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집



주황색의 소파와 조명, 그리고 카펫은 아담한 둘만의 공간에 따뜻한 온기를 내어 줍니다.
둘은 따뜻한 공간 안에 따뜻한 웃음을 채워 넣습니다.




소파가 있던 자리를 침대에 내어 주고 나면 이제 공간의 중심은 두 사람의 침대가 됩니다.
창문에 달려있는 하늘하늘한 레이스 커튼은 그녀의 취향이겠죠.
서로의 공간을 공유하고 서로의 취향을 나누는 사랑은 밝게 빛이 납니다.




남자는 창문 밖에 앉아서 창문 안쪽 그들만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창문은 열려 있고, 그는 혼자 앉아 있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남자의 집

LA Watermarke Tower
영화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가구와 조명들은 대체로 1960~70년대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입니다.



넓지만 가운데가 텅 비어버린 공간에 그녀와 함께 사용하던 물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남자의 마음처럼 말이죠.
두 사람을 위한 소파는 사라졌고,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의자들이 컴퓨터를 향해 놓여 있어요.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처럼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는 걸까요. 남자는 거실 중간에 홀로 서 있습니다.
사방을 감싼 커다랗고 투명한 유리 창문은 남자와 세상을 소통 시켜주는 연결 고리이기도 하지만 그가 세상과 단절돼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섬이 되어 버린 듯, 남자는 덩그러니 놓인 일인용 암체어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함께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식탁은 없습니다. 의자만 놓여 있을 뿐이죠.



바스툴도 하나뿐입니다.



그는 존재의 결핍을 느끼지만, 일인용으로 세팅된 집에는 누구의 자리도 없습니다.
실체가 없는 사랑만이 가능할 뿐이죠.



텅 빈 책장에 책을 꽂아 놓는 대신 바닥에 쌓아 두고, 수백 통의 이메일을 정리하지 않고 방치하는 남자의 마음은 뒤죽박죽 복잡해 보입니다.



별처럼 무수히 많은 불빛을 보며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걸까요.
이 집은 남자 혼자만의 공간이지만 숨을 곳 하나 없이 열려 있고
열린 공간이지만 남자에게는 닫혀있는, 모순된 공간입니다.


친구의 집

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 친구의 집은 전체적으로 따뜻한 피치톤으로, 제자리에 놓인 가구와 귀여운 소품들로 잘 꾸며져 있습니다.





사생활을 지킬 수 있는 커튼도 적절히 달려 있고요. 다른 이들을 맞이할 수 있는 소파도 여러 개 놓여 있습니다.

 

그의 사무실

그의 직업은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입니다.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처럼 사무실은 영화 속 공간 중 제일 컬러풀한 장소입니다.



한쪽 방향을 향해 일렬로 서있는 파티션 안에 앉아, 모니터만 보고 일하는 이 공간은 마치 사연을 제조하는 공장처럼 보입니다.



소통을 은유하는 창문은 여러 가지 컬러로 코팅되어 있습니다. 투명한 진심 대신 필터 처리된 편지가 상대에게 전달되겠죠.



누군가와 소통을 원하는 이들은 손편지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다른 이가 대신 써주는 편지는 더 이상 진실된 도구가 아닙니다.



남자의 삶은 실체와 허상을 오고 갑니다.
자신의 진실된 감정은 실체가 없는 인공지능과 나누고, 실체가 있는 누군가의 사연에는 자신의 거짓 감정을 더해 편지를 쓰죠.



남자의 사랑은 반쪽뿐인 소통입니다.
몸은 함께 있으나 마음의 소통이 되지 않고, 마음은 소통되지만 몸이 함께 할 수 없는 이 사랑은 결핍된 소통이며 소통을 가장한 불통입니다.



벽에 그려진 그래픽이 남자의 모습 같습니다.

영화 속 도시

중국 상해 푸동지구



높은 빌딩과 뿌연 하늘,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자의 공허감이 느껴집니다.




남자의 패션은 하이웨이스트의 복고풍 스타일
남자의 집 인테리어는 미드 센추리 스타일
남자의 직업은 손편지 작가이죠.

그는 미래에 살고 있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사람이 아닐까요?

중국 상해 오각장

5개의 백화점이 5각으로 모여있는 상해 오각장역 입니다.



남자는 주머니에 깊게 손을 찔러 넣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화려한 붉은 조명 밑을 걷고 있습니다. 화려한 도시와 대조적으로 무기력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중국 상해 Zendai himalayas center




일본 건축가 arata isozaki가 설계한 히말라야센터 입니다. 남자는 미래적이면서도 원시 동굴 같기도 한 이곳에서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을 처음 만납니다.

중국 상해 Zebar



3Gatti Architecture Studio 가 설계한 zebar입니다. 여러 층의 레이어가 켜켜이 쌓인 공간에서 빨간색 옷을 입은 적극적인 여인과 소개팅을 합니다. 하지만 노란색 셔츠를 입은 그는 주저하고 말죠.

인공지능 Os1과의 데이트



그녀는 남자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남자는 가슴 포켓에 그녀를 담고, 해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놀이동산에 가기도 하죠.
렌즈 눈을 가진 그녀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하지만, 낡은 옷핀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그의 가슴에 최첨단으로 무장한 그녀가 공존할 수 있을까요?

해변 LA Dockweiler State Beach



놀이동산 Santa Monica Pier



섬 LA San Pedro Harbor



Nevada Sugar Bowl Resort





완벽해 보이던 사랑도 영원히 그의 곁에 머물진 못합니다.
따뜻한 해변가 같던 가슴이 차가운 눈처럼 시려집니다.
그의 사랑은 하얀 눈밭에 서있는 부러진 나무와 같은 모습이 되어버립니다.