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매브 루버릭 가이드/센티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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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매브 #루버릭 #검진결과지












온 몸의 신경이 갈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지난번 폭주했을때는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 잘 느끼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인위적으로 유도해서 더 심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제까지 겪은 그 어떤 고통보다 심각했다. 재갈을 물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한 가지 자극에만 집중해보세요. 종소리가 일 분에 몇 번 울리는지 세어보시겠어요?

말이 쉽지 들리는 소리마다 귀청을 찢어놓는 것 같은 상황에서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를 구분하는것조차 힘들었다. 매버릭은 눈을 파내버릴듯 위협적인 전구 불빛을 피해 눈을 질끈 감은 채 그들이 말하는 대로 종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훈련은 전류를 이용해 폭주 상태를 유도하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75부터 시작해서 스스로 오감의 통제권을 찾아가며 수치를 50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였다.

말이 좋아 전류였지, 억지로 폭주상태를 유발할만큼 스트레스를 주려면 제법 강한 전류를 흘려야 했고, 폭주가 시작되면 거의 고문에 가까워졌다. 가이드는 정말 비상사태를 대비한 것이지 거의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적응훈련의 목표는 센티넬이 폭주상태를 통제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기르도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했다.

-종소리가 구분되시면 고개를 끄덕이세요.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잡다한 소음 속에서, 종소리라기보다는 대포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여전히 일정한 간격으로 온 몸에 흘러들어오고있는 전류때문에 극도로 힘들었지만, 한 소리에 집중하는 순간 아주 조금 쉬워지는 것 같았다.

60초를 세는 타이머 따위는 없었지만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 끝에 매버릭은 시간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매버릭이 고개를 끄덕여 신호하자마자 방 안의 조명등이 어두워지더니 온 몸을 찢어발기는것 같던 전류가 멈췄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하사가 달려와 방사가이딩을 시작했다. 아이스가 해줄 때같은 극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최소한 신경을 태우고 있던 불길을 약화시켜주기는 했다. 닥터 힐이 모니터링룸에서 나와 매버릭의 입에서 재갈을 빼주었다.

-75에서 67까지는 성공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한 번 해보시죠.
-그냥...

그냥 계속하고 빨리 끝내자고 말하려는 순간, 문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방음처리된 공간이었지만 한계까지 예민해진 매버릭의 귀에는 분명히 들렸다.

'이러시면 안ㄷ..'
'내가 가이딩하겠다니까요! 저 안에 있는게 누구던지 내 매칭률이 더 높을테니까 검사라도 해 보시던가요!'

루스터. 의자에 묶여있지 않았더라면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브래들리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매버릭은 다급한 표정으로 닥터 힐을 바라보았지만 상황을 알리기도 전에 벌컥 문이 열리며 빛이 쏟아져들어왔다.

가이딩을 받고 있어도 눈을 뜰 수 없어서 눈을 감고 시선을 돌린 사이 루스터의 발소리가 판사봉 내려치는 소리처럼 크게 들려왔다. 여전히 의자 팔걸이에 구속되어있는 손에 온기가 닿았다. 닥터 힐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ㅂ, 브래드쇼 대위, 지금은 훈련중이니..
-이딴걸 훈련이라고 부릅니까?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가 매버릭을 흠칫 하게 만들었다. 왜 제 앞길을 막았냐고 따지고 들던 순간의 분노가 그대로 느껴져서 매버릭은 루스터의 가이딩으로 빠르게 안정되고 있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흠칫 몸을 떨었다. 매버릭의 손을 붙잡고 있던 루스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이사람한테 가장 잘 맞는 가이듭니다. 의심가면 매칭률 검사라도 해보시죠.

그 말대로, 매버릭의 상태는 하사가 가이딩을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빠르게 안정되고 있었다. 폭주 수치를 모니터링하던 의사 역시 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는듯 대답이 없었다. 결국 매버릭이 꼭 목이 졸리는 사람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루스터, 여기 있으면 안 돼.

네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이렇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무수히 많은 말이 입 안에 맴돌았지만 루스터는 코웃음치더니 이를 가는듯한 목소리로 매버릭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냥 입 다물고 있어요. 당신은 말 안 하는게 나아.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하사가 놀라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사정을 모르는사람이 보면 엄청난 하극상으로 보일거라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라 매버릭은 저도모르게 하사에게 그만 가 보라는 명령을 했다. 연구원들이라면 몰라도 같은 군인인 그가 혹시라도 다른 상관에게 이야기하면 루스터가 곤란해질 수 있을 거라는 걱정이 앞서서 한 행동이었는데, 그렇게되면 방 안에 남는 가이드는 루스터 뿐이라는 사실이 한 발 늦게 매버릭의 뒤통수를 때렸다.

-...오늘은 가이딩이 더 필요 없을 것 같네요, 닥터.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손목까지 의자 팔걸이에 구속된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제한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루스터는 손을 놓아주기는커녕 더욱 옭아매어왔다.

-눈도 못 뜨면서 헛소리 하지 말아요.
-..루스터..

계급을 이용해서라도 루스터를 내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브래드쇼 대위'라고 불렀는데도 루스터가 말을 듣지 않으면, 정말 명령 불복종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 훈련실 안에 연구원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들이 상황을 기록에 남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초조해져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데, 루스터가 한 손을 뻗어 턱을 잡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매버릭은 또 전기충격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뛰었지만 의자에 묶여있는 터라 빠져나가지도 못했다. 이미 문이 다시 닫혀서 눈을 찌르는 듯한 조명빛은 사라졌는데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훈련실 안이 쥐죽은 듯 고요했다.



편안해지는 만큼 죄악감은 커져가기만 하는 시간이 지나고, 의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수치가 50까지 떨어졌습니다. 다시 한 번 시작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지금 장난ㅎ..
-네, 다시 시작하죠.

루스터가 매버릭의 손을 으스러뜨릴 듯 꽉 쥐었다. 여전히 반 폭주상태였기 때문에 꼭 손가락 뼈가 바닥에 떨어진 석고상처럼 조각나는 것 같아서 매버릭은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내질렀고, 루스터는 불에 데인 사람처럼 손을 놓았다.

-미안해요.매브, 내가..

루스터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서려있었다. 아니, 아니야. 매버릭은 루스터에게 자신은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혀를 깨물며 참았다. 대신 비겁자처럼 루스터가 약해진 순간을 이용했다.

-..훈련하는 동안에는, 나가있도록 해, 대위.
-적응 훈렩중에는 가이드가 있어야 하잖아요.
-문 밖에서 기다려. 아니면 엘리엇 하사를 다시 부를거야.

눈을 계속 감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잘한 선택인가. 매버릭은 한참 망설이던 루스터가 훈련실을 나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눈을 떴다. 닥터 힐은 복잡한 표정으로 매버릭에게 다시 재갈을 내밀었다. 그냥 거절하고 싶었지만 혀를 동강내거나 이를 깨뜨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는 60 아래로 떨어뜨리는걸 목표로 하겠습니다. 잊지 마세요. 폭주 상태에서 오감의 통제권을 되찾아 오시는게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게 말처럼 쉬워야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보자 의사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면, 하나의 생각에만 집중하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옛날 적응 훈련 사례들을 보면, 머릿속을 비우거나,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는걸로 시작해서 성공한 센티넬들도 있었어요.

매버릭의 머릿속은 비워질 수가 없었지만 하나의 생각에만 집중하는 것은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적응훈련을 끝내고 팀 리더가 되어 브래들리와 젊은 파일럿들을 전부 무사귀한 시키는 목표라거나, 아니면, 자신을 안아주던 아이스맨을 떠올려도 좋을 것 같았다.

매버릭은 다시 모니터링룸으로 돌아간 의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신호했고,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통증이 온 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