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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3 06:09
2편




(이번 편 좀 길어...!)





night train.jpg


-좋은 밤ㅇ,



-15분 맞죠? 거짓 없이?



10시 반 좀 넘어서 문을 아주 부서저라 열어제끼고 매표소 앞까지 척척 돌진해온 허니는 십-오 하는 숫자를 꼭꼭 씹어 발음하며 안부인사를 걷어냈다.



-맞아요. 15분 일찍 아니고, 15분 딱 정각.



그제야 희미한 숨을 뱉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한 허니는 네, 뭐 그런 밤이네요,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이번만큼은 잘못될 일 없는 시간이었다. 매튜는 신속하게 다가와서 허니의 코트와 짐가방, 접이식 우산을 담보 삼아 빼앗아 든다. 행여나 달아나지 못하도록 뭐라도 쥐고 있는다.



-자, 이제 저한테 빚진 이야기 내놓으세요.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내가 여기 왜 왔는가?















허니는 왜 기차에서 내렸을까?
진 빠지는 출장 업무를 마치고 녹초가 된 귀갓길. 홈 스윗 홈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은 역이다. 더군다나 허니는 홈보다 더 달달할 2개월치 휴가를 앞두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텁텁하고 거칠어 휴양지로는 적합하지 않고 그저 단조로울 따름인 어촌이다. 뭘 보고 내렸을까?




-마침 오늘처럼 침침하게 비 내리는 밤이었어요. 차창 밖으로는 뭐, 아무것도 안 보이지. 이렇게 황량한 풍경인 줄 그때 봤으면 안 내렸을 지도요. 그니까 밖을 보고 내린 게 아니라, 기차 안에 있던 걸 봐 버린 거예요.

내 옆자리에 앉아서 가던 승객이 연쇄 살인마였어요.




옆자리에서 홍차를 코로 들이마시는 파열음이 크게 나서 이야기는 잠시 중지되었다. 허니는 매튜의 고난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손안의 페퍼민트 티를 홀짝였다. 기침이 잦아들자 허니는 계속했다.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나를 모르고, 앞으로도 볼 일 없을 낯선 사람한테는 비밀을 쉽게 털어놓는다고 해요. 그래서 전 이름을 모르는 사람과는 스몰 토크를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날은 긴 여행이었어서 핸드폰 배터리가 다 닳았고, 잠도 더는 오지 않았던 데다가, 옆자리 사람은 몇 시간 째 책을 읽고 있었거든요. 책 읽는 사람한테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편견이 있어서요. 그 사람이 잠시 안경을 벗고 눈을 쉬던 때를 노려서 물어봤어요. 뭐 읽으시냐고.







"소설이요. 유령이 나오는."



"재밌나요?"



"그럭저럭이요."



"제목이 뭐예요?"



"『망자와의 인터뷰』(Interview with the Late). 그런데 확실하진 않아요. 아니면 『심야의 인터뷰』(Late Night Interview)일 수도 있어요. 모르겠어요."



"북커버가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 그걸 벗기고 확인하면 제목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생각해 볼게요."



"... 줄거리 알려주세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까 자세한 내용까진 말하지 않을게요. 나중에 직접 사서 읽어 보세요. 윌이-나중에 알게 된 그 사람 이름이예요-두 시간 반에 걸쳐 해준 이야기를 짧게 요약해 볼게요. 유령과 대화할 수 있는 기자가 주인공인데 우연히 만난 다섯 명의 유령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요. 나이, 성별, 직업, 살던 곳, 심지어 사인까지 어떤 면에서도 닮은 점이 없는 인물들인데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사망한 날짜에 같은 노선의 지하철을 탔다.' 그렇게 주인공이 유령들의 진술을 조합해서 실마리를 풀어가다 보니 연쇄 살인사건의 전말을 밝히게 되는 내용이예요.



-허니, 끼어들어서 미안하지만요. 흥미로운 설정의 범죄소설을 탐독한다고 다 연쇄 살인마가 되는 건 아닐텐데요.



-그렇게 생각할 근거가 있었어요. 들어보세요. 윌이 이 이야기를 맨입으로 들려준 건 아니예요. 세번째 유령의 사고사가 사실 위장된 살해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대목에서 멈추고. 주인공이 문제의 지하철을 타다가 갑자기 정전이 되는 장면에서 끊고. 여섯 번째 타겟으로 우려되는 인물이 막 등장했는데 저한테








"여기까지. 이제 그쪽 차례예요."



"아, 제발. 선생님. 여기서 끊는 상도덕이 세상에 어딨어요."



"계속 저만 말하려니까 목이 아파요."



"그럼 책을 빌려주세요. 저 속독해요."



"제가 원체 까다로워서 제 책이 남의 손 타는 걸 싫어합니다."



"됐어요. 요즘 같이 좋은 세상에, 검색해서 결말 포함 줄거리 싹 찾아볼...아, 맞다. 배터리."



"아까 들려주신 괴담, 짧긴 해도 마지막에 반전이 참신하더라고요. 물론 저는 다 예상했지만."



"어디서 주워들은 제 비루한 유령 이야기보다 그 소설이 백배는 더 궁금한데, 굳이 없는 살림에 저한테서 짜내셔야겠어요?"



"원래 더 궁금한 사람이 먼저 말하는 거예요. 기브 앤 테이크. 이번에는 좀 긴 거로 부탁드릴게요. 차내가 건조해서 그런지 목이 심히 칼칼하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 윌이라는 사람이 살인마가 되는지 감도 안 잡히네요. 세헤라자데처럼 협박당하기라도 했어요?



-그보다 더한 짓을 당했죠.



-예? 그게 무슨,



-결말을 빼앗겼어요. 제가 뇌에 쥐가 나도록 있는 괴담, 없는 괴담, 지어내 가면서까지 힘겹게 쫓아가서 마침내 윌의 차례였어요. 마지막 차례였죠. 범인을 사로잡는 최종장의 결말 부분이었어야 하는데 윌이 말하길,





"저는 여기까지밖에 몰라요. 아직 다 안 읽었거든요."





-심하긴 했네.



-이해하시죠? 이해해 주셔야 해요. 왜냐면 제가 너무나 어, 슬펐던 탓에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윌의 책에 몰래 손을 대고 말았거든요.



-어떻게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잠시 바가 있는 칸에 가서 맥주로 흥분을 가라앉힌 후에 자리로 돌아와 보니까,



-심신미약 상태였군요. 참작합니다.



-고마워요. 돌아와 보니까 윌이 없더라고요. 윌이 담배를 피러 간 사이에 잠깐 책 표지만이라도, 제목만이라도 확인하려던 거였어요. 결말이든 제목이든 윌은 제대로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그대로 다음 역에서 내려 버리면 어떡해요. 그래서 북커버를 들췄는데, 그건 책이 아니었어요. 가죽으로 양장된 노트였어요. 펼쳐볼 수밖에 없잖아요. 열었더니 그 안에는 손글씨 메모들로 빼곡하게 차 있었어요. 제가 속독한다고 말씀드렸던가요? 그 대략의 내용은 윌이 얘기해준 소설의 줄거리와 비슷했는데 몇 가지 사실관계와 이름들이 달랐어요. 무엇보다도 메모 속의 피해자들은 세 명이었고, 그 중 한 명은 제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죠. 케일럽 호킨스. 기억하세요? 3년 전쯤 대학생 조정 선수 실종사건.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같네요.



-왜, 옥스포드 학생이라서 제법 떠들썩했잖아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아서 실종 상태인 것만 알고 잊어버렸었는데, 그 노트를 보니까 3년 전에 뉴스를 봤던 기억이 되살아 나더라고요. 소설 속의 유령들은 케일럽 호킨스였어요. 그리고 노트에 적혀 있던 나머지 두 사람, 마틴 코헨과 에이미 파텔이기도 했고요. 실제 사건들이 조금씩 교묘하게 뒤바뀌어 소설이 된 거예요.



-실제 범죄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은 많아요. 윌이 구상하던 소설의 내용을 허니한테 들려준 거라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나요.



-매튜, 케일럽 호킨스는 여전히 실종 상태예요. 그런데 노트에는 '호킨스의 시체가 소각된 폐공장 부지의 주소'와 함께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었어요. 소설 속의 설정과는 전혀 다른 실제 주소요.



-윌이 비공식 작전 중인 형사라거나...?



-제가 유력한 용의자가 아니고서야 수사 중인 내용을 소설인 척 꾸며서 흘리진 않겠죠. 노트 안에는 연쇄 살인마이거나 이미 사망한 피해자 본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정보들이 담겨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눈 앞의 노트보다도 마음에 더 걸린 건 윌이 제게 했던 질문이예요.








"만약에 이 이야기의 끝에 새드엔딩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떨 거 같아요?"



"어떤 종류의 새드요?"



"혐의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들이, 아니, 애초에 살해 의혹을 제기하는 데 필요한 증거들조차 남김 없이 사라지는 부당한 결말이요. 유령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산 사람은 온 세상에 주인공 뿐이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체념한 채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그런, 새드요."



"우와, 우울해."



"역시 독자 입장에선 싫죠? 그랬다간 작가가 조만간 유령 신세 될 지도 모르겠네요. 팬들 총에 맞든,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어서 굶어죽든."



"어차피 허구인데 슬퍼야 해요? 복수는 성공하고, 사랑은 영원하고, 주인공은 행복하고, 그런 일들이 가능한 세계를 보고 싶어서 온 건데."



"그래도 가끔은 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큰 위로가 된다고 생각해요."








-듣고 보니 범행 자백이네요.



-그쵸? 엄청 신경쓰이죠? 그래서 윌이 내리는 역에서 저도 무작정 따라 내렸어요.



-지금 옆자리 연쇄 살인 용의자를 뒤쫓아서 우리 마을에 도착했다는 얘길 하려고 40분째,



-그럴 수밖에요. 윌의 노트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내용은 저에 대한 짤막한 메모였던 걸요. 제가 맥주를 찾아 떠난 사이 네번째 타겟을 정했었나 봐요.



-그걸 알면서 여길 왔어요?



허니는 한 모금밖에 남지 않아 완전히 식어버린 페퍼민트 티를 꿀꺽 삼키고는 씨익 개구지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윌은 살인마가 아니니까. 



매튜는 이마를 문지르며 힘빠진 웃음을 털어낸다.



-'내 옆자리 승객이 연쇄 살인마였어요'라니. 당신 정말 기만과 허위에 재능이 있군요. 본업이 언론이예요?



-이게 다 윌한테 배운 솜씨랍니다. 이 정도 제목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읽지 않을 걸요.



-윌리엄이 살인마가 아닌 건 저도 알아요. 그는 해안가 졀벽에 별장을 하나 두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작업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소설가죠.



-뭐야. 매튜, 윌을 알아요?



-네. 1년 중 별장에 틀어박혀 있지 않은 때에는 유령이 출몰한다는 심령 스폿이나 목격자를 찾아 돌아다니는 별종이지요. 그와는 ... 친분이 있어요.



-그럼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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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것도 알아요. 윌이 유령과 대화한다는 거.



-그거 비밀 아니었어요? 이렇게 아무한테나 막 얘기하면 안 되죠. 친구라면서.



-허니에 대해서는 윌리엄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요. 소설 쓰는 데 도움을 주면서 한 달 동안 머무르고 있다고.



-내가 누군지, 무슨 일로 이 마을에 온 건지 다 알면서 물어봤네요. 못됐게도.



-제가 아는 건 윌리엄이 한 말들 뿐이에요.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윌리엄을 따라 기차에서 내렸을지는 모르죠.



-뭐, 방금 들으신 대로예요. 소설의 초고가 완성되어서 윌은 출판사 미팅 일을 처리하러 도시로 갔어요. 별장에서 지내도 좋다면서 열쇠도 주고 갔는데, 집주인이 없으니까 재미도 없어서 저는 제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일이 잘 마무리되면 나중에 셋이 모여서 식사라도 함께하면 즐겁겠어요.



-그보다 윌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는 건 어때요? 오늘처럼 저와, 즐겁게.



-으음, 그럴 이유가 없어요. 거절. 여러 번 더 물어보면 진짜로 화낼 거예요.



-아쉽게 됐네요. 그럼 시간도 늦었으니 별장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잠깐, 잠깐. 지금 11시 15분이잖아요. 곧 경적 소리가 들릴 거고, 그럼 저는 매튜랑 악수 한 번 나눈 다음에 플랫폼으로 나갈 거고, 그리고 그대로 올라 타서 집에 가면 되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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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1시 15분이라고 한 적이 있던가요? 그러게 일찍 오시라고 말씀 드렸는데. 기차는 10시 15분에 떠났어요.



-아니! 또!! 그럼 아까 제가 10시 반 넘어서 왔을 때 말해 줬어야죠! 지금 몇 시야!



-11시 15분이네요.



허니는 양 주먹을 꽉 쥐고 허공에서 멱살을 잡으려는듯이 으이익, 짧게 흔들었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일부러 이러는 거 맞죠.



-네.



-거짓말 하지 ㅁ... 맞다고요?



-네, 맞아요.



-왜요? 아, 설마 윌이 부탁한 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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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저는 윌리엄을 사무치게 미워해서요. 그를 원망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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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은 당신을 사랑하거든요.



-어...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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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그를 용서할 수가 없어요.





-지금 뭐라는지 전혀 못 알아듣겠어요. 그런데 이건 그냥 제 감인데요. 아무런 논리도, 이해도 없는 순전한 느낌인데요.

매튜, 혹시 죽었어요?



-내일 다시 오면 알려줄게요.



-기차가 온다면요. 기차는 몇 시에 오나요?



-말했듯이 10시 15분에.



-그거 거짓말이잖아.



-거짓말인지 아닌지 와보면 알겠죠.











4편
매튜좋은너붕붕
2024.03.23 08: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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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혹시.. ? ༼;´༎ຶ ۝༎ຶ`༽
[Code: 10a6]
2024.03.23 09:01
ㅇㅇ
모바일
쉬바 허니도 유령인거라고 하지 말아줘,,,,,,,,,,,,, 분위기가 무슨 눅눅한 꿈 꾸는 것 같다ㅠㅠㅠ
[Code: fc23]
2024.03.23 23:59
ㅇㅇ
모바일
잔혹동화 읽는 것 같아 센세는 천재야..
[Code: eae0]
2024.03.24 02: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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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지고 장난 치는 거 넘 매력적이야 ㅋㅋㅋㅋ
[Code: a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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