그에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믣911 구일일 에디벅
2024.04.13 01:45
ㅇㅇ
모바일
헉 코마였을 때 갇혔던 세계로 돌아왔다는 설정이라니 벌써부터 진짜 흥미진진하다 에디벅이라니 이 세계에서의 에디를 어떻게 만날지 기대됩니다 센세 어나더 있는거죠?ㅠㅠㅠㅠㅠ
[Code: 19db]
2024.04.14 12:12
ㅇㅇ
모바일
ㅁㅊ 걍 당연히 일어났겠거니 하고 읽었는데 이이이이 머선....!!!!!! 벅이랑 동기화돼서 벙찜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너무 재밌다 어나더 센세.....!!!!!
[Code: 1dc8]
2024.04.18 04:51
ㅇㅇ
모바일
기승전 다 완벽한데 끝에 에디벅이라고 있는 게 진짜 감동임 센세 에디랑 벅이랑 만날 때까지 억나더 맞지
[Code: 84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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